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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산 저 너머

□ 최균선

  • 2018-01-25 16:11:48
대관절 숙제란 무어냐? 공연한 우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에 대한 복습과 예습 및 과외학습을 목적으로 내주는 과제로 학생이 응당 해야 할 일과인데 새삼스럽게 왈가왈부한다면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격이니 말이다. 하지만 과중한 학생숙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겨진 묵은 문제 또는 앞으로 좀더 두고 생각하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전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숙제’로 되고 있으니 화제거리가 되는 것이다.

금방 초중에 올라온 손자가 거의 매일 빠르면 밤 열시를 넘기더니 기말이 닥쳐와서인지 요즘은 자정이 다되도록 숙제산의 골골을 헤매 두드리고 문제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입안이 헐고 이몸이 부어올라 밥도 먹기 힘들어하는데 어디 내 아이만 그럴가? 아침 여섯시 반에 등교하여 저녁 여섯시에야 하학하는데 저녁도 대충 먹고 대여섯시간 동안 숙제를 해야 한다면 그게 교육학 원리에 맞기나 한 것인가?

귀동냥한 데 의하면 연길시내 조선족중학교들은 대동소이하고 한족학교학생들은 더구나 밤을 새우는 게 보통이란다. 과량의 숙제를 두고 거국적으로 찬반이 엇갈리는 의논이 분분하지만 한창 자라는 애들을 너무 혹사시키고 있다는 시점에서 아무래도 공중의 시비거리가 아니될 수 없다.

건국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육이 부단히 개혁되면서 중소학생의 학습부담이 날로 가중해지는 것은 정상적인 교육운행일 수 없다.

‘점수통수’가 맹위를 떨치고 ‘진학 유일주의’ 지휘봉 아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인 중소학교 학생들을 두고 한번 사색해보라. 학생들의 인생의 의의와 가치평가 표준이 심각하게 뒤틀려있지 않은가? 욕심껏 숙제를 내는 데 습관화된 교원들도 심사숙고해보시라. 역지사지로 내가 거의 매일 밤새도록 숙제를 해야 한다면 어찌할가? 자기의 인생관과 가치관념에 문제가 생겨나서 일종 고질이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학생들로 말하면 과중한 숙제 문제는 멋진 말로 숙제콤플렉스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건국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육개혁이 심화, 발전되면서 줄곧 수반되여온 학습부담 문제가 심각해져서 교육부문에서 수많은 관련 정책을 공포했지만 아래에서는 ‘점수통수’, ‘유일진학론’의 지휘봉이 난당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규정은 소나기만 요란했을 뿐 비는 내리지 않는 격이 되고 말았다. 더 심하게 말한다면 ‘학생부담 경감정책’이 소기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니 한바탕의 ‘정치쇼’가 된 격이다.

이런 시책의 실천효과는 어떠한가? 관련 부문의 조사연구에 의하면 과중한 숙제로 하여 중소학생들 속에 학습을 혐오하는 정서가 엄중하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학습콤플렉스로 생명렬차에서 중도하차한 사건이 한 두번이 아니다. 중소학생의 과중한 부담의 표징은 교과서가 많고 과목이 많고 숙제가 많고 학습보도가 많은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기계가 아니며 지식접수기가 아니다.

