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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숲

□구호준

  • 2016-11-10 15:04:14
“왜”

너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식어있다.

“하”

넌 한마디씩 만들어낸다.

“필”

아니, 한마디가 아니라 한글자씩 뱉어내고있다.

“나”

한마디로 끝날 말을 지금 싸늘한 목소리로 넌 씹어낸다.

“야?”

뜨거웠던 가슴과 머리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왜 하필 나야?”

너의 말의 참뜻이 보이지 않는다.

한달도 넘게 지나서 만나 반가운 마음에 너를 뜨겁게 포옹했는데 너는 미동도 하지 않다가 만들어낸, 아니 뱉어낸 말은 그 한마디다.

“사랑해!”

너를 품고 한 내 말에 대한 대답은 왜 하필 자신을 사랑하냐는 차가운 한마디다.

결혼을 보름 앞두고있는 시점에서 결혼상대인 녀인을 사랑한다는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너의 대답에서 네가 아닌 내가 이상한 인간으로 보여지려고 한다.

너를 안고있던 팔이 풀리면서 땅에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왜 너를 사랑하지?

결혼을 앞두고도 다른 녀자가 아닌 너를, 그것도 왜 하필이면 사랑하는지 생각한적이 없다.

생각할 여유도 내게는 없었다. 여유가 있었다고 해도 “왜” 그것도 “하필” 다른 녀인이 아닌 너여야 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을것이고.

반년전이던지 아니면 7~8개월전이던지 정확한 시간은 생각나지 않지만 친구의 소개로 너를 만났었고 그간 사귀면서 그냥 결혼해도 무방할 상대라고 생각했을뿐 왜 하필 꼭 너만을 사랑해서 결혼해야 하는지를 두고 생각한적이 없었던것이다.

삼십대 중반을 바라는 나이에 부모님들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다소 위기감을 느끼고있었고 그때 네가 나타난것이다. 특별히 너의 어디를 좋아하고 왜 너와 꼭 결혼해야 하는지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비슷한 학력에 인물이나 성격도 특별히 흠 잡을 곳이 없었고 사귀는 동안에도 다른 녀인과 구분되는 어떤 특별함보다는 그냥 내 녀인으로 무난히 받아들여졌을뿐이다. 사귀면서 쌓이는 이성적인 감정, 그것도 꼭 무엇으로 표현할수 있는것이 아니고.

결혼을 하는데“왜 하필 꼭 너여야 하나”는 그런 어떤 특징이나 리유를 떠올린적도 없은것은 너를 다른 누군가와 비교를 한적조차 없기때문이다.

“나를 사랑해?”

녀자들이라면 흔히 묻는 질문은 이것이여야 한다.

“나를 얼마만큼 사랑하지?”

번연한 대답을 확인할수도 있고.

“나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

이런 물음도 어쩌면 련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여서 그 대답조차 무색하겠지만 “사랑한다”는 말에 “왜 하필 나야” 하는 질문에는 머리가 그대로 다운이 되여버린다.

“피곤해.”

돌아서는 너의 몸에서 진한 향기가 풍겨온다.

너와 사귀면서 맡은 익숙한 향기지만 네가 무슨 향수를 사용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너에게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가끔씩 네가 떠오르고 너의 품이 그리운 날이면 목소리만이라도 듣고싶었던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너의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는 않았다.

네가 바삐 보내서가 아니다.

나의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항상 시간은 자정을 넘어서 있었고 그래서 결국 결혼을 약속한 녀인이지만 전화를 할수 없었다.

너는 나에게 등을 보인다.

떠나는 너의 뒤모습이 초라한것이 아니다. 손만 내밀면 잡을수도 있는 거리, 그 거리를 아득히 느끼면서 그냥 서서 구경만 해야 하는 내가 처절하게 구겨지고있을뿐이다.

너의 모습이 지하철 역사속으로 사라진지 으슥해도 이미 구겨져버린 마음은 쉽게 펴지지 않고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스치면서 지나간다.

스쳐가는 사람들이 느낌으로 알려질뿐 눈에는 너의 모습 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중에서 너만을 보고있는데 왜 하필 너였는지의 답은 보이지 않는다.

네가 비워버린 거리, 이젠 그 거리를 내가 떠나야 한다.

어디론가 가야 하는데 갑자기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미아.

미아는 결국 길우에서 길을 잃을 때 생겨나는것이 아닐가?

