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도 리허설은 없었다

2019-07-19 08:50:46

어둠의 장막이 걷혀지고 아침해가 동녘하늘에서 얼굴을 내밀며 새로운 하루가 어김없이 다가와 세월의 쪽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굳잠에 푹 빠졌던 시가지는 베일을 서서히 벗으며 기지개를 쭉 켰다.

일수네 내외간도 생물종의 리듬에 맞춰 포근한 이 봄날을 감싸안았다. 비록 이 하루도 그들에겐 조반 먹고 애를 학교에 보내야 할 지난 어제와 같은 덤덤한 존재였지만 오늘만은 좀 유별나게 집안 분위기가 끈쩍끈쩍거렸다. 세월의 물결을 타고 부부라는 인연으로 남남이 어울려 같은 시공간에서 비비적거리며 살다 보면 가끔 서로 부대끼고 삐꺽거릴 때도 있는데 그것 역시 생활이고 인생인가부다. 이 집도 며칠 전 일수가 소꿉친구 진심을 만난 후 그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애자가 그 친구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면서 바가지를 빡빡 긁어댔다. 파트타임 알바로 근처 몇집의 청소일을 하는 애자는 부랴부랴 문밖을 나서면서도 또 그 친구가 수상하다고 남편에게 침질했다. 일수는 말도 다사하다면서 애자에게 찍 눈을 흘겼다.

일수와 진심은 소시적 한동네에서 자란 절친한 사이였다. 몇해 전에 진심은 잘 나가던 가게를 헐값에 양도하고 큰일 한다면서 계림으로 갔다. 그뒤 소식이 끊어졌는데 요즘에야 불쑥 나타났다. 며칠 전 두 친구는 커피숍에서 만났다. 수인사에 시시껄렁한 얘기들이 몇마디 오간 뒤 진심은 일수에게 이번에 좋은 돈벌이 구멍수를 둬개 가지고 왔는데 함께 하면 어떠냐고 문의했다. 아무리 짜개바지친구라 해도 죽은 듯이 잠수했다가 몇해만에 나타나 한다는 소리가 돈 얘긴지라 항상 ‘깍쟁이’요, ‘좁쌀’ 등 별명을 달고 살아온 일수는 금시 신경을 곤두세웠다. 진심은 어느 과학원 원사가 연구했다는 보건약품이며 총부가 홍콩에 있는 재테크회사 등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하지만 일수의 귀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래전에 믿고 따르던 외사촌형한테 속히워 돈 천원 좌우 사기 당한 적 있는 그는 그 후 돈 얘기만 나오면 무턱대고 도리질하는 ‘고질병’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돈이라는 돈자만 나와도 곧바로 고슴도치처럼 몸을 옹송그리며 가시를 세우군 했다. 진심이와의 만남을 떠올리던 일수는 속으로 ‘그눔아 한동안 못봤더니 별나게 번졌다. 친구마저 사기치자구? 누굴 머저리루 보냐’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몸이 허약해서인지 날씨가 좀 차도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는 일수는 버릇 대로 창가에서 따스한 해살에 몸을 맡기고 일조욕을 향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평온치 않고 잔물결이 일고 있었다. 어릴적부터 시시콜콜 앎음자랑 해온 일수는 커서도 몸이 허약하여 힘든 일은 물론 웬만한 일도 하기 힘들었다. 서른을 넘겨서야 겨우 가정이랍시고 이루고 애까지 봤다만 안해마저 산후증으로 중로동은 못하고 청소 같은 허드레일만 하다 보니 살림은 그닥 펴이지 못했다. 게다가 딸애가 래년쯤엔 대학입시를 맞아야 하니 아닌게 아니라 속이 재글재글 탔다.

문득 탕탕탕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보니 진심이가 찾아온 것이였다. 일수는 “범이 제 흉 보면 온다던게 왔니, 난 돈이 한푼도 없다.”라고 시들하게 내쏘았다. 진심은 개의치 않고 그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안았다. 그리고나서 진심은 소파에 몸을 던지며 하하 웃더니 입을 열었다.

