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그리고 그 뒤□ 김영분

2019-05-16 15: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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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성흥성한 설이다.

비록 한국 수원의 반지하방에서 쇠는 설이였지만 시어머니가 계시는 큰집으로 산지사방에서 가족성원들이 모여들었다.

한국에서 일하던 친척들은 물론 중국에서 출근하고 있는 우리 식구 그리고 조카들까지 모두 모였다.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차려놓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그믐날을 보내고나니 설날아침, 상을 물리고나서부터 친척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간짜리 작은 방에 열몇명이 모이니 신발을 벗어둘 자리조차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오래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반가운 건 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친척들이 들어설 때마다 의례 술상이 새로이 차려지고 먼저 온 손님이 술을 다 마셨다 싶으면 또 한팀이 들어서는 풍경이였다. 머나먼 한국이고 또한 뒤돌아서기도 비좁은 반지하방에서 지내는 설이였지만 고향의 익숙했던 설풍경은 얼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보는듯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졌다.

거의 다 고달프고 지루한 중로동을 하는 친척들이 많은터라 평소에 시간이 없어 만날 기회가 없었으며 이 기회에 얼굴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여간 기쁜 일이 아니였다. 권커니작커니하며 술이 술술 넘어갔고 서러웠던 일은 우둑우둑 갈비 먹듯 씹어버리고 즐거웠던 일은 랭면탕 마시듯 시원히 들이켰다.

설이 되면 아낙네들은 주방에서 음식 장만하느라 진땀 빼지만 남정네들의 손님 술접대도 만만치가 않았다. 모두가 얼굴이 화로불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술은 마음 약한 사람에게는 담력을 키워주는 활성제라더니 평소에 조심스럽고 경직되였던 마음을 유연하게 풀어준 모양이다. 모두  많이 마셔서 취했다.

술상을 어렵사리 물리고 의례 가족 오락이 시작되였는데 마작이 빠질리가 없었다.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느라 수고한 녀자들이 한상 둘러앉아 마작판을 벌리자 남자들은 취기를 달래느라 방구석을 차지하고 드렁드렁 한잠을 청했다.

마작판에서는 마작알들이 오갈 뿐만 아니라 조카들의 취업상황이며 혼사며 여러가지 흥미로운 얘기들도 형님들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튀여나와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모두가 설의 분위기에 무르익어 있을 때 순간 창가쪽에서 잠을 청하던 고모부가 글쎄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오바이트를 해버렸다. 베개는 물론 자신의 웃옷도 흥건히 젖었다. 술에 어찌나 취했는지 잠에서 깨지 못하고 연신 토하는 것이였다.

작은 방에는 순식간에 술에 절은 냄새가 구역질나게 진동했다. 비위가 약한 녀자들은 새된 소리를 내며 모두 대문쪽으로 몰려갔다.

그래도 시어머니와 집주인인 아주버님이 성큼 고모부께 다가가서 일으켜세우고 이불도 걷었다. 어리둥절한 고모부를 이끌고 샤워실로 인도하고 뒤처리를 신속히 하는 것이였다. 그런 풍경을 보지 못했던 아이들은 신기한지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앗, 내 가방.”

문득 큰조카가 자기 가방에 걸찍하게 오물이 묻어있는 것을 보고 덴겁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어정쩡해서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이 반죽되여있던 애들이 급기야 모두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에는 여러가지 뜻이 들어있는 듯 했다.

설날 모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바이트를 하는 어른이 우스워 보였을 수도 있고 사촌이 애지중지하던 가방에 오물이 묻은 것이 너무 맹랑해서 웃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마작판에서 후다닥 일어선 엄마들의 집단적인 통일 액션도 얼마나 우스웠을가. 아무튼 보기 쉬운 풍경은 아니였을 터. 남의 집 불구경 하지 않는 군자 없다더니 본능은 우리 모두를 웃게 하였다.

그때, 집주인이신 큰아주버님이 취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따끔히 한마디 하셨다.