관련 인사, 전문가들이 지지부진한 부담경감의 원인을 지적하고는 있다. 이를테면 가장 근본적 원인은 작금의 공리성 교육의 조류가 고패치다 보니 각 학교들에서 서로 뒤질세라 진학률과 지명도를 위해 갖은 방법을 강구하여 가능껏 학생들의 시간과 정력을 짜내고 있다. 학부형들도 성적 제일주의를 맹신하다 보니 액외로 각종, 각양의 학습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특히는 중학교에서 중점고중에 더 많이 보내려는 경쟁심을 동력으로 하다 나니 제작해내는 숙제산, 문제바다는 점입가경이다. 깊이 따지고 볼 것도 없이 직각상에서 학생들의 학습부담 경감은 교원들이 하기에 달린 일이다. 숙제는 교원들만이 낼 수 있는 특권, 특허가 아닌가! 숙제를 검사하여 학생들의 습득정도를 료해하는 주요한 사업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중학교에서도 소학생들에게 하던 작법 대로 영어, 한어 같은 과목에서는 단어를 몇벌씩 써오라는 숙제를 내고 심지어 한어, 어문 복습을 억세게, 빈구석이 없이 틀어쥔다는 의도인지 문제의 해답까지 몇벌 베끼라는 숙제도 내는 것은 아무리 전방위적으로 생각해도 이는 비과학적인 교육운행이다. 물론 굼벵이도 지붕 우에서 떨어질 때 생각이 있다고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묻거니와 피로전술도 전술인가? 초중 일학년생이 밤새워 해야 하는 숙제라면 합목적인 압력기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심신건강을 해치는 ‘잔인함’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공허한 뇌까림이 될지라도 한소리 먹이고 싶다. 아이들을 구하라!!!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주입이 잘 되였는가? 지식접수기(학생)들이 제때에 잘 받아들였는가에만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너는 진군나팔을 불어라, 나는 나 대로 북 치고 장구 치고 새납 불고 피리 불며 진학의 고봉에로 맹진할 것이다 라는 식이니 학습부담 경감 같은 소리는 공허한 울림이 되고 만 것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진학률’이라는 지휘봉 아래 피동적으로 맹돌격하는 교원들의 고충을 헤아리지 못할 바는 아니나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경감하라는 교육부의 지시는 엄정한데 왜 실천에 옮겨지지 않는가? 우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그런 유모어는 아니지만 확실히 어깨춤 따로 엉덩이춤 따로인가!

학습부담 경감은 태산처럼 짓누르는 심리압력부터 덜어주는 것이지 공부에 아무런 부담이 없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선 학교에서 객관적인 분석을 거쳐 바람직한 개선이 요구되고 다음 학부모들의 심사숙고가 요구된다. 보다 과학적인 시각에서 착안한다면 공부함에 있어서 아무런 부담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당하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압력은 학생들의 학습에 원동력이 된다는 데는 아무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높이 뛰여 복숭아를 따는 식이야 말로’ 최적의 학습환경이다. 경험이 표명하다싶이 학생들의 당시 개성발전 정도에서 능히 도달할 수 있다면 학습내용이 비교적 많더라도 아이들은 아름다운 고생이라고 생각하며 배우기를 학생으로서의 락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만큼 개운하고 유쾌한 학습이란 학습단계에서의 모종의 감수인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을 그저 공부기계, 지식저장기계로 여기고 작동시킨다면 미래 지향적이고 생산적인 배움일지라도 결과적으로 감당키 어려운 고역으로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재 아이들은 거개 외동자식들이기에 온실 안에 화초처럼 풍상고초를 겪을 기회도 없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이 고이 자라다 보니 고난을 이겨내려는 의지력도 약하다. 이런 학생들에게 대들보에 상투를 매달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공부시킬 수는 없으니 실제로부터 착안하고 실용주의적으로 진행되여야 명지하지 않을가?

학교와 교원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너무도 과중한 심리부담을 경감시키려면 번쇄하고 중복적인 련습을 강요하지 말아야 하는 동시에 사회발전에 따른 실제요구와 아이들의 개성발전 여하에 따라 가능껏 접수할 수 있는 계선을 잘 그어야 한다.

물론 일정한 학습부담을 안겨줌으로써 어릴 때부터 확고부동한 진취정신과 고생을 이겨내려는 분발력을 키워주는 과정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아이들이 인생준비로써의 공부가 실로 용이한 일이 아님을 알게 하여 하늘에서 호떡이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도리를 몸에 박히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합목적이고 합리적이다.

문제는 과유불급이다. 과유불급은 절대 진리이다. 필자가 오지랖 넓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훈계조로 언설하였지만 대책 없는 탁상공론, 건넌 산 꾸짖기임을 알고 있다. 말해봐야 소용없는 말은 아니하기만 못하다고 하지만 아무 생각도 견해도 없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슨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제 혼자 구시렁거리지만 작금에 중소학생 학습부담 문제는 전반 사회에서 풀어야 할 숙제임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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