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

2018-11-30 09:10:29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봉두란발에 헐렁한 수유복을 입고 3개월이 채 안된 딸애를 띠로 안고 있었다. 늘 그러하듯 파스타와 피자를 곁들어 먹을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우리는 만났고 그녀는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혼자 나오는 줄 알았더니…”

“애를 볼 사람이 없어요.”

“남편은?”

“그이는 그이 할 일이 따로 있으니깐요.”

“아무리 그래도 커피 한잔 할 시간도 안 주니?”

남자가 백일도 안된 갓난아이를 본다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이며 딸애가 모유수유중이여서 엄마를 떠날 수 없다는 설명을 구구히 하려다가 나는 관두었다.

“뭐 드실래요?”

“이미 시켰어. 니가 좋아하는 매운 것들로.”

“아… 수유중이라 매운 거 못 먹어요.”

내 말에 그녀는 미간을 찌프리다가 종업원을 불러 메뉴를 변경시켰다. 그녀는 내가 출산 전 다니던 회사의 오너였다. 아직도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의 그녀 표정이 나는 기억에 생생했다.

“결혼?”

“네.”

“결혼한다고 사직하니?”

“저 임신했어요. 6주 넘었어요.”

“…”

“의사가 상황이 안 좋다고 보름 입원하라고 하네요.”

회사는 업무량이 많고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였다. 아무리 비상상황이라 해도 내게 보름이라는 휴가는 있을 수 없는 사치였다. 그녀는 얼굴을 찌프리고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주일만 입원하면 안돼?”

“출산휴가는 가능하겠어요?”

내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그녀는 말없이 한숨을 톺아올렸다.

“차라리 지금 새 직원을 뽑아서 가르치는 게 더 빠를 거 같아서요. 성수기에는 직원 교육할 시간조차 없으니깐요.”

나로서는 모든 사심을 빼고 최선의 방법을 제안한 셈이였다. 그녀는 끝내 사직서에 싸인을 했고 나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였다. 그리고 일년 후, 그녀는 나를 호출했다.

“집에서 일을 좀 봐줄 수 있을가? 출퇴근은 안해도 돼. 페이는 원하는 대로 줄게.”

다행히도 위챗이며 카톡으로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여있었다. 폰으로 여러 문서 앱을 다운받을 수 있고 파일을 첨부한 메일도 보낼 수 있다. 컴퓨터가 하는 일을 스마트폰이 대체하는 시대가 왔다.

“가끔 만나서 중간점검은 해줄 수 있겠지?”

그래서 정한 곳이 이 카페였고 그녀는 커피가 올라오자 바로 노트북을 작동시켰다. 하지만 얼마 안되여 딸애가 요란하게 울어번지기 시작했다.

“기저귀가 젖었나봐요. 잠시만요.”

화장실에 가 아기 기저귀를 바꿔주고 돌아오니 그녀는 노트북을 도로 가방에 집어넣고 있었다.

“중간점검은 메일로 하자.”

“네, 그러죠.”

“너는 왜 그리 빨리 결혼해서는…”

그녀가 입끝까지 올라오는 지청구를 간신히 참는 게 보였다. 나는 딸애를 달래며 시무룩이 웃어보였다.

“서른에 결혼했으니 빠른 건 아니죠.”

“그래도 한창 멋부릴 나이에 이게 뭐니?”

그녀의 시선이 다시 내 헐렁한 수유복에 와닿았다. 나 역시 그녀의 정제된 옷차림과 아름다운 메이크업, 한들거리는 귀걸이와 손목에서 반짝거리는 팔찌를 눈에 담았다.

“그러게요…”

“내가 이래서 결혼이란 걸 안하는 거다. 나중에 정 아기가 갖고 싶다면 그때 하면 몰라도. 련애만 하면서 즐기면 될걸 왜 덜컥 결혼까지 해서는.”

그녀는 담배 한가치를 꺼내다가 아기가 빤히 쳐다보는 것을 의식하고 다시 집어넣었다.

