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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와 아버지 (외 6수)

-부친의 령전에 삼가 바칩니다

  • 2018-06-28 16:33:24

황소와 아버지


어쩌면 아버지가

저 황소인지도 모릅니다


장하염천 불볕에도 쉬지 않고

고향의 묵정밭을 일구는 황소

어쩌면 아버지가

저 황소인지도 모릅니다


사랑도 숙망도 침묵 속에 묻고

무언으로 세월을 새김질하는 황소

어쩌면 저 황소가 아버지인지도 모릅니다


등허리 부러지게 달구지 끌며

아흔세굽이 고개길에 단김 뿜는 황소

자국자국 땀이 고인 고행길이

어쩌면 아버지의 행복이였는지도 모릅니다


가진 것 깡그리 인간에게 바치고

멍에의 아픔을 마지막 훈장으로 달고

눈물의 쪽배에 앉아 이승의 강을 건너는

어쩌면 저 황소가 아버지인지도 모릅니다


음-머-

대대로 밭 갈던 땅을 향해

소리표 하나 유언으로 남기고

영영 시간 밖으로 사라진 황소


황소가 걸어간 발자취가

아버지의 순박한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저 황소가

나의 아버지인지도 모릅니다.


길을 등에 짊어지고


알 수 없는 길, 그 길의 어딘선가

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확신이

나의 시간을 보라빛으로 물들인다

길 우에서 시작되고

길 우에서 갈무리 될 방랑인생은

삭풍을 사랑하는 락엽을 닮았다

새끼줄처럼 배배 탈린 운명과도

너그러운 미소로 악수하며

그냥 갈 데까지 가고 볼 일이다

보헤미안은 아니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령혼은

길을 등에 짊어지고

먼 별을 바라보며 풀피리 분다

그 길의 어딘가에는 잃어버린 락원이 있고

먼저 떠나간 가장 친근한 선친들이

살고 있다는 찬란한 환상이

나의 래일에게 작은 날개를 달아준다.


민속촌에 부치노라


바람도 시를 짓는 고풍스런 마을에서

나그네는 여기에서 옛 고향을 만났네

용마루 걸린 달님이 함박웃음 웃는구나!


백년부락유감


여길 봐도 선경이요

저길 봐도 몽경일세


여기저기 감탄사가

주렁주렁 걸렸으니


가을엔

이곳을 다시 찾아

시 가을 해야지.


자연인


욕심을 꺾어서 아궁이에 집어넣다

번뇌를 붙잡아 빨래줄에 걸어놓다

노을로 불을 지피니 구름침대 따스하다.


려행


구름이 가는 데면 어디든 찾아간다

바람이 닿는 데면 어디든 달려간다

지구별 그 어느 마을인들 내 고향이 아니랴.


인생


유년에는 철이 없어

갈 데 몰라 천방지축


젊어서는 피가 끓어

천년 살 듯 허둥지둥


해질녘

뒤돌아보니

풀잎에 머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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