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많은 녀자□ 김희수

2019-04-18 13: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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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던 집안에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은 받는 사람이 없자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 울렸다. 복녀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느라고 처음 울린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전화벨이 다시 울리기 무섭게 허둥거리며 전화기가 놓여있는 탁상쪽으로 뛰여갔다. 말이 뛰여갔지 걷는 것과 진배없었다. 복녀는 한달째 아침에 일어날 때와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나이가 들면서 혈압도 높고 몸도 예전같지 않았다. 팔순이 넘으면서 화장실에 도착하기전에 바지에 똥을 싼적도 여러번이 된다. 바깥출입을 못한지도 한달이 되여간다. 밖에 나가자면 무엇보다 계단이 문제였다. 5층에서부터 계단란간을 붙잡고 간신히 한 계단씩 오르내리는 것이 여간 말째가 아니였다. 몇년전까지는 계단란간을 붙잡지 않고서도 계단을 쉽게 오르내렸는데 팔순에 들어서니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지금은 집안에서도 걸음걸이가 눈에 띄게 늘여지고 몸이 굼떠서 길게 울리는 전화도 놓치기 일쑤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전화벨이 끊기기 전에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독일에 살고 있는 막내 딸이 문안 전화를 해주고는 거의 한달만에 걸려 온 전화이다. 북경에 살고 있는 맏이일가? 미국에 살고 있는 둘째일가?

“누구세요?”

복녀는 “여보세요”가 아니라 “누구세요” 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가는 귀가 먹어서 수화기에 귀를 바싹 갖다대고 귀를 기울이였다. 귀전을 따갑게 울리는 수화기의 목소리는 맏이도 아니고 둘째도 아니였다. 알아듣지 못할 한족말이 들려서 저도 모르게 송수화기를 놓아버렸다.

고대하며 기다리던 귀에 익은 목소리가 아니여서 실망한 복녀는 쏘파에 주저 앉으며 한숨을 내쉬였다. 리모컨인지 원격조종기인지 하는 것을 집어들고 텔레비죤을 켜니 한국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었다. 복녀는 한족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기에 위성수신 안테나를 설치해 한국위성방송을 시청했다. 위성TV 수신장비를 철거하고 인터넷을 통해 접수한 후로 화면이 끊기는 현상이 이따금씩 발생했지만 동네로인들과 한담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텔레비죤 시청이 유일한 취미인 복녀에게는 그런 것이 짜증 날 일이 아니였다. 눈만 뜨면 하루 대부분 시간을 텔레비죤앞에 앉아 지내는 복녀는 한국 드라마와 예능프로를 너무 많이 보아서 한국 연예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유동근 전인화, 최수종 하희라, 장동건 고소영, 김승우 김남주, 연정훈 한가인, 권상우 손태영, 비 김태희, 송중기 송혜교 등 연예인 부부는 물론 주현미와 하희라의 아버지가 중국인, 대만인이란 것, 장나라와 그녀의 오빠 장성원이 아버지 주호성과 성이 다른 것은 주호성이 예명이고 본명이 장연교이기 때문이란 것 등 유명 연예인의 가족과 생활에 대해서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화자와 마주 앉으면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 외에 화제는 당연히 한국연예인에 대한 것이였다.

복녀와 동갑인 화자는 늘 복녀를 복이 많은 녀자라고 부러워했다. 복녀와 화자는 동갑이고 어릴 때부터 편벽한 시골의 한마을에서 자랐지만 복녀는 열아홉에 도시로 시집 가고 화자는 열여덟에 시골총각한테 시집을 가서 환갑나이까지 쭉 농촌에 눌러살았다. 그러다가 60이 넘어 자식들을 따라 도시로 들어왔는데 마침 또 복녀와 이웃이 되였다. 화자는 늘 “복녀, 니는 복이 많아서 좋겠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화자는 딸만 다섯인 집에서 막내로 태여나 귀여움 같은건 받아보지 못하고 자랐지만 복녀는 우로 오빠가 넷이나 되고 거기에다 막내딸로 태여났기에 온 가족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부모는 이름도 복이 있는 녀자로 되라고 복녀(福女)라고 지어주었다.

