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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축원

□ 김인섭

  • 2018-04-19 14:44:06

봄이 무르녹는 춘분날의 정오. 명주바람이라 부르는 봄바람이 마음의 문을 열어 젖히며 가는대로 다녀오라 집요하게 권했다. 점심을 걸치고나서 봄의 정취를 내칠 수 없어 산공기도 만끽할 겸 춘곤증에 시든 육신도 몸풀기하고 싶었다. 하여 동료 하나를 꼬드껴 데리고 사무실 앞에 보이는 산 숲으로 올라갔다.

시집도 안 가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손 우 시누이 안색이 바뀌 듯 봄 초입부터 꽃샘추위가 설레발치더니 이 날은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희한하게 쾌청한 날씨이다. 잡목림 속에서 사방을 돌아보니 겨울을 난 수목들은 푸르죽죽한 재빛을 벗으려 꿈틀거리는데 그 모습은 내면에 침잠한 거센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 아래의 마른풀 밑에선 새싹들이 소생의 기지개 켜며 부드득하는데 발목을 휘감는 풀섶에선 봄의 자유를 다투는 미물들의 잰걸음도 여간만이 아니다. 봄의 전령인 가치들과 이름 모를 텃새들의 웅창자화(雄唱雌和)의 지저귐이 귀맛에 구수해지며 박수로 갈채를 보내고 싶었다. 절묘하게 무한순환을 이뤄가는 계절의 움직임을 보니 소생을 노래하는 대자연 몸부림이 바로 우주철학의 거룩한 교향곡이 아닌가 싶다.

종잡을 수 없이 야멸찬 해안기후에 아랑곳없는 봄철은 한치 어김도 없이 우리 곁을 파고 든다. 산 아래 보이는 크고작은 직립체 건물들은 사이사이에 끼인 가로수들의 연청색 물색에 안받침되며 이 도시를 새 희망의 색갈로 농익히고 있었다. 로적송 그늘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으니 좁고 비탈진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실개천 물줄기가 청아한 음향을 자랑하며 락춘가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봄의 향연이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펼쳐진다. 무작정한 철의 흐름이지만 시들한 마음을 추슬러주는 그 마력과 재주에는 침을 튕기며 자랑해도 남음이 있다. 대자연의 조화가 산야에 소생수를 뿌려주는 때 재수가 선녀춤을 추며 내리라 기대한다면 ‘두꺼비가 두루미 고기를 탐하는’ 허욕일가.

산곡간의 나무 사이로 넘보이는 작은 밭뙈기에서 괭이를 들고 흙을 파고 고르는 년장자가 비쳐왔다. 그 진지한 모습은 념원을 묵묵히 파종하고 래일의 결실을 꿈 꾸는 성스러운 모습으로 부각된다. 새로운 생명인 봄 씨앗의 봄붙임으로 진실한 소망을 펼치려는 경건한 자태이다. 이래서 사람들은 이 철을 희망의 계절, 약동의 계절이라 뇌까게 된다. 환생의 축복이 출렁이는 이 시절은 인간을 보라빛 꿈 속에 꾀어들이기 마련인가 보다.

문자 그대로 화풍난양의 봄날이다. 지나간 젊은 시절에 봄날의 산수풍경 앞에서 산맥 같은 청사진을 그리며 환상을 부풀린 적이 있었다. 오늘은 넋을 빼앗기고 한참 있다보니 일본에서 해매는 아들과 아메리카합중국에서 외로움과 싸우는 내 딸, 내 외손자들이 보고 싶었다. 지금쯤 걔들이 뭘 할가 궁금했다. 일별삼춘(一別三春)의 묵념으로 일관하다 문뜩 동행자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냐? 그는 잠간 머뭇거리다 내 아이가 어쩌면 잘 자라겠는가 생각한단다. 마침가락일가, 천륜지정의 발동일가. 무심히 나섰던 산행에서 둘이 기껏 생각했다는 귀착이 내 아이들이다. 실로 어시들이란 자식에 나포되여 자유로울 수 없는 ‘령어’의 몸인가!?

더 좋은 삶을 위해 새 세상과 만나며 미지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는 내 아이들, 가슴 속에는 행운을 바라는 세파가 일었다. 만약 앙천축수하며 기원해 애들에게 소용된다면 봄의 녀신을 마주하고 손이 발이 되고 발이 손이 되도록 빌고 싶었다.

이 해맑은 양춘가절에 내 아이들께 만범순풍(满帆顺风)을 보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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