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땅 방천의 길□ 김동진

2019-08-16 09:42:23

“기실 지상에는 길이 없었다. 다니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러할진대 여기 천리를 줄달음쳐온 두만강 끝초리의 방천의 길이라고 어찌 례외로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득히 머언 옛말 속으로 들어가보면 방천의 길은 19세기 중엽의 어두운 밤에 소구유와 대문짝을 타고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른 사람들, 짚신감발에 쪽박차고 살 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온 조선 난민들의 발밑에서 생겼다는 슬픈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강변에 우거진 버드나무숲을 헤치고 양밸처럼 뻗어오른 이 길이 잡초에 덮인 무인지경 거치른 언덕 우에 게딱지 같은 오두막을 낳았고 우리 말을 주고받는 하나의 작은 동네를 일으켜세웠다. 그것은 우리네 고조할아버지의 흰 두루마기자락과 우리네 고조할머니의 삼베치마자락이 엮어낸 눈물겨운 이민서사시였다.

울고 웃는 인생살이에 평탄한 길이 있을 수 없듯이 여기 버들방천의 길도 눈물과 웃음의 반죽으로 다져놓은 길이였다. 1938년의 장고봉사건과 1950년 조선전쟁의 폭발로 말미암아 두번이나 페촌이 된 방천의 길은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피난민의 길이였다. 포탄이 날아들고 초연이 타래치는 땅에서 죽기를  기다릴 수 없는 백성들이 손톱으로 마련한 삶의 둥지를 눈물을 뿌리면서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방천의 길은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리향의 길, 비운의 길이 되고 말았다.

그 뿐이 아니였다. 잔혹한 력사의 풍운에 휘말려 사라진 방천의 길은 또한 자연의 재앙 속에 무참히 침몰된 수난의 길이기도 하였다. 고향이라고 찾아온 사람들이 겨우 닦아놓은 길을 홍수의 갈기를 날리며 덮쳐든 두만강이 꿀꺽 삼켜버린 것이다.

길이 없으니 국경선 철조망 동쪽의 구쏘련의 땅을 빌려야 했다. 너비 2메터, 길이 880메터의 남의 땅, 남의 길에서 삐거덕거리며 굴러가는 달구지소리는 두만강에 길을 빼앗긴 방천의 한숨소리였다.

참으로 오래동안 방천사람들은 자기의 땅은 있어도 자기의 길이 없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었다. 한때 내지와의 교통이 단절된 방천은 ‘륙지 속의 외로운 섬’으로 사람이 살기 힘든 페촌의 서러움을 마셔야 했고 망각의 잡초 속에 묻힌 애환의 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처럼 험난한 세월에도 방천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방천의 길을 찾아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그 분은 후날 우리 민족의 찬란한 별로 떠오른 조남기 장군이였다. 당년에 사회주의교양운동공작대를 이끌고 경신공사에 진주했던 조남기 대장이 방천이라는 이 버림받은 땅에 눈길을 돌린 것이다.

동북변강의 전초기지이며 동북아의 유일한 출해구라는 전략상의 중요성과 19세기 중엽부터 우리 민족이 터를 잡고 살아온 조선족마을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조대장으로 하여금 방천에 대한 조사연구의 길에 오르게 하였다.

중화의 땅이면서 우리 민족의 삶의 요람이였던 방천에 새로운 길을 닦아야 한다는 조대장의 결심이 행동으로 옮겨지던 날, 변방부대의 해방군 전사들과 18호의 당원호가 행장을 메고 방천의 더기에 올랐는 바 마침내 방천의 새 길은 이런 사람들의 발밑에서 열리였다. 그것이 비록 보잘것없이 작은 오솔길이였지만 그 길에는 우리 민족의 마을 하나를 다시 건설하려고 달려온 사람들의 억센 정신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세월의 고개마루에 해달이 뜨고 지는 무수한 광음의 세례 속에서 방천의 길에도 마침내 금빛해살이 넘쳐나는 광명의 날이 오고야 말았다. 1982년 장장 25년간 빼앗겼던 길을 두만강의 입안에서 찾아오는 전투의 나팔소리가 울린 것이다. 나라에서 거액의 자금을 투입하여 수천립방메터 의 돌과 자갈과 모래와 세멘트로 강을 메우고 둑을 쌓아 국가급 포장도로를 닦음으로써 길을 빌려쓰던 안타까운 력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는 방천의 력사에 천지개벽을 약속하는 우렁찬 전주곡이였다. 특수 한 지리적 위치와 수려한 자연풍경과 유서 깊은 인문환경으로 하여 방천은 대뜸 나라의 각광을 받게 되였다.

2002년, 국무원에서 국가중점풍경명승구로 비준하였다.

2013년, 국가관광국에서 국가 4A급 관광풍경구로 비준하였다

2014년,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서 중국소수민족 특색마을로 명명하였다.

2016년, 국가농업부에서 중국의 아름다운 레저향촌이라는 칭호를 수여하였다.

‘기러기 울음소리 삼국(三国)에 울리고 호랑이 따웅소리 삼강(三疆)을 흔들고 숲속의 꽃향기 삼령(三岭)에 풍기고 사람들 웃음소리 삼방(三邦)에 울려가는’ 신비하고 오묘로운 땅, 바로 여기에 방천촌이라는 조선족마을이 있어 세인의 눈길을 모을 때 방천의 가슴이 방천의 길과 함께 설레이는 것은 너무나 지당한 일이라 하겠다.

황차 이 길이 발해국시기의 동경룡원부가 바다길을 열고 일본과의 무역을 추진한 해상실크로드의 기점이였고 이 길에 동북아의 둘도 없는 황금물길의 물목을 지키는 존엄을 아로새긴 성스로운 국문이 있음에랴!

두만강 끝초리의 한갈래 오솔길이 크고 작은 관광차가 실북처럼 오가는 국도로 되기까지, 가난의 람루를 걸치고 살던 심산 속의 궁핍한 시골마을이 세상이 부러워하는 ‘동방제1촌’으로 부상하기까지 자그만치 150년이라는 광음이 흘러갔다.

오늘 대천세계에로 나아가는 방천의 길은 개혁개방의 봄바람을 타고 나래펼친  축복받은 길, 번영창성의 길이다. 장고봉이 굽어보는 이 길에는 노을강에 스며드는 련꽃향기가 있고 퉁소를 불고 장상모를 돌리는 룡호각이 있으며 록주에 금모래 반짝이는 사구공원이 있다. 이제 옛 마을 개조 프로젝트까지 완공되면 아담하면서 고풍스러운 41채의 우리 민족 전통가옥이 이처럼 우아하고 다채로운 풍정 속으로 줄지어 찾아오는 해내외의 손님들을 반갑게 모셔들일 것이다.

꿈이 많고 길은 멀고 할 일도 많은 방천의 길에 더욱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는 새날의 서광이 비끼였다.

자랑스러워라, 해당화 피여 향기롭고 갈매기 날아 자유로운 천혜의 땅 방천의 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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