정말로 이름처럼 복이 있어서인지 복녀는 국장 마누라가 되여 아들 둘, 딸 하나를 낳고 살다가 자식 모두 출세시켰다. 복녀는 용모도 수수하고 몸매도 뚱뚱한 편이며 소학교도 변변히 졸업하지 못했다. 그런 복녀가 무슨 복을 타고 났는지 잘생기고 유능한 도시총각한테 시집을 갔고 남편이 점점 승직을 하니 국장부인까지 되였다. 반면에 화자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날씬했지만 17살 꽃나이에 이웃마을 시골총각한테 홀려 임신까지 하는 바람에 ‘신세’를 망쳤다. 화자는 자식 다섯이 모두 고졸, 중졸이였지만 복녀는 자식 셋 모두 명문대를 졸업했다. 맏아들은 수도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북경협화병원에서 주임의사로 높은 봉급을 받으며 한족녀자와 결혼해 살고 있으며 둘째아들은 청화대학을 거쳐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미국 어느 연구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막내딸은 복단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독일인과 결혼해 독일에서 살고 있다.

“복녀 니는 복이 많아 좋겠네. 에그, 이년은 지지리 복도 없는게.”

한평생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다가 늘그막에 도시로 온 화자는 막내까지 고졸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도 그랬고 남편이 갑자기 중풍으로 쓰려져 침대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식사시중에 대소변시중까지 들게 되였을 때도 한숨을 지었다. 화자는 남편 때문에 별별 생고생을 다했지만 복녀는 남편의 병원시중 한번도 들지 못했다. 복녀의 남편은 평생 입원 한번 안해보고 건강하게 살다가 외출중에 돌연사로 사망하는 바람에 장례식을 치르니 그게 끝이였다. 장례식엔 북경에 있는 맏아들 내외가 오고 미국에 있는 둘째아들과 독일에 사는 막내딸은 참석하지 못했다. 그저 복녀가 땅을 치며 몇번 통곡을 한 외에 우는 사람이 없었다.

“편이 죽는 것도 오복의 하나라는데 이것도 타고 난 네 복인 것 같아 부럽다.”

화자가 그런 말을 하며 위로할 때만 해도 복녀는 자신이 정말 복이 많은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때부터인지 복이 많은 복녀가 오히려 지지리 복도 없는 화자를 부러워하게 되였다.

복녀와 동갑인 화자는 손녀에게서 배웠다며 스마트폰으로 한국에 나가 있는 딸과 얼굴을 마주보며 통화한다고 했다. 복녀는 휴대폰을 사용할줄 몰라서 집 전화 한대만 달랑 놓고 살기에 위챗이니 화상통화니 하는 것을 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다.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만 그들을 본 기억도 까마득하다. 복녀는 손자, 손녀들을 두번 만난게 다였고 태여났다는 기별만 전해들었을 뿐 아직 얼굴도 모르는 손주들도 있었다. 손자, 손녀들이 반갑기는 했으나 웬지 남처럼 서먹서먹했다. 알아듣지 못할 한족말이나 외국말을 해대는 손자, 손녀들과 대화도 통하지 않았고 또 애들은 할머니를 살갑게 대하지도 않았다.

화자네 집은 해마다 명절이면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 손녀 그리고 증손군까지 모두 모여 북적북적했지만 복녀네 집은 찾아오는 손님 하나 없어 쥐죽은듯 조용했다. 미국에 있는 둘째아들과 독일에 있는 막내딸은 얼굴을 본지 7~8년이 되고 북경에 있는 맏아들마저 3년전에 한번 왔다 가고는 걸음을 끊었다. 전화도 한달에 한번정도 걸어오면 많은 축이였다. 그래도 복녀는 전화벨이 울리기만 고대했고 따르릉 소리가 나면 반색하며 넘어질듯 위태로운 걸음으로 전화기 쪽을 향해 다가가곤 했다. 그러나 거의 모두 잘못 걸려온 전화가 아니면 장난전화, 사기전화, 광고전화였다. 실망만 안겨주는 그런 전화를 받게 되면 짜증만 나고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그렇게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다가 얼마만에 ‘어머니’ 하고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면 너무 반가워 눈물부터 앞선다.

“어머니, 별고 없으신지요? 몸은요?”