“임마, 우는 소릴 하는 건 시방이나 예전이나 딱 같구나. 내 아무렇기로 짜개바지 친구까지 등 쳐먹겠니. 도바주문 도바줬지. 벌써 잊어버렸니? 니 서방 갈 때든지 녀자 싫다해서 니 속이 타 배질배질 끓을 때 내 너르 도봐줬구 또 어느 때든지… 니 일하구 못 받은 돈두 내 대신 받아줬재. 그때 그 돈이 얼마더라…”

옛이야기가 나오자 일수는 점차 굳어졌던 얼굴이 밝아지며 게면쩍은 웃음이 괴여올랐다. 과거 확실히 진심의 신세가 적지 않았고 지어 큰 도움도 받았었다. 총각 때 일수는 왜소하고 마른 체구에 말수 적고 고지식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당시 그는 웃동네 처녀인 애자가 마음에 들어 그녀에게 청혼했는데 애자는 대번에 그가 마음이 어질고 언변이 없다고 퇴짜를 놓았다. 일수가 집구석에서 애꿎은 술만 먹는데 그 꼴이 하도 보기가 구차하여 진심은 한달음에 애자네 집에 찾아갔다. 그는 얼리고 닥치며 끝내 애자의 맘을 돌려세웠고 그들을 결혼에로 이끌어주었다. 결혼 전 일수는 약한 몸으로 몇해 동안 힘들게 토역하여 번 돈 800여원을 받지 못했다. 당년의 800원이면 목돈이였는데 고용주가 이 핑게 저 핑게로 돈을 주지 않아 손톱눈만 잡아 뜯을 때, 역시 진심이 홀로 고용주를 찾아갔다. 진심이 을러메며 큰소리 빵빵 치니 고용주가 눈을 몇번 희번덕거리다가 돈을 내놓았는데 본전에 리식 몇십원까지 더 받아 일수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렇게 큰일을 하고도 수고비 일전 한푼 받지 않고 술 한끼로 마무리지었다. 당시 일수는 그 은혜만은 그 어떤 변이 있어도 잊지 않겠노라며 골백번 되뇌이였다. 지난 일을 떠올리던 일수는 창백하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였다. 그때 돈 800원이면 큰돈이였지. 실로 고마운 일이였지… 진심은 그의 얼굴을 읽어보더니 슬쩍 한술 더 떴다. 조심하고 경계하는 것도 좋지만 또 그로 하여 손해볼 때도 있다고 귀뜸했다. 20여년 전에도 좋은 항목이 있었는데 일수가 낑낑 갑자르며 앞뒤만 재다가 결국 횡재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 사후에 얼마나 배 아파했는지 몰랐다. 지금 이 항목은 달마다 수익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매일 카드에 입금된다고 했다. 날마다 돈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일수가 어정쩡해있는데 갑자기 진심의 휴대폰이 찌르릉 하며 울렸다. 휴대폰을 보던 진심은 화색이 되여 총부에서 수익금이 또 제때에 카드에 입금됐다고 말했다. 이에 일수는 호기심도 동하고 저으기 부러워졌다. 진심은 일수의 무릎을 탁 쳤다. 그는 일수에게 자기가 먼저 돈을 선대하겠으니 한번 속는 셈 치고 믿어보라고 권했다. 지금 명액이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이 기회가 지나가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장담 못한다고 덧붙였다. 일수는 그가 돈을 선대한다니 맘이 저으기 동했다. 자기 돈도 아닌데 밑져 본전이지. 에라 모르겠다. 일수는 애자 몰래 진심의 요구 대로 새로 카드를 만들고 보건품회사에 등록했다.

그후 며칠 사이 반신반의하며 가슴만 두근닥거리는데 과연 진심의 말 대로 입금되였으며 얼마 안되여 본전이 들어왔고 수익도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냐며 어정쩡해졌던 일수는 한동안 재이고 자르며 맴돌더니 큰맘 먹고 재테크회사에 5000원 투자했다. 애자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된다고 바가지를 긁었지만 돌다리를 두드리는 사이 기회는 저멀리 뺑소니친다며 픽픽거렸다. 그 뒤 진심의 말처럼 날마다 수익이 입금되였다. 일수는 요즘 전에 비해 말도 많아지고 시시로 웃음꽃이 만개했다. 애자가 이 험한 세상에 주의하여 처사하는 것이 랑패될 것 있냐고 귀뜸했지만 일수는 앞뒤로 재고 있으니 걱정도 팔자라면서 찍 눈을 흘겼다. 내 혼자 잘살자구 그래는가. 녀자들이 뭘 안다구?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큰일에야 우리 남자들이지.

