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사랑법

2018-08-03 08:55:52

시계바늘은 째깍째깍 경쾌한 구령소리에 맞춰 점점 새벽 12시를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그렇다. 정확히 5분 뒤면 내가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던 나의 27번째 생일날이다. 27살이나 먹은 다 큰 처녀애가 아직도 생일을 그리 손꼽아 기다리느냐 하겠지만 나는 웬지 1년에 한번밖에 없는 그날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생일날, 마치 어린애가 설날을 눈빠지게 기다리는 것처럼 생일 전날이면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벌건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카운트다운을 한다.

“ 3, 2, 1, 땡!!!! 얏호- 생일이다-”

12시 정각에 맞춰 축하문자를 보내온 고마운 분들의 문자에 흐뭇해하고 있는데 똑똑똑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머니께서 빨간 봉투와 함께 미소 띤 얼굴로 들어오시는 것이였다.

“어? 어머니 왜 아직도 안 주무시고? ”

“우리 딸 생일 축하해- 매년 12시까지 안 자구 버티면서 생일 기다리는 거 오늘 나도 한번 해보았다. 하하하. 이번 해는 또 너한테 있어서는 중요한 해이기도 하니.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하고. 필요한 걸 사라.”

무심한 듯한 축하인사와 함께 건넨 유난히도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빨간 봉투가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너무 고맙습니다. 어마마마. 잘 쓸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이 나이를 먹었어도 용돈 받는 것은 여전히 참 즐거운 일인 듯싶다. 떨리는 손으로 빨간 봉투를 냉큼 건네받은 나는 봉투 밑에 숨겨진 다른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흠칫 놀랬다. 편지였다. 부모님께서 주신 나의 또 다른 생일선물은 바로 진심이 담긴 편지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독보적인 주인공이였던 빨간 봉투를 살며시 책상에 놓아두고 나는 꽤 두꺼운 편지를 들고 멍하니 서있었다. 빨간 봉투는 저만치 찬밥신세가 되여 잊혀진 지 오래다. 진정한 주인공인 편지를 들고 있는 나의 손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27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한테서 받아본 편지이다. 여태껏 부모님의 생신날에 편지를 써왔던 것은 나였지만 정작 내가 그 편지를 받는 주인공이 되니 별안간 말 못할 감정이 북받쳐 오르면서 울컥해났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가? 부모님한테 있어서 나는 어떤 딸이였을가? 난생처음으로 받아본 편지에 나는 뭉클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형용 못할 각양각색의 감정들로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움켜잡고 나는 천천히 편지지를 열었다. 글씨를 잘 쓰기로 소문난 아버지의 명필이 한눈에 확 안겨왔다. 뒤장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어머니의 글자체도 보였다. 한획한획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 편지를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나는 눈앞이 점점 희미해짐을 느꼈다. 그동안은 말로 쑥스러워 표현 못하셨던 감정들을 부모님께서는 이 4장의 편지지 안에 빼곡이 담아내셨다. 스마트폰 속 딱딱하고도 일관된 글자체가 아닌 한자한자 정성스레 써내려간 편지, 무척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다소 아날로그적 방식에 마음이 더욱더 뭉클해났다.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박힌 한글자한글자 속에 묻어난 진심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콩닥콩닥 뛰고 있던 가슴은 더할나위없이 먹먹해졌다.

“항상 자랑스러운 우리 딸, 아버지 어머니가 언제나 응원할게. 우리 딸로 태여나줘서 고마와. 우리 딸 최고야! ”

짧지만 굵었던 끝말을 읽는 순간 나의 눈물샘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뜨거운 액체가 폭포수마냥 줄줄 흘려내려 소중한 편지 우에 뚝뚝뚝 떨어졌다. 어찌보면 글로는 처음으로 접한 부모님의 진심에 나는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고 고마움과 감격의 행복한 눈물은 쉽사리 그칠 줄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나한테 있어서 아주 엄격한 분들이셨다. 옹알이를 하기 시작해서부터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책읽기를 시작한 덕분에 나는 점차 글짓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각종 경연에서 묵직한 상들을 수도 없이 받아안게 되였다. 책장에 빼곡이 들어있는 빠알간 영광스러운 상장들을 볼 때마다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향해 어머니는 항상 날카로운 일침을 쏘았었다.

“과거에 만족해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더 잘할 것인가를 연구해야지.”

물론 맞는 말씀이기는 하나 매번 상장을 받아올 때마다 칭찬에 린색하기 그지없었던 부모님이 미울 때도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왜 우리 부모님은 칭찬에 이다지도 린색하실가. 이 모든 성과는 내가 무조건 따냈어야 하는 것인 마냥 응당하게 받아들이는 부모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내가 과연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기는 한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친척의 결혼식에 참가하게 되였다. 아장아장 겨우겨우 뒤뚱거리면서 걸어다닐 때 보고는 꽤 오래동안 만나지 못한 탓에 어느새 훌쩍 커버려 처녀티가 다분히 나는 나를 보고 친척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 니가 영자 딸이구나. 어릴 때 보고는 보지 못했는데 벌써 많이도 컸구나.”