“나야 늘 무사하니 근심말거라. 몸도 별탈이 없이 건강하고… 그래 너희들은 잘 지내고 있느냐? ”

아들들은 언제나 한두마디 안부만 묻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게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뚝 끊어버리니 복녀는 여간 섭섭한게 아니였다. 그래도 딸은 아들들보다 통화를 좀 길게 하는 편이지만 5분을 초과하지 않았다. 자식들이 다들 바쁘니 그렇겠지 하고 리해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자식들과 통화하고나면 더욱 외로운 느낌이 들고 자신의 처지가 가여워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나는 니기 정말 부럽다. 자식 다 박사되고 자식들이 다달이 목돈을 부쳐보내니 얼마나 좋겠니?”

화자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복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기분이 좋은척 했지만 속으로는 “나는 오히려 니가 부럽다. 자식들 얼굴 자주 볼 수 있고 늘 손자 손녀 손잡고 다니는 니가 부러워 죽겠다”고 중얼거렸다.

복녀는 늘 외롭고 고독했지만 누구 앞에서나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더구나 고혈압에 당뇨병까지 겹치면서 가끔씩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휘청거리는 증상이 나타날 때면 이러다 아무도 모르게 고독사라도 하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다행히 간호사인 화자의 손녀가 고혈압 약과 인슐린주사를 꼭꼭 사다주기에 혈압과 혈당이 높아지는 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 복녀는 화자의 손녀에게 돈과 의료보험카드를 맡겨놓았고 화자의 손녀는 한달에 한번씩 고혈압 약과 인슐린주사를 가져다주군 했다. 그러면 복녀는 정해진 시간마다 약을 챙겨먹고 스스로 인슐린주사를 맞군 했다. 그런데 화자의 손녀가 석달전에 외지로 시집을 가고 복녀의 먼 친척이 이 심부름을 맡으면서부터 제때에 고열압 약과 인슐린주사가 도착하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 그로 인해 고혈압과 당뇨병이 더 심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해서 복녀는 아무도 모르게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의 병까지 생기면서 사는게 두려웠다. 때로는 먼저 간 남편이 부럽기까지 했다.

“령감은 아무런 고통 없이 죽어서 좋겠수. 날래 날 데려가우!”

그런데 근년에는 령감이 꿈에마저도 나타나지 않는다. 얼굴도 가물가물 잊혀진다. 그래서 사진첩을 꺼내보니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남편은 언제나 다정하게 복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뭐가 그렇게 좋다구 늘 싱글벙글이유?”

어느 한번은 령감과 함께 영화를 보다가 영화에서 결혼하는 신랑신부가 ‘한날 한시에 태여나지는 못해도 같은 날에 함께 죽자’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것을 보고 남편은 웃으면서 “아무리 금슬이 좋은 부부라도 함께 죽는 법은 없어. 한 사람이 먼저 가도 남겨진 사람은 잘살아야지.” 하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남편은 복녀를 남겨놓고 자신이 먼저 갔다.

“령감은 가도 나는 혼자 남아서 잘살라는거유? 그래 나는 지금 잘살고 있소. 잘살구 있구 말구!”

환하게 웃는 사진 속의 남편을 보면서 옛추억을 더듬노라니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자신을 고독하게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둔 남편이 미웠다. 밉다가도 못견디게 그리웠다.

“왜 날 이 고독한 세상에 혼자 남겨놓고 갔수?”

로인들의 건강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더니 복녀의 건강은 날마다 악화되였다. 허리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바깥출입을 못한지가 벌써 한달이 가까워오니 채소도 떨어져 세끼를 쌀죽으로 때웠다. 쌀도 얼마 남지 않았고 소금, 간장, 된장, 설탕, 식초, 식용유 같은 양념도 거의 동나다싶이 했다.

자식들이 부쳐보낸 돈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달마다 꼭꼭 돈을 부쳐보내던 자식들이 생활비독촉을 하지 않으니 잊어버렸는지 몇달째 일전 한푼 보내지 않는다. 복녀는 차마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달라는 말을 입밖에 낼 수 없었다. 남편이 살아있었으면 생활비걱정 따위는 안했을텐데 하면서 복녀는 또 한번 죽은 남편을 원망했다.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려면 하다못해 생수병 따위의 넝마주이를 하거나 아침시장이나 야시장에 돌아다니며 기웃거리다가 눅거리채소나 공짜채소가 생기면 재빠르게 바퀴가 달린 가방에 쑥 집어넣기라도 해야겠으나 지금은 바깥출입조차 할수 없는 신세여서 넝마주이나 공짜채소는 꿈도 못 꾼다.