그들 내외간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또 여러 날들이 뒤로 밀려가며 새 아침이 찾아왔다. 아침상을 물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진심의 위챗영상전화였다. 일수는 금시 만면춘풍이 되여 전화를 받았다. 문을 열고 밖에 막 발을 내놓던 애자도 몸을 되돌려 잰걸음으로 다가와 그들의 통화내용을 엿들으려고 했다. 애자에게 시답지 않은 눈매를 보내던 일수의 기색이 근심과 초조함에서 기쁨으로 엇바뀌였다. 진심은 전화에서 향항총부에서 초급 회원이 오천원의 여섯배를 재투자하면 초급회원에서 vip회원으로 자동 업그레이드 시켜준다고 말을 하며 그 대우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vip회원 자격을 취득하면 매일 입금되는 수익이 현재의 10배에 달하며 반년 후엔 본전이 반환됨과 동시에 6만원 이상 챙길 수까지 있다고 장담했다. 일수는 수만원을 재투자하라는 소리에 일시 어리둥절하여 갈피를 잡지 못했고 애자도 곁에서 얼빠진 소릴 줴친다고 펄쩍 뛰며 종주먹을 흔들었다. 진심은 화면을 통하여 일수의 속내를 읽었는지 하하 웃으면서 시름놓고 투자하라고 권했다. 밑지면 자기가 그 손해를 배상하겠으니 아무 걱정도 말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일수가 떠듬거리며 망설이니 진심은 십만원짜리 카드를 일수에게 저당잡히겠으니 절대 근심말라고 구슬렸다.

“돈이 많아서야 나쁠 것 있냐. 이 세월에 자식 뒤바라지에 돈이 좀 드냐!”

진심은 이렇게 말하면서 십만원이 들어있다는 은행카드를 보였다. 그래도 일수는 여전히 좀자르는데 진심이 또 재촉했다. 그제야 일수는 손목을 잡는 애자를 뿌리치고 느릿느릿 진심이 투숙한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이른 일수는 그 십만원짜리 카드를 보면서도 여전히 뱁새눈을 굴려댔다. 이에 진심은 몇번인가 망설이더니 큰맘이라도 먹은 듯 코딱지만한 종이장을 그의 코앞에 쑥 내밀며 아침에 카드에 입금수속한 령수증이라고 했다. 일수는 그 령수증을 손에 쥐고 찬찬히 뜯어보더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카드를 호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꾹 누른 후에야 딸애가 대학에 붙으면 쓰려고 어렵게 겨우 모은 수만원을 깡그리 털어 재투자했다.  하지만 돈이 넘어가는 그 순간 어쩐지 일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일수는 진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 돈은 내 명줄이다.” 라고 말했다. 이에 진심은 눈웃음을 치면서 알겠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재투자’를 한 뒤 일수는 매일 닭알낟가리를 쌓았다 허물기를 반복했으며 때론 공연히 방안에서 서성거리며 속 졸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매일 수익이 입금되던 카드가 잠잠해졌으며 매일 영상통화가 오던 진심이도 갑자기 련락이 뚝 끊어졌다. 전화해도 없는 번호라는 기계음만 들려올 뿐이였다. 일수는 저으기 당황했다. 그의 이마에선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송골송골 배여나고 공연히 애자의 눈치만 흘끔흘금 살폈다. 이 녀석이 잠수 탔냐. 일수는 애간장을 태웠지만 그래도 그 십만원짜리 카드를 보면 저으기 진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 애자가 일수를 무작정 잡아끌고 은행으로 뛰여가 그 카드를 확인했는데 웬걸 그 카드엔 십만원은 커녕 잔액이 4원밖에 없었다. 순간 그들 부부는 땅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갑자기 평소에 거의 련락이 없던 유치원 동창한테서 진심이 공항에 있으니 당장 공항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그들 내외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밖에 수십명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일수가 알만한 얼굴들도 적지 않았다. 놀랍게도 진심도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꼼짝달싹 못했다. 그럼에도 진심은 히쭉히쭉 웃고 있었다. 일수는 허둥지둥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진심의 멱살을 잡고 왜 친구를 사기치냐며 따졌다. 이에 진심은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 제쪽에서 코방귀를 뀌였다.

“아하, 임마 봐라. 그래 아는 사람 짜팬(诈骗) 하잖구. 생뚱같은 사람 붙들구 돈 내라 하겠냐. 내 원 기차서. 나두 임마 숱한 돈 떼웠다. 그래서 봉창한다는 게…”

일수는 그 말에 그만 억이 막히고 말았다.

