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풍경

2018-10-11 15:43:08

비가 있다는 말에 여느때보다 서둘러 음식들을 준비해 산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룡정으로 나가는 고속도로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휘이익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도로 우의 그들도 비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추석 차례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은 나와 같은가 보다.

모아산 산등성이를 넘어가면서 나는 굽이굽이 늘어져 서있는 전보대의 개수를 습관처럼 세고 있었다.

저 굽인돌이 네번째 전보대 부근에 우리 할머니가 고이 잠들어있는데 손녀는 오늘도 그냥 지나갑니다. 미안합니다! 할머니, 그리고 언제나 그립습니다.

외가는 금년부터 일가친척들의 합의 하에 매년 다니던 성묘를 포기했다고 한다. 해마다 가문의 맏언니인 혜순이모와 막내인 엄마가 성묘를 다녀오군 했었다. 허나 이젠 엄마도 칠십에 가까워오니 산에 다니는게 여간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니였다. 외가는 이상하게 남자들이 귀해서 엄마와 혜순이모는 출가외인임에도 불구하고 몇십년 동안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산에 다녔었다. 그렇다고 남자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타향살이에 바빠서 부모의 산소를 챙길 여력이 없었을 따름이다. 그 고생은 몇십년 동안 고스란히 막내 사위인 아버지의 몫으로 돌아왔다.

시댁도 거의 같은 상황이다. 연변에 남아있는 형제라 해봤자 윤씨 집안의 제일 맏이인 큰형님과 막내인 남편이다.

해마다 맏이와 막내의 조합으로 산에 다니던 어느해 가을, 정확히 말하면 2년 전의 추석에 있은 일이다.

따스한 가을 해살이 집문을 나서는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어 그 해 추석날 아침에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추석이라고 룡정뻐스가 많이 추가되여 인츰 출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마음은 급했다. 좀전에 큰형님네 부부가 벌써 산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때까지도 나와 남편은 사람들의 이상한 눈길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룡정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산밑에 도착한 우리는 가방을 메고 삽을 들고 좁은 산길에 들어섰다.

길옆의 코스모스들이 가을바람에 가느다른 허리를 하느적거리고 있었다. 이제 거의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남편과 나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생겼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성묘를 끝내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마다 내가 들고가는 삽을 보면서 머리를 젓는가 하면 또 의미있는 눈웃음을 짓기도 하고 뭔가를 말하고 싶은데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듯한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뭔가가 어긋난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먼저 눈치챈 건 남편이였다.

“저기 우리가 착각한 것 같아.”

그제야 사람들 손에 쥐여진 것은 삽이 아닌 낫이라는 사실에 잠간 멍해있던 우리는 급기야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에이, 이 사람들아, 추석에는 낫이지, 생각들이 있는게야?”

산에서 내려오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문제의 주인공인 삽을 가리키며 호통을 치셨다.

“어떡해요? 급해서 그만…”

“괜찮아. 괜찮아. 누구 산인진 몰라도 이렇게 온 것만으로도 다 감사할 것이야. 못 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된거지, 안 그래들?”

어르신은 뒤에 따라오는 일행들에게 반문구로 되물었지만 그건 긍정의 말이였다.

“그래, 여기 이 산도 이제 다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이 젊은이들은 매년마다 부지런히 다니더군. 낫이 필요하면 내 거 가져다 써!”

“차리리 이젠 골회를 모두 날리는게 더 좋은 거야. 서로 부담도 안되고 말이야. 어차피 산에 묻어도 나중에는 주인 없는 쓸쓸한 무덤이 되여버리잖아.”

민망해하는 우리들을 격려해주는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명절이라 해도 외국에 나가있는 사람이 더 많은 지금, 청명이나 추석에 산에 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우리 같은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

아버님 산에 도착해서 잠간 땀을 들이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산 우쪽에 있는 무덤에는 이미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물끄러미 옆쪽의 무덤을 바라보던 남편이 무심한 듯 한마디를 해왔다.

