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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당부

□ 김인섭

  • 2018-01-18 14:55:33
2017년이 작별없이 사라졌는데 륙십갑자에 따라 지어진 정유년도 무술년으로 넘어간다. 세계의 다수 나라들이 양력 1월 1일을 새해로 다루는데 대비해 우리 나라에서는 음력설에 새해맞이 무게가 실려있다. 이상하게도 어떤 나라들은 3월 중순이나 4월이 신년인가 하면 춘분 혹은 하지날에 설맞이 행사를 치르는 민족도 있으니 세상이 실로 천자만태이다. 그러나 부동한 민족이 부동한 문화방식, 세계관과 신앙에 따라 설맞이에 명절색을 띄우며 앙천축수하여도 번영창성이나 부귀공명을 바라는 마음 하나는 일매지다.

지난날 이맘 때면 이 자신도 늘 요행수나 노리고 공떡을 바라며 천행만복이 구천직하로 떨어지라 들먹거렸는데 재수는 늘 용케도 비켜가고 찬송가처럼 외웠던 기원사는 그냥 공념불이 되면서 유야무야 한 해가 되풀이 되였다. 이런 까닭에 작년에 세신 때면 송구영신이란 프로그램을 아예 지워버리고 매일매일을 새해로 삼고 살자는 결의를 다지였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또 다사다난한 한해였는데 새해는 어쩌고저쩌고 부산을 떨고 있으니 겉잡을 수 없는 심동(心动)이 덩달아 일어난다. 집단의식에 어쩔 수 없이 끌리는 것도 인간의 제어불능 본능욕이 아닌가 본다.

자기 의지를 떠나 주어진 지리적 여건이나 사회 환경에서 살아야 하고 거기에 걸맞는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니 주위 생활 요소들이 변하면서 기존의 리념과 바람이 따라 바뀌는 것 역시 불가항력 변증법칙으로 봐야 한다. 사람들이 년륜이 늘고 신체생리의 구동력과 세간에서 활동 반경이 줄면서 자기 미래에 대한 희망은 서서히 줄고 욕망도 그냥 소박해진다는 사실도 이 합법칙성의 소산일 것이다. 자신도 이 법칙의 한계를 초월하지 못하는 느낌인데 반대로 아이들 앞날에 대한 희망은 시너브로 더 커지고 이름 모를 근심걱정이 속구석에서 그냥 붙어도는 연유는 어디에 있을가. 넘어야만 했던 인생 곡절과 감내해야 했던 시대적 고초, 이런 현실에 덜미를 잡혀 살아온 까닭일가. 지난날 겪었던 사실(史实)들이 기억의 화석으로 남았다가 때가 되면 자꾸 불끈거린다. 오늘도 황량하고 힘들었던 길에서 결실과 보람을 탐닉하며 써내려 온 경험집에서 무엇을 골라 내 아이들께 설파하려는 갈증이 일어난다.

인간이 자아의식이 터서부터의 생활은 선택과 포기의 련속이 아닐 수 없다. 성공을 희망하면 안일을 포기해야 하고 영예를 얻으려면 사욕을 포기하고 인민 공복이 되려면 부패를 포기해야 하고 남의 신임을 얻으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체경을 앞에서 보면 뒤면을 못 보듯 무엇을 소유하고 취득하려면 그 대립면을 포기해야 한다. 어떤 일에 집착한 나머지 시비곡직과 선악청탁을 분별없이 외면하면 늘 인생 자체를 포기하는 사태를 맞기도 한다. 요즘 항간에서 립신양명하려면 기회 선택이 우선이라는 설이 넘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포기가 없는 선택이라면 부어놓은 정성의 다소를 막론하고 간단히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된다는 교훈이 무시되는 같다. 그렇다면 옳바른 선택과 정확한 포기는 이음동의어(异音同意语)로 봐야 마땅하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갈래갈래 나뉘는 로터리를 수시로 지나야 하는데 이 때의 정확한 포기 가치는 옳바른 선택의 중요성을 훨씬 릉가하게 된다.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한가지에 결사적 노력을 해야만 했던 우리 세대, 우리들에게는 참고 견디며 투쟁하는 것이 최상의 미덕이고 지혜였다. 자주 선택의 터전이 너무도 척박했던 시대적 원인도 있었지만 선택과 포기의 변증법에 숙맥이였던 자기부족이 실패와 좌절을 초래하는 내적 원인이였다는 사실도 더욱 절감하게 된다. 그 시절 첨예한 고민에 빠져 우왕좌왕하던 어두운 기억들이 아직도 처절한 가슴앓이로 남아있다. 오늘은 정보와 기회들이 파도처럼 덮치는데 수많은 호기와 도약의 찬스의 홍수 속에는 버려야 할 대량의 무용지물과 오사리잡 것들이 뒤섞여있다. 불가능성과 가능성이 얼기설기 헷갈리는 이런 세상에서 혹독한 시련을 참고 견디는 정신만이 찬양을 받던 시절은 먼 력사로 되였다. 선택의 폭과 깊이가 급속히 넓어지고 깊어지는 때 물심량면의 효과 극대화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른다. 때문에 유해물과 장애물을 포기하는 지혜의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말글에는 ‘한 번 실족이 천고의 한이 된다’는 관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추론해 보면 페기물 눌러두면 한생의 후회를 빚는다는 뜻이다. 물욕이 넘치고 인심이 박해지는 세상일 수록 실리를 위해 묘언이나 묘수를 앞세우는 론리가 금물임을 명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에 전력투구하더라도 포기 프로그램을 늘 련동시키야 함을 좌우명으로 지켜야 한다.

지난날 포기불능 증후군에 골병이 들어 좌충우돌하던 나를 돌아보니 왜 그리도 둔감했을가 우습다. 세상 만물의 더미에서 불량품과 말짜들을 적시적기에 골라 포기하는 용단이야말로 참삶을 살아가는 첫 요건임을 통감하고 있다. 하여 마주오는 지능사회를 무난히 살자면 선택 고수가 되기 이전에 포기 달인이 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게 되는 것이다.

정유년 세모와 무술년 정초, 이 것이 내 아이들께 보낸 작고 지극한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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