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정□ 리기춘

2019-01-11 08:48:13

오늘 아침 식사메뉴는 김치 두접시, 짠지 몇조각 그리고 만두와 좁쌀죽 한그릇이다. 간소하지만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우유와 빵의 신사스러운 맛보다 죽의 따스하게 담백한 맛이 내 입을 행복하게 즐겨준다.

그 즐거움을 향수할 때마다 내 동년시절의 죽그릇이 눈앞에서 언뜰거리면서 죽에 스며드는 애절한 사연들이 내 가슴에 울렁거리는 것을 어쩌는 수 없다.

운명은 온 나라 국민들이 금방 재난을 털고 보리고개를 힘겹게 넘는 시기에 내 동년을 배치해놓았다. 그때는 여러가지 품명의 죽이 우리 집 식생활의 주요메뉴였는데 지금까지 제일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푸대죽’이다. 60세 이하의 세대들에게는 이 죽의 호칭이 낯설지만 60세가 넘어서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죽이름으로 가슴깊이 남아있다.

그 죽은 강냉이가루나 수수가루, 보리가루와 같은 잡곡가루로 멀겋게 쑨 죽인데 죽량을 넉넉히 보태기 위해 산나물이나 배추시래기를 넣어 끓이기도 했다. 이런 죽을 ‘푸성귀죽’이라 하기도 하였다. 어떤 날에는 그런 ‘푸대죽’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는데 어른들은 아이들이 배고파할가 봐 항상 자기 죽그릇의 죽을 숟가락으로 푹푹 떠서 아이들의 죽그릇에 거의 절반씩 담아주군 하였다. ‘흉년세월에 어른들은 굶어죽고 애들은 배 터져 죽는다.’는 그 구슬픈 격언의 아픈 뜻을 리해하지 못하는 철부지인 나는 어른들이야 굶든 말든 죽을 주는 대로 다 먹고 배가 뽈록하게 튕겨나올 지경이였다. 하지만 소변을 한두번 보고 나면 배가 홀쪽해졌다. 그래도 그 ‘푸대죽’을 주는 대로 다 먹어서인지 동년을 용케 버텨냈다.

콩농사가 잘되는 해에는 콩죽을 자주 해먹었는데 손매돌이 있는 우리 집에서는 콩죽이 우리 집 식구들의 식사 주식이 될 때가 많았다. 쌀을 아끼는 어머니는 콩즙에 물을 많이 붓고 쌀을 눈으로 헤아릴 만큼 넣어 끓이여 아홉 식솔의 밥상에 올렸다. 콩죽을 자주 먹으니 조금은 질리기는 하여도 콩의 영양가가 다분해서인지 피둥피둥 살찌지는 못해도 맞춤한 몸매의 소년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농사가 괜찮게 된 풍년해라고 해도 쌀밥보다는 죽이 더 많이 밥상에 올랐는데 ‘푸대죽’만은 우리 집 식사메뉴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였다.

1년에 인당 겉곡(그 시기 생산대에서 분배해주는 가공하지 않은 알곡)으로 360근 식량에서 강냉이가 위주이기에 당연히 강냉이죽이 주식으로 될 때가 많았다. 멀건 ‘푸대죽’보다 걸쭉하게 끓인 강냉이죽을 먹으니 배고픔을 잊게 되고 죽살이 끈끈해지였다. 강냉이죽을 배불리 먹으니 좋기는 한데 그것도 자주 먹으니 어쩐지 질리기도 하였다. 입쌀이 약간 섞인 강냉이밥이라도 쌀밥을 먹어야 위장이 흐뭇해진다. 하루에 한두끼 그런 강냉이밥을 먹어도 마음이 즐거워지는데 하루에 두세끼씩 강냉이죽을 먹으니 저도 몰래 입맛이 불만스러워지였다.

지난 세기 70년대초, 겨울에 있은 일이다. 땔나무를 하러 가는 날에 입쌀을 조금 많이 섞은 강냉이밥으로 점심도시락을 챙겨갔는데 쌀밥의 힘으로 땔나무 한수레 꽉 박아싣고 돌아왔다. 늦은저녁, 땔나무를 뒤뜰안에 부리워놓고 집안에 들어서니 강냉이죽 냄새가 뭉클 풍겨왔다.

