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김신자

2019-08-30 09:58:28

고중동창회를 연길에서 마치고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마음은 속을 파먹은 삶은 호박처럼 텅 비고 후줄근해져서 툭 치면 찌그러들 것만 같다. 트렁크를 끌고 앞에서 걸어가는 동창들의 뒤모습도 축 처져서 연길에 갈 때 부풀었던 모양들이 아니다.

연길에서 만난 동창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뜨겁게 손을 잡고 흔들고 곰들처럼 두 팔을 크게 벌려 큰 포옹을 하기도 하면서 감동을 금치 못했다. 졸업하여 30여년 만에 처음 만나는 동창들도 있다. 강산이 세번도 더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 건만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좋아들 한다.

환영만찬이다. 한잔, 한잔 또 한잔 긴 말이 필요없단다. 하고 싶었던 말들, 그리웠던 마음들을 한잔 한잔 술에 담아서 마음속에 부어넣는다. 이 술들이 마음속에서 발효하면 더 큰 정으로 꽃이 필 건지 부글부글 큰 거품이 될 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찌하든 상관이 없단다, 아무튼 부어넣고 볼 판이다.

내노라 멋있던 동창들이지만 동창모임에서는 모두들 신분을 내려놓는다. 교수도 공정사도 공무원도 사장님들도 모두 심부름군이 되고 춤군이 되고 익살군이 된다. 함께 함성을 지르며 ‘강남스타일’을 추고 큰 비를 맞으면서도 즐겁게 웃고 떠들며 단체사진을 찍는다. 태풍의 위력으로 장백산은 구경할 수 없었으나 그저 함께라서 좋단다.

좀더 보고 싶었던 친구들은 떨어질세라 손을 잡고 딱 붙어서 큰비 속을 걸으면서 도란도란 그립던 말들을 토해낸다. 삼삼오오 모여선 곳에서는 호탕한 웃음소리들이 시원하여 줄기차게 내리는 비줄기가 궁색하다. 모두들 학생시절에 운동장에서 장난치며 떠들던 모습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든 것이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 친구를 이렇게 만나니 건강하게 얼굴 보여준 친구가 고맙고 잘 살아있는 나 자신이 고맙다. 할 말들이 하도 많아 밤이 짧아 한스럽고 3박 4일이 반나절도 안된 것 같아서 서운했다.

세월은 흐를 만큼 흘렀다. 건강이 안 좋아 벌써 저세상에 간 동창들이 몇명 된다. 그러니 다음에 다시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저도 몰래 서글퍼진다. 이런 서글픈 마음도 세월이 남겨주는 선물이다. 서글픔을 알아야 더더욱 아낄 수 있음을 가르치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 세월의 흐름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 동창관계가 친인관계처럼 운명으로 맺어졌으니 이런 관계를 부인할 수 없고 취소할 수 없다면 소중히 여겨야 마땅한 인연임을 알게 되였다. 십여년간 동창회에 다니면서 친해지는 법을 배우고 걱정하는 마음을 느끼고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함을 알았다.

세월 덕분에 멀기만 하고 높기만 하던 사생간의 관계도 편하게 가까워져서 정말 좋다. 팔순 고령의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우스개를 하면서 배를 끌어안고 웃어보기도 했다. 학생시절에 따분한 강의를 듣는 것 보다 훨씬 신이 난다. 부모 같고 자녀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니 더는 멀고 높은 관계가 아니다.

세월에 묻혀 살다보면 어느새 편해지는 관계, 이것도 아무나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 가까워질려고 마음을 주고 보고 싶고 궁금하고 다시 만나기를 기원할 수 있을 때 어느새 점점 더 가까워지고 편해진다.

더 가까워지고 편해지니 정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생겨난 정은 또 세월을 두고 정성을 들여 키워야 두껍고 튼튼해져서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정이 튼튼해지면 미워지지 않고 쉽게 싫어지지 않는다. 정이 깊어지면 더욱더 보고 싶고 안쓰럽고 궁금해진다. 우리 동창모임도 정으로 시작하고 정으로 계속될 것이다.

요즘 연길에 혹시 보슬비가 자주 내릴지도 모르겠다. 함께 했던 동창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하늘로 날아올라 작은 비방울이 되여 조용히 땅을 적시고 정이라는 예쁜 꽃을 피울지도 모르겠다. 부풀었던 정을 다 쏟아 꽃을 피웠으니 요즘 동창들의 마음은 후줄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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