주변을 두릿거리다가 “Starbucks” 라는 간판이 보인다.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실내는 고요하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 노트북을 놓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 서류를 앞에 놓고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상 전체가 응고된듯 곁으로 다가가도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 고요하다.

습관처럼 아메리카노 한잔 시켜놓고 창가의 자리를 잡고 앉는다.

커피를 한모금 마시지만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커피를 삼키면서도 커피의 맛을 느끼지 못하듯이 머리는 수많은 의문들로 꽉 차서 넘치지만 질서를 잃어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있다.

-왜 하필 나야?

너의 목소리가 고요한 공간속을 비집고 뛰여다닌다. 그 소리는 조금씩 커지면서 이미 어지러워진 머리를 작렬하기 일보 직전으로 몰아가고있다.

-왜 하필 너였지?

결혼을 앞두고도 어딘가에 응당 있어야 할 답이 보이지 않아서 갑갑하다.

-왜 하필 나야?

이번에는 내가 물음을 만들어 너에게 던져본다.

너의 선택을 받은것은 내 명함에 붙은 “사”자 덕분일가?

한국은 “사”라면 사람들이 깜빡 죽는 시늉도 하고있다.

“검사, 판사, 변호사, 의사”

한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들이다.

하지만 너는 한국인이 아니다. “사”자에 깜빡 죽는 시늉까지 해야 할 한국인이 아닌 담담한 표정의 조선족이고 나도 변호사라는 간판을 갖고있지만 역시 한국인이 아닌 조선족이다.

가끔씩 너의 주변에서 선망의 눈빛을 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너는 그런 눈빛에 현혹할 녀자가 아니다.

장춘대학 철학계를 졸업했지만 너는 자신이 배운것과는 전혀 무관한 가이드를 하면서 즐기고있다.

“철학계는 부모님들이 바라는것이였으니 공부한것이고 가이드는 내가 하고싶은 일이였으니 하는것이야. 부모님이 원하는것을 이루어드렸으니 이젠 내가 원하는것을 하고싶어.”

한국이란 낯선 땅에서 중국어 가이드를 하면서 너는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고있었다. 석사까지 땄으니 한국이라도 조금 더 편하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장을 찾기가 그렇게 힘든것이 아니지만 너는 즐겁다는 리유로 가이드를 선택했었다.

“혼인의 실패는 항상 잘못된 계산에 있어.”

언젠가 리혼을 한 선배와 맥주를 마시다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계산?

아직 결혼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선뜻 리해가 되지 않았다.

“북경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는 사람과 결혼하겠어? 사람은 자신과 항상 학력이나 배경이 비슷한 사람만을 찾게 되지. 자신의 눈높이에 맞춘 그런 맞춤형결혼이란 결국 그런 계산들에서 나오는것이야. 감성은 철저히 배제된 계산이고 결혼하게 되면 그것이 잘못된 계산임을 알게 되지.”

한국에서 한의원까지 꾸린 안해와 헤여지고 빵집 서빙을 하는 녀인과 열애에 빠진 선배를 리해할수 없었다. 리해되지 않는 선배의 말은 결국 구차한 변명으로만 들렸었다.

질서없는 구차한 선배의 변명들이 지금은 내 머리속에서 새로운 질서들을 편성하려고 한다.

내 마음의 어지러움이 혹시 선배의 무질서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주는것이 아닐가?

선배의 말이나 행동들을 부정하려고 하지만 도무지 부정해야 할 리유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갑갑하다.

내가 왜 하필 너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모르는만큼 선배의 모든것들이 분명히 무질서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데 그 리유가 만들어지지 않고있다.

갑갑한 마음에 선배와 차라리 대화라도 하고싶어진다.

선배와 대화를 하면 혹시 무질서한 선배의 구차한 변명들이 질서를 잡는 리유를 알게 되고 그러면 왜 하필 너를 사랑하는지 답도 있을것 같다.

핸드폰을 꺼낸다.

화면이 켜지자 너와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이 화면에 떠오른다.

세번째로 찍은 사진이다.

핸드폰의 화면사진으로 만들었지만 내가 봐도 너와 나의 모습은 그렇게 밝게 느껴지지 않는다.

첫 웨딩사진은 너의 선택에 따라서 네가 선정한 곳에서 사진을 찍었었다.