“또 옥쉬죽임둥…”

나는 뿌루퉁해서 어머니하고 말했다. 하루종일 땔나무를 하느라고 산속에서 헐떡거리다 돌아왔는데 그깟 강냉이죽이 온 하루 고생한 보답인가 하는 아니꼬운 생각이 왈칵 치밀어올랐다.

“난 그래도 이 추운 날씨에 일하고 돌아와서 뜨근뜨근한 옥쉬죽을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

어머니는 자식 앞에서 막무가내한 모습으로 안스러워하시더니 조용히 정지문을 열고 나가시였다. 잠간 후 ‘훙주(근들이 붉은 소주)’를 링게르병에 절반 넘치게 들고 들어오시였다. 술생각이 북받쳤는데 쨍한 60도짜리 배갈은 아니여도 30도짜리 ‘훙주’의 향기가 가슴을 따끔하게 찔러주어 어머니에 대한 고까운 생각이 잔잔히 녹아버리였다. 그 ‘훙주’를 큰 잔에 부어 자름자름 말끔히 비우고 얼큰한 기분으로 뜨근뜨근한 강냉이죽을 숟가락으로 푹푹 떠먹었는데 술향기 덕분인지 그날 저녁 죽맛이 전에 없이 감미로웠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생활형편이 크게 개선되자 강냉이죽이 우리 집 밥상에서 점차 소외당하였다. 죽이 주식이였던 그 세월에 잡곡밥이라도 그렇게도 자주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던 밥이 지금 너무나도 풍요롭게 밥상을 차지한다. 몇십년 전에는 입쌀밥을 먹는 것이 사치스러운 향수였는데 지금은 입쌀밥이 내 입맛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잡곡을 섞은 밥이 구미를 당기는 듯했는데 그것도 이젠 내 입맛을 크게 즐겨주지 못한다. 그 옛날에 그렇게도 질리던 죽내음이 내 입안에 때없이 흐뭇하게 스며드는 것를 어쩌는 수 없다. 더우기 강냉이죽 생각이 아기의 젖생각처럼 더욱 간절하다.

“오늘 저녁에 강냉이죽 먹으러 오너라.”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즐거워진다.

친구와 쨍한 배갈 몇잔을 마시고 보얀 김이 감겨 앉은 뜨근뜨근한 강냉이죽을 홀홀 불며 먹으니 그때 겨울저녁에 먹던 감미로운 죽맛이 탱탱 살아났다.

“오늘 저녁에 강냉이죽을 쑤어 먹을가요?” 마누라의 그 한마디에 화끈하게 흥분한다.

“아, 강냉이죽, 강냉이죽이 좋지.” 즐거움이 목구멍이에서 요동친다.

그날 저녁, 강냉이죽 한그릇 제꺽 먹고 성차지 않아 또 반그릇 더 해치웠다. 저녁은 적게 먹는 습관인데 강냉이죽 맛에 굳어진 습관도 허무해지였다. 이튿날 아침에 밥 대신 전날 저녁에 먹다 남은 강냉이죽 한그릇을 맛있게 먹었다.

이젠 강냉이죽만이 아니라 오그랑팥죽, 호박죽도 밥보다 즐겁게 먹는다. 어떤 죽이든 내 입안에서 따스하게 굽이치며 목고개로 흘러 넘어갈 때면 죽의 부드러운 향기가 가슴속에 그윽해진다.

오랜 세월 속에 내 생명의 숨결에 잔잔히 스며든 죽, 그때나 지금이나 죽맛의 기본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때는 왜 죽이 그렇게도 싫어졌을가? 밥과 죽의 비례가 너무나도 헝크러진 탓일가? 하지만 지금은 밥과 죽의 비례가 합리하게 안배되는 식생활이지만 내가 왜 죽맛에 더 기울어질가! 그 때의 ‘푸대죽’을 맛보고 싶다. 지금은 어떤 맛으로 느껴질가? ‘푸대죽’만이 아니라 그 시절에 자주 먹던 콩죽과 찰수수죽도 맛보고 싶다. 서글픈 집착인 줄을 알면서도 텅 빈 입안을 감빨며 추억으로 남겨진 그때의 죽맛을 음미하니 삶의 희비가 가슴에 쓸어내린다.

그때의 죽에 스며드는 애절한 정과 오늘의 죽에 스며드는 흐뭇한 정, 두 색갈의 정을 죽에 섞어 먹는 행복이 얼마나 풍요로운가!

리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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