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후 우리는 열아홉살이 되였다□ ​김희수

2019-08-02 09:11:49

우리는 살면서 여러가지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가족모임, 창립모임, 친목모임, 연구모임, 독서모임, 친구모임, 동호회모임, 향우회모임, 기부모임, 봉사자모임, 협회모임, 회식모임, 총화모임, 송년회모임 등 별의별 모임이 다 있고 모임마다 모두 뜻이 깊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모임이 바로 동창생모임이라고 생각된다. 동창생은 동년배이고 한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운동장에서 함께 뛰놀던 잊지 못할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에 만나면 더욱 반갑다. 특히 40년 만에 다시 만났다면 그 감격과 반가움은 더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지난 7월 18일이 바로 그런 날이였다. 그날 오전에 우리는 유서깊은 룡정에 모여 룡정1중 79년 졸업생 40주년 동창모임을 가졌다. 보고 싶던 얼굴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면서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순간 우리는 비록 이순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40년 전 학창시절로 되돌아가 열아홉살, 스무살이 되였다. 40년 동안 살아온 경력은 서로 다르지만 공동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는 40년이란 시간을 뚝 떼여버리고 격정의 학창시절로 되돌아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첫눈에 알아보는 이들도 있고 몰라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알아보든 몰라보든 다들 악수하며 반가운 인사가 오갔다.

모임의 첫 행사는 모교를 찾아가 기념사진을 찍기였다. 졸업사진을 찍은 지 어제 같은데 어느덧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40년전에 졸업사진을 남긴 모교를 배경으로 다시한번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될 기념사진을 찍었다.

40년이란 세월도 우리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된 학창시절의 추억을 변하게 하지 못했다. 한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학교밭에서 함께 로동하던 그 시간들은 우리의 추억 속에 변함없이 남아있다. 오래된 기억은 점차 잊혀진다고 하지만 학창시절의 추억만은 40년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다시 어제일처럼 새록새록 떠오른다.

우리는 문화대혁명이 갓 일어나던 시기에 유치원에 다녔거나 소학교에 갓 입학한 세대들이였다. 비록 졸업을 2년 앞두고 대학입학시험제도가 회복되기는 했지만 공부보다 로동을 더 중시해온 시절에 학교 다닌 세대들이였다. 소학교 때부터 5월말, 6월초면 모내기, 여름이면 김매기, 가을이면 벼가을 하기, 싸리나무 하기, 대채전 만들기, 겨울방학이면 거름모으기 등 1년 사시절 해보지 않은 로동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추억외에 함께 로동하던 잊지 못할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는 특수한 세대들이였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처럼 공부에 목을 매지 않았기에 딱지치기, 유리구슬치기, 땅따먹기, 살구씨따먹기, 돌차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실뜨기 등 놀이를 마음껏 놀았던 동년의 유쾌한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는 유감없는 세대들이였다.

이런 격정의 나날을 함께 해온 우리들이였기에 그 추억이 더욱 소중하고 감미롭다. 그립던 동창들을 만나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행복이다. 그리고 이런 동창모임에서 다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다는 것 또한 크나큰 행복일 것이다. 우리는 이 소중한 모임의 순간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자체 가무공연프로와 게임, 오락프로를 마련했다. 우리가 이번 79년 졸업생 40주년 동창모임을 위해 마련한 다채로운 가무공연은 룡정 해란강호텔에서 막을 올렸다.

그립던 동창들아 다정히 모여앉아

지나간 학창시절 추억을 하면서

다시 만난 오늘의 기쁨을 이 술잔에 담아보자

이번 모임에 참석한 동창생 모두가 무대에 올라가 부른 대합창 <동창원무곡>에 이어 학창시절부터 음악과 예슬을 지향하고 있던 동창생들이 독창, 독무, 독주, 3인조 또는 다인조로 나와 장끼를 자랑했다. 관중이나 공연자가 따로 없었다. 우리가 관중이고 우리가 가수, 무용가였다. 가무단이 울고 갈 프로 못지 않은 우리의 공연은 시종 즐거운 웃음과 박수소리 속에서 진행되였다.

