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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당사”, 당나라에 파견된 류학생

  • 2017-03-21 15:53:16

최근 해외류학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는데 이는 비단 현대인에게만 극한되는것이 아니다. 무려 천년전, 당나라도 주변국으로부터 많은 류학생을 받아들였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의 사절단과 상인들이 당나라로 많이 건너갔다.

당태종 리세민이 즉위한지 5년째 되는 해에 이누가미노 미타스키를 필두로 한 일본 최초의 견당사들이 장안에 도착했다. 그 후에도 일본은 630년에서 894년에 이르는 200여년 동안 총 열아홉 차례나 견당사를 파견했다.

당나라때 중국 경제와 문화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남양,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인도, 비잔틴등의 지역에서 끊임없이 당나라로 사절단과 상인을 파견해 선진 문화를 배우고, 중국의 비단, 도자기 및 각종 공예품을 들여오고자 했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진취성이 강한 일본인들도 이에 질세라 중국의 통치 경험과 문화제도를 배우기 위해 수많은 사신과 학자를 중국에 파견했다. 일본 사서에서는 견당사를 “서해사” 혹은 “입당사”라고도 칭하고 있다. 초기에는 견당사의 규모가 비교적 작아 매번 파견될때마다 대개 배 한두척이면 충분했으며 각각의 배에는 약 120여명이 타고있었다. 나중에 사절단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매번 네척의 배를 파견하게 되였고 파견인원도 500여명에 달했다. 견당사들이 당나라로 떠날때 네척의 배가 함께 떠났다가 함께 돌아왔기때문에 일본문학작품에서는 견당사들을 태운 배를 “사박”이라 칭하기도 했다. 견당사들은 주로 정부 관료 ,학생, 그리고 항해 요원들로 구성되여 있었다.

일본정부는 견당사 파견을 매우 중요시했다. 그래서 견당사들을 뽑을때에도 신중을 기했으며 선발된 자에게는 진급 혜택을 주고 상품을 하사했다. 또한 류학생들에게 후한 대우를 해주었으며 선원들의 노역을 면제해주기도 했다. 이렇듯 사절단이라면 누구나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았는데 이는 그들이 많은것을 배우고 돌아와 나라를 위해 힘써줄것을 바라는 정부의 조치라고 할수 있다. 사절단이 항해를 떠나기 전날에는 천황에 대한 례의를 표시하는 성대한 의식을 행하였는데 이때 천황은 사절단의 우두머리에게 “사절도”를 하사했고 이어서 송별연회를 열었으며 어떤때에는 특별히 당나라에 술자리를 준비하기도 했다.

일본이 파견한 견당사는 중국과 일본간의 경제 문화 교류를 크게 촉진했지만 그 교류는 대개 일방적으로 당나라에서 일본으로 전해지는것이였다. 당나라의 공예미술, 생산기술, 문학,철학, 력사, 천문학과 수학, 건축학, 의약학, 의류학, 규범과 제도등이 모두 일본으로 속속 전해졌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수많은 “개원통보”도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당시의 활발한 교류를 짐작할만하다. 이렇게 다양한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지금도 일본의 풍습과 생활습관가운데에는 중국 고대문화의 흔적이 꽤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주목할만한것은 견당사는 원, 명나라때 중국에 들어왔던 왜구들과 같이 중국의 상황을 정탐하기 위해 파견되였던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관한 진위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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