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라이프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 리은실

  • 2018-02-08 15:41:03
아버지가 유난히 보고 싶은 날이 있네요. 이름할 수 없는 울분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는 날이면 유난히 그렇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터놓으면 아버지라면 어떻게 말해주실지 듣고 싶습니다. 엄마는 나의 말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시지만 아버지는 조금 더 차분하게 내가 반성할 수 있도록 좀 더 넓게 볼 수 있도록 말해줬었지요.

세상에 영원한 무조건적인 내 편은 엄마, 아버지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서 실감합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애를 낳고 나서 더욱더 자주 느낍니다. 외국에 나가면 비로소 애국자가 되는 게 이런 걸가요?

아버지랑 술 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처음 술을 배운 것도 아버지한테서였습니다. 고중 때 주말이 되여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랭장고에 맥주를 채워놓고 나를 기다렸지요. 고중이면 예전으로 말하면 ‘고등인물’이라며. 지금으로 말하자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아버지가 미성년자 딸에게 술을 권하다니…고금중외를 넘나들며 긴긴 술자리가 이어지군 했지요. 물론 맥주 한캔 정도로 끝났지만 말입니다.

아버지는 나를 어린 아이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등소평 정책에 대하여, 흑인노예 해방을 시켰던 링컨 대통에 대하여, 김학철 작가에 대하여 어린 나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번마다 되풀이되는 레파토리가 있었지만요.

그때까지도 나는 아버지를 대단한 인테리로 봤었지요. 마을에서는 읽기 힘든 고한어나 어디 글을 써서 내다 붙여야 할 일이 있으면 아버지를 찾았지요. 그때 나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글씨를 젤 멋있게 쓰시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한번은 소학교 교과서에서 동진의 이름난 서예가 왕희지를 배우게 되였습니다. 집에 돌아온 내가 엄마에게 “우리 아버지 왕희지 만큼 글 잘 쓰세요?" 하고 물어서 가족들이 웃음이 터졌었지요. 왜 웃는지도 모른 채 “그럼 우리 아버지는 왕희지보담은 좀 못한가?”라고 혼자 생각했었습니다.

나도 나이가 들고 보니 마냥 맞다고 생각했던 울 아버지, 틀린 것도 많더군요.

아버지도 많이 늙으셨습니다.

저번 여름엔 아버지랑 나랑 고성이 오갔지요? 아버지는 오랜만에 본 사위가 반가우신 나머지 자꾸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고 이젠 나는 너무 들어 지겨운 그 레파토리에 짜증이 났었지요. 늘 들어도 헷갈리는 엽검영, 라영환 이야기를 또 하시더군요. 그리고 아버지 년세가 드시더니 허세가 늘었습디다. 뭐 사위 앞에서 과시하고 싶은 기분도 있었겠지만요. 그만하시라고 내가 핀잔을 줬고 사위 앞에 무안을 당하셨다 생각한 아버지가 화내셨지요.

그러고 나서 많이 후회했습니다. 사위 앞에서 허세 좀 떠시면 어때서. 그럴 것까진 없었는데 말입니다.

어렸을 적 내가 알던 우리 아버지는 멋진 분이셨거든요. 내가 아는 사람들중에 제일 멋진 말씀만 하는 분이셨거든요. 그런 아버지가 여느 령감님들과 다르지 않게 허세에 배짱을 부리시는 게 나는 너무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몇년 전에 우리 집에 애 봐주시러 오셨지요. 칠순이 되는 령감님이 8개월짜리 애를 혼자서 보기가 어디 쉬웠겠습니까. 내가 퇴근해 들어오면 가슴을 치며 급히 담배갑을 손에 쥐고 밖으로 뛰쳐나가던 아버지, 하루에 담배 두갑도 피우시던 아버지가 애 보시느라 련속 일여덟시간을 담배 한개비 못 피우셨던 거지요. 저럴 거면 아예 담배 끊으시지. 몸에도 안 좋은 걸…그때는 철이 없어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 회식이 있던 어느 날은 육아스트레스를 날린다고 과음을 하고 집에 왔지요. 새벽에 화장실에서 제가 토하는 걸 들으셨던가 봅니다. 아침에 애 아빠 출근하고 그러셨지요.

