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 (외 3수)□ 김춘산

2019-08-30 09:56:43


이른봄이면

하늘에서 백설은 꽃으로 오고

실비는 구슬로 온다


바람은 비스듬히 누워서

남산을 넘어오고

해살은 정수리를

콕콕 쏘면서 온다


진눈까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해살이 쏟아지는 봄이면

보리밭에 가본다


눈꽃에 놀라 깨여나

비방울을 목에 걸고

바람에 흔들리고

해살 향해 키돋움하는

청보리들을 보면


먼 옛날

그 계집애의 손짓과

실눈 웃음과

숨 넘어가는 노래소리에

청보리가 된 적 있었던

그 옛날이 다가온다


나의 이른봄의

젊음과 사랑이

행복한 청보리가

된 적 있었던 그날이

아직도 떠오르는 것이 우습다.


찜질방에서


모래시계가 흐르기 시작하면

나의 시간은 정지된다

일탈과 탈 속의 공간에

스스로 자신을 가둔다


계급 같은 허울을 벗고

알몸의 내가

진실의 나를 찾고 있다


주르륵 흐르는

땀을 훔치며

이악스레 모으고 탈취했던

금싸락 같은 욕망들이

살점같이 귀한 그것들이

한낱 물방울에 지나지 않음을

깨치는 순간은 적막하다


버리고 부리고 나면

한결 시원하고 가벼워지는 것을

욕심과 체면을 진때 벗기 듯 벗기면

한결 깨끗하고 맑아지는 것을

뜨거운 찜질방에서 공부한다.


봄이 오는 날은


봄이 오는 날에는

올챙이 꼬리를 희롱하며

귀여운 시내물이 내게로 온다

님의 미소 같은 시내물이

봄이 오는 날, 내게로 온다


봄이 오는 날에는

개나리 노랑 리봉 흔들며

부드러운 바람이 내게로 온다

님의 머리결 같은 바람이

봄이 오는 날, 내게로 온다


봄이 오는 날은

님이 오는 날은

겨우내 랭각됐던 우뢰가

배꽃, 살구꽃 향기에 취해

맘껏 사치하고 방종하는 날

저 우뢰처럼 내가

허세와 풍류의 내가

님 마중가는 날이다.


복수초


하늘에서

겨울의 유언 같은

해살 몇오리가

발뼘발뼘 내려오면

봄이 아직도 늑장 부리는

먼산, 먼 먼산 바라던

복수초가 만개한다


잔설의 산마루에

해토의 주문 같은

바람이 불어오면

복수초는 수줍은

미모의 녀인이 된다


차거움이 아름다움 될 때

나비의 춤사위와

꿀벌의 하모니는

최후의 파티 같은 사치임을


겨울이 저물고

봄이 찬란해질 무렵

계절의 동행자가 되여

북상하는 복수초에게

내 사랑 같은 너에게

눈꽃 한송이 꺾어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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