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피는 계절□ 김학송

2019-05-23 15:34:02

-1-

호랑이도 맥이 진해

쉬여간다는 범진령,

그 발치에 자리잡은

그 이름도 정겨운 민들레촌!


순이는 사냥군 아빠와

농사군 엄마의 슬하에서

무남독녀로 자라났다


순이가 갓 일곱살 먹던 해

이상한 바람에 휘말려

엄마는 바다 건너 휘-익

날아가버렸다.


-2-

범진령에 살구꽃이

피고 지어 몇번이던가?

그래도 아니 오는 엄마

엄마를 기다리는 순이의 눈가에

눈물의 고드름이 드리웠는데


엄마는 어찌하여 아니 오는가?

왜?

왜?

뜨락의 살구꽃도 궁둥이를

요상하게 흔드는걸 보니

아마도 부끄러운 일이 있었나보다

내물의 입술도 바짝 마르는걸 보니

아마도 말 못할 속사연이 있었나보다.


-3-

아빠의 화승총이

발언을 멈춘지도 석삼년

산짐승의 목숨을 꺾어버린

그 쟁기를 아궁이에 밀어넣는 찰나

사냥군의 삶도 막을 내렸다

시골의 영웅담도 불타버렸다


그날 밤, 아빠는 울었다

등을 돌린 안해가 미워서가 아니라

한 사나이의 부러진 자존심과

무너진 꿈이 너무너무 원통해 울었다.


-4-

안해와 거닐던 그 산길에

사냥군 영철이가 홀로 거닌다

살구꽃처럼 환하던

두 사람의 봄을 그리며


시골의 함박꽃이라고

동네방네 소문난 처녀와

살구나무 아래서

백년해로 다짐하던 그날 밤,

달빛은 은가루 뿌린듯

꽃잎은 금주단 펼친듯

시처럼 만발한

살구나무 꽃바다

하얀 구름 우를 훨-훨

날으던 행복


아아, 사랑은

허망스런 꿈이던가?

선녀처럼 눈부시던 안해가

어쩜 그럴 수가?

생각사록 억울하고

생각사록 눈앞에서

별찌만 뚝뚝 떨어진다!


가짜 리혼이 진짜 리혼으로

둔갑할줄 그 누가 알았으랴!

아무리 가슴을 탕탕 두드려도

뻐꾸기만 뻐꾹뻐꾹

어리석은 나그네를 비웃으며 날아간다.


-5-

처음 몇달은 기별이 왔다

일년을 넘기면서 차차 뜸해지더니

삼년이 되자 아예 따악-

고장난 전등처럼 꺼져버린 소식

불길한 예감이 먹구름처럼

영철이의 가슴에 비수를 박는다

그 누가 말했던가

몸이 멀어지면 맘도 멀어진다고


정녕 그런가보다

가끔 딸애한테만 련락이 오고

남편은 찬밥 신세

안해에게 남편은

남의 편이 된지도 옛날…


-6-

이십년만에 공항에 나타난 안해

표정에 쌔-앵 찬바람

둘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침묵

안해가 내뱉는 가시 돋힌 말

“왜 이리 폭삭 늙었어?...”

영철이는 허구픈 웃음만 실실 흘린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찌 육골로 된 인간이 옛 모습 그대로랴?

혼자 외동딸 키우며

아득바득 버텨온 이십년

보리고개보다 험한 욕정의 밤고개를

한숨으로 넘으면서도

다른 녀인의 손 한번

아니 잡은 채

‘일편단심 민들레’로

하얀 순정을 지켜온 영철이.


-7-

딸애의 결혼소식에 떠밀려

겨우겨우 돌아온 안해

자상하고 부드럽던 그 사람이 아니다

마냥 순박하던 그 사람이 아니다

남편과 안해 사이에

수상한 바람이 슬슬 분다


길에 나서도 저만치

떨어져서 걷고

자물쇠를 잠근 입은

도무지 열릴줄 모르고

낯선 사람 대하듯,

그늘 비낀 얼굴에선

당장 폭우라도 쏟아질듯 한데…


-8-

안해의 기색이 하도나 어두워

안해의 행실이 하도나 이상해

어느날 영철이는

그녀를 고방구석에 밀어넣고

따지듯 바투 물었다.