“참 세월두 빠르다야. 너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면서? 아버지 어머니가 어디 가서나 네 칭찬이더라.”

“좋은 딸 둬서 입이 귀에 걸린 것 좀 보게나. 자꾸 동네방네 칭찬을 하면 샘나는 수가 있어. 하하하.”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전해준 말씀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칭찬을? 아버지 어머니께서 내 칭찬을? 에이, 설마. 내 앞에서는 한번이라도 해주시지 않으셨던 칭찬을 다른 사람 앞에서 하실 리가 있을가. 그래,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건네는 인사말인 거야. 잠시나마 기대감에 부풀었던 나는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대학 4학년, 졸업을 눈앞에 둔 어느 날이였다. 석사연구생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던 나한테 뜻밖에도 추천이라는 아주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이번에야말로 드디여 칭찬이라는 것을 들어볼 수가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나는 모든 자료를 차근히 정리하여 바친 뒤 결과가 나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렸다.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가던 인고의 며칠이 지나고 나는 드디여 3등이라는 나름 좋은 성적으로 석사연구생에 추천되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어머니한테 결과를 전한 나는 돌아오는 비수 같은 대답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이왕이면 1등할 거지.”

영광스러운 순간에도 랭정함을 잃지 않으셨던 우리 부모님, 그런 부모님께서 또박또박 손글씨로 “항상 자랑스러운 우리 딸”이라 적어주셨다. 그랬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은 항상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왔었다. 내가 혹시 라태해질가봐, 내가 혹시 자만에 빠져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을가봐 부모님께서는 시종일관 랭정한 태도를 취해온 것이다. 표현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을 뿐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 아버지, 어머니는 더욱더 그러하셨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한없이 무서운 호랑이로 변신하는 아버지였지만 항상 나를 위해 아낌없는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으셨다. 어렸을 적 학교가 멀었던 나를 위해 전용기사를 자처하셨고 밖의 음식이 건강하지 않다며 아침부터 땀 흘리시며 만드신 5단 도시락을 챙겨주시던 아버지였다. 중학교시절, 갈팡질팡 정신을 못차리던 나한테 처음으로 매를 대시고 먼 후날 함께 술잔을 기울면서 그때는 참 미안했었다고 눈물을 훔치시던 아버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해난다. 자식의 앞날을 위해 본의 아니게 아끼는 자식한테 손을 댄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으랴. 나는 그런 아버지의 바다보다 깊고 태산보다도 높은 사랑을 감히 헤아릴 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나한테 있어서 친구 같은 존재였다. 수시로 찾아오는 슬럼프에 싸여있던 고민을 스스럼없이 어머니한테 털어놓을 수 있었고 공부하는 딸이 행여나 힘들가봐 밤마다 정성스레 커피를 타주신다. 어렸을 적부터 허약했던 체질 때문에 행여나 병에라도 걸리지 않을가 항상 로심초사하시면서 건강식을 연구하여 비실비실한 딸한테 먹이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가끔씩 값 비싼 좋은 반찬들을 맛있게 만드시여 오물오물 잘 먹는 나를 보면서 흐뭇해하시다가 스르르 저가락을 뻗는 아버지의 손을 탁 치시면서 “이건, 딸의 반찬임다.” 하고 우스개를 하시여 아버지의 질투심을 불태우신다.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부모님한테 자랑스러운 딸이라서 뿌듯하고 고맙다. 다함없는 정성을 쏟으시는 부모님한테 자랑스러운 딸이라서 참 다행이다. 내 곁에서 항상 힘이 되여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최고는 절대 아니지만 최고라고 표현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표현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가슴깊이 느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칭찬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는 나였지만 그동안 부모님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뚝뚝 묻어져나오는 사랑과 진심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사실 그 것으로 충분했다. 부모님은 나한테 있어서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셨다. 부모님의 그러한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내가 있었던 것이다.

항상 고마움을 가슴에 품고 사는 나였지만 오늘은 더욱더 소리높여 웨치고 싶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함께 합시다! ”

예전에 비해 많이도 스마트해진 세상, 모든 의사소통을 문자거나 위챗으로만 하는 현실 속에서 부모님께서 애정을 듬뿍 담아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쓰신 이 넉장의 편지는 나한테 있어서 더없이 귀중한 보물로 자리매김하였다. 소중한 편지를 가슴에 꼭 품은 채 나는 행복한 잠자리에 들었다. 뜻깊게 맞이한 27번째 생일, 오늘은 웬지 더욱더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互联网新闻信息服务许可证编号:22120180019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