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거라, 당나귀야

2018-09-27 16:16:05

오랜 세파에 부대껴온 세월의 흔적이 곰팡이처럼 진득하니 들어붙어있는 솔버섯 같은 초가들로 어수선한 작은 산골동네에 푸르스름한 새벽을 서서히 열어가는 왜괴한 그림자가 있었다.

달까닥 달까닥… 쓰르륵 쓰르르륵 쓰르르르륵…

저렇게 두껍고 덩치큰 둥그런 청석매돌을 돌리는 얼굴이 기름한 못생긴 짐승을 당나귀라고 한다. 이웃동네 애들을 상대하기 싫다면서 고개 넘어 큰동네 학교에는 가지 않고 요즘 마을에서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박아매네 외손자 똥돌이(이름이 장근长根이였지만 동네에서는 그냥 애명만 불렀다.)는 한낮이면 랑령감네 당나귀를 구경하기를 즐기였다. 짐승들중 첫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못생겼지만 온순해보이는 길죽한 얼굴과 ‘꺼이꺼이 꺼이이’ 하고 내지르는 약간은 설음에 배인 듯한 괴상한 울음소리, 길다란 오줌줄기를 질질 갈겨대는 빨래방추 같은 수놈의 거시기… 그걸 신기하게 구경하면서 똥돌이는 시간을 보내군 하였다. 똥돌이는 외삼촌이 동네학교 교원으로 있을 때 전교(전교생이래야 고작 열여섯명 정도)에서도 공부를 제일 잘한다는 애였다. 특히 과문을 한두번 읽기만 하면 줄줄 암송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력이 뛰여난 애라는 평판을 들었댔는데 지금은 이렇게 학교보다도 당나귀 구경하기를 더 재미있어 했다.

주인령감의 말에 따르면 당나귀란 놈은 체대에 비해 중력에 대한 저항력이 특별히 강하고 웬간해서는 질병이라는 걸 모르는 신체가 아주 건강한 놈인데 등에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 고개길을 톺아오를 때면 제몸이 쓰러질 지언정 걸음걸이를 늦추지 않는 우직스러운 놈이라는 것이다. 매돌을 돌릴 때면 이상하게도 당나귀의 얼굴에 검은 천을 드리워 두 눈을 다 막아놓았다. 당나귀의 어지럼증을 방지하느라고 그러는 줄로 얼핏 리해되였다. 당나귀는 엉뎅이를 한번 두들기면서 ‘가자’ 한소리만 하면 중도에 잠간 쉴 궁리도 없이 끝을 볼 때까지 그냥 똑같은 속도로 매돌주위를 빙빙 돌아가면서 무거운 매돌을 돌려준다. 그런 못나니 당나귀가 순하다고 할지, 부지런하다고 할지, 고집스럽다고 할지 대체로 합당한 평가를 못해주겠다. 어찌보면 주인집 령감과 많은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였다.

두층으로 마주놓인 매돌 우층 암매돌판의 비스듬한 위치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고 바로 그 구멍아구리로 성씨가 랑(郎)가인 령감이 물에 퍼지운 콩을 맑을 물과 함께 절주있게 넣어준다. 밤새 물에 잘 퍼진 노란 생콩은 커다란 가제천주머니에 닮겨 매돌 우 천정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려있었는데 주인령감이 긴 막대기로 한번씩 건드려놓으면 일정한 량의 물과 콩알들이 면바로 암매돌 아구리로 쏟아져들어가는 것이였다. 그러면 맞물려 돌아가는 암수매돌의 짬사이로 허연 콩물이 걸죽하니 흘러내렸다.

