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외4수)

2018-10-25 15:15:52


봉이눈에

뚝뚝 혼불이 떨어지네


바람결 신상에

산신령 의상 입으시고


앞발 뒤발에

매화꽃신 신으시고


해지는 산마루

뚝뚝 혼불이 떨어지네.



딱따구리


아름드리 고목이

뚝뚝 뚝뚝뚝 뚝뚝뚝


이 산 저 산에서

이 숲 저 숲에서

수십년 세월 추적해온 산의 소리이다


마른 나무

젖은 나무

겨울나무


언젠가 절에서 듣던 목탁소리 같아

소나무 우거진 산벼랑을 쳐다보는데

어느새 나무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두 손을 합장한다


나의 앞에는

애숭이 나무가 잠투정하며 서있었다.



지난 여름


한송이 빨간 산나리꽃

그 주변에

이름모를 풀들이 몰켜서서 법석이고 있었다


어떤 풀은 산나리보다 크고

어떤 풀은 산나리보다 작고

어떤 풀은 산나리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는

시골 사내 같은 들풀

발 디딜 틈 없이 산나리꽃 에워싸고

발뼘발뼘 발돋움하며 법석이고 있었다


산나리는 그냥 웃고

들풀은 휙휙 휘파람 소리 지르고 있었다


나는 가던 길 멈추고

법석이는 풀숲을 헤치고

막아서는 풀숲에 들어섰다.



흐린 물 앞에서


마음의 빗장 잠근 그녀 앞에

한송이 장미꽃을 놓는다


나비가 날아와 제 모습 비춰보고 춤출 수 있게

산새가 날아와 제 얼굴 비춰보고 노래할 수 있게

목 긴 사슴이 다가와 마른 목 추길 수 있게

내가 고개 숙여 나의 마음 비춰보고 웃을 수 있게


그리고 산과 들이

그녀가 두드리는 맑은 장단소리 들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수놓을 수 있게.



태 풍


날개 없는 거대한 몸뚱이

검은 장막 펼쳐 하늘을 뒤덮었어

화살과 창과 칼의 빗장 부수고

총과 대포와 미사일의 빗장 부수고

수리개 초원에서 콩크리트 도시에서

한바탕 술을 질퍽하게 퍼 마시고

기겁한 녀인들의 저고리 풀어헤치고

기겁한 녀인들의 속치마 마구 휘젓고

닦치는 대로 술집간판 털어갔고 갔어

그리고 구름 우에 나무를 심겠다고

늙은 당나무 뿌리채 뽑아갔고

나무 우에 갓부화한 까치둥지도 그대로 옮겨갔어

그리고 또 마을 어귀에다가

래년에 다시 온다는

흰 꽃다발 가득 피워갔고 온다는

하늘락관 찍은 포고문 붙여놓고

와당탕 너털웃음 흘리며

아무도 본 적 없는 허공 속의 집으로 사라져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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