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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맺힌 사색 (외4수)

□ 최화길

  • 2017-12-28 16:04:37
세월에 맺힌 사색
인고의 시간에 익은 열매도

한때의 붉은 희열에 그치고

또다시 씨앗으로 돌아가

껍질 깨는 진통을 겪는다

자나 깨나 간절하던 소망 역시

실현된 그날부터 어제가 되고

새롭게 대두하는 그리움의

밑거름이 되고 뿌리가 된다

역행이 불가능한 순행의 법칙

어느 누가 함부로 뜯어고치랴!

해가 지면 까만 어둠 깃들고

어둠 밝혀 아침은 찬연하다

봄은 봄이여서 화창하고

여름은 여름이여서 싱싱하고

가을은 가을이여서 풍요롭고

겨울은 겨울이여서 청정하다

기이한 뿔 가진 사슴이 있고

뒤도 보는 복눈 가진 잠자리 있고

코가 유별한 코끼리가 있다 해도

이상한 생각은 그 이상일 수 없다

씨앗 묻은 푸근한 땅이 고마워

깊숙이 파고들어 뿌리 내리고

열매는 통채로 선선히 바치는

푸르게 사는 나무 우러러본다.


강물에 비낀 명상

말 못하는 강물이지만

가다가 가다가 힘이 들면

밸밸 고패치고 올리 솟구치고

내리꼰지며 투정 부린다

다만 가는 길 멈추지 않고

내처 흐름을 이어가기에

그 아름찬 행로 무릎 꺾이고

너넓은 바다의 품에 안긴다

완강한 생명들의 집합

쉼을 모르고 설레이는

바다는 푸름만 출렁이는 청춘

강물의 줄기찬 흐름에 비껴있다.


그리움

멀리 있어 그리운가 했는데

가까이 있어도 그리웁더라

멀리 있으면 잊어질가 했는데

잊음은 거리와 상관조차 없더라

거리는 시선 차단할 수 있어도

마음의 통로엔 장벽이 없더라

두 마음 한일자로 이어진다면

하늘은 이웃이고 바다는 륙지더라

해빛 한몸에 함함히 받아안은

달빛은 아련히 밝기도 하다.


용 서

밀물이 들이닥친다

잠시 후

그대로 썰물이 된다

언제 변을 당했나 싶게

백사장엔 고요가 깃든다

새로 찍어가는

두줄기 발자국은

한결 고르롭다

순간의 아픔

모질다 해도

평생의 길에선

아릿한 추억일 뿐

검은구름 한바탕

찢고 나면 하늘은

더없이 쾌청하더라.


단 한번

단 한번

한번만이라도

내 이상으로

애인 이상으로

뜨거운 적 있었던가?

입으로 피운 꽃

세상을 물들이고

삼척동자의 귀에

못이 박혔어도

진정

나보다

너보다

앞에 세우고

타는 갈증 참으며

물 한종지 떠 올렸던가?

내 세상

다 주고도

모자라

속까지 마저 비운

껍데기 앞에서

단 한번

한번만이라도

뼈가 드러나는

차거운 손

뜨겁게 잡아주며

머리 숙여 숙연했던가?

세월 앞에

녹 쓸지 않는

목이 메는 사랑

해빛처럼 느끼기만 하고

돌려줄 수 없는

천고의 빛

갚을 수 없는 빚

단 한번

한번만이라도

안아주고

업어주고

오목하게 패인

볼을 비비며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그 가슴에 안겨봤더냐!

아, 엄마는 왜

나무릴 줄 모르시고

환한 웃음으로 대하셨나요?

단 한번

한번만이라도

자식이

곱지만은 않다고

소리소리 웨치지 않으셨나요!

아픔은

모두 챙기시고

행복은

모두 내놓으신

효도 한번 못 받고

영영 떠나가신

아, 아 불쌍한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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