이렇게 당나귀로 매돌을 돌릴 때면 늙은 령감은 항상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군 하였다. “쓰하버짜워미 모레머요뤄미 오두우진다라미 모레머빠러미 미하머안꺼미…” 심지어 그 집식구들도 도대체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확실히 모른다고 했다. 동네사람들은 그 령감이 제멋대로 지어부르는 엉터리노래라고도 했고 아마 전에 저들 고조상들이 부르던 민요 같은 노래일 수도 있다고 했다. 랑령감은 스스로 자기는 한족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령감이 한어가 아닌 다른 말을 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보지를 못하였다. 동네에서는 모두들 허리가 구부정한 그 령감을 두부쟁이 ‘한족랑로톨’이라고 불러주었다.

워낙은 여러해 전에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두부를 만들군 했던 집은 배나무집의 강씨 아매네였었다. 초가집구들 우에서 함지박 안에 들어앉힌 크지 않은 손매돌을 돌려서 두부를 앗았는데 그 두부는 정말로 제두부 순맛이였다고들 한다. 동네에서는 거의 모두 아침마다 바가지에 노란 콩을 담아들고가서는 핫들핫들한 하얀 두부를 바꾸어다 먹군 했고 혹시 동네 어느 집에 군일이 있게 되면 모두들 자각적으로 두부판채로 그 집에다 양보를 하군 하였다. 그런 날이면 강아매네 온집식구들은 전날 저녁부터 바삐 돌아쳐서 두부를 잘 앗아 군일집에까지 들어다주군 했었다. 그전의 강아매네 두부에 비하면 랑령감네 두부는 진한 순콩맛이 없거나 그슬림냄새가 좀씩 섞이였다고 평가들 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니 그 두부맛에 습관이 되였던지 그런 말도 차츰 없어져버렸다.

아침해가 아직도 검푸른 숲 우거진 동산고개를 톺아오르지 않았는데 머리가 허연 로파 하나가 동구길어구에 나서서 개밸같이 구불구불한 국도가 길게 타고넘어간 남산 등허리켠을 지켜보고 섯다. 송진 같은 진득한 눈곱을 달고 선 로파의 두 눈은 생기의 빛도 없이 뿌연 재빛으로만 그려놓은 듯 움직임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방향 하나만은 똑바로 지키고 있었다. 그 눈길에 억지로 비쳐드는 쪼박난 동녘하늘도 로파의 눈동자처럼 여전히 희뿌였기만 하다. 로파가 기다리는 아들 리일봉은 워낙 이 동네에서 유일한 민영교원이였다. 그때 동네애들은 일봉선생을 무척 따르고 좋아했었는데 리선생은 애들한테 특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군 했었다. 《수호전》, 《삼국연의》이야기도 재미있었고 ‘리순신장군’, ‘세종대왕’의 이야기 같은 것도 들려주군 했다. 그리고 매일아침 조회 때마다 “민족자치주가 있고 민족학교가 있고 민족출판사가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하면서 <우리는>라는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외국 돈벌이를 쓸어나가면서부터 동네가 망가지고 학교도 문을 닫게 되였는데 그 혼자만은 기어코 어디에도 떠나지 않고 고집스레 버티면서 ‘고향땅을 지킨다.’는 것이였다. 그 때문에 서른살을 훤씬 넘기도록 장가도 들지 못하였고 사람이 이상하게 변해가면서 한동안은 우울증이라는 병을 앓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밤 입으로 피를 토할지경으로 괴성을 내지르면서 통곡을 하더니만 곧바로 출국의 길에 올랐던 것이다. 떠나면서 그는 늙은 엄마한테 이제 많은 돈을 벌어 꼭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단다. 박아매가 매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아들 또한 똥돌이한테는 외삼촌이 되는 일봉선생이였다.

“아야마야, 박로태태, 또 외국간 아들을 기다리는기유?” 당나귀차를 몰고 길을 나서던 랑령감이 알은체 인사를 했다. 그러는 랑령감의 걷어올린 바지가랭이에는 아직도 두부콩찌끼 같은 것이 허옇게 묻어있었다.

