HOME  >  라이프

응답하라 잠자리

□ 리 미

  • 2016-11-03 15:14:02
시간은 늘 그렇다, 분명히 년초에 올해의 자잘한 목표를 세웠던것 같은데 어느덧 선선한 가을바람이 몸을 휘감는 가을, 노란단풍잎이 마음을 적시는 가을, 그렇게 또 한해의 가을이 다가왔다. 올해로 벌써 26번째 가을을 맞이한다.

교통이 제일 붐비는 퇴근시간이다. 오고가는 인파와 차량속엔 내가 있다. 그리고 무겁게 옮기는 발걸음속에는 피곤함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향하는 내가 있다. 터벅터벅 깊은 피곤만큼 웅장한 소리를 내는 내 발자국 우로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엔 참 흔했고 산골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자주 볼수 있었던 잠자리가 이렇게 새롭게 다가오다니. 몇년새에 고층건물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늘 차막힘을 지속되는 요즘 거리에서 잠자리를 만난다는건 감히 희귀한 사건이라고 말할수도 있겠다.

여름보다 한층 시원해진 느낌과 야드르르하게 보일듯 말듯한 그 날개짓에 매료되여 내 마음도 어느새 그 추억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보인다, 고운 날개짓으로 굉장한 춤사위를 자랑하며 날아다니는 잠자리가. 내 기억속 어릴적 우리 집은 작은 앞마당이 딸려있는 단층기와집이였다. 석탄을 때던 시절이라 오후면 뿌옇게 연기가 마당에 내려앉기 시작했고 김치를 저장하던 지하동굴속처럼 깊은 김치움도 있는 그런 정겨운 집이였다. 대여섯살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기에 남아있는 추억도 어리숙한 기억뿐이지만 유일하게 기억이 남는 몇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여름이면 아빠의 자전거뒤에 앉아서 잠자리를 잡으러 가거나 나만한 몸집의 물통을 들고 약수를 담으러 가던 일이다. 한번은 약수를 담으러 갔다가 된통 감기에 걸려 고열에 시달렸던 적도 있었다. 추억속으로 소환해준 잠자리 덕분에 분명히 그 시각 내 크나큰 몸집은 붐비는 도로우에 있었지만 마음은 잠자리의 최면을 부르는 날개짓에 이끌려 그때 그시절 돌아갔다.

아빠는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내 키보다 몇센치나 아니, 두어배는 긴 나무막대기와 촘촘하게 짜여져있는 그물망을 가지고 오셨다. 그 널찍한 그물망은 작디작은 내 머리가 들숙날쑥할 정도였지만 아빠는 그 그물망으로 신기한 곤충을 잡을수 있다며 지금은 보기드문 대형자전거에 나를 싣고 잠자리탐험을 가셨다. 지금 이맘때처럼 마음을 간지럽히는 가을철이여서 한창 잠자리풍년이였다. 묘하게 섹시한 날개짓을 내뿜으며 유혹을 펼치던 잠자리와 밀당을 하던 아빠는 금새 한마리의 잠자리를 잡으셨다. 아둥바둥거리는 잠자리한테 그 어린나이의 내가 무슨 호기심과 희열을 느꼈는지 모르지만 낄낄거리며 밀봉된 주머니속에 넣고 한참을 구경했었다. 나무와 그물로 된 긴 잠자리채로도 즐거움과 추억 곤충체험이라는 삼박자를 다 체험할수 있었던것이 좋았던것 같다. 나의 웃음에 아빠도 덩달아 웃었고 우리는 참 소소한 잠자리채 하나만으로도 하루종일 행복에 젖어있었다. 그때 시절에는 지금 이렇게 그리워할 추억이 될줄 미처 몰랐으니 말이다. 땀범벅이 되여서 집으로 돌아와서 환한 형광색초록색 바가지로 물 한모금을 마시고선 밀봉시킨 주머니에서 안달이 나있는 잠자리들과 나만의 언어로 대화를 하다가 다시 방생을 시켰더랬다. 마음만은 눈이 볼록 튀여나온 잠자리와 영혼의 교류를 더 하고싶었지만 그때 아빠는 잠자리에게도 생명이 있다며 다시 놓아주자고 하셨다. 지금처럼 휴대폰도 없었고 많은 인터넷게임도 없었던 그 시절에는 그게 참 재미났다. 지금 애들은 누구나 손에 테블릿PC거나 핸드폰이 들려있지만 그때 우리의 손에는 누구나 잠자리채쯤 하나는 자랑스럽게 들고 다녔었다. 누구의 잠자리채가 더 이쁘고 누가 나비나 잠자리를 더 많이 잡는가 하는것이 우리의 유치한 비교거리였다. 지금 도시에서는 박물관에 가야만 볼수 있는 화려한 호랑나비도 그때는 천지에 날아다녔었다. 그 웅장한 날개짓에 무서워서 움츠러들 때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자연과 더불어 부모님들과도 재밌는 추억거리를 쌓는 좋은 시간이였다.

많고 많은 추억거리가 쌓임에 따라 나이도 쌓여서 이젠 이십대중반의 마지막 해를 맞이했다. 잠자리채 대신 휴대폰이 더 재밌고 굴뚝의 연기보다는 자동차연기속에 익숙해졌으며 김치움보다는 로봇 같은 김치랭장고가 더 흔한 21세기의 그저 평범한 풍경속에 내가 있다.

잠자리채 하나로 우리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추억을 쌓았고 부모님과의 알콩달콩한 시간도 충분히 보냈지만 지금은 그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란 참 쉽지 않다. 무언가 많은 돈이나 거대한 과학의 발전에 의거해야만 마치 우리 행복도 “성사”되는듯 행복지수가 인위적으로 높아졌다. 한입 깨문 사과가 그러져있는 핸드폰이면 모를가, 웬만한 핸드폰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우리들, 가족들과의 단란한 식사속에서 나오는 행복지수보다는 와인이나 스테이크 정도는 먹고 마셔줘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우리들, 우리는 잠자리시대의 그 소소한 행복을 저만치 세월안에 묻어두고 온듯하다.

다시금 훅 들어닥치는 바람에 정신이 다시 소환되였다. 길에는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손바닥안의 “네모난 세상”을 마주하며 웃는 사람, 빨리 가라고 재촉하며 빵빵 경적을 울려대는 차량들 그리고 여전히 야릇한 날개짓을 하며 날아다니는 잠자리떼가 보였다. 추억도 추억이지만 나무막대기와 그물망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소소한 행복을 보냈던 그때가 지금 같은 연기가 뿌연 시대에 몹시 그립다.

우리 다시 만날수 있을가? 그 소소한 행복을? 응답해주렴, 잠자리야.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