공연이 끝나자 우리는 이번 모임을 위해 물심량면으로 후원해준 동창들과 이번 행사를 위해 로고를 아끼지 않은 준비위원회 동창들을 위해 잔을 들고 나서 이미 저세상으로 가버린 동창들을 간단히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건강이 최고임을 절감하면서 오찬을 마친 후 우리 일행은 다음 행사장인 동성용진 인화촌에 자리잡은 해란강민속촌을 찾아갔다.

그날 오후 비가 많이 내렸지만 우리의 게임을 막지는 못했다. 남녀가 배합해 고무풍선터치우기, 수건으로 눈을 감싸고 동그라미 안에 트럼프장 던지기, 남녀가 함께 주머니 속에 들어가 달리기… 우리는 다시 열아홉살, 스무살이 되여 우리의 열정을 불태웠다. 모두가 웃고 떠들며 즐겁게 뛰논 흥겨운 한마당이였다.

비 속에서의 신나는 놀이가 끝나자 풍성한 만찬을 마주한 우리는 이번 행사의 원만한 성공을 위해 다시 축배를 들었지만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우등불오락놀이에 돌진했다. 우등불을 밝히고 흥겨운 곡조에 맞추어 춤추기는 다른 관광객들까지 흡인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구경하던 관광객 모두 우리의 대오에 가입해 손에 손잡고 빙빙 돌면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그 모닥불과 함께 우리의 제2의 청춘도 불탔다.

우등불놀이가 끝나자 다시 차려지는 술상, 술자리가 무르익자 40년 전에는 못하던 이야기들도 오간다. 누가 누구를 짝사랑했다는 이야기, 누구와 누구는 비밀련애를 했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터놓는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면서 그때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다.

당시 남자들 이름 마지막 자에는 ‘호’가 많이 들어갔고 녀자들 이름 마지막 자에는 ‘자’가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영호야, 경호야, 응호야 하고 부르면 장난꾸러기 사내애가 떠오르고 순자야, 길자야, 정자야 하고 부르면 얌전한 녀자애가 떠오른다. 장난꾸러기 누구는 사장님이 되였고 얌전둥이 누구는 원장님이 되였다.

그런 달콤한 추억을 잠재우고 날이 밝자 우리는 아침운동을 하고 조찬을 먹은 후 저만침 떨어져있는 해란강반 온천수락원으로 향했다. 초로의 신사숙녀들은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었다가 시원한 수영장에 뛰여들기도 했다. 수영에 능한 이들은 수영복 그대로 물에 뛰여들고 수영에 서툰 이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물놀이에 동참했다.

우리는 재미있는 물놀이를 추억으로 남기고 나서 다시 룡정으로 향했다. 모교에서 멀지 않은 동방랭면집에서 그동안 즐거웠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40주년 행사는 아름다운 력사의 한페지를 기록해놓고 아쉬운 막을 내렸다.

졸업 40주년을 계기로 더욱 많은 교류와 더욱 진한 우정이 쌓이고 나아가서는 50주년, 60주년 행사 때 더 많은 동창생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며 우리는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다시 만나자, 동창들아!

오늘의 이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자!

인류력사에 40년은 짧디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인생에 40년은 기나긴 시간이다. 그러기에 40년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고나 병으로 40년도 못살고 가버린 이들도 적지 않으니까. 하지만 백세인생에 40년은 두번 반이나 올 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 우리가 이순의 나이 다 되여 40년 전의 스무살을 담소하지만 이제 다시 40년이 지난 후 백세가 되여 오늘의 이순을 담소하는 이들이 우리중에 있으리라고 단언한다. 그때 가면 그분들이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잊지 못할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으며 얼마나 멋지게, 얼마나 진지하게, 얼마나 리얼하게 60 인생을 담론했는지를 후대들에게 전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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