“글쎄유, 아들이 돌아올 때가 됐는디…” 머리도 돌리지 않은채 중얼거리는 박아매의 시선은 그냥 남쪽 고개너머로 향해있었다.

“아이구, 박로태태, 왜 아들을 자꾸 기다리며 독촉한디유? 외국 가서 뭉치돈을 꿍꿍 잘 벌고 있는 아들을 뭣때메 이 잘난 동네로 다시 불러들인다는기유?” 랑령감은 갈퀴 같은 손으로 당나귀엉뎅이를 쓸어주면서 리해못하겠다는 듯이 연신 기름하게 생긴 머리통을 저어댔다.

“모르는 소리, 걔가 가면서 그랬는디, 돈 벌어 돌아오면 핵교부터 다시 세운다구.” 로파는 여전히 한곳에 박아놓은 듯한 시선을 얼핏 돌리지도 않고 있었다.

그때 못생긴 당나귀가 입술을 괴상하게 너풀거리면서 푸르르 푸르르 투레질을 해대더니만 “제갈길은 안 가구 뭔 쓸데없는 짓거리유… ” 하고 나무람하 듯이 랑령감쪽을 향해 뿌루룽 뿌루루루 하고 길다란 방구를 뀌였다.

“에끼, 이 못난 당나귀야 어서 가자!” 랑령감은 키같이 넓적한 손바닥으로 당나귀의 엉뎅이를 철썩 쳐댔다. 두부 몇판자기를 실은 당나귀차는 곧바로 현성 방향으로 달려갔다. 원동네에서는 매일 서너집에서만 두부를 바꿔갔고 대부분은 현성의 거리 골목들을 한고패 누비고나면 둬판자기의 두부는 몽땅 팔아버리군 했는데 현성사람들은 어쨌든 농촌사람들보다 돈이 더 많아 번마다 현금으로 두부를 사먹군 했다. 이 것이 랑령감의 일년사철 변함없는 아침일과였다. 두부를 다 팔고나서는 랑령감은 또 농기구를 싣고서 일밭에 나가지 않으면 현성거리를 돌면서 넝마주이를 하군 하였다. 작년부터는 제법 논농사까지 지을줄 알았는데 건장한 집식구들을 거느리고서 남들 내버린 페묵은 논밭들을 깊숙이 갈아번져서는 새로이 부치기 시작했으며 원동네사람들 못지 않게 하얀 입쌀밥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많은 한전에는 일절 종자가 좋은 동북콩만 심었는데 가을이면 해마다 산더미 같은 수확을 거두었고 그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팔았으니 말 그대로 해마다 밑천 안 들인 순수입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셈이였다.

아침에 두부를 다 팔고서 당나귀차를 몰고 금방 집으로 돌아왔는데 신사차림을 한 손님 둘이 와있었다. 스타일이 촌사람들과는 완판 다른 일남일녀였는데 기실 랑령감네 원집 주인이였다. 랑령감네 두부집은 워낙 전에 동네어린애들이 다니던 벽돌집학교 자리였는데 교실로 쓰던 몇칸 그대로 따로따로 두부방, 매돌방, 당나귀집으로 마춤하게 써먹고 있었다. 원 학교마당자리에 온통 들씌운 잔풀밭 우에서는 오리, 게사니떼들이 즐겁게 산책을 하고 있었고 아침부터 할일없이 게사니들을 쫓아다니며 지껄이던 똥돌이는 당나귀차가 돌아온 걸 보고는 당나귀와 장난치려고 히득거리며 달려왔다.

사람들은 고급승용차를 몰고온 신사를 찬찬히 뜯어보아서야 그가 바로 원래 이 벽돌집학교 자리의 집주인였던 명찬인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외국에 나가서 많은 돈을 벌고서 지금은 대부자가 되였다는 소문을 들었댔는데 오늘 이렇게 문득 한산한 고향마을로 찾아올줄은 몰랐다. 함께 온 젊은 녀인의 품에는 흰 강아지가 안겨있었는데 잡털 한대 없이 눈결같이 하얀 털이 한뽐씩이나 길게 자라있어서 빨간 혀를 내밀지 않을 때면 어느 쪽이 대가리인줄도 잘 알리지 않을 정도였다. 텔레비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몇만원씩한다는 애완견이 틀림 없었다.