“이 량반은 올해에도 안 온 걸 봐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버님 옆 산에 성씨만 서로 다르고 존함이 같은 두분 묘비가 가지런히 세워져있었다. 성도 이름도 모르지만 우리는 일년에 두번씩 만나는 ‘이웃’ 이였다. 어느해 청명에 낫을 가지고 왔다는 그 사람,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간 삽을 빌려서 가토를 했다는 그 이야기는 산에 갈 때마다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군 했었다. 한눈에 봐도 술을 몹시 즐길 것 같은 그 사람은 옷차림은 변변치 못해도 늘 잊지 않고 산에 다녀가군 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몇해째 보이지를 않는다.

작은 골짜기를 사이 두고 보이는 무덤에는 평소와 달리 유난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까 산에 오를 때 우리 앞에서 걷던 일행들이였다.

“어쩐 일로 이렇게 많이 모였어?”

“응, 하도 일이 안 풀려서 점쟁이에게 갔는데 조상님들 산에 다녀오라 해서 한국에서 모두 날아왔지.”

늘 변함없는 꾸준함으로 조상에게 례를 갖춰야 마땅한 일이 건만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는 조상 덕이 아니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조상님’을 찾는 불편함, 세월이 흘러 물길이 빠져나간 논바닥처럼 바짝바짝 갈라터져 굳어버린 심장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가슴이 메마르고 정에 린색했던 건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숲을 가로지르며 들국화가 핀 언덕 사이로 억새풀이 바람에 우수수 떨고 있었다. 억새는 외롭고 청정한 산모퉁이에서 끄덕도 않는 자태로 고고하게 저들의 알량함을 꾸짖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을 차리고 술을 따른 다음 절을 올렸다.

현란하게 바쁘기만 한 우리들, 컴퓨터 앞에서 늘 단순로동을 반복하고 있는 일상이 자연 속에서 힐링이 되는 것만 같다.

비줄기가 떨어지기 전에 마무리를 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하늘은 그런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 슬픔을 참고 있는 나그네마냥 시퍼런 얼굴을 하고 있다. 고속도로 사이사이 사과배를 팔고 있는 가게들이 가끔 보였다. 이맘 때면 어김없이 보게 되는 길가의 풍경이다.

“금년에는 또 저 사과배들을 다 어찌 처리하는지?”

남편의 걱정어린 목소리에는 가느다란 서글픔이 배여있었다. 당신의 뿌리였던 과수농장, 사과배가 풍년이 들어서 기뻐했던 어린시절 이야기는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만 간직해야만 하는가 보다.

어쩌다 한번 추석이라고 고향을 찾아오는 저들도 풍요로운 고향땅에서 잔뼈가 굵어졌을 것이고 어떻게든 그 뿌리를 내려보려고 했으나 의지대로 이루어지 않아서 부득이 고향을 등지고 타향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였건만 그들에게도 분명 고향과의 행복한 옛 추억은 있을 것이다.

다만 삶의 팍팍함에 미처 고향을 찾을 여유를 가질 수가 없어서 조상들을 찾아뵙지 못한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들은 자신이 정착한 도시의 화려한 비상은 지켜보고 있으나 고향에도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감감 모른 채 야속하게 세월을 흘러보낸다. 불연중 고향은 점점 멀어지고 친인들과의 만남 또한 적어진다.

언젠가 한국에 오래 동안 있다가 연변으로 돌아온 중년의 부부에 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동안 고생해서 번 돈으로 땅을 도맡아 약재를 재배하고 있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라고 했다. 돈도 벌고 연변에서 부족했던 산업에 자신들의 힘도 보탤 수가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했다.

방법을 찾아보면 다 길이 있다. 고향은 날개 꺽인 자식이라고 내치지는 않을 것이고 늘 같은 자리에서 한결 같은 마음으로 반길 것이다.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을 때만 고향을 찾아와 기도하지 말고 저 차오르는 보름달처럼 제일 빛나고 화려할 때, 고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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