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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보내는 편지

□ 림현호

  • 2018-06-22 09:29:48


창문너머 중천에 달이 걸려있네요. 벌써 시간이 이리 됐군요. 저는 늘 평소대로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잠이 들기를 기다려 하얀 백지를 펼쳐놓고 필을 들었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생각했답니다. 이 하얀 종이에 무엇을 적을가.

절절한 사랑이야기는 그리도 술술 나오더니만,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글은 필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넘쳐나더니만, 지금은 당초 필이 움직여지지 않네요. 필이 오늘따라 앙탈이 심하군요. 추억이라고 이름 지어준 흐릿한 기억 한모퉁이는 별로 건드리고 싶지 않나봐요. 아니, 건드릴 용기가 없나봐요. 그래서 술 한잔 가득 따랐습니다. 제 손에 쥐여진 필을 달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요.

한참 지나니 찔끔찔끔 떠오르더군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이제는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져버린 기억들이 말이예요. 하지만 그 뿐이였어요. 더 나올 것도 없더라구요. 술이 한잔, 두잔 늘어나니 빈약한 기억이 차지하고 남은 그 모든 공간에 가슴을 적신 술 만큼이나 슬픔이 차오르더군요.

어떻게든 자식 새끼 하나 먹여살리겠다고 누렇게 뜬 얼굴로 신새벽부터 두부를 만들 콩을 매돌에 갈고 계셨던 어머니, 아장아장 느려터진 어린 내 걸음마에 맞춰 애고사리 같던 내 손을 꼭 쥐고 과일 바구니를 머리에 인 채 그 못하는 노래를 불러주면서 이웃마을로 향하셨던 어머니, 동북의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무거운 석탄을 홀로 헛간에 나르시던 어머니, 한창 나이에 긴긴 밤 남편 없는 외로움을 술로 달래셨던 어머니, 맹장 수술을 받고 3일 만에 억지로 퇴원하셔서 자식새끼 중학교 보낸다고 동분서주하셨던 어머니… 그때는 어머니가 산과도 같았어요. 어머니만 있다면 이 세상 어디에 가도 든든하겠다 싶었었죠. 하지만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낯선 도시에 입성하는 순간 깨달았어요. 어머니 역시 가냘픈 녀자일 뿐이라는걸요. 내가 자라 어머니의 그 가냘픈 몸을 나한테 기대기까기 기나긴 시간 동안 어머니에게 필요한 사람은 결국 제가 아니라는 것을요.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노래는 많고 많아도 아버지 노래는 없었다”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네요. 하지만 저는 별로 아버지 노래를 못 지을 것 같아요. 제 필이 자꾸 앙탈을 부려서요.

아! 그러고 보니 슬픈 기억 뿐만은 아니네요. 지금 막 떠올랐어요. 다섯살인가 여섯살인가, 거짓말 한번 했다가 뺨을 맞았던 기억이요. 많이 아팠더랬습니다. 덕분에 늘 진실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어요. 아들만을 기다리다 년로해져버린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치매에 걸려서도 저만 보면 그래도 아버지를 미워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그 곁을 지키지 못하셨던 아버지, 효라는 것이 말짱 허황된 말 뿐이였구나를 깨달았기 때문이예요. 진실은 진실일 때만이 진실인가봐요. 그래도 슬퍼는 마세요. 제가 그분들 가시는 길 잘 바래다드렸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를 꽁꽁 싼 베천에 아버지에 대한 기대도 함께 넣어보냈어요. 그래서 원망 같은 사치스러운 감정은 기억 저 편에 구겨던진 지 한참 됐어요.

탁자 우, 흰종이를 환하게 비추던 달이 건너편 아빠트에 그 모습을 숨길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그런데도 적을 것이 없어요. 아니, 아무 것도 적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어요. 아마 필로 박박 그어버린 이 단어들을 모두 합하면 또 다른 소설이 나올 것 같아요.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면 텅 빈 집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처럼 필을 들어 이것저것 끄적이는 일이였어요. 덕분에 이젠 ‘작가님’ 소리도 듣고 있네요. 감사의 인사라도 해야 할가요?

제가 어떤 단어들을 쓰고 있었는지 혹시 궁금하진 않으세요?

추억이라 쓰고 망각이라 읽었어요.

아버지라 쓰고 어머니라 읽었어요.

약속이라 쓰고 거짓이라 읽었어요.

리유라 쓰고 핑게라 읽었어요

너를 위해라 쓰고 나를 위해라 읽었어요.

그리움이라 쓰고 원망이라 읽었어요.

만남이라 쓰고 외면이라 읽었어요.

사랑이라고 쓰고 리별이라고 읽었어요.

흰종이 우에 쓰고 지워진 이 단어들을 보면서 아버지는 뭐라고 읽으실가요? 또 뭐라고 생각하실가요? 저에게는 대체 어떤 말들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설마 지금의 이 질문도 메아리가 되지는 않겠죠?

그래도 고마왔어요. 낳아주셔서…

그래도 고마왔어요. 대학까지 나오게 해주셔서…

그래도 고마왔어요. 어머니를 저에게 데려다주셔서…

그래도 고마왔어요. 저에게 친척들이라도 남겨주셔서…

그래도 고마왔어요. 고맙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그래도… 그래도… 고마워해야만 할가요?

남들은 그래요. 아버지가 있어 내가 있다고…

남들은 그래요.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내가 남자가 되였다고…

남들은 그래요. 아버지는 우리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였다고…

남들은 그래요. 우리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는…

아버지, 저는 과연 남들 앞에 당당히 우리 아버지라는 말을 해도 되는걸가요?

아버지, 아버지는 과연 남들 앞에서 당당히 우리 아들이라는 말을 할 수 있으신가요?

아버지, 제 눈에 아버지는 아들도 아버지도, 남편도 아닌 그냥 아버지 그 자체예요.

전에 저한테 그러셨죠? 아버지에게도 아버지의 삶이 있으시다구요. 맞아요. 그리고 충분히 리해해요. 아버지도 아버지 삶을 사셔야죠. 맞아요.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훌륭한 선택이예요. 용기있는 행위이며 인간의 당당한 권리죠. 하지만 아버지는 아셔야 해요. 아버지의 삶에 어머니도, 저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인터넷검색창에 ‘가족’이란 대체 무엇인지를 물었어요.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관계’. 저에게 해당되는 것을 골라봤어요.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그걸 빼고 저한테 해당되는 것은 없더라구요. 결국 어머니와 저만 가족이였어요. 씁쓸했어요. 웬만한 사람들은 당연시하는 것을 저는 그토록 바라고 또 바랐다는 것을요. 부모 없이 자란 아이에 비교하지는 마세요. 부모님의 사랑을 아예 받지 못하고 자란 애들과도 비교하지 마세요. 저는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살아계시고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까요. 좀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과 비교하면 안되나요? 설마 그것 마저 사치라고 하지는 않겠죠?

이제 더 이상 달은 보이지 않아요. 끄적였던 글자 만큼이나 탁자 우에는 술병이 늘어났네요. 이제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 래일이 있듯이 저도 래일을 맞이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 래일에는 나의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의 며느리도 있고, 장차 태여날 아버지의 손주도 있어요.

아버지,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가요?

아버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과연 믿어도 될가요?

아버지, 우리는 과연 친해질 수 있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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