“요 보배둥이 아들아, 맛나는 햄버거 하나 또 먹을가?” 진한 화장의 녀인은 강아지를 자기 아들이라고 불렀고 쉴새없이 쓰다듬고 어루만지더니 심지어 강아지입에 대고 뽀뽀까지 해대는 것이였다. 그걸 보면서 똥돌이는 당나귀방귀를 얻어먹은 듯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구역질을 겨우 참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로파들 서넛이 구부정한 허리 걸음으로 ‘하이야’와 명찬이를 구경하러 원 학교자리였던 두부방 앞에 모여들었다. 넓은 옛 운동장터에 모여있던 오리, 게사니떼들도 신기한 구경거리라고 꿱꿱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모두들 늙고 맥 빠져 희뿌연 빛만 겨우 남아있는 눈동자에 애써 반가운 기운을 싣고서 소문으로만 듣던 갑부량반 명찬이를 찬히 뜯어보는데 신사차림의 명찬이는 “에구에구, 모두들 그래도 죽지 않고 용케도 건강들 하시군요.”라고 말하면서 겨드랑이에 꼈던 가죽백에서 백원짜리 몇장을 꺼내 소나무껍질 같은 로파들 손에 한장씩 쥐여주는 것이였다. 감동된 로인네들의 눈에는 고목의 밑둥에 내배인 진액 같은 눈물이 글썽해있었고 분홍색 인민페를 쥔 손이 와들와들 떨리기까지 했다. “와하, 이 눔 봐라. 니눔 명찬이가 어릴 적에 우리 집 뒤울안 왜지를 훔쳐먹다가 내한테 붙들렸댔는데, 악착스러운 니눔이 글쎄 강아지처럼 내 이 팔따구니를 덮썩 물어놓구 도망치지 않았노?” 로파들 중에서 그래도 제일 약발라보이는 안짱다리 로파가 거멓게 주글주글한 왼쪽팔을 내보이면서 어울리지 않는 아첨같이 한소리를 했다. “어후후, 내가 그랬어유? 하긴 어릴 때 동네에서 내가 심하게두 쌀개였지요. 근데 지금 세월 보세유. 어릴 때 말 잘듣고 공부 잘했다는 애들이 지금 보면 모두 얼빤한 놈들이 됐구요, 나처럼 쌉살거리면서 싸움이나 하구 닭도적질이나 하던 애들이 오히려 돈도 많이 벌고 잘산다구요. 히히히, 그러니 애들이 공부 잘해서 하두 쓸데가 없더라구요. 이 학교자리도 언녕 두부방으로 변하기가 참 잘된셈이죠. 크크크크… ” 명찬이는 어깨를 몇번 실쭉거리더니 안짱다리로파의 손에 백원짜리 한장을 더 쥐여주었다.

이어 명찬이는 목사가 설교를 하 듯이 시뚝하니 지절거렸다. “지금은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죠.” “뉘기나 맘대로 돈 벌고 싶으면 돈 벌고 외국 가 살고 싶으면 외국 가서 살고, 한뉘 이런 산골에 처박혀 흙냄새, 똥냄새 맡으면서 살 줄 알았던 우리가, 지금은 시내사람들보다도 더 멋있게 삽니다요.” 여러 해 동안 외국에 나가서 알힘 드는 일은 않고 전문 이런저런 ‘출국수속’을 해주어서 벼락부자가 되였다는 동네의 전설인물 같은 명찬이였다.

