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 아□ 허경수

2019-09-06 08:45:04

1

“아이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던 리미화는 불현듯 젖꼭지가 따끔 아파나니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하며 아기의 머리를 살짝 쳤다.

“응아, 응아…”

아기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텔레비죤을 보다가 이 광경을 얼핏 본 남편 고수호는 말벌에게나 쏘인듯 펄쩍 뛰며 버럭 소리 질렀다.

“미쳤어? 가만히 있는 애를 왜 때려?”

“참, 동무도… 얘가 이발이 나왔어요.”

리미화는 살구씨모양의 눈을 곱게 흘기며 기꺼운 희소식을 알렸다.

“어허?! 고거야!”

방금까지 그늘졌던 고수호의 둥그스름한 얼굴은 광풍이 지나간 하늘마냥 삽시에 해맑아졌다. 그는 재불에 ‘메추리알’을 데운 놈마냥 펄떡 뛰여 일어나더니 씽 하니 정주에 달려가서 한창 젖을 꼴딱꼴딱 맛갈스럽게 먹고 있는 아들애를 안으려고 헤덤비였다. 리미화는 마늘 같은 코를 쨍그리며 ‘엄중경고’를 내렸다.

“스돕쁘, 식사중!”

“식사중? 핫, 하하 우리 고진철 동지, 치아가 나와서 식사중임둥?”

고수호는 풍향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 앞의 바람개비마냥 머리를 흔들며 좋아서 어쩔 바를 몰라했다. 하야말끔한 리미화의 얼굴에 자부심으로 그윽한 홍조가 어리여 풍만한 유방과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완숙한 미적 풍경을 구현하였다. 고수호는 마치 약초를 캐러 간 사람이 산삼을 발견한 듯이 눈에 호기심이 반짝이는 빛을 담고 아기를 응시했다. 그런 고수호를 째려보며 리미화는 롱조로 ‘축객령’을 내렸다.

“일어섯, 뒤로 돌앗, 앞으로 갓!”

“핫, 하하 쎄꾸마, 고진철 어머니 동지!”

고수호는 소탈하게 웃으며 일어나서 방에 건너가 텔레비죤에 눈길을 주었다.

“아버지, 어머니…”

고수호는 금방 로인협회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더니 얼굴에 보름달 같은 웃음을 환히 띠우며 희소식을 전하려고 엉거주춤 일어났다가 앉았다.

“무슨 좋은 일이 있길래?”

아버지 고정국은 평상시와 다른 아들의 표정과 거동을 보고서 이상한 감을 느끼며 넌지시 물었다.

“네, 좋은 소식임다, 우리 진철이 이발이 나왔슴다.”

고수호는 마치 소학교시절에 학기말 시험에서 백점을 맞았을 때처럼 얼굴에 자랑 가득한 미소를 띠우며 말하였다.

“어허! 고놈이 이젠 자라이(어른) 구실을 하려고 접어드네, 우리 고진철 동지.”

고정국의 입은 귀가에 슬쩍 올라가 걸렸다. 리미화는 주방에서 저녁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고정국과 그의 안해 최씨는 정주에 건너가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손자를 대견한 눈길로 응시하며 주름진 얼굴에 함박꽃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씨는 투실투실한 손으로 손자의 포동포동한 두 볼을 살살 만지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느닷없이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그가 아들딸을 낳아 기를 때는 시부모를 공경하며 남편의 뒤바라지에 육아에까지 심혈을 몰붓다 보니 자녀들을 하나의 예술품처럼 감상할 겨를이 별로 없었다. 수호의 젖이가 나와 젖을 먹을  때 그녀의 유두를 살짝 물면 그녀도 때끔 아파나서 수호의 머리를 톡 치고 나서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린 적이 여러번 있었다. 어느 한번 그녀는 수호에게 젖을 먹이던중 유두가 때끔 아파나니 저도 모르게 수호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그러자 수호는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이 정경을 무심코 보고 있던 남편 고정국은 벼락 치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때 가슴이 아프고 억울하던 느낌이 지금도 머리 속에 선연하다.

저녁은 오징어무침, 닭고기탕이 오른 풍성한 식탁으로 마련되였다. 고수호는 네모반듯한 얼굴에 호함진 미소를 띠우며 컵에 포도주를 따르고 기꺼운 어조로 식구들에게 제의했다.

“우리 고진철 동지의 치아 발육을 축하하여 한잔 냅시다.”

고정국도 네모번듯한 얼굴에 저녁 노을을 물들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호호호, 하하하 련달아 터지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아담한 집안에 울렸다.

“응아… 응아…..”

