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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엽을 밟으며

□안수복

  • 2016-11-24 14:48:24
가을은 락엽의 계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즈음 작별을 고하는 락엽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용기있게 훅 떨어져나가는 락엽도, 붙어있는 락엽도 세월이 다 끝났음을 알고있는것일가. 화려한 단풍잎들이 생을 다하고 락엽이 되여 길거리에 우수수 떨어져 거리를 폭신한 카페트로 장식한다.

락엽은 우리에게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고 가을의 랑만과 사랑을 선사한다. 여름내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동안 단풍으로 즐겁게 해주던 락엽은 하나하나 물감을 색칠한듯 이쁜게 안겨왔다.

문득 봄부터 싹을 틔우고 뜨가운 여름을 이겨낸 지금,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락엽 하나하나에 긴 시간동안의 인내가 보여진다. 대자연에 한몸을 희생하면서 겨울까지 버텨가는 한낮 락엽이 무엇보다 강해보인다.

또한 그 락엽을 밟으며 걷노라니 마음이 설레인다. 나무에게 있어서 락엽은 다시 살아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락엽 지는 가을을 보내고 나무는 겨울을 버티며 다시 봄을 맞이한다. 봄과 여름을 통해 피였던 수많은 나무들은 이제는 겨울준비에 들어가기 위해 락엽을 만들고 다시 보낸다. 참으로 오랜만에 수북이 쌓인 락엽을 자박자박 밟으며 계절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도취되여본다. 간혹 빨간 혹은 노란 단풍잎 하나가 슬쩍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져 운치를 더해주기도 한다. 가을숲이 찬란한건 나무잎이 삶을 마감하기 앞서 장렬하게 뿜어내는 불꽃때문이 아닐가.

잎을 떨궈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 늦가을의 또 다른 정취다. 가을숲속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바람에 팔랑거리는 락엽 지는 소리가 들린다. 잎이 지는 소리는 잎의 크기와 떨어지는 높이에 따라 다르다. 숲속에는 이런 다양한 락엽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하모니를 이룬다. 락엽을 밟고 걷노라면 지겹게만 느껴지는 세월도 아름다운 세상으로 보인다. 눈물겹도록 고운 잎들은 소슬한 바람에 몸을 떨며 우수수 쏟아져내린다. 락엽은 지면서 어떤 생각을 할가? 한때의 화려했던 시절을 추억할가? 언제 다시 화려한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선사해줄 랑만을 꿈 꿀가? 아니면 새봄이 올 때 자신의 몸을 썩여 밑거름으로 희생하며 새싹을 틔우는 나무에 영양분이 되여줄 약속을 할가?

일생동안 랑만과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생을 다하는 락엽, 얼마 남지 않는 가을을 아쉬워하는 리별파티인가, 그리운이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락엽에 아로새겨진 편지에 떨어진 서글픈 눈물일가? 떨어지는 락엽을 보니 은근히 처량해진다. 나도 언제가는 저렇게 자연과 리별하겠지…

삶의 답을 마지막에 떨어진 락엽 한장이라고 생각 말자 그건 그냥 시작일뿐이다. 마가을 찬바람에 날리는 락엽이지만, 겨울에는 겹겹이 눈속에 묻혀 새노랗던 젊은날의 모습이 거멓게 갈색으로 죽어가고있지만 강이 풀리고 지친 나무에도 순이 파릇파릇해지면 그것은 계절을 용케도 이겨낸 지난 가을 락엽이 환생한것이리라.

락엽 하나하나에 담겨있을지 모를 사연들을 생각하니 함부로 밟기 미안해진다. 한장의 락엽은 간데 없고 찬바람이 옷깃을 스쳐 지나가듯이 내 상상속의 빛은 어느새 빛바랜 희미한 그림자 한장밖에 남지 않았다. 한장의 뒹구는 나무잎에도 많은 사람들의 무심한 발자국 자취 남긴 슬픈 사연들과 속내 깊은 애절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지만 결코 짧지도 않다. 한철 살다 가는 락엽도 단풍물이 들거늘 마음 하나 곱게 물들여가는 인생도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서 락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빛나던 자신의 시절이 저물어간다는것을 감지 못한채 정돈되지 않은 삶을 살고있다.

연두빛향기 가슴에 묻고 색 바래진 락엽, 얼핏 보면 재롱 부리며 널어놓은 장난감 같기도 하고 달콤한 사탕의 이쁜 포장지 같기도 하다. 단풍은 아무리 안깐힘을 써도 마지막에 락엽이 되는것이 순리다. 앙상한 가지로 겨울 모진 눈보라 이겨내고 따뜻한 봄날 꽃을 피우고 여름 비바람 힘겹게 이겨내고 열매를 맺은 다음 가을이 되면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것이 단풍일생이다. 단풍락엽을 보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 인생의 가을도 자연의 가을과 다르지 않다. 계절의 가을나무들이 마지막 생명력을 쏟아부어 아름다운 채색으로 생명력을 불태울듯이 나에게도 가을이 오면 마지막 나의 생명을 불태우며 살것이다. 겉보기엔 보잘것 없지만 너무나 돋보이는 락엽을 보면서 과연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자신을 희생했는가를 뒤돌아보게 된다.

때가 되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 달갑게 떨어져 나무의 거름이 되여주는 락엽, 자연의 섭리앞에서 한없이 숙연해지는것일가. 하늘하늘, 팽그르르, 사뿐사뿐 땅에 떨어지는 락엽을 밟으며 내닫는 발걸음속에 내 삶의 시계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다.

“락엽이 떨어지는줄 알았더니 세월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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