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라크가 미쳤어□ 리다설

2019-01-04 09:22:35

몇달 전 홍녀사는 할빈 의과대학 제1부속병원을 쉰다섯이라는 나이로 정년퇴직을 하였습니다.

언제부턴가 홍녀사는 아침이면 급히 출근하는 남편의 뒤모습을 창가에 붙어서서 하염없이 바라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러는 홍녀사가 안스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여 홍녀사의 무남독녀인 나는 쉬는 날이면 같이 쇼핑도 하고 맛집에도 다니며 예전보다 더 자주 홍녀사의 집에 들락거렸습니다. 때론 늦어서 집에 가기 싫다는 핑게를 대고 홍녀사네 집에 눌러 자기도 했습니다.

홍녀사가 기분이 괜찮아보일 때는 친구들과 려행이라도 가면 좋지 않냐고 슬쩍 떠보기도 하고 홍녀사가 좋아하는 피아노학습반도 추천해보았지만 가족들과 하는 려행이면 몰라도 혼자 하는 려행은 싫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피아노학습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늙어서 남보기 민망스럽게 웬 피아노학원이냐며 손사래를 쳐댔습니다.

직장부근의 피아노학원을 지날 때 몇번인가 무조건 수강권을 끊어드릴가 생각했다가 홍녀사에게 억지로 피아노학원에 끌려다니던 내 비참했던 동년이 생각나서 그 생각을 단념하군 했습니다.

피아니스트.

그렇습니다. 홍녀사의 꿈은 아마도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혹 홍녀사의 첫사랑이 피아니스트가 아니였을가 하고 잠시 의심해봅니다. 그렇게 피아노를 좋아하는 홍녀사가 어쩌다가 의사가 되였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긴 하지만 내가 보건대는 그래도 피아니스트보다는 의사라는 직업이 훨씬 더 나아보이는데 홍녀사는 그게 아닌가 봅니다. 홍녀사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무남독녀인 나한테서 이루려고 무척 애를 쓴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어린시절에 홍녀사로부터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빨리 피아노나 쳐라.”란 말이였겠습니까? 아침에 눈을 떠도 피아노, 밥 먹을 때에도 피아노, 길 걸을 때에도 피아노, 지어는 화장실에 앉아있을 때에도 피아노… 아!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나는 그 피아노타령.

홍녀사에게는 장씨라는 직장동료가 있습니다. 그 장씨 이모한테서 자기 아들은 누구누구한테서 피아노를 배우는데 선생님도 아주 잘 가르치고 자기 아들도 피아노 치는 걸 무척이나 재미있어 한다는 말을 들었는 모양입니다.

그때부터 여덟살 난 나는 음악면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홍녀사의 ‘원대한 프로젝트’에 휘말려들어야 했습니다. 누구에게 지는 걸 딱 싫어하는 홍녀사는 장씨 이모로부터 피아노선생도 소개받았고 그 비싼 피아노도 사다주면서 장씨 이모의 아들 지성이를 꼭 초과해야 한다고 은근히 나에게 윽박질렀습니다.

하지만 나는 홍녀사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피아노에 그렇다 할 흥취를 느끼지 못하였고 오히려 조용히 책 보기를 좋아했습니다.

처음엔 나도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신생사물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나 봅니다. 손으로 톡톡 치면 소리를 내는 우리 집에 새로 이사온 덩치 큰 피아노가 신기했던걸가요. 피아노선생님의 가르침 대로 애써 자세도 바로 하고 손모양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가면서 숙제를 꼬박꼬박 완성하였습니다. 어쩌면 홍녀사의 칭찬소리를 듣는 것이 기분 나쁜 일은 아니였나봅니다.

바이엘교재를 거의 다 배워갈 무렵의 어느 날, 피아노선생님은 어떤 소규모의 피아노경연에 참가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왔습니다. 물론 같은 선생님한테서 배우던 지성이도 나랑 같이 경연에 참가했는데 음악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고 나보다 반년이나 먼저 시작한 지성이는 그번 경연에서 대상을 탔습니다. 나는 등수에도 못 들고 겨우 장려상을 탔습니다.

“지성인 어쩜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칠 수 있니? 지성이가 내 아들이면 좋겠다…”

부러움에 잔뜩 차서 내 울적한 기분 따위는 고려도 안하고 내뱉은 홍녀사의 말이였습니다.