하지만 박아매만은 갑부가 됐다는 명찬이의 그런 말에 동감할 수가 없었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너무도 보고싶다 못해 세월에 앞서 험하게 흐트러져만 가는 사유에도 그런 말 한마디만은 뼈저리게 맞쳐오는 아픔 같은 것이였다. 박아매는 “돈이 웬쑤”라고 까지 말한 적이 있었다. 평시에도 박아매는 “동네가 망할려면 핵교부터 없어진다고 했네라…” 이런 소리를 자주 주절거리군 했었다. 그래서인지 방금도 박아매만은 기어코 명찬이가 건네주는 시뻘건 돈을 받지 않았다.

“명찬이네 엄만 지금 몹씨 호강을 하구 있겠구만? 그 헝님이 도회지생활이 꽤 습관이 된다구 합데유?” 이러면서 로파들은 부러운 눈길로 조심스레 명찬이의 기색을 훑고 있었다.

“아이, 지금 로인들 어디 젊은이들 집에 얹혀서 ‘감옥살이’를 하려고 하겠나요? 손주애들도 다 외국류학을 보냈으니 집에 있어도 말 동무할 사람도 없지, 그러니 친구도 있고 무리 지어 놀음도 맨날 놀 수 있는 양로원에 보낸지 몇년 잘 됨다. 작년 청명엔가 한번 가보았댔는데 얼굴이 새뽀얗게 좋아졌읍떠구마. 히히히. 할머니네도 어서 이런 산꼴에서 손주들 거두느라 고생 말고 돈 내고 그런 양로원에 가서 호강들을 하셥쇼. 늘그막에는 그게 행복이 아이구 뭐겠음둥, 애구애구 내 새끼야…”

이렇게 강아지 털을 쓰다듬으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앞질러 대답을 하는 젊은 녀인한테 명찬이는 힐끗 눈짓을 주는 것이였다. 요염한 저 녀자가 명찬이한테 대체 몇번째 마누라인지 이 동네에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세번째로 얻었다는 녀인까지는 한번 본적이 있었는데 그후에 일은 모두 잘 모르고 있었다.

도회지신사는 제가 살던 옛 동네를 자상히 둘러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오래 머물러 있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랑령감을 끌고 벽돌집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어두컴컴한 살림안방으로 들어가더니 별로 오랜 시간도 들이지 않고 큰일을 완성했다는 듯 기지개를 켜면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때까지 아직도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섰는 동네로파들과 대충 인사를 하는척 하더니 멋쟁이 신사 둘은 급급히 자가용차에 몸을 실었다.

차운전석 유리창문이 다시 쭈루루 열리더니 선글라스를 낀 명찬이 얼굴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좀 떨어진 곳에서 골몰하게 당나귀를 데리고 장난치고 있는 똥돌이를 보며 한마디 지껄였다. “쟤가 바루 전에 이 핵교 일봉선생 조캐라구 그랬지비? 지금 핵교 때려치우구 전문 동네에서 쌉쌀거린다는디, 이제 봅슈, 지늠이 큰벌구 큰일 칠 늠이라니까… ” 그러더니 또 랑령감한테 “이봐시유, 옛말에 천상에 룡의 고기요, 지상에 당나귀고기라구, 저눔의 당나귀 괴기 참으로 맛이 있어유, 그니깐 인제는 별 쓸데없는 저눔 당나귀를 잡아서 이동네 로파들한테 한때 대접하십쇼, 돈은 내가 낼테니까… ” 명찬이의 싱거운 소리에 랑령감의 얼굴이 대번에 시커멓게 질려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도회지신사’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궁리도 없이 부르릉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승용차는 뒤꽁무니로 당나귀방귀소리를 길게 내면서 구불구불한 국도를 향해 달려갔다. 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려가는 승용차를 따라 랑령감네 덩치큰 하얀 게사니들이 날개를 펼치고 꿱꿱 소리를 지르면서 무리지어 쫓아가고 있었다. 그 뒤로 맹물에 사기가 오른 똥돌이가 길다란 나무막대기를 일본군도처럼 추켜들고 ‘도쯔께끼-‘ 소리치면서 달려갔다. 게사니들은 불청객을 쫓는 시원함을 감수했을 것이고 똥돌이는 처음 보는 하이야가 부러워서 쫓아가본 것이였다. 큰길까지 한참 쫓아가던 게사니무리들은 꿰에억 꿰에억 하고 이상한 울음소리를 한동안 내지르더니 차츰 저들의 본 상황에로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그새에 암수게사니들은 널다란 길바닥에서 깔고들어앉아 교배까지 하고 있었다. 인제는 이 학교 마당과 널다란 국도까지 모두가 저들의 토템의 장이 된 듯 싶었다.