“따르릉!”

아침을 굶고 점심에는 무엇으로 에때울가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복녀는 기다싶이 간신히 한걸음씩 전화기쪽을 향해 다가갔다. 송수화기를 집어든 복녀는 또 실망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처럼 듣기 좋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한족말이였다. 사기전화라고 생각되여 덴겁해서 송수화기를 놓아버렸다.

배가 고팠다. 요즘은 전화 한통이면 먹고 싶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다던데 복녀는 여태껏 그런 복을 누려보지 못하고 살았다. 복녀는 시원한 랭면 한그릇 먹고 싶어 광고지를 찾아들었다. 몇달전에 출입문에 붙었던 광고지를 떼여내 따로 보관해두었는데 이렇게 쓸모가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다. 복녀는 광고지에 있는 조선족집이라고 밝힌 랭면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랭면 한그릇 배달시키려고 하는데… 예, 여기 어딘가 하면…”

복녀는 집의 위치를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몰랐다. 공원가라고 하니 공원가에 있는 어느 소구역인가고 물었다. 복녀가 사는 집은 지은지 20년도 더 되는 집이여서 무슨 소구역에도 속하지 않은 6층 아빠트였다. 그래도 생각나는대로 앞에 오복슈퍼마켓이 있는 푸른색의 6층 아빠트 3층 2호라고 상세하게 설명했으나 상대방은 알아듣지 못했다.

랭면 한그릇 시켜 먹기도 왜 이리 어려운가?

배달은 체념하고 쌀죽이라도 쑤어 먹을가 하고 부엌으로 나와 쌀을 씻었다. 얼마 남지 않은 쌀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이 순간 근심걱정이 없었다. 서너번 씻은 쌀을 쿠쿠밥솥에 넣고 죽을 선택하여 버튼을 눌렀다. 그때 텔레비죤에서 <백세인생>이란 노래가 들려왔다.

…팔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간다고 전해라.

여기까지 들었을 때 복녀는 팔순이 넘으니 몸이고 마음이고 쓸만한데가 없는데 왜 가기가 싫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령감보다 20여년을 더 살았으면 만족할만도 한데 고독한 이 세상에 무슨 미련이 남아서 삶의 동아줄을 꼭 잡고 놓으려 하지 않는 걸가?

복녀는 쌀죽에 김치로 아침 겸 점심을 대충 때우고 낮잠을 자다가 따르릉 하고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에 놀라 깨여났다. 자식한테서 온 전화일거라는 기대감과 장난전화일거라는 실망감 반반으로 가슴을 태우면서 침대에서 간신히 일어나 전화기 쪽으로 향했다.

첫걸음부터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아침에 고혈압약도 먹지 않았고 인슐린주사도 맞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겹게 한발작 한발작씩 다가가 송수화기를 드니 또 알아듣지 못할 한족말이 들렸다. 아주 상냥한 목소리였지만 복녀는 화가 나서 전화기를 막 부셔버리고 싶었다. 송수화기를 탁 놓아버리고 돌아서는 순간 또 전화벨이 울렸다. 그것이 더욱 화를 돋구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순간 복녀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날 다시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 집안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전화도 없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열흘이 지났다. 전화도 없고 노크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달이 지났다. 전화도 없고 노크도 없다.

집안은 여전히 쥐죽은듯 고요하다.

어느날, 문득 노크소리가 들린다.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몇시간후 출입문을 부수는 소리가 들린다.

이튿날 지방신문에 자그마한 기사가 실렸다.

…XX구역에 거주하던 독거로인 한명이 홀로 자택에서 숨진 것을 이웃 할머니가 발견하고 파출소에 신고했다.

외지에 있는 아들집에 놀러갔다가 두달 후에 돌아온 화자는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복녀가 바깥출입을 하지 않은지도 오래된다는 이웃들의 말을 전해듣고 문안인사로 찾아갔다가 노크해도 응대가 없고 전화해도 받는 사람이 없자 이상하게 여겨 파출소에 제보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경찰은 화자와 함께 복녀의 집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시신의 상태로 보아 사망된지 한달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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