“다연이가 늦게 시작해서 그렇지 다연이도 오늘 멋있었어. 다연아, 화이팅! ”

장씨 이모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위로해주었지만 그때 이미 내 마음속에서는 일종의 피아노에 대한 거부반응이 슬슬 일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심도가 깊어짐에 따라 체르니 599교재요, 체르니 849교재요, 바흐작품집, 소나타명곡집… 등 많은 교재를 준비하라는 피아노선생님의 말을 듣고 머리가 어질거리던차였습니다. 바이엘교재와 하농지법교재만 일년 넘게 하였습니다. 동급생 애들이 맘껏 뛰여놀 때 피아노건반만 쳐댄 것도 억울해죽겠는데 저 많은 걸 또 갖추라니. 끝이 있을가 싶으면서 정말이지 피아노를 도끼로 패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대상을 받은 지성이가 미워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였을가요. 이튿날 나는 지성이의 피아노곡을 훔쳐 갈기갈기 찢어놓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부터 나와 홍녀사의 ‘소리없는 전쟁’은 막을 열었습니다. 홍녀사는 그만의 생각을 완강하게 고집했고 그럴수록 피아노에 대한 나의 거부반응은 잔잔한 파도에서 발전하여 세찬 격랑으로 되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이면 완성하던 피아노숙제는 다음주 그 다음주 지어는 다다음주로 미루어졌습니다. 병원 일로 바쁜 홍녀사는 수시로 피아노선생님한테 전화를 하여 내 근황을 묻군 하였는데 총명한 피아노선생님은 늘 “총명한데 좀만 더 노력하면 아주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물론 피아노선생님이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니지만 나처럼 ‘리윤’이 많이 남는 학생을 더 보류하여 돈을 벌자는 피아노선생님의 속내를 알아채지 못한 홍녀사는 나를 잘 부탁한다면서 수강료외에도 적지 않은 선물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럴수록 피아노선생님은 점점 예쁜 말만 골라서 하였습니다.

그맘때 승벽심이 강한 홍녀사는 내과 부주임에 이어 정주임으로 승진하느라 무남독녀의 피아노학습을 감독할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아빠가 내 피아노 감독이 되였지만 정부에 출근하는 아빠는 써야 할 원고가 많았던 연유로 늘 나를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딩강댕강하는 피아노소리가 얼마나 귀찮았겠습니까. 물론 홍녀사에겐 철저히 비밀로 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내 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아니면 친구들과 신나게 놀아댔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장씨 이모가 자기네 지성이가 무슨무슨 성과를 냈다고 자랑을 하는 날이면 홍녀사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는 날이였고 성과를 올리지 못한 나의 눈에선 비가 내리는 날이였습니다. 그럴 땐 아빠도 구원의 손길을 보내줄 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빈에서 제일 큰 병원의 내과 주임의사인 홍녀사를 싸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우리 집엔 없었으니깐요. 홍녀사는 집에서도 항상 직장 부하들에게 하듯 명령조로 말하는 데 습관되여있었고 홍녀사의 말은 곧 우리 집 가법이였습니다. 따라서 나의 유일한 구세주는 환자들밖에 없었습니다. 환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홍녀사는 날 감독할 시간이 없으니깐요. 그때 나는 못된 생각인 줄 알면서도 병원에 환자가 많기를 매일매일 빌었습니다.

아이참. 여기에 또 나의 가출사건을 쓰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날도 홍녀사가 사람을 보내 나에게 점심배달을 해준 날이였습니다. 오전 내내 집에 갇혀있던 나는 일부러 과일쥬스를 갈아달라고 부탁해놓곤 몰래 집을 빠져나와 아빠트단지 안의 청소도구들을 넣어놓는 자그마한 창고에 숨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기회를 봐서 70선 공공뻐스를 타고 교외에 자리 잡고 있는 외할머니 집으로 뺑소니쳐버렸습니다. 외할머니집에 가서 눈물에 코물을 있는 대로 다 쥐여 짜며 홍녀사가 나에 대한 ‘횡포’를 상급에 고발하듯이 외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외할머니는 무조건 내 편에 서주셨습니다. 오후 내내 나를 찾아해매던 홍녀사가 저녁때쯤 돼서야 나타났는데 홍녀사는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눈에서 불이 일었지만 감히 욕은 못했습니다. 다 든든한 외할머니 덕이였지요. 하지만 항상 내 편이던 외할머니도 그 일이 있은 후 반년도 못되여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심은 만큼 거둔다고 했던가요? 몇년 후 열심히 피아노를 친 지성이는 남들이 다 동경하는 일류대학인 북경음악학원 피아노학과에 입학하고 열심히 논 나는 겨우 한 지방도시의 사범대학 예술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 후 지성이는 미국으로 류학을 떠났고 나는 졸업 후 할빈에서 중학교 음악교원이 되였습니다.

