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령 넘기□ 최진옥
살아오면서 수없이 넘어온 인생의 령, 그 하나하나의 령길을 톺을 때마다 숨이 턱에 닿아 헐떡이였고 너무 힘든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2019-07-26 08:55:58

화룡 시가지는 분지에 자리잡다보니 차를 타고 몇킬로 달리면 어김없이 령을 넘게 된다. 동쪽으로 합신령을 넘어서서 오불꼬불 혜장골을 옆에 끼고 한참을 달리느라면 혜장골 막 끝 웃쪽에 자리잡은 오붓한 조선족 동네가 한눈에 안겨온다. 서쪽으로 굽이굽이 아흔아홉굽이도 더 넘어야 하는 청산령을 넘어서면 도시 물공급 원천의 하나인 홍기하 인수공사 출구와 입구를 마주볼 수 있다. 남쪽으로 우심령을 넘어 류동하와 함께 한참을 달리느라면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과 함께 이국풍경이 한눈에 안겨온다. 북쪽으로 서성령을 넘어서면 쟈피골과 봉밀하를 앞뒤에 끼고 조선족 민속풍격을 자랑하는 진달래민속마을이 한눈에 안겨온다… 매일과 같이 그 령들을 넘나드느라면 어느덧 내가 살아오면서 넘어오던 수많은 삶의 령을 련상하게 된다.

내가 살던 편벽한 오지마을은 30여호 농가가 자리잡은 작은 동네였다. 향소재지를 다녀오자고 해도 집채 같은 돌들이 들쑥날쑥 솟아있고 진대나무가 여기저기 쓰러져있는 오불꼬불한 오솔길이 뻗어진 차돌배기령을 넘어서 단숨에 넘기에는 너무도 힘에 부치는 아득히 솟아있는 광흥령을 넘어야 했고 현소재지에 다녀오자면 가파로운 신덕령과 합십령까지 넘어야 했다.

소학교 5학년을 다닐 때 학교에서 시골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준다고 연길 참관을 조직하였다. 그날 길을 걸으며 나는 다리가 늘어나고 발가락 사이에 생긴 콩알 만큼씩 큰 물집이 련달아 터지면서 신 안을 벌건 피로 물들였다. 하지만 새로운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는 들뜬 심정으로 90리 산길을 이를 옥물고 타박타박 걷고 걸어 령 네개를 넘어서 화룡시가지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검은 연기를 씩씩 뿜으면서 달려오는 괴물 같은 기차를 처음 가까이에서 보게 되였고 기차를 타고 연길까지 가게 되였다. 연길공원에서 그림책에서만 보아오던 호랑이, 곰, 사자, 원숭이, 락타, 공작새, 앵무새 등 여러가지 동물을 구경하면서 세상에 이런 동물들이 우리 가까이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날아가는 비행기를 쳐다보면서 저렇게 큰 물건이 어떻게 한마리 새마냥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어려서 조무래기들끼리 빙 둘러앉아 손벽 치면서 놀던 ‘기차는 길다. 비행기는 빠르다.’ 하던 유희가 새삼스레 떠오르면서 세상에 이렇게 긴 기차도 있고 이렇게 빠른 비행기도 정말 있었구나 감탄했다. 인쇄공장을 참관하면서 사람 손을 찜쪄먹는 기계손이 어떻게 저리도 빠르게 하얀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고 책으로 척척 묶이여나올 수 있는지 호기심에 이리기웃 저리기웃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 도시에는 시골아이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우물 안의 개구리로 태여나서 자라면서 세상구경을 나가보지 못하여 세상이 얼마나 크고 황홀한지를 깨닫지 못했던 시골아이는 연길 참관이라는 기회를 빌어 령너머에는 나의 인생궤도를 바꿀 수 있는 그 어떤 풍경이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고 그 령을 넘어야만 나의 농민자식 신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의식하게 되였다.

산나물과 머루와 다래와 개암과 버섯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고장, 여름이면 개구리 울음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가 우리 조무래기들에게 들려주는 자연의 교향곡이던 고장, 겨울에 눈만 내리면 들꿩이 먹이 찾아 집마당에 찾아들던 고장, 눈만 뜨면 돼지와 소와 개와 고양이와 어울리면서 자라던 시골아이는 처음으로 바깥세상에 눈을 뜨게 되였고 힘들게 령을 넘으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수 있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였다.