“너 토한 게 변기 옆에 좀 묻었더라. 김서방 못 보게 하느라 새벽에 일어나 닦았다.”

그때는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부모의 그 맘을 이제야 알 것 같아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에게 외손군인 우리 진도는 우리 시아버님이 생각하시는 만큼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진도는 큰일(?) 이루어야 할 우리 딸 뒤다리 잡아당기는 사돈집 손주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서방 출근한 다음이면 그러셨지요. 애보다 너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아버지에게 내 인생이 중요하듯 내게도 내 자식 인생이 더 중요한 걸 어떡합니까.

엄마가 “녀자라면 집일 잘해야 한다.” 잔소리하시면 아버지는 그러셨지요.

“놔두오, 집일을 그리 잘해선 뭘 하겠소. 그런 걸 잘하면 그런 거 잘하는 녀자밖에는 안되오. ”

엄마가 “시집을 갔으면 시댁에 잘해야 한다.” 말씀하시면 “너무 잘하느라 애쓰지 말고 너 내키는 대로 해라.”고 하셨지요.

아버지는 내가 보통의 녀자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큰일을 하기를 바랐는데 이 딸은 이번 생엔 그저 이렇게 살아야 할가 봅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그렇게 키우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지금보다 더 맘 편히 살 수 있었을가요? 녀자로서의 삶을 숙명으로 안고 불평 없이 인내하며 그렇게 순리를 따르며 살았을가요?

녀성의 지위가 많이 낮았던 시절을 살아오셨던 아버지로서는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최선이였을 겁니다.

나이가 들면서 느낀 건데 제가 참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쉽게 흥분하는 다혈질인 성격도 그렇고 자의식 강한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몇년 전에 오셔서 진도를 보는 동안 잘해드리지 못한 게 너무 맘에 걸립니다. 장국에 버섯 넣어달라고 하신 거 왜 안해드렸는지 약주 좀 하시고 사위에게 허세 떠신 거 왜 그렇게 매몰차게 쏘아붙였던지 후회투성입니다.

전번날 진도에게 잣을 까주다가 불현듯 아버지 생각이 나더군요. 어느 겨울, 오빠들 학교 가고 엄마가 일하러 나간 오후, 다리를 다치셔서 집에 계셨던 아버지가 따뜻한 가마목 아래서 저에게 호두를 까주셨지요.

뻰지로 호두를 깨여 바늘로 오불꼬불 들어가 숨어있는 호두열매를 꺼내주는데 나는 빨리 좀 달라고 아버지를 다그치고 급해난 아버지가 뻰찌로 호두를 깨려고 힘을 쓰시다 침을 떨구셨지요. 아버지 침 떨어진 거 안 먹는다고 어린 나는 앙탈을 부리고 난감해서 어쩔 바를 모르시던 아버지의 그 표정과 어느 겨울날, 따뜻한 가마목이 갑자기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버지, 그때가 더 행복하셨지요? 팔에 매달려 호두 달라 떼쓰던 그 아이가 더 사랑스러웠을 테지요? 이제 이 딸은 다 컸다고 가끔 보건품 같은 것 들고 와서는 온갖 생색내며 자꾸 아버지를 훈계하려 듭니다. 다 잘못했습니다. 엄마랑 짝짝꿍을 치며 아버지 흉을 본 것도 김서방 앞에서 아버지에게 짜증을 낸 것도 다 잘못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제일 멋집니다. 아버지처럼 센스 있는 유머를 할 줄 아는 남자를 지금껏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봄에 집에 가면 우리 술이나 한잔 합시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우리 얘기 나눕시다. 만나면 쑥스러워서 적어놓은 것의 반에 반도 못 말할 테지만 말입니다.

10년 전에 아버지에 관한 글을 잡지에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아버지가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다가 우연하게 보셨다더군요. 남에게는 쉬운 감정표현이 이렇게도 어렵습니다. 이 글도 어느 하루 우연히 친구 집에 가셨다가 그렇게 우연히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아버지, 늘 건강하십시오. 오래오래 곁에 남아 많은 이야기를 적어가십시다.

북경에서 딸 올림.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