주말에 너와 함께 웨딩사진을 찍을 때에는 어린시절의 새 옷을 입는 기분으로 즐겁고 유쾌한 하루였다.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서 얼굴에 빛을 담았다. 내가 봐도 무례한 너의 요구에도 사진사가 웃으면서 따라준것은 너의 넘치는 애교가 한몫을 한것이고.

하지만 첫 웨딩사진은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야 했다.

중국에 있는 부모님들에게 보냈더니 하나뿐인 아들의 웨딩사진인데 무조건 고향에 와서 찍어야 한다고 했다.

넌 거절할수도 있었겠지만 결혼을 앞둔 며느리로서는 묵묵히 따를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어쩌면 너보다 내가 거절하는것이 당연하겠지만 내게도 거절할만한 명분이 없었다.

부모님의 뜻대로 법대를 졸업하고 석사까지 되였지만 박사만은 중국에서 따는것을 거절하고 한국행을 선택했었다. 아버지가 검찰원에서 한몫을 담당하고 계시고 어머니도 대학교수이니 한국인들의 말대로 하면 나는 금수저를 물고 태여난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친구들에게서 은근히 마마보이취급을 당하는것이 싫었고 그래서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 나만의 길을 한번 걸어보고싶었었다.

나만의 길이 결국 한국류학을 선택하게 했고 박사학위를 따자 바로 한국에서 변호사 사무소에 취직해버렸다.

부모님의 그늘이 아니라 나만의 삶을 살고싶었지만 자유련애를 허락해주고 너를 받아준 부모님에게 사진 한장 놓고 다투고싶지 않았다.

여름휴가를 틈타서 짧은 시간에 중국에 다녀오면서 웨딩사진을 찍었지만 이번에는 너의 부모님의 벽에 부딪혔다.

“촌스러워.”

중국에서 찍은 웨딩사진을 보고 던진 한마디, 그 한마디가 결국 세번의 촬영으로 이어진것이다.

나의 부모님의 뜻을 거절하지 않았으니 너의 부모님의 말씀도 거절할수 없었다. 이미 한국에서 십년 가까이 살면서 사업을 차리고있는 너의 부모님들에게는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 촌스럽다는 그 한마디의 거부리유가 충분한것이 될수 있다.

세번씩 찍어야 하는 웨딩사진, 아직 결혼도 하기전에 너와 나는 이미 지치게 되고.

위쳇을 켜니 마침 선배에게서 문자가 와 있다.

“열공?”

피씩 웃음이 나간다.

나보다 5년이나 년상인데 한국에서는 나와는 달리 신세대로 살아가고있는 선배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흔히 신조어라고 해서 바쁜 일상에서 문자도 간략하여 보내고 해독하고있다.

“열심히 공부하니”도 “열공”에 “?” 하나 더 찍어주면 되니 말 그대로 타자절약에 시간절약이다.

“선배, 뭘 해요?”

선배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열공”이란 단어를 들여다보고있으니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변호사사무소에 입사를 했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선망할만큼 편한 직업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세번째로 크다는 변호사 사무소에 입사했지만 내가 담당한 업무는 중국어다. 중국으로 진출하는 기업들을 상대하는 변호사사무소니 중국과의 거래가 많았다.

다른 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비서가 두명이 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중국어담당이니 한국서류들을 중국어로 번역하고 중국서류들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하고 통역도 해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서류들을 번역하면서 한자를 함께 공부하기도 한다. 법대를 다닌만큼 한어에는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자신만으로 한자를 다 알수는 없는 일이니 한국에서 살아도 내게는 한어는 떠날수 없다.

“친맥”

선배의 대답은 역시 짧다.

-친맥?

역시 그것도 신조어겠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그 뜻을 알수 없다. 마치 자신이 구석기시대에서 온 인간처럼 느껴지려고 한다.

“요즘 녀자들은 어떤 남자를 선호하나요?”

친맥의 의미를 알수 없지만 선배가 무엇을 하건 그것엔 관심이 없다. 지금 내게는 왜 하필 다른 녀자가 아닌 너를 사랑해야 하는지의 답이 필요할뿐이다.

“알부남”

여전히 선배의 대답은 초등학생앞에 놓인 천문학일뿐이다.

-알부남?

그 세개의 글자로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적국의 알수 없는 암호를 풀듯이 내게는 변호사직업을 얻어내는만큼 어려운 문제풀이다.