그 때문에 할빈 제일 큰 병원의 주임의사인 홍녀사는 낯이 뜨거워서 동료들 앞에 나서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보기엔 그 누구보다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다니던 홍녀사였던 것 같은데도 말입니다. 하긴 그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홍녀사 직장 동료들의 자제들은 나만 빼고 다들 하나같이 명문대에 척척 잘도 입학했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홍, 장 두 녀사는 나와 지성이를 엮어놓으려고 무등 애를 쓰는 것 같았습니다. 두 녀사님들의 리유는 가정배경도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하고 전공도 일치하고 더우기 같은 민족이라 그야말로 천상배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였습니다. 홍녀사는 아예 나를 지성이와 함께 미국류학까지 보낼 타산인 것 같았습니다. 그것으로나마 남은 꿈을 보충하자는 게 아니였을가요. 어쩜 우리는 두 녀사님의 말대로 좋은 커플이 될 수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나보다 한살 우인 지성이는 항상 나를 친녀동생처럼 대해줬고 방학하여 집에 올 때면 그 지방의 특산물이라던가 당시 류행되던 화장품, 옷 등을 선물로 챙겨왔을 뿐만 아니라 할빈에 와서도 얼핏하면 맛집으로 데려가군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두 녀사님들은 나와 지성이 몰래 통화를 해가면서 내심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우리는 짐짓 모르쇠를 놓으며 뒤로는 각자의 련인에 대하여 속임없이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속임수에 든 녀사님들이 재미있어서 키들거리군 하였습니다.

만약 지성이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피아노를 하지 않았던들 나도 두 녀사님들의 의견에 따라 지성이와의 교제를 생각해볼 수도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였습니다. 나 역시 지성이가 싫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성이는 왜 하필이면 내가 싫어하는 피아노학과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미국에까지 가서 그 지긋지긋한 피아노전공을 계속한다지 뭡니까? 내가 지성이 보고 그 힘든 류학을 꼭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지성이는 대답 대신 두 손을 옆으로 펼치며 어깨를 으쓱해보였습니다. 그 뜻은 낸들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부모님들 의견에 따르는 수밖에라는 뜻으로 느껴졌습니다. 지성이랑 련애를 하려면 같이 미국으로 가는 방법밖엔 없었습니다. 나는 그 리유 하나만으로도 지성이를 내 미래 남편 후보에서 과감히 빼버렸습니다.

나와 지성이를 엮어놓는 데 실패한 홍녀사는 억울해했습니다. 탄식 비슷한 넉두리도 곧잘 해댔습니다. 그러면 나도 홍녀사의 그런 원대한 꿈을 이루어드리지 못한 점 천번만번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또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교원이 어때서? 국가간부가 아닌가. 어마어마한 류학비용을 절약해준 나 같은 효녀가 또 어디에 있다구. 흥!

나는 내 방식 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나한테는 내가 꿈꾸는 세상이 따로 있었습니다. 직장이 있어 생활보장이 되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고 가까운 곳이라도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소박한 삶을 즐기는 게 나의 꿈이였습니다. 그러니까 홍녀사가 그리는 세계와 내가 꿈꾸는 세계는 애초부터 다른 것이였습니다.

