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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한알 (외 1편)

□ 김정권

  • 2018-01-04 14:00:32

연길시 동북쪽으로 가면 마치 거대한 푸른 파도를 방불케하는 옥수수밭이 있다. 그 중심에 농기계들이 다닐 수 있는 사이길이 나있다. 해가 막 솟아오를 즈음 그 사이길로 옥수수줄기와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노라면 마음이 한결 정화되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다.

살구나무를 발견한 것은 옥수수가 무릎을 거의 넘을 즈음에서였다. 파아란 완두알만한 살구들이 대롱대롱 달려있었는데 나는 딴엔 혼자만 본 것처럼 이제 살구가 익으면 따먹어야지, 하고 눈도장을 찍어뒀다. 옥수수가 우쭐우쭐 자람과 동시에 나는 살구도 노랗게 익는 상상을 하며 매일 그 곳으로 운동을 나갔다.

그 사이길 어구에는 또 웅뎅이가 하나 있었는데 비가 오면 그 곳엔 늘 물이 고여있었다. 물이 마르는가 하면 소나기가 와서 또 채워놓고, 그렇게 여름이 가는 동안에도 땅은 좀처럼 마르지를 않았다. 물론, 살구를 먹고 싶은 욕심이 애들의 그 것처럼 그렇게 절실한 건 아니였으니깐 그 뒤로는 나도 살구 생각은 아예 잊어버리기도 했다.

초복을 맞은 사흘 날, 그날도 안개가 옥수수밭을 꽉 채웠다. 그때쯤 사이길의 웅뎅이도 말라 운동화를 적실 념려 같은 건 없었다. 만약 그 사이길이 그냥 젖어있었다면 나 또한 살구나무에 대한 미련 같은 걸 언녕 버렸을 터, 굳이 신발을 적시며 안에까지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솜사탕 같은 안개를 들쓰고 청아한 공기를 실컷 마시며 사이길을 걸어 살구나무 가까이까지 다가갔다. 그런데 살구는 벌써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이미 남들보다 한발 늦은 나였음을 의식했다. 따로 임자가 없는 살구니까 먼저 따 먹는 사람이 임자가 아니겠는가?

별 아쉬움도 없이 막 돌아서다가 문득 살구나무 웃쪽 가지에 노랗게 익은 살구 한 알이 달려있는 게 보였다. 제꺽 손을 뻗어 나무가지를 당겨후려서 살구를 땄다. 아침이슬을 맞은 살구는 나의 코밑에 닿기도 전에 벌써 향긋한 냄새를 확! 풍겼다. 나는 다짜고짜 살구를 한 입 물어 뗐다. 찍- 하며 살구 즙이 나와 나의 폴로셔츠 가슴에 쫙- 뿌려졌다. 에익! 다음 순간, 괜히 땄네. 라는 생각이 뇌리를 친 것은 불 보 듯 뻔하다. 새가 먹은 살구였던 걸 몰랐다. 다시 살펴보니 이슬방울이 둬방울 들어가나마나 하게 패운 걸 보면 까치는 아니고 부리가 작은 새임에 틀림이 없었다. 먼저 따 먹은 사람도 새들의 밥을 남겨놓은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먹던 살구를 이내 던져버렸다. 그 다음 자리를 뜨기에 급급했다. 이때 어깨에 무엇이가 툭! 하고 떨어졌다. 깍 깍 깍! 까치가 날아가며 똥을 싸 떨군 것이다. 엉! 저 것… 팬티도 안 입는 것들! 약이 올랐지만 까치는 날아가며 되려 나를 골려주는 듯 했다. 에 에! 치사한 량반… 캑 캑 캑! 똥을 싸놓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까치는 침까지 캑 캑- 받는 듯 했다.

길옆 이깔나무 숲속에서 이름 모를 새가 울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는 작고도 가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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