-알짜 부자인 남자를 선호한다?

알짜와 부자와 남자가 합치면 “알부남”이란 신조어가 될듯하지만 너에게만은 그런것이 통하지 않을것이다.

돈을 선호하는 녀자라면 한국에서 년봉이 6천만원 되는 조선족을 찾기는 그렇게 쉽지 않을것이다. 주말도 없이 보내고 하루에 두시간을 잠자는 날도 있지만 분명히 나의 년봉은 다른 조선족들에게는 천문수자이다.

-알부남?

재부가 아니면 녀자들이 선호하는 알부남은 어떤 의미일가?

갑갑한 마음에 결국 단어풀이보다는 형에게 시원하게 전화를 건다.

“선배, 뭘 해요?”

“친구들과 맥주 마신다고 했잖아?”

-친맥?

친구들과 맥주를 마신다?

“요즘 녀자들은 정말 알짜 부자만 좋아해?”

형이 웃음소리가 주변의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반죽되여 뛰여온다.

“미친 놈. 누가 녀자들은 알짜 부자만 좋아한대? 어떤게 알짜 부자야?”

“알부남 그 말 아니야?”

“어휴, 이 촌놈. 언제 그 촌놈 때를 벗냐? 내가 너와 같은 변호사라는게 부끄럽다.” 형이 비꼬는것 같은 어투에도 화가 나지 않는다. 차라리 숨을 죽이고 다음의 말을 기다려진다.

“알고나면 부드러운 남자를 알부남이라고 해. 책에다가 적어놔. 항상 당당하고 기백이 넘치지만 자기 녀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란 뜻이야. 녀자는 감성으로 만들어진 동물이야. 그러니 리성적인것보다는 감성적인것을 선호하고 그런 남자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주지.”

알부남?!

너에게 어울린다.

결혼이란 결국 계산이라고 한다면 나의 직업과 학력에 맞는지를 계산했다면 너는 자신의 감성으로 상대를 계산했을것이다.

“너 지금 어딘데?”

선배의 목소리가 다시 울린다.

“네. 스타박스에 있어요.”

선배의 폭소가 다시 터진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사래까지 들리면서 웃는다.

“야, 이놈아. 한국에서 살아남겠으면 한국어를 좀 배워라. 스타박스가 뭐냐? 스타벅스. 벅스, 벅스. 맨날 열공한다더니 뭘 배웠냐?”

선배의 핀잔을 한참 듣다가 통화를 끝내니 갑자기 주변이 캄캄해지려고 한다.

처음 듣는 핀잔이 아니다.

사무소의 동료들도 가끔씩 그렇게 핀잔했다. 너도 가끔은 선배와 꼭 같은 말을 했었다.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어를 배워.”

선배의 핀잔에도 동료들의 핀잔에도 너의 권고에도 나는 신경을 쓸 사이가 없었다.

자료들을 번역하고 한어를 배워야 하고 거기에 영어까지 배워야 하는 내게는 한국어까지도 배울만큼의 여유가, 아니, 그런 틈조차도 없었다.

한국은 조선어가 아닌 한국어를 사용한다?

한국에서의 나는 한국인이 아닌, 혈통이 아닌 조선족일뿐이다.

한국에서 취직한 나는 결국 중국소수민족이자 한국조선족으로 되어가고있는것이다.

조선어, 한어, 영어에서 이젠 한국어에 이젠 신조어라는 새로운 언어까지도 배워야 하는 나는 나만의 언어를 잃어버린채 수많은 언어권에 포위되여 허덕이고있을뿐이다. 그 허덕임들이 결국 결혼을 보름 앞두고 “왜 하필 너를 사랑해야 하는지”까지도 삼켜버렸고.

마침내 네가 던진 답이 달려온다.

너만의 언어가 아니고 그렇다고 나만의 언어도 아닌 너와 나의 언어가 있다.

너는 나의 마지막 남은 감성이고 그래서 나는 너의 알부남이 되여야 한다.

네가 그리워진다.

너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냥 밖으로 뛰쳐나온다.

너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너의 품과 너의 언어와 너의 마음이 그리워진다.

너에게로 뛰여가려고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태양마저 사라진 어둠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길우에서 길을 잃어버린 미아가 된 내앞으로 수많은 언어들이 어둠처럼 쏟아지고있다. 그 어둠을 뚫고 너의 희미한 모습이 저편에서 비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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