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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자의 넉두리

  • 2017-08-10 14:22:58
‘아닌 밤 중에 홍두깨’다. 고향의 ‘동네 보스(首领)’가 마을 총회가 있으니 지정한 시간, 지정한 장소에 도착하여 출석하도록 하쇼! 지령을 보내왔다. 마을의 전답들이 도시개발의 저변에 깔려 들어간다는 부언이다. 하여 내 유소년시절의 희노애락이 서려있고 청춘의 꿈을 키워주던 고향으로 허겁지겁 찾아떠났다.

사나운 시류에 떠밀려 바다가 어느 동네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아무개는 오래동안 부평초 방랑살이의 비바람을 실컷 마시고 타향살이의 쓴맛, 단맛을 만끽하며 떠돌았어도 고향을 전혀 등지고 산 것은 아니다. 고향의 변천에 시시로 눈을 주었고 그 뉴스를 무시로 렴탐하면서 사모불망으로 지나왔다. 타지에서 생계가 급하여 허둥대면서도 조용할 때면 늘 진한 향수에 젖어 고향 모습을 그리였고 회포로 가슴을 젖히군 하였던 나다.

마을에 들어서니 추억은 살아 숨 쉴 뿐 눈 앞에 펼쳐진 정경에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낯선 아스팔트의 량켠에 주인을 잃은 빈집들이 수두룩하고 세월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해 땅으로 가라앉은 집들과 서까래가 처진 모습도 보이는데 빈터에 자란 무성한 잡초가 삭막한 풍경을 그려내며 정신적공황을 불렀다. 뜰과 마당을 어림할 수 없는 터전에서 길 건너에 줄지은 현대화 건물을 보며 가슴 속의 고향은 옛날과 오늘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였다. 어느 때고 돈에 혈안이 된 개발자가 돈다발을 내던지고 삼켜버릴 신세, 내 사랑하는 고향이 분명 새로운 숙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중 나온 친구와 술좌석으로 직행했다. 고향을 떠나 장장 30여년,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한 뒤에 마주한 향친들의 머리에는 폭설이 내렸다. 그래도 술잔을 기울이며 안부를 확인하고 깜박거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덕담에다 잡다한 이야기를 섞어가며 말꽃을 피웠다. 말말결에 동네에서는 아기의 도고한 고고성이 울린지는 어느 옛날이고 이제는 ‘70대면 장년, 60대면 청년, 50대면 소년, 40대면 어린애’라는 법칙이 통한단다. 거의가 땅을 버린 채 현대판 디아스포라식 류랑민으로 전락하였는데 인구의 격감으로 기존의 년령대 구분문법이 허물어진 것이다. 향민들이라 해야 세부득이 사정으로 본가를 지키는 로년자들, 팔자사주에 따라 움찍거리는 약자들, 고향의 돈벌이도 짭짤하다는 몇몇 젊은이들이 태자리 파수군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어느 땐가 무슨 낌새가 나면 철새처럼 날아갈 그들이다. 고향의 존망이 불보듯 뻔하다는 말이다.

농업이 나라의 기본이라며 정부는 갖가지 진흥책을 단골 메뉴로 등장시키나 돈이 으뜸인 향민들에게는 외쳐본다 해야 버럭질이고 군짓이다. 역빠르고 잽싸고 상황에 따라 비굴해지기도 해야 하는 세태인데 그 땅뙈기는 언녕 어느 전문인에게 이양되고 모두가 삶의 바다에서 산산히 흩어져 나간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난의 티를 벗고 상류층 향상을 위한 생존투쟁은 아직도 필연적인 미완의 과제인 것이다. 이 선량한 향민들이 언제면 희망의 피안에 이르고 그 가족단란의 소박한 꿈은 언제나 이뤄질 것인가.

유명을 달리 하신 우리 선조들, 보리고개 춘궁기 때면 영양실조로 얼굴이 누렇게 뜨시면서 일년에 300일을 웃도는 고된 로동에 부대끼셨다. 그들은 이 땅을 옥토로 만들어 해해년년 풍작을 이룩하고 후세들에게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는 풍의족식의 태평성대를 만들어주려 불철주야의 로고를 바치셨다. 하늘 땅과 싸워 이 고장을 산 좋고 물 맑은 안락정토로 건설하여 세세대대의 자자손손이 이 땅에서 영화를 누리는 것이 그들의 최고 리상이였다. 이 선조들의 혈한으로 얼룩진 희망의 땅들이 건설의 세찬 물결에 말끔이 사라지게 됐다.

그 세월이 남긴 난감한 기억들을 말끔히 지우고 싶다. 지난 세기의 50년대 우리의 유치원시절은 농업합작화의 초기, 어른들이 밤교대 탈곡을 하시다 잠간 휴식이 되면 허기진 배를 채우시려 삶은 무우를 간장에 찍어 드시던 희한한 장면이 새삼스럽다.이 옛일을 젊은 치들에게 들먹거렸더니.”아니, 그 사람들이 머리가 열번 돌고 얼이 백번 빠진거 아니예요? 자기의 땅에서 자기 힘으로 지은 자기 곡식인데 왜 쌀밥을 지어 배 터지게 안 먹어요?!”라며 두 눈을 동그라미로 만든다. “아니야! 배부르면 좋은 걸 그들이 왜 몰라! 그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기성도덕이였고 그 세대가 떠멘 운명이었어. 바로 그 나날의 력사를 창조하는 길에서 그이들이 그렇게 쌓아온 행복의 열망이 개혁개방의 장엄한 서막을 세차게 열어제낀 원동력이 아니였겠냐?” 나의 궁색한 답변이였다.

오늘의 력사를 이어가는 후대들, 이들은 풍요의 시대를 즐기면서 비단 같은 포장도로 우에서 자가용을 슬슬 몰고 다니며 그 옛날 장원급제했던 반가 도령의 금의환향에 짝 질게 없다고 자신하며 고을 원님도 부러울 게 없다고 자부할 것이다. 현대화 정보기기를 휘두르며 고기반찬 속에서 야채만 골라집는 세대들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목표를 가진 후예들이 가늠이 어려운 고향의 미래를 떠메고 있다.

정보사회를 대변하는 스마트폰도 알기 전에 지능사회가 물살을 일구며 몰려오는데 다음 시대의 고향 모습은 어떠할가. 오래지 않아 고향 주소는 지도에서 가뭇없이 사라지고 인터넷 가상공간에나 한줄로 남을 수도 있겠다. 그때면 우리는 완벽한 실향민이 될 것 아닌가.

인생의 모년에 파들고 싶던 안식처, 영고성쇄의 만장력사를 침잠한 기억의 낚시터, 락엽귀근의 본거지, 이 고향이 가속으로 사라진다. 집에 돌아온지가 이슥한데 그 상실감에서 헤여나지 못하고 나는 아직도 심한 열병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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