“웃지 말거라. 너희 아버지도 술 마시고 그럴 수 있어. ”

애들을 향한 훈계였지만 어수선하게 문가에 서서 웃고 있던 나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속이 뜨끔하였다. 당황했을 고모와 고모부에게 너무 미안했다. 술기운에 하는 말이였지만 참말로 멋진 말씀이였다.

키득거리던 애들도 삽시에 정색해졌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휘청이며 집에 들어서서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오바이트를 하던 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웃지 마라. 너희 아버지도 그럴 수 있어.”

올 설에 애들에게도 나에게도 가슴깊이 새겨야할 한 마디였다. 대학을 가든 책을 보든 기계적으로 하는 공부보다 피부 깊숙히 와닿는 마음이 움직이는 배움이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교육을 중요시해왔다. 입에 풀칠 하기 어려운 세월을 견뎌오면서도 예전에 부모님들은 몸소 대가정속에서의 대인관계와 근면함 그리고 양보정신과 례의범절을 가르쳐주었다. 그 대신 요즘은 핵가족 시대에 들어서면서 핸드폰과 태블릿의 영상내용이 아이들의 생각주축을 이룰 정도였다. 더 전면적이고 과학적인 교육시스템을 향수하고 있지만 우리의 배려와 관용정신은 가뭄을 맞이한 호수처럼 점점 메말라가고 있었다.

매사에 조급하고 결과를 중요시하거나 귀찮아하는 태도를 쉽게 보이며 끈기를 잃어간다. 남의 아픔에 관심이 적거나 지나치게 확대하며 나는 다행이다라는 식으로 자기위로를 삼기도 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신세대의 양상이다. 설을 쇠면서 이렇게 생생하게 인성교육의 장을 연출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식구들은 아주버님의 그 한마디에 태도가 확 바뀌였다. 개그 보 듯 우습강스러웠던 생각은 어느새 전분처럼 차분히 가라앉고 있었다.

“반바지하고 우에 티 널직한거 하나 있어요. 그거 꺼낼게요.”

큰형님이 부지런히 옷장을 뒤졌다. 그외 아낙들은 고모를 향해 그럴 수도 있다고 고모부를 나무라지 말라고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오빠네 집에 와서 설을 쇠면서 이럴 수도 있다. 이 얼마나 좋은 추억이냐. 이제 두고두고 옛말 할 수 있지 않느냐. 기억에 남는 설을 쇴다고 생각해라.”

아주버님은 연신 샤워실 앞에서 잘못을 저지른 아이마냥 서있는 고모를 위로했다.

그날, 모두에게 가족이란 포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겨줬다. 또한 허물은 모두에게 있을 수 있으니 함부로 남을 웃지 말라는 도리도 알게 되였다. 겸손의 참 뜻을 알았다.

우리는 쉽게 남의 허물을 보고 비웃는다. 본인은 다행이 그 부류가 아니라고 자기위로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지극히 자신을 높이 올리 세운다. 남의 고통 우에 서면 자신은 행복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오죽하면 젊은층들에는 “너의 고통을 얘기해보거라, 내가 즐거울 수 있게.”라는 문구도 생겼다지 않는가.

모든 사물 자체는 잘잘못이 없다고 본다. 술을 마시고 속이 부대끼면 당연히 오바이트 할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다를 뿐이다. 피하거나 코 싸쥐고 웃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아주버님처럼 내 가족도 밖에서 저럴 수 있으니 따뜻하게 감싸안는 아량을 베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날, 주방에서 바삐 돌던 아낙들은 물론 한창 성장중이고 생각이 바로 설 아이들에게 참된 교육을 한 것 같아 너무 감개무량하다. 아이들이 받았을 마음의 울림은 평생 갈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감싸주고 실수했을 때의 당황함을 위로해줌으로써 성대하게 모인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가슴으로 남을 포용하는 보귀한 가족문화를 생생하게 퍼뜨려준 아주버님이 너무 고맙다. 좋은 씨앗을 심었기에 분명히 앞으로는 더욱 겸손하고 따뜻한 가족으로 거듭날 것이다.

올해는 정말 특별한 설이였다. 마음이 한층 따뜻해지고 겸손해지는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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