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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필요한 리유

□ 예동근

  • 2017-10-26 16:01:59

우리 집은 3세대가 함께 살고 있다. 중국어와 조선말을 섞어 사용하기도 하고 경상도 사투리도 수시로 쏟아내는 할머니때문에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였다. 그럴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여 표준어를 쓰도록 ‘압력’을 넣곤 했다.

그러한 걱정과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아들애는 아홉살이 되였다. 서울에서 태여난 아들애는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거니와 미국에서 1년동안 생활하는 사이 영어실력도 제법 늘었다. 그럼 아들애의 이러한 언어적 발달이 ‘할머니 언어’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결과일가. 한동안 관찰을 해 본 결과 나는 정반대의 결론을 얻었다.

아들애의 언어 표현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녀석은 세밀한 감정들을 아주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였다. 할머니의 사투리와 중국어 혼용을 닮을가 했던 것은 기우였다. 아이는 할머니한테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언어 발달도 잘 이루어졌던게 아닌가 싶다. 우리의 할머니들은 손주들의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손주들에 대한 과도한 욕심은 없다.

‘할머니의 교육’의 핵심적 가치는 포용과 기다림으로 귀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보스턴 외곽에 위치한 유태인들이 세운 브랜다이스(Brandeis)대학을 방문하면서 훌륭한 대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브랜다이스대학은 학생 수가 수천 명 밖에 되지 않고 력사도 70년이 되지 않는 대학이지만 미국의 대학 순위에서 23위를 차지하는 우수한 대학이다. 이 대학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총장실이 아니라 학생 기숙사이다. 디즈니랜드처럼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기숙사 건물은 대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한 대학인가?” 기숙사 건물이 바로 그 답이다.

이 대학에는 또한 ‘고등학생 연구원 코스’라고 부를 수 있는 특유의 교육 방식이 있다. 대학에서는 화학, 물리에 관심이 있는 고등학생들을 연구원으로 뽑아 시간 당 8달러 정도의 비용을 대 주면서 대학의 박사생들과 함께 연구를 하게 한다. 어린 학생들로 하여금 과학에 관심과 흥취를 갖게 하고 나아가서 과학 정신을 키우게 하자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는 박사생들이 소중한 시간과 정력을 고등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할애하여 친절한 ‘할머니 교육’을 실천하도록 인도한다. 대신 그런 박사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장려를 한다. 이 제도를 실행하고 50년이 흐르는 사이 브랜다이스대학은 생물화학의 일부 분야에서 미국의 선두주자로 성장했다.

오늘날 조선족들은 ‘제2차 이주’를 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세상을 갖게 된 대신에 이른바 정체성이라고 하는 언어, 습관, 가치관 등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불가항력적인 다양한 객관적 요인들이 있지만 우리 스스로가 ‘할머니 언어’와 ‘할머니 교육’을 낡은 것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하여 팽개친 것도 여러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인류 력사의 궤적을 보면 절대적인 시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전통의 재발견’이란 바로 전통이라는 오래된 것들 중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찾아 내 오늘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다. ‘할머니 언어’와 ‘할머니 교육’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높게, 더 멀리 날 수 있다. 우리보다 훨씬 더 급변하는 사회를 살았고 그래서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적응력을 갖췄다. 그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할머니들이 우리를 보듬고 바라봐 주고 기다려 준 것처럼 그들을 대하는 것 뿐이다.

엄마나 아빠들은 아이의 미래를 그리기에 급급해 아이에 대한 요구가 나날이 많아지는 반면, 할머니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포용하고 기다려주며 정서적으로 어루만져준다. 이것이 할머니의 매력이다.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포용하고 기다려 주는 할머니의 넉넉함, 그 정서와 언어에 중독되게 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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