“왜 날 멀리하는거요?

정말 끝내려고???...”


기다렸다는 듯이

안해가 총알처럼 내뱉는 대답

“우리 끝내요!”


순간

머리 속에 꽈앙-

터지는 뢰성

눈가에 번쩍

회오리치는 번개불

리지를 잃은 남편의 주먹이

안해의 얼굴로 돌멩이처럼 날아갔다

“나쁜 년!”


흑… 흑…

폭행을 핑게로

짐을 둘둘 꿍져메고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진 안해.


-9-

급해난 남편이 아무리 찾아도

전화마저 아니 받는 그녀

영철이의 마음 속에

칠흑같은 어둠이 자리편다

집이 무너지고

인생이 무너지고

하늘마저 무너지는 느낌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옛일

살구꽃 피는 계절, 첨 만난 안해

풀꽃처럼 순진하고 나긋하던 안해

“내 안해는 절대 그런 사람 아니라우!”

언녕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겼을텐데

애인 하나 사귀라는 친구들의 충고를

칼날같은 언어로 밀막으며

기어이 지켜낸 남아의 굳센 정조!


믿음이 억수로 컸기에

화산보다 더 크게 분출하는

실망과 분노!


-10-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영철이

앙가슴을

치고 또 치던 영철이


련 며칠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르고 또 지르다가

어느날 갑자기

꽝— 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파아란 연기와 함께

지구별에서 영-영 사라져버린

아, 안타까운 이야기의 주인공이여!


-11-

올해도 살구꽃이

구름처럼 흐드러진 범진령,

엄마와 아빠의 봄날이

비단처럼 깔린 고개길 따라

오늘은 순이가

어린 딸애의 손을 잡고

쓸쓸히 걸어간다

자국자국 애달픈 추억을 밟으며

걸음걸음 눈물의 독주를 마시며.


-12-

불러도 대답없는 아빠

가련하고 안타까운 아빠의 일생

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대체 어느 귀신이 착한 아빠를 데려갔는가?


살구나무와 물어도 대답이 없고

오솔길과 물어도 대답이 없다

바람은 정녕 그 답을 알고 있으련만

풀벌레 울음소리로 슬픈 마음 드러낼 뿐

아, 바람는 종내 말이 없다.


-13-

살구꽃에 고이 담긴

시골의 이야기

미래에로 부치는 세월의 편지


후날 후손들은

그 꽃잎 우에 씌여진

해독하기 어려운 령혼의 문자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가?


-14-

먼 산의 호랑이가,

영철이의 화승총에 너부러진

그 호랑이의 손자가

따웅— 하고 긴 호용소리로

하늘땅을 집어삼킨다


그 소리에 놀라

살구나무가 부르르 떤다

하아얀 꽃잎이 금세

눈꽃이 되어 펼펄 쏟아진다.


-15-

호랑이도 넘다가 쉬여간다는

범진령 아래

그 이름도 청순한 민들레촌

순이는 딸애와 함께

이 마을의 새 주인이 되였다


부모님이 살던 고택에서

늙은 살구나무와 동무하여

조용히 살아간다

가끔 부모가 그리울 때면

살구나무에 기대여앉아

살구나무의 얘기에 귀를 강군다


아버지 얼굴이

살구나무와 겹쳐지며

5차원의 공간으로 순이를 데려간다…


-16-

시공의 턴넬을 지나 순이는

평행우주에서 사는 아빠를 만났다

상금도 외국서 헤매도는

엄마의 기별도 전해주고

아빠의 귀여운 손녀가 어느덧

학교 갈 나이가 되였다고

눈물을 펑펑 소나기처럼 쏟아낸다


딸의 시린 눈물 닦아주며

환히 웃으시는 아빠의 모습을

순이는 마음의 렌즈에 고이 담았다…


-17-

현실로 돌아오니

살구나무에서 아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살구나무우듬지에서 아빠의 냄새가 난다


홀연

곱게 익어 추락하는 잎새들이

순이의 머리에 꽃너울을 씌워준다


그 단풍잎 하나

사알짝 집어

입술에 대이니

하르르, 이슬 머금은 낙엽이

꿈을 꾸듯 속삭인다


살구꽃 피는 계절

아!

그 계절이 그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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