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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의 깨우침

□강효삼

  • 2017-01-19 15:15:15
30여년 세월을 고향에서 살아오면서 고향에서 수많은 인생사연을 축적했기때문일가? 꿈을 꾸면 늘 고향에 가서 고향사람들과 만나는 꿈을 꾼다. 어느날 꿈에 나는 내 고향마을에서 진행하는 운동회에 참석을 하게 되였다… 넓은 운동장에서 축구시합을 하는데 운동복은 입지 않고 양복을 입은채로 뽈을 찬다. 고향을 떠나 지금 한국에 혹은 연해지구에 가 있는 고향의 낯익은 젊은이들의 모습이 눈에 확연했다.이를테면 촌장으로 있던 룡이, 그밖에 재담을 잘하는 상준이 그리고 또 누구누구… 꿈에서도 족히 누구라고 맞출수가 있을만큼 얼굴들이 뚜렷하다. 지난날 고향마을에서 있었던 그 운동회의 정경 그대로였다. 참말 놀라운 일이였다.

꿈에서 나는 마을에서 여는 운동회를 취재하는 일을 맡고 운동장을 돌면서 정황을 료해하고있었다. 꿈은 그렇게 사실인것처럼 한바탕 요란스럽다가 깼다. 한편, 이제 사람들이 거의 떠나가고 별로 남지 않은 고향을 떠올리니 꿈과 너무 먼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났다.

그렇다, 꿈이다. 이제 고향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북적거리는 운동대회는 영원히 꿈이 될지도 모른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각자가 고향을 떠나갔기때문이다. 각처로 흩어졌기에 그 옛날 고향에 살던 때처럼 온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 모여 산다는것은 영원히 재생시킬수 없는 과거가 될수도 있다. 그러고보면 꿈은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지만 더는 실현할수가 없는것이여서 꿈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설사 이런 꿈을 실천하고싶다해도 힘들고 가난했던 그 세월로는 다시 돌아가고싶지 않다. 비록 꿈에서처럼 그리운 고향사람들을 현실에서 만나고싶지만. 그네들은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니 만나지 못해도 그네들이 행복을 쟁취한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고향이라해도 떠날 때는 떠나야 한다. 나 또한 지나간 내 력사를 돌아보면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의 하나지만 누구보다 일찍 고향을 떠난 사람이다.

나는 반룡이라는 산골에서 태여나 그곳에서 공부를 했지만 같은또래의 고향에만 붙박혀 있던 사람에 비해서는 그나마 아는것이 조금은 많았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고향을 떠나 세상밖을 나가본 경험때문이였다. 시대의 문명과 멀리 떨어진데다가 교통까지 아주 불편하여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산골마을에 묻혀 사는 우리또래들은 하늘이 우리가 늘 바라보는 까마득한 서쪽의 높은 산봉우리아래로 미끄러져내려가 그곳 땅과 붙어있는줄로 알았다. 그래서 좀더 크면 그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산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간 하늘의 끝자락을 잡아보는것이 어릴 때의 꿈이요, 소망이였다.

그런 내가 고향을 처음 떠나본것은 소학교 3학년때였다. 아성이란 도시에 삼촌이 계시기에 방학간을 리용하여 삼촌네 집으로 놀러간것이다. 그때 나는 기차를 처음 보았다. 뿐만아니라 기차를 처음 타보았지만 그래도 내또래 고향의 개구쟁이들중엔 내가 처음이였다.

차창밖 산 넘어 또 산으로 산들은 끝없이 내 시야에 맞쳐왔고 내가 늘상 바라보던 서쪽 높은 산아래 땅과 잇닿아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 하늘은 가고 가도 그만한 높이로 끝이 없었다. 그렇게 하늘은 가고가도 끝이 없고 땅에 붙은 끝을 잡아본다는것은 틀린 생각이라는것을 제일 먼저 깨우친것이 나였고 그것을 또래들에게 알려주어 다시는 그런 환상을 갖지 않도록 해준것도 역시 나였다. 그때 만일 내가 고향을 떠나보지 않았던들 상당히 오랜 시간끝에 하늘은 무한하다는 진리를 깨우쳤을것이다.

나는 또 아성이란 도시에 처음 가서 벽돌집들을 보았고 도시가 어떤것인가를 알게 되였다. 후에는 또 가족을 떠나 먼 외지 중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보다 많은 지식을 얻게 되였고 그것이 밑천이 되여 고향마을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을수도 있었다. 아마 그래서 “나간 놈의 몫은 있어도 자는 놈의 몫은 없다 했는가?”

나에게 이런 체험과 경험이 있었기에 내 아이들이 소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자 나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나의 고향마을보다 문명하고 공부시키기 좋은 곳으로 서둘러 이사를 갔다. 내가 사는 고장은 현성과 몇십리 떨어져있어 자식들에게 중학교 공부조차 시키기 힘든 산골이다. 대신 도시와 가까운 곳에 이사를 가다보니 “먹어라ㅡ 써라ㅡ” 인심 후한 고향에 살기보다 매우 각박하여 고향을 떠난것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식들 공부시킬 조건이 훨씬 우월하다는 그 한가지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던것이다. 그때 내가 고향마을을 떠나 문명이 발달한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았던들 자식 셋중에 어느 누구는 고작 소학교를 졸업으로 학업을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 자식 모두 고중, 대학, 대학원까지 공부시킬수 있은것은 교육이 발달한 곳에 가서 기초지식을 잘 닦아주었기때문이다.

고향은 그리움의 존재다. 그러므로 사랑해야 한다. 이제 우리의 삶은 날로 글로벌화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떠난 우리의 농촌은, 고향은 날로 쓸쓸해지고 허전해지고있다. 그렇다고 절망은 하지 말자. 어쩌면 고향을 떠나지 않고 한데 모여 와글거리면 인정세태는 돈후할지 모르나 모두가 다 가난할것이다. “가난한것”과 ”쓸쓸한것”을 놓고 어느것을 선택할것인가? 나더러 묻는다면 나는 비록 고향마을이 날로 한적하고 쓸쓸해진다해도 좁은 땅에 갇히워있던 농사군들이 너도 나도 떨치고 나가 잘살수 있는 세상을 만든것은 아주 잘된 일이라고 말하고싶다. 물론 쓸쓸하지도 않고 잘산다면 더 좋으련만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수 없는것이 오늘의 안타까운 현실 아니겠는가. 혹자는 그래도 고향을 지키자고 말할수 있다. 또 민족의 집거지가 사라지면서 정체성마저 사라질가봐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우선은 잘살아야 정체성도 제대로 세울것이 아닌가.

이제 흙의 고향은 아니더라도 령혼의 고향은 물질문명에 힘있어 더욱 완성되면서 도시에 가서도 같은 민족들이 한울타리를 이루고 살기도 한다. 교육이며 문화를 우리 민족나름대로 견지하고 발전시키고있으니 어쩌면 이 같은 “고향”은 원형(原型)의 고향보다 한층 높은 차원의 고향이 될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을 “떠나간다”것이 어찌보면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갖는것이라고도 말할수도 있겠다. 인생은 앞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야 할 때를 바로 알고 사는 사람, 그것이 모험일지라도 성공하는것이다.

“자신의 고향을 상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나이도 차지 않는 초심자이다. 모든 땅을 고향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중국조선족 역시 “세계를 고향으로 생각”하는 시대를 맞이한것 아닌가! 떠남으로부터 떠남의 귀중함을 다시한번 깨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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