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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옷솔기

□오경희

  • 2016-12-08 15:31:33
옷솔기가 겉에 나온 옷을 나는 왜 좋아할가. 솔기를 겉에 나오게 디자인한 블라우스를 입고 스마트폰을 들고 이 방, 저 방 서성이며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읊다가 문득 빨래건조대에 널려진 앙증맞은 애기옷을 바라보았다. 주방으로 커피 타러 가는 내 발걸음이 씩씩하다.

옷솔기가 포인트로 된 블라우스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파워플하게 이끌어가며 녀성스러움까지 놓치지 않아 흡족하다. 단점이 장점이 되여 블라우스곁에 나온 옷솔기는 마치 정서가 다분한 사람 같다. 나의 움직임에 따라 여러갈래로 나뉘여 춤 추는 옷솔기들이 나의 생활과 조화되여 활기차다. 전통적인 관습에는 옷솔기가 흠이고 상처이며 꿰맨 매듭이여서 거칠다는 리유로 항상 옷안쪽에 감춰져야 하는데 옷의 이은 자리를 겉에 드러나게 디자인해서 입다니, 남이 봤으면 구경거리가 되겠다. 세상의 모서리에 다쳐 뜯어질가봐 아직은 감히 외출시에는 입지 못한다.

남이 눈이 아니면 이대로 입고 백화점이며 카페, 서점이며, 영화관, 시장을 드나들고싶다. 보이도록 내놓지 않고 감춰져 옷을 옷이게 하는 옷솔기의 인고의 정신을 돋보이게 드러내보이는것도 괜찮으련만. 그걸 떠나 시각적으로도 포만감을 주지 않을가. 어찌보면 로출된 부분의 디테일이 살아있어 옷이 빈티지하고 묘한 리듬까지 주어 한결 시크해보일지도 모른다. 옷솔기를 옷안쪽에 넣어 희미한 이음선 대신 순수한 륜곽을 보태주는 로출된 솔기의 자유분방함 그 자체가 패션의 멋, 삶의 멋으로 되지 않을가. 기존의 반반하고 우아한 옷의 분위기를 역전시켜 로출된 옷솔기에서 틀에 박힌것에서의 지속적인 탈피를 추구하는 심리적 안정과 만족감을 얻을수 있지 않을가. 옷의 두 폭을 맞대고 꿰맨 옷솔기를 사람들은 왜 꺼릴가? 솔기가 감추어진 기존의 깔끔한 의상도 우아하겠지만 솔기가 로출된 개성 있어 독특한 의상도 나름 멋지다. 옷을 짓기 위하여 맞대고 꿰맨 그 신성하고 아름다운 융합예술의 독특함은 류행을 넘어설수도 있는 말이다.

겉에 나온 련결된 두장의 옷솔기를 한쪽으로 뉘여 다려 입은 어제의 분홍셔츠도 아름다왔다. 로출된 옷솔기가 화합하고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있어 하나의 완성으로 개성을 멋낸듯 싶어 봄날처럼 가볍게 살아가고있는 요즘 집에서나마 옷솔기로 랑만을 부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별난 다른 양식이 없는 티셔츠도 뒤집어 입으면 솔기가 옷겉에 훤히 내보여 한땀한땀 박고 감치고 휘갑친 옷을 만든 사람의 정성이 느껴져 좋고 로출된 솔기 자체가 특별해 나만의 옷이라서도 흥이 난다.

옷옆구리에 따라 휘여진, 도드라진 옷솔기는 이제 더는 흠이 아닌 "삶의 멋진 길"이다. 패션문화에서 해체주의라는 패션을 도입하면서 패션세계에 등장했던 마틴 마르지엘라가 옷끝단을 마무리지 않고 솔기를 정리하지 않은 의복을 만들었듯이 솔기가 로출된 옷도 생각보다 낯설지만은 않다. 조만간 나도 집안에서만 아닌 밖에서도 자유롭게 입을련다.

또한 옷에서만 아닌 삶에서도 나의 흠집과 상처, 신체상의 부족점을 바보처럼 감추면서 힘들게 살지 않으리. 아름다운건만 내세우고 추한것과 부족한것은 옷솔기처럼 안쪽에 감추고 살았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안경을 걸면 근시안이란게 드러난다고 보이지 않는 흑판을 보는것처럼 공부한 어처구니 없는 학창시절이 나에게는 있었다. 그때 삶의 "솔기"를 대담히 세상에 내놓고 안경을 걸고 공부했더라면 공부도 곱절 더 잘할수 있었을것이고 길에서 선생님을 만나도 "경희는 선생님을 만나도 먼저 인사할줄 모른다."는 평을 듣지도 않았을것이며 말쑥한 얼굴에 안경을 척 걸면 보기에도 좋았을것인데… 허점과 부족점을 세상에 내놓기 꺼려하는것은 인간이 본성인것 같다.

시집 온 이듬해, 나에게는 대대학교의 민영교원으로 취직할수 있는 기회가 차례졌었다. 하지만 마지막 통과시험에서 흑판의 글씨를 보지 못해 답을 적지 못하여 락방하고말았다. 그때도 역시 금방 시집 온 각시가 근시안이라고 소문날가봐 안경을 걸지 않았던것이다. 지금처럼 삶의 "솔기"를 세상에 척 내놓고 안경을 걸고 당당히 답을 적어갔더라면 지금쯤은 교원으로 될수도 있었던것을.

어쩌면 내 인생의 최대의 실수는 남을 너무 의식하며 살아온 과거가 아닌지 모르겠다. "솔기"가 밖으로 드러나고 실밥이 느리여 좀 부족하면 또 무슨 대수일가… 그러나 하필이면 인간은 반반하고 아름다운것만 내보이기를 좋아한다. 누구의 삶엔들 결함, 허점, 부족점이 없겠는가. 살면서 범한 “이은자리”를 안쪽에 쓸어넣고 살자니 결국 힘들어지는건 나의 삶뿐 아니던가.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 허점이 드러나 보이는 "솔기"의 로출이 우리 삶에도 필요하지 않을가 하고 말이다.

후반생은 사느라 꿰맨 상처, 신체상의 부족점도 대담히 내놓고 시크하게 그리고 편하게 살고싶다. 구겨지고 찢기고 풀어진 삶을 애써 감추려하지 말고 살면서 범한 결함을 촘촘히 박아 바느질한 삶의 솔기를 세상에 내놓고 삶의 필산의 흔적을 내보이는것도 로출된 솔기의 멋이 아닐런지. 인생에서 미운것 추한것은 안쪽에 감추고 우아한체, 고상한체, 아름다운체 하면서 사는것도 우리의 삶에서 힘든 삶의 한부분이니.

때론 밉다고 자꾸 안쪽에 감춰두는 "솔기"가 오히려 우리 삶에 맵시를 챙겨줄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입은 블라우스처럼 삶의 솔기에 은근한 슬라브결이 더해져 슴슴함없이 간새 짭쪼롬히 배여들면 삶이 더 진할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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