실은 명찬이는 랑령감네와 집문서를 새로 작성하러 왔다. 그리고 이번 걸음에 호구도 아예 도회지호구로 떼여간다는 것이다. 언녕부터 계획을 하고 학교자리였던 벽돌집과 집터 그리고 여러쌍 되는 한전수전밭까지 영구성적으로 넘겨준다는 문서를 미리 꾸며갖고 왔는데 그덕에 쉽사리 허연 종이장에다 뻘건 지장까지 뚝뚝 찍었던 것이다. 랑령감네도 그동안 두부를 팔아 모아두었던 꽤 많은 돈뭉치를 명찬이네 젊은 녀편네한테 넘겨주었다고 한다. 돈이 아까운 것보다도 이시각부터 영구한 동네의 주인으로 되였다는 기쁨이 더 컷을 것이다.

난생처음 직접 두 눈으로 구경을 해본 뜨르르한 하이야가 남쪽 산고개너머로 완전히 사라져버린 후 로파들은 그제야 제정신이 든 듯 뜻밖에 ‘부자’가 쥐여준 큰돈을 꼬깃꼬깃 손안에 꾸며쥐고서 허위허위 발걸음에 힘을 가하여 제집으로 돌아들 갔다. 우직스런 박아매만이 또다시 평시 습관처럼 국도가 뻗어간 먼 남쪽산마루쪽을 지켜보기 시작하였고 다시 심심해난 똥돌이는 어느새 긴 나무꼬챙이를 주어다 당나귀의 축 늘어진 거시기를 다치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요란한 폭죽소리가 한참동안 온동네를 진동하였다. 놀란 개들이 컹컹 짖어댔고 폭죽을 터치는 랑령감네 두부방 앞마당에는 흰 구름송이 같은 살진 게사니들이 덩달아 춤 추며 날뛰고 있었다.

난데없는 폭죽소리에 박아매는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한채 급급히 길밖으로 달려나가보았다. 틀림없이 아들 일봉선생이 돌아오는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 특별히 폭죽 터치기를 좋아했고 남의 집에서 폭죽 터치는 걸 알면 한밤중이라도 달려가서 구경하군 했던 걔가 글쎄 어제밤 꿈에 요란한 폭죽을 터치우면서 멋드러진 당나귀를 타고서 고향마을로 돌아왔던 것이다. 부자가 되여 돌아온 일봉선생은 많은 돈을 내서 학교부터 꾸리였으며 큰 농장을 일떠세웠고 두부방까지 새로 앉히며 한바탕 환락의 야단법석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런데 그 건 여전히 허무한 꿈이였고 달려나가보니 폭죽소리는 바로 랑령감네 두부방 앞마당에서 터치우는 것이였다. 얼마전부터 랑령감네 아들들이 두부방자리에다 커다란 기계망아돌을 놓았고 곁칸에는 정미소까지 새로 앉히였는데 바로 그 걸 축하해서 이렇게 폭죽을 터치웠던 것이다. 인젠 당나귀로 매돌을 돌리지 않게 되였는데 그 것 때문에 랑령감은 아들들과 대판 싸움도 해보았지만 결국 혈기왕성한 아들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늙은 아비를 닮아 고집이 웬간하지 않는 아들들은 이후부터는 두부를 두세판자기가 아닌 십여판자기를 만들어 직접 시내에 수송을 하는데 그쪽에서 시간 맞춰 트럭을 갖고와서 운송해가기로 합의까지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곁칸에 세운 정미소는 올 겨울부터 온동네의 알곡들을 충분히 정미가공할 수가 있을 것이니 새해부터는 구태여 먼 곳으로 싣고갈 필요가 없이 새하얀 입쌀을 제동네에서 맘대로 정미가공을 해 먹을 수가 있다고 했다. 물론 늙은 랑령감 대신 인제는 든든한 일군 여럿을 얻어다 쓰기로 했던 것이다.