‘문을 열고 학교를 꾸린다’는 력사적인 시기에 나어린 우리들도 공부보다는 생산대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였다.

‘공부를 잘해서 앞으로 신봉재(로임을 타는 공인을 가리킴)로 되자.’는 유치한 생각을 하면서도 그 생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남모르는 각고한 노력을 기울였다. 사래긴 밭이랑 따라 콩이나 옥수수를 박으면서 미래에 대한 나의 소박한 꿈도 함께 박았다. 꼬불꼬불 다락논에서 벼모내기를 하면서 나의 꿈을 한보한보 이루어가려는 희망을 다락논과 함께 펼쳤다. 옥수수밭과 콩밭 김을 매면서 힘들게 뽑아버린 풀포기 그루자리에 나의 조그마한 희망을 심어놓았다. 가을걷이에 나서고 탈곡에 일손을 도우면서 어느 때인가는 나도 삶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려는 결심을 다지기도 하였다.

한여름 쨍쨍 내리쬐는 땡볕 아래에서 사래긴 콩밭 김을 매고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밥술을 들 념도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다가 잠들었던 날, 밭의 돌을 주어내고 모래밭에 진흙이나 초탄을 이여 나르며 손발을 얼구던 겨울방학, 모래판전에 논을 푼다고 물곬을 빼느라 목도채에 어깨를 혹사하던 여름방학, 량곡산량을 높인다고 제전을 만드느라 삽 끝이 무지러지던 초겨울, 돼지먹이를 장만하느라 밭에서 풀을 뜯어들이고 산에서 느릅나무 잎을 훑어들이면서도 언젠가는 기어이 령을 넘어 내 꿈을 이루어보리라 마음속으로 다지고 또 다지였다.

맏이로 태여나서 공부를 마음껏 하지 못하고 모진 지청구 끝에 야학이나마 얼마간 다닌 밑천으로 신문을 읽을 수 있고 간단한 산수계산을 할 수 있었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희망을 우리 자식들에게 기탁했었는지도 모른다. 시대를 잘못 만나 공부를 하지 못했던 아들들에게는 그런대로 지나쳤지만 그래도 나이 어린 나에게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농민의 자식이라서 농촌에서 농사일을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속에 먹물이 들어있는 사람이 땀을 적게 흘리면서도 농사일을 잘할 수 있다.”

아버지는 우리 자식들 앞에서 공부에 관한 그 어떤 큰 도리를 얘기하지는 않으셨지만 늘 이런 말로 우리들이 책을 읽고 공부에 열심하도록 편달하셨다. 시간만 되면 신문을 열독하시고 유선방송을 귀담아듣고 과학잡지든 문예잡지든 부지런히 읽으시여 박식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우리 형제들도 책 보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어린 나이에도 령을 넘으면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일념으로 다른 아이들이 숙제도 제때에 하지 않고 학교에 등교하는 시기에도 나만은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였고 놀음에만 탐한 아이들과는 다르게 틈만 나면 과외책을 읽었다. 오빠들도 외지에 일 보러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나에게 사탕이나 과자보다도 책을 사다주었다. 그럴 때면 어린 나이에도 책을 선물받은 기쁨에 입이 귀에 걸리군 하였다. 내가 책을 보는 시간이면 아버지나 어머니 심지어 오빠들도 나에게 그 어떤 심부름도 시키지 않았다.

향소재지 중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다른 애들은 학교 근처에 집을 잡고 밤늦도록 교실에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공부에 전념했다. 중풍 때문에 운신이 힘든 엄마 심부름이라도 해드리고 금방 시집 문턱에 발을 들여놓아 아직은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하여 어쩔 바를 모르는 둘째 올케의 일손이라도 도우려고 나만은 왕복 15리 길을 집으로 통학하면서 길에서 암기를 하고 천근같이 내리누르는 눈꺼풀을 잡아뜯으며 밤늦게까지 문제풀이를 하면서 다른 애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이악스럽게 공부에 달라붙었다. 덕분에 우수한 성적으로 향소재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그날 받아쥔 입학통지서는 나에게 인생의 령을 넘는 첫 희열을 안겨주었다.