“너 내 딸이 맞기나 한 거냐? 병원에서 잘못 안아온 것이 아닌지 몰라.” 홍녀사가 혹간 이러면 나도 질세라 “아. 내 친엄마는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나? 나를 찾으며 울고 있지나 않을까나?” 하고 말대꾸를 해서 홍녀사를 골나게 했습니다. 중간에서 나 대신 애매하게 욕을 먹는 건 언제나 아빠였습니다. 홍녀사는 늘 쓸데없이 당신 유전자를 이어받아서 그렇다며 아빠한테 화풀이를 해댔고 속이 너른 아빠는 항상 “날 닮아서 좋기만 하구만 뭘 그래?”라고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홍녀사네 집으로 들어서던 나는 새로 사들인 피아노를 보고 놀란 마음 한편에 은근히 피여오르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몇달째 우울해있는 홍녀사를 두고 퇴직우울증이라도 올가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로심초사를 했는데요? 그런데 홍녀사가 절로 알아서 피아노를 사오다니. 피아니스트의 꿈을 스스로 이루려나보다 하고 나는 홍녀사에게 저으기 존경심마저 들었습니다.

“홍녀사, 드디여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어마마마께서 이 딸의 고충을 살피셔서 혼자 해결해주시니 황송하기 그지없나이다. 그리고 경하드리나이다. 미래의 피아니스트 홍녀사님.”

간만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홍녀사를 붙들고 없는 재롱도 부려보았지만 홍녀사는 나를 흘겨만 볼 뿐 코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홍녀사의 생각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고 나는 소중한 내 딸을 홍녀사에게 빼앗긴 뒤였습니다. 홍녀사의 프로젝트는 나로 끝난 게 아니였고 내 분신인 소중한 딸 수정이에게로 이어졌던 겁니다.

그날 저녁 홍녀사는 나보다 먼저 유치원에 도착하여 수정이를 차에 태웠고 뒤쫓아간 내가 바라본 광경은 피아노 앞에 마주앉아 건반을 두드리는 수정이의 모습이였습니다. 아아, 내 딸 수정아.

그렇게 수정이를 ‘랍치’해간 홍녀사는 나에게 수정이를 되찾아갈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홍녀사가 수정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정이가 있는 곳엔 홍녀사가 있었고 홍녀사가 있는 곳에는 수정이가 있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손을 쓸 새가 없었습니다.

유치원과 피아노학원에 데려가고 데려오고 홍녀사는 수정이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애 아빠와는 어떻게 말했는지 애 아빠는 방관하는 눈치였습니다.

나는 수정이가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홍녀사의 꼭두각시로 전락되는 걸 바라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울고불고 떠들고 싸워도 홍녀사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떡하나 수정이를 홍녀사 손에서 빼내오려고 몸부림치는 나와 달리 홍녀사는 이제 아주 느긋해진 모습입니다. 우선 먼저 홍녀사의 기색이 활짝 개여졌습니다. 홍녀사에겐 새로운 희망, 다시말하면 나에게서 꺾이였던 ‘위대한 프로젝트’를 수정이가 대신 실현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홍녀사는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수정이가 이룩한 ‘거룩한 성과’를 자랑하기도 하는 모양이였습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조급해졌고 어떻게 하면 나의 공주를 도로 찾아올 것인가 그것만 고민하게 되였습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어느날 구교육국에서 시중소학교 음악교원 피아노경연에 참가할 후보자 두명을 뽑는다는 말을 듣고 과감히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리유인즉 상을 좋아하는 홍녀사에게 대상을 안겨주고 소원을 이뤄드림과 동시에 내 딸을 홍녀사에게서 찾아오려는 알량한 속셈에서였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보기만 해도 진저리나던 피아노를 손목이 시큰해질  때까지 열심히 쳐댔습니다. 단위에서, 집에서 오전, 오후 할 것 없이 피아노만 쳤습니다. 지어는 꿈에서도 피아노를 쳤습니다. 덕분에 구에서 두명밖에 차례지지 않는 전 시 음악교원 피아노경연 명액을 어렵사리 따낼 수 있게 되였습니다.