불만으로 당나귀처럼 길죽하니 일그러진 랑령감의 얼굴에는 그후부터 희색의 빛갈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매일새벽 당나귀로 큰 매돌을 돌려 두부콩을 갈던 즐거운 일거리를 빼앗긴 랑령감은 낮이면 불뗀 송아지신세가 되여 풀이 죽어 있었다. 맥빠진 걸음걸이로 긴 하루낮동안 당나귀를 끌고 비탈진 산언덕에 가서 풀을 뜯게 하고 개울가에 나가 물도 먹이군 했다. 그러다가 날씨가 따뜻해진 새봄부터는 온집에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됐다는 수당나귀와 거쿨진 암말을 교배시키는 일에 열중하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동네에서 심심해죽을 지경이였던 똥돌이도 다시 신바람이 나서 ‘노새’라고 부르는 체대 좋고 걸음걸이가 빠른 새로운 가축종을 만드는 걸 구경하게 되였다. 당나귀만 동무하면서 할 일을 잃었던 랑령감한테는 새로 중요한 일이 생긴 것 같았고 학교도 가지 않고 삽살개처럼 동네 이 곳 저 곳을 싸대던 똥돌이한테도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였다. 그런데 운수가 사나운 건지 랑령감네 늙은 당나귀는 큰 재앙을 입고 말았다.

그날도 똥돌이는 작은 손으로 입을 막고 키득거리면서 흥미진진하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 랑령감의 지휘를 받으면서 키 작은 당나귀가 희뜩 번져져내린 입술아래로 긴 침을 질질 흘리면서 급급히 덩치 큰 암말의 엉덩이에 매달렸는데 그날따라 뭣이 마뜩잖았던지 체대가 큰 암말이 굵직한 뒤발로 거세차게 당나귀를 냅다 걷어찼다. 상대적으로 순약해보이는 당나귀는 당장에서 뒤로 곤두박질을 쳤는데 그렇게 자빠졌던 놈은 이악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전에 매돌방에서 큰 청석매돌을 돌리던 그 모양새로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있는 힘을 다 모아 비틀비틀 걸어나가는 것이였다. 그렇게 대여섯고패를 돌던 당나귀는 얼굴을 가리운 검은 천이 없어서 심한 어지럼증을 느낀 건지 맥없이 땅에 쓰러졌다. 그렇게 금방까지도 두텁게 살아났던 검붉은 입술을 몇번 푸르르 떨어대더니 흉측하게 길다란 이발을 그대로 드러내놓은 채 천천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처음 보는 뜻밖의 상황이라 곁에서 구경하던 똥돌이는 참지 못하고 까르르 웃어댔고 불길한 감각을 느꼈던지 랑령감은 쓰러진 당나귀의 목을 그러안고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도 전에 당나귀가 뽑아대던 슬픈 울음소리와도 비슷하였다. 랑령감은 물론 똥돌이녀석도 많이 슬퍼했다. 당시 숫당나귀가 죽을 때에는 멋모르고 웃어대였지만 정말 당나귀가 죽는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렇게 웃어대지를 않았을 것이라면서.