“자유라고는 꼬물 만치도 없지, 육아는 혼자 전담해야지, 애가 크면 늙어버리지… 녀자 인생이란 게 뭐야? 젊은 나이에 제대로 실컷 즐기지도 못하고 남편 위해, 아이 위해 희생하는 게 녀자 인생이니?”

“…”

“다음에 또 보자.”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아기의 수유시간이 다되였는지라 나는 그녀의 작별인사가 내심 반가웠다.

그렇게 유선상으로만 련락이 유지되다가 그녀가 다시 나를 호출했다. 이번은 호프집이였다. 나를 불러낸 것은 업무에 관한 일이 아니였다.

이번에는 딸애가 조금 커서 유아용 의자에 간신히 앉힐 수 있었다. 그녀는 술에 취해 간잔지런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호프집에 애를 데리고 오는 사람은 아마 너밖에 없을 거다.”

“남편이 출장 갔어요.”

“어차피 집에 있어도 네가 데리고 나와야 하는 게 아니야?”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는지라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앞의 빈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술은 당연히 안되겠지?”

“네, 수유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요.”

“이젠 끊을 때도 되지 않았니?”

“두살까진 애 면역력 때문에 수유 견지하고 싶어서요.”

그녀는 더 이상 이 화제는 이어나가기도 싫다는 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나 오늘 헤여졌어.”

“만나던 그분이랑요?”

“응.”

“이번은 제대로 만난 거 같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자식이 꼼수를 부리는 거야. 재수 없이.”

“…”

“결혼 전 부동산에 제 명의를 넣어달래.”

“아… 네.”

“그리고 결혼식 비용을 반반 부담하재. 게다가 신혼집 가구는 내가 사넣고. 말이 되냐?”

“결혼 얘기까지 오갔어요?”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떠봤지. 그랬기에 다행이지, 아니면 그 자식 이런 얍삽한 계산 하고 있는 줄도 모를 번했잖아.”

“…”

“정말, 넌 어떻게 결혼했니?”

그녀가 자세를 고쳐앉았다. 나는 딸애에게 쌀과자를 건네주면서 그녀의 말을 받았다.

“저희는 무일푼으로 결혼했어요. 같이 벌어서 같이 내고, 재산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없이요.”

“사돈 보기는? 례물은?”

“생략했죠.”

“함은? 젖값은?”

“그런 거 다해야 해요?”

“저런, 헐값에 팔렸군.”

혼인이 장사냐고 한마디 되물으려다가 그냥 포기했다. 이 도시에서 한다하는 도매상들이 다 알아주는 유명한 에이전시로서 그녀는 모든 일을 장사와 련관 짓는 일에 능숙했다.

“이것저것 다 따지면 피곤해져요. 그냥 웬만한 건 넘어가 주고 그러는 거죠 뭐.”

“너 그렇게 헌신하다 헌신짝 된다.”

“짝이라도 있는 거에 만족하죠 뭐.”

문득 그녀가 조용해져서 나는 내 실언을 깨달았다. 때마침 딸애가 징징거려서 나는 핑게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애가 한곳에 오래 앉아있질 못해요. 나중에 또 뵐게요.”

그리고 일년 후,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시키는 일이 점차 적어져서 다른 알바라도 찾아해야 하나 고만하고 있던 시점이였다. 이번엔 길거리 포장마차였다. 눈가에 진 잔주름은 더 이상 메이크업으로 커버가 안되는 모양으로 그녀는 몰라보게 초췌해있었다. 이번엔 아이가 있건 말건 그녀는 다짜고짜 담배를 물었다.

“나 사기당했어.”

“어느 업체인가요?”

“업체 아니고 남자.”

“아…”

“바에서 만난 남자인데…”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유독 밤생활이 현란한 이 도시에서 흔히 들려오는 퇴페적인 이야기중 하나였다.

“경제적인 손해를 보셨나요?”