수정이는 홍녀사가 만든 세상 속에 완전히 갇힌 듯 했습니다. 홍녀사는 어마어마한 수강료도 서슴없이 주면서 명교사를 모셔왔고 그것도 모자라서 매일 두시간씩 과외도 시켰습니다. 홍녀사는 수정이가 자기 곁을 한발짝도 떨어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수정이가 잘 따라준 것도 있겠지만…

이럴 줄 알았더면 그때 류학을 훌 떠나 홍녀사의 재산을 탕진해버렸어야 하는 건데… 이제 남은 방법은 내 힘으로 수정이를 도로 빼앗아오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날도 나는 학교에서 피아노경연에 나갈 베토벤의 <잃어버린>이란 연주곡 련습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오래동안 경연과 담을 쌓아왔지만 이번엔 꼭 대상을 따내야만 했습니다. 그러자면 완벽하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다연아. 엄, 엄마가 차사고를… 빨리 병원으로 와야겠다…”

한창 열을 올려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아빠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평소에 침착하던 아빠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는 걸 봐선 뭐가 잘못 돌아간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어떻게 운전을 하여 병원까지 날아갔는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정신없이 허둥거리는 나를 보고 홍녀사의 옛 동료들은 위험에서 벗어났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나를 위로했습니다. 나는 빛의 속도로 홍녀사가 들어있는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홍녀사는 옛 동료 셋이서 아성구 부근의 금룡산으로 단풍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음주운전중인 자가용과 부딪쳐 사고를 빚어냈던 것입니다.

장씨 이모는 분쇄성 대퇴골 골절이라 그때까지도 수술중이였으며 홍녀사는 목뼈가 골절되여 수술을 받은 상태였고 다른 한분은 팔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홍녀사가 입원해있는 동안 나는 삼시 세끼 한번도 거르지 않고 집밥을 해 날랐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여 홍녀사를 감동시키고 싶었습니다. 있는 료리실력을 다 발휘하여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서 병원으로 날랐고 대소변도 받아주면서 극진히 돌봤습니다. 교통사고가 지금 나를 효녀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바람에 잔뜩 부러워난 것은 장씨 이모였습니다.

“우리 지성이는 돈만 달랑 부치고는 빈말이라도 날아온다는 소리 한마디 없다. 내가 서러워서… 이럴려고 내가 그 비싼 류학을 보냈나.”

“난 우리 다연이가 지성이처럼 미국 류학 갔으면 맨날 춤추며 다니겠네.”

사람은 누구나 다 남의 집 떡이 커 보이기 마련인가 봅니다.

홍녀사는 병원에 누워서도 수정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전화로 선생님한테 일일이 지시했고 선생님으로부터 그날그날의 상황을 까근히 체크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름을 놓는 것이였습니다.

홍녀사가 퇴원하기 전날, 드디여 피아노경연이 펼쳐졌고 나는 머리에 털이 나서 처음으로 대상이란 걸 타보았습니다.

수상하려고 무대에 섰는데 이름 못할 감정이 몰려들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기뻐서 온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울 홍녀사가 눈앞에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보다 내 딸 수정이를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이 더욱 나를 들뜨게 했습니다.

나는 홍녀사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홍녀사는 피아노선생님과 통화중이였습니다. 내가 대상증서를 펴보이며 상을 탔다고 엄지를 내보였지만 홍녀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댔습니다. 그 뜻인즉 입을 다물란 소리였습니다. 그 동작 하나로 한껏 부풀어올랐던 내 가슴은 김이 새여나간 고무풍선으로 돼버렸습니다. 그래도 통화가 끝나면 다르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홍녀사는 내가 넘겨준 대상증서를 보는 시늉도 하지 않고 침대에 휙 던져버렸습니다.

“이 미친년아! 누가 이따위 걸 받아오래? 지금 와서 이게 뭐가 중요한데! 난 수정이만 있으면 되니까 이딴 건 너나 실컷 즐겨라! 내 속 뒤집지 말고 빨리 집에나 가!”

홍녀사의 목소리는 한톤 또 한톤 점점 높아만 갔습니다. 자칫하다간 전 병원에 특대뉴스가 될 것 같아서 나는 부리나케 병실을 나왔습니다.

나의 이 몇달간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나는 홍녀사한테서 딸도 찾아오지 못했고 본의 아니게 ‘미친년’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병원 앞 벤취에 잠시 앉아있으려니 새삼스레 라이라크꽃 한송이가 피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0월인데, 라이라크 꽃이라니.

너 미쳤구나…

계절도 모르는 라이라크야. 너도 나처럼 미쳤구나…

문득 올려다본 가을하늘은 눈물나게 푸르렀습니다. 너무 푸르러서 눈물이, 눈물이 마구 났습니다.

리다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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