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피□ 박철산

2019-08-02 09:15:25

내가 날마다 걷는 운동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산기슭으로 자그마한 밭뙈기가 조용히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지난해의 감자밭이 올해는 당콩밭으로 탈바꿈했다.

며칠 전에 차분히 내린 봄비를 맞아 이랑이랑마다에는 부드러운 흙 사이로 미처 벗어버리지 못한 발가스레한 당콩껍질을 철갑모처럼 삐딱하게 뒤집어쓴 새싹들이 보드라운 흙 속에서 빠금히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어릴 때 엄마가 고향집 뜨락의 터밭 가장자리를 돌아가면서 호미로 당콩을 박던 모습이 떠올라 가던 길을 멈추고 밭머리에 들어섰다. 탈피된 당콩의 새싹들이 이랑 우에 일매지게 솟아나 새 생명을 시작하는 풍경이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봄은 식물들의 씨앗이 탈피되는 시작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밭에 심어진 농작물 뿐만 아니라 저 산비탈의 묵은 검불 밑에서도 바야흐로 이름모를 풀씨들이 탈피되여 서서히 부드러운 토양 속에 뿌리를 내리며 새로운 생명을 시작한다. 저 푸른 전야와 우거진 수림, 그리고 들녁에 펼쳐진 록색의 바다는 씨앗들의 탈피와 뿌리가 있어 가능하다. 우람진 나무도 결국에는 한알의 씨앗이 탈피되고 새싹이 뿌리내려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이파리와 가지가 뻗으면서 자라난 것이다.

식물들의 씨앗이나 일부 동물들이 탈피하는 것은 원래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생존을 위한 본능과 몸부림이다.

나어린 뱀은 탈피를 거듭하면서 성장하고 생존을 보전한다. 발이 없는 뱀은 비늘로 움직일 수밖에 없기에 탈피하지 못하면 가죽이 두터워지고 비늘이 로화돼서 촌보난행이 된다. 생존을 위해서는 몸이 찟기고 피 터지는 모진 아픔을 견뎌내면서 자기 몸체보다 더 가느다란 돌틈새를 기여들어가 허물을 벗어던지면서 탈피한다.

탈피의 이미지는 새 생명의 탄생이고 새로운 시작이고 변화이다.

우리들의 인생도 탈피하는 동물이나 식물들의 씨앗처럼 수없는 탈피를 거듭하면서 살아온 련속이나 진배없다.

엄마의 배속에서 나와 태줄을 끊어버리고 걸음마를 타고 학교에 가고 사회에 진출하여 여러가지의 사업에 종사하기까지의 모든 생활, 학습, 사업과 사회실천 활동은 탈피의 거듭이였다. 자기의 성장과 진보,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아를 전승하면서 자신을 개변시키기 위해 자기가 세운 인생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때로는 고달프고 지치고 힘들어 넘어졌다가도 다시 자리를 툭툭 털고 모지름을 쓰며 일어난다.

물론 탈피하는 동식물들처럼 해마다 한번씩 탈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의 씨앗이 탈피되는 전제 조건은 수분과 온도이다.

인간들이 진보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새롭게 변화하려면 역시 충족한 ‘수분’과 맞춤한 ‘온도’가 있어야 한다.

가령 ‘수분’이 자신의 종합자질과 능력이라고 할 때 ‘온도’는 시기와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자기를 새롭게 변화시키려면 근면한 노력과 분투가 있어야 한다.

도시농촌차별이 심했던 그때 그 시절에 신분을 바뀌기 위한 몸부림은 너무나도 처절한 자아와의 싸움이였다. 자신의 현상태를 개변시키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농민신분을 직장인신분으로 바꾸기까지 나는 정녕 한알의 씨앗이 되여 농촌이라는 비옥한  땅에 뿌리내리고 인내를 감내하면서 자질과 능력이라는 ‘수분’을 한껏 흡수하면서 적당한 시기와 환경이라는 ‘온도’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강렬한 욕망은 나더러 그 어떤 렬악한 역경도 칠흑같은 ‘어둠’도 헤쳐나가게 하고 마침내 농민이라는 신분을 직장인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농민으로부터 직장인 그리고 정년퇴직, 이순이 넘은 중년에 이르고 보니 또다시 탈피되여 나 자신을 개변시키고 싶은 욕망이 굴뚝처럼 일어섰다. 그래서 제2인생을 다시 시작하려고 선택한 것이 다년간의 외국생활이였다. 돈을 버는 것을 떠나 또다시 맨밑바닥의 생활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비록 체력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잃은 것보다도 얻은 것이 더 많았다.

간혹 자식들이 설명절 때마다 집에 올 때면 나는 술김에 “그때 우리 때는 여차여차하게 보냈다.”며 ‘범 잡은 이야기’를 꺼낸다.

그럴 때마다 자식들은 “아버지 지금 어느 때라고 맨날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를 함까.”라고 하면서 내가 지나간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반기를 들고 나선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허허, 그래도 사람은 근본을 잃으면 안되느니라.” 하면서 애들을 훈계하고 내 나름의 가치관으로 전통을 고집하면서 항상 초심을 잃지 말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기실 애들의 말이 틀린 데 없다. 지금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시대가 아니라 밤 자고나면 늘어나는 자가용시대이다. 과학기술과 첨단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시대에 진입하고 스마트폰 하나면 무엇이나 해결할 수 있는 스마트한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데 아직도 옛날 소리를 하는 것은 시대에 너무 떨어진 락오자이고 뒤떨어진 사유이다. 새롭게 거듭나려면 진부한 사유방식, 뒤떨어진 가치관이라는 낡은 껍질에서 탈피되여야만 가능하다.

날로 발전하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뒤늦게나마 자식들에게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여러가지 사용기능을 배웠다. 위챗결재, 쇼핑과 온라인 물건구입, 려행티켓사기, 재테크 등 방법을 장악하여 컴맹, 폰맹은 면했다.

이순의 중년으로, 백수로 탈바꿈한 지금의 시점에서 또 다른 나를 개변시키려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본다. 부지런히 독서하고 사색하며 컴퓨터에 마주 앉아 열심히 건반을 두드려가면서 젊어서 이루지 못한 소원, 맘껏 글을 쓰는 글쟁이로 탈피하고 싶다. 비록 세인들을 놀래울 명작은 써내지 못할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즐거운 향수이고 행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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