사업에 참가한 후 지식의 결핍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였다. 설계에서 부닥친 난제들을 풀어나가자니 내가 이미 배운 쥐꼬리만 한 지식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불혹의 나이임에도 하늘이 높은 줄 모르는 무모함과 하면 된다는 배짱으로 함수공부에 달라붙었다. 나이 먹고 하늘을 뚫겠냐, 공부는 무슨 공부냐, 집살림이나 잘하면 되지 하고 비난하는 동료들이 나에게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하지만 이 령을 넘지 못하면 내 앞에 차례진 사업에서 부닥친 애로마저 풀어나갈 길이 묘연하다고 여긴 나는 남이야 무어라고 하든 마이동풍으로 여기고 내 공부만은 잘해보려는 일념으로 비난도 충고도 귀등으로 흘러보내며 공부에 정력을 쏟았다. 때는 마침 연길에서부터 화룡까지의 도로를 건설하는 시기라 뻐스에 앉아서 두시간 남짓이 걸려야 연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미를 심하게 했던 나는 왕복 다섯시간 가까이 차에서 심한 멀미를 해가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의 들으러 다녔다. 저녁에는 녹초가 다 되여버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낮에 쓰지 못한 자료를 보충해 쓰려고 사무실에 출근하였다. 많은 학생들이 다른 학생의 숙제책을 그대로 베껴쓰는 일들이 많았지만 필요한 지식을 꼭 배워내리라 속다짐했던 나는 밤을 패가면서도 나절로 답안을 작성했다. 강의하러 온 선생님께서도 내가 자리에 있으면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할지 몰라 조마조마한 심정이라고 실토정을 하는 것이였다.

함수공부 6년, 내 사업경력에서 길지도 짧지도 않은 6년이라는 시간에 나는 짬짬의 시간과 학교에서 배정하는 강의시간을 리용하여 나에게 필요한 지식들을 배우고 공고히 하게 되였다.

컴퓨터를 갓 접촉했을 때에는 밥을 지으면서 건판을 익히다 보니 집안에 밥 탄 냄새와 국물이 탄 냄새를 진동시키면서 딸애와 남편의 원망을 수없이 들으며 컴퓨터를 배워냈다.

“최동무는 정말 끈기가 있소.”

선배들의 탄복이였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넘어온 인생의 령, 그 하나하나의 령길을 톺을 때마다 숨이 턱에 닿아 헐떡이였고 너무 힘든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발에 물집이 생기고 온몸이 물자루가 되였어도 나는 내가 품은 작은 꿈이나마 이루어내기 위하여 신들메를 조이며 악착같이 한보한보 오르고 넘었다. 피와 땀이 령길을 적시였고 지치여 휘청거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힘든 만큼 내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을 하나하나 이루었고 령을 넘으면 세상은 나에게 한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주었으며 무한한 성취와 행복을 안겨주었다. 매번 힘들게 령에 올라서면 하늘은 더 높고 푸르렀으며 나의 시야는 더 넓어졌다. 수많은 령을 넘으면서 드디여 로련하고 성숙되고 알찬 씨앗을 품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나는 그렇게 령에 올라설 때마다 꿈을 하나하나 키워왔다. 내가 힘겹게 톺아오르고 넘어선 령마다에는 나의 피와 땀이 밑거름으로 되여 들꽃이 향기를 풍기였고 시원한 산바람이 페부를 적셔주었으며 청아한 산새들의 지저귐소리가 귀전을 울렸고 가지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그래서 길에 나서서 령을 넘느라면 내 생에 이렇게 저렇게 피 말리게 넘었던 령들이 방불히 내 앞에 줄을 서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이 짠해지고 그 수많은 령길을 용케도 톺아올라 하나하나의 령을 넘어온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직도 얼마나 많은 령들이 내 앞에 줄을 서고 있을가? 내가 넘어온 령보다 이제 넘어야 할 령들이 더 늘차고 더 높고 더 가파로운지도 모른다. 산너머 또 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령 넘어 또 넘어온 령, 그 높은 령들은 나를 무르익게 하는 토양이 되여 나의 날개를 굳혀주었고 높이 날게 하고 멀리 보게 하였다. 내가 넘어온 령길은 잡초가 무성한 수레길이였지만 이제 내가 넘어야 할 령이 더 있다면 그 령길만은 꽃이 만발하고 가슴 트이는 령길이였으면 좋겠다.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