한편, 당나귀고기가 그렇게 맛있다는 벼락부자 명찬이의 말을 되새기면서 동네 어른들은 한번 당나귀고기를 맛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랑령감네 아들들도 죽은 당나귀를 잡아서 고기를 동네에 나눠주려고 했다. 그런데 랑령감이 듣기에도 거북한 험한 욕질까지 해대니 자식들도 별 수없어 다른 방도를 생각해내였다. 그날 저녁 켠에 시내에서 몇몇 남정들이 고무바퀴차로 죽은 당나귀를 실어갔다. 랑령감의 아들 말로는 그 사람들이 전문 큰짐승들 죽은 걸 뒤처리해주는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이튿날에 동네에서는 그 사람들이 바로 시내 도살장 사람들이라는 걸 인차 알 수가 있었다. 죽은 당나귀를 실어간 날 저녁 랑령감은 전에 당나귀가 매돌을 돌리던 그 칸에서 온밤 혼자 앉아서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그리고 밤마실을 다니던 동네 어떤 늙은이는 학교마당 옛터에서 들려오는 랑령감의 노래 같기도 하고 글 읽는 소리 같기도 한 굴곡적인 곡을 띤 소리를 한참이나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쓰하버짜워미 모레머요뤄미 오두우진다라미 모레머빠러미 미하머안꺼미…”

며칠 후 박아매의 아들한테서 새로 소식이 왔는데 여직 한국 가서 별로 돈도 많이 벌지 못한 누나네 대신 자기가 돈을 대줄테니까 외조카 장근이를 꼭 시내학교에 보내 공부시키라고 신신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에 말하던 마을에 돌아와서 학교를 다시 세우겠다는 말만은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돈벌이에 너무 바삐 보내다나니 그만 깜빡 잊고 말았을 것이라고 늙은 로파는 생각했다.

이튿날부터 박아매는 더욱 정성껏 길가에 나가서서 먼 남산고개너머길을 지켜보고 섰다. 요즘도 박아매는 꿈에 당나귀와 아들 일봉선생을 자주 보군 했다. 그래서 오늘엔 오늘엔… 하면서 당금이라도 들이닥칠 것만 같은 아들을 마중하여 기다리고 섰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부터인지 딱히 모르겠지만 늙은 로파의 입에서도 중이 념불하는 듯 주절주절 사설 같은 말소리가 그냥 흘러나왔는데 곁에서 아무리 귀 기울여 들어봐도 도대체 무슨 잡설인지 누구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랑령감이 부르는 건 확실히 무슨 민요 같은 것이였지만 박아매가 입속으로 주절주절 소리를 내는 건 민요도 아니요, 시구절도 아닌 순 죽어가는 늙은 중의 념불 같은 것이였다. 구시렁구시렁거리며 근심하는 소리 같기도 했고 쯧쯧 쯔 혀를 차는 감탄소리 같기도 했으며 씨부렁씨부렁 욕질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번마다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여서 도대체 뭔 소리인지 아무리 귀 기울여 들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욱 경탄할 만한 일은 못나니 당나귀는 죽었지만 과연 이듬해 이른봄에 랑령감네 집의 큰 암말이 두귀가 벌쭉하니 일어서고 털빛에 기름기 잘잘 흐르는 체격이 미끈한 노새라는 짐승을 낳은 일이다. 동네의 장난꾸러기 똥돌이는 끝내 연변쪽의 어느 먼 친척집에 가서 큰 학교를 다녔는데 워낙 총명한 애인지라 얼마 안가서 공부도 전반급에서 중등쯤은 가게 잘한다고 동네에까지 소문이 돌았다.

이렇게 그 후날에도… 랑령감의 누구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꺽꺽한 노래와 누구도 리해할 수 없는 박아매의 늘어진 사설소리를 동반하면서 이 깊은 산골동네에는 래일, 다음 래일에도 여전히 푸르름한 새벽이 활짝 열려갈 것이다.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