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하늘에 쓴 시 (외 1수)□ 강효삼
서로가 서로의 팔짱을 끼고 빙 둘러 서있는 숲은
하나의 붓으론 모자라서 여럿의 붓대를
한데 모아 일으켜 세운 묶음
새벽 이슬의 먹물을 찍어서
구름의 흔적을 지우며 아아한 창공의 백지에
아침부터 일필휘지 홀림체의 시를 적는다
그러나 숲이 쓴 시를 바람이 심술나서
쓰기 바쁘게 어디로 날라다 버린건가
아니면 새벽이슬이 말짱 지워버린 것인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창공에 쓴 시는 보이지 않고
그저 티끌 하나 묻을세라
높고 푸른 하늘만 가득
아, 저것이다
풍덩 뛰여들어 미역이라도 감고 싶도록
속내가 다 내보이는
에멜랄드빛 저 하늘.
마침부호
눈부시던 황금의 관이 하나하나 색바래져
왕관은 간 곳 없고
백발만 남았구나
봄부터 가을까지
그 집정시기가 너무 짧아
그마저 바람에 산산이 흩어져
이제 민들레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듯
흥망성쇠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철리
민들레의 황금관은 애초부터
아에 이런 초라한 종말을 예고한
눈부신 마침부호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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