“뭐 한 이삼십만원쯤?”

“그 정도는 괜찮네요. 그냥 털어버려요.”

“그런데 이놈이 련락을 안 받아. 내가 그렇게도 문자를 보냈는데 씹더라? 나쁜 새끼.”

“문자 보내서 뭐하게요?”

“서로 잘 지내라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잖아.”

“…”

“안 그래? 우리가 뭐 원쑤냐? 그깟 돈으로 잠적하다니? 나쁜 새끼…”

나는 작게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테블 주위를 촐랑거리며 뛰여다니는 딸애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그녀가 다시 담배 한가치를 붙였다.

“넌 어때? 안색은 퍽 좋아보인다.”

“애가 크니 좀씩 좋아졌어요. 힘든 시기는 다 지나가게 되여있는가 봐요.”

“나, 그냥 아무 남자나 찾아 결혼할가?”

나는 다시 그녀의 삭막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 남자…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어요?”

“아니, 애를 갖고 싶어서.”

“그 애한텐 불행이 아닐가요? 감정기초가 없는 가정에서 태여나는 게.”

“그렇기도 하겠네.”

다행히 그번 만남에서 그녀는 깜박했는지 더 이상 남편은 뭐하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작별할 때 그녀의 시선은 딸애의 얼굴에 꽤 오래 머물러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최근에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에이전시일을 접고 백수로 빈둥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그녀로부터 독립해서 자영업을 시작했고 제휴하고 있는 업체와 바이어도 꽤 많이 불어나있었다. 나는 늘어난 수입으로 도우미 아줌마를 고용했고 딸애는 이젠 유치원을 다녀서 개인시간도 부쩍 많아졌다.

역시 처음 만났던 그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고, 이번에 그녀는 내가 혼자인 것이 퍽 신기한 모양인지 나를 아래우로 훑어보았다.

“일은 잘돼? 그렇게 꾸미고 다니니 애 엄마 같지 않구나.”

“네, 그럭저럭.”

나는 그녀의 맞은켠에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올라온 커피 한모금을 들이켰다.

“나 결혼하려고.”

그녀의 말에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우멍한 시선으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생각해보니 나이도 꽉 찼지… 널 보니 결혼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 이것저것 따지고 남자 조건도 보고 그랬는데, 세상일은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그런 장사 같은 것도 아니고.”

“…”

“사람만 좋으면 설령 무일푼이라도 내가 재산이 있으니까… 사는 걱정은 없을 것 같아. 전에는 이런 거 민감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상대방에겐 그리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 수도 있더라구. 서로 가치관 차이는 분명 있지만 또 마음만 먹으면 극복해낼 순 있을 거 같고.”

두 손을 마주잡고 이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경건하다 못해 그 어떤 열반(涅槃)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당겨 피씩 웃었다.

“그렇긴 하죠.”

나는 웨이터를 손짓으로 불러 라이타를 달라고 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담배 피워?”

“네, 일하다 보니 그렇게 되네요.”

나는 연기 한모금을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허공에 대고 작은 동그라미를 내뱉었다. 동그라미는 점점 그 륜곽을 넓혀가며 공기 속으로 침투되였다.

“잘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오늘 보자고 한 건가요?”

“그래, 니 남편 주위에 괜찮은 남자 있으면 소개시켜주라고. 이젠 맞선을 볼 거야. 나이나 가진 것 이런 건 다 괜찮고 그냥 무던한 사람이면 돼. 나 올해 안으로 꼭 결혼하고 싶어.”

“어쩌죠? 저 이건 못 도와드릴 거 같아요.”

“왜?”

나는 동그란 담배연기 속으로 그녀의 희미해진 얼굴을 보았다. 차츰 의혹으로 물드는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드디여 피안(彼岸)의 세계를 보았다. 그곳은 황량한 무(无)만이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나는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 끄고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말아올렸다.

“저 리혼했어요. 꽤 오래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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