“돈이 진짜로 필요하면 도와달라 할 거지. 왜 하필이면 소꿉친구까지 망하게 만드냐…” 그러나 일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심은 폭소를 터뜨렸다.

“소 웃다 꾸레미 터지겠다. 임마, 니 머 도바준다구? 원가 웃겨바서. 니 총각 때부터 친구들끼리 식당가 먹구 결산할 때문 늘쌍 맨뒤에서 얼쩡거리재문 번마다 오줌 마렵다구 중태를 싸쥐구 내뺐지. 그리구 니 동네군일집 갈 때문 한둬끼니씩 굶구 가서 띠 풀어놓구 게걸이 감식이 됐다. 그런 눔이 머 누길 도바준다구? 더럽구 치사하다.”

진심은 이어  2,30여년 전 일수가 일하고 못 받은 돈 8백원을 자기가 목숨 걸고 깡패 같은 주인과 싸워 찾아준 얘기도 덧붙였다. 그때 돈 8백원이면 현재 만원쯤 되는 목돈인데 깍쟁이인 일수는 달랑 십원짜리 지페 둬장 손에 쥐고 그것도 제 호주머니에 넣은 채 받으라고 했다면서 하도 중학교 때 자신이 강물에 빠져 죽을 번 한 것을 일수가 구해줬기에 친구로 상대했지 그렇지 않으면 언녕 시궁창에 처넣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여직껏 욕설이 란무하던 공항 밖은 진심의 말에 금시 여기저기서 킬킬거리며 웃음이 터졌다. 이에 일수는 꽥 소리치더니 진심의 뺨을 한대 호되게 때렸다.

“누군 깍쟁이질 하고 싶어 하냐, 누군들 떵떵거리며 살고 싶지 않겠냐. 약한 몸이 따라 주질 않고 또 먹여살려야 할 식구가 있으니 제절루 좁쌀이 되구 깍쟁이가 되더라. 그런데 이런 친구를 사기 친 네눔은 사람새끼냐!”

일수는 진심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나중에는 그만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루룩 흘리며 헉헉 흐느끼기까지 했다. 이에 킥킥 웃던 사람들도 너 한마디 나 한마디 진심을 책망했다. 그러나 입은 여전히 살아있노라고 진심은 아무리 그래도 제 집 문 앞의 눈이야 치고 살아야 할 게 아니냐며 일수를 비꼬았다.

사람들은 진심을 마구잡이로 끌어 파출소로 향했다. 파출소에서 귀가한 일수는 맥없이 쏘파에 주저앉았다. 평소에 살얼음 우를 걷 듯 세상을 살아오다 어쩌면 없는 살림에 한둬장이라도 얹힐 것 같기에 설마 하면서 나댔는데 결국 그 ‘설마’에 쫄딱 망하고 만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입에 풀칠은 어쩌구 또 자식 뒤바라지는? 늦게 본 딸애는 초중도 졸업 못한 일수와 달리 공부를 잘했으며 넉넉치 못한 집살림에도 기 죽지 않고 잘 자라주어 일수네 부부에겐 희망이였고 자랑이였다. 그들 부부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짠돌이라는 별별 소리까지 다 들어도 달가웠으며 늘 허리가 든든했다. 허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눈을 멀거니 뜨고 애자의 기색만 살폈다. 그런데 애자는 화를 낼 대신 조용히 말을 했다.

“당신두 좀 잘살아보자구 그랬겠지요…그 친구가 미심쩍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하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예요. 도둑보다 잃은 놈이 죄가 더 크며 파리도 흠 있는 계란에만 앉는 법이지요. 사람 사는 게 원래 뉴스 없이 대번에 본편 영화가 시작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항상 주의하고 헛된 욕심을 버려야 하지 않을가요.”

안해의 말에 비록 일수는 건가래를 떼며 눈을 희번덕거렸지만 내심 그 말에 수긍하고 있었다. 확실히 파리는 흠 있는 닭알에 앉길 좋아했다. 닭알이 깨끗하고 흠이 없으면 파리도 어쩌지 못할 게 아닌가.

그날 저녁 일수네 부부는 오랜만에 밤 깊도록 얘기를 도란도란 주고받았다. 늘 휴대폰을 머리맡에 놓고 자던 그들은 이 밤 휴대폰을 손이 닿지 않는 먼곳에 방치하고 자고 있었다. 시계바늘은 재칵거리며 벌써 자정을 넘어 새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재칵재칵 시계소리는 마치 그 날도 여전히 리허설은 없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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