갑자기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넷은 거의 동시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방을 건너다보았다. 리미화는 식탁에 숟가락을 내려놓고 바지가랭이에 회오리바람을 일구며 방에 달려가서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정주에 건너와서 손을 씻고 다시 식탁에 마주앉았다.

“어허! 우리 고진철 동지가 신진대사를 진행하는구만.”

교원사업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고정국은 유머조로 한마디 말하고서 컵에 남은 포도주를 쭉 마시였다.

“오늘 저녁 술맛이 참 좋네, 이번엔 할아버지가 한잔 더 제안해야지.”

고정국은 만면에 미소를 담고서 식구들의 컵에 다시 포도주를 따랐다.

“새싹의 탄생을 위하여 건배!”

명랑한 웃음과 더불어 저녁식사는 무르익어갔다.

“응아… 응아…”

밤, 몇시인지 모르나 아기의 울음소리에 리미화와 최씨는 거의 동시에 잠에서 깨여났다. 리미화는 전등을 켜고 습관적으로 기저귀를 헤쳐보았는데 ‘적정’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아기의 입을 벌리고 살펴보았다. 낮에 새싹이 금방 움트듯이 조금 솟아올랐던 하얀 것이 좀더 돋아나왔다.

“별일 없소?”

최씨는 상반신을 일으켜 미닫이에 입을 닿이고 근심조로 물었다.

“네, 얘 이가 좀더 나왔어요.”

리미화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을 하였다.

최씨는 안도의 한숨을 뿜고 자리에 편안히 누웠다. 남편 고정국은 최씨를 보듬어안으며 잠기 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진철이 이발이 자란다오?”

“네, 고놈이 이젠 자라이 되느라구.”

최씨의 어조는 찰떡을 꿀에 묻혀 먹었을 때처럼 달착지근하였다.

“음… 음… 우리 진철이 자장, 자장.”

리미화는 아기를 타독타독 다독이며 흥얼거렸다. 이윽고 아기는 소르르 잠이 들었다.

며칠 후의 따스한 날 최씨는 손자를 안고 공원에 나갔다. 그녀는 풋면목을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찬 어조로 ‘광고’를 하였다.

“우리 친손재요! 벌써 이발이 자라나오, 이젠 자리이 구실을 하자고 접어든다오. 하하.”

최씨는 온 세상을 다 안은 듯 온종일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녀는 갑자기 배가 따스해나는 감각을 느끼고는 아기를 내려놓고 기저귀를 헤쳐보았다.

“이젠 오줌도 퍼그나 누네, 와누르 자라이의 오줌이네.”

최씨는 가방에서 기저귀를 꺼내여 갈아주며 흐뭇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손자를 꼭 안고서 공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아름다운 화원에서 나비떼와 꿀벌들이 하늘하늘 춤추고 있었다. 어제까지 범상해보이던 나비떼와 꿀벌들은 오늘따라 무척 귀여워보이였고 자기를 위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문득 그녀는 세멘트바닥 틈새로 파란 새싹이 움터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람에 날려 여기까지 온 걸가? 새가 물어온 걸가? 메마른 땅, 비좁은 틈새로 어떻게 자양분을 섭취하고 이다지도 움을 틔우는 것일가? 바람, 비, 이슬과 해빛의 은혜로 조용히 자라는 새싹의 생명력은 얼마나 완강할가? 아기를 키우는 과정 역시 간고하다. 젖은 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애지중지 키워야 했고 아기가 울면 한밤중이라도 일어나 달래야 했으며 기저귀를 갈아채워야 하고 젖을 먹여야 했다.

깊은 상념에 빠진 최씨의 마음을 알기나 한 듯 손자는 최씨를 빤히 쳐다보면서 방긋 웃었다. 그 통에 입안에서 차돌 같은 치아가 반짝 빛났다. 최씨의 가슴은 탁 트이는 것 같았고 눈앞에 일망무제한 바다가 펼쳐지며 그 우로 수천수만척의 군함과  륜선들이 질주하는 방대한 광경이 나타나는 듯하였다. 군함 우에서 나젊은 해병이 웃으면서 만경창파를 바라보며 서있는데 하얀 모자 우의 파란 끈이 해풍에 나붓기고 있었다. 그 름름한 해병의 모습은 불현듯 고진철의 해맑은 얼굴로 변형되였다.

최씨는 걸상에 한참 앉아있다가 슬며시 일어나서 거닐기 시작하였다.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밀면서 슬렁슬렁 걷는 나젊은 녀인들, 로인을 휠체어에 태우고 함께 산책을 하는 젊은 남성, 아이의 손을 량쪽에서 잡고 거니는 부부들, 그들 속에서 스적스적 걷고 있는 최씨는 갑자기 온 세상이 화목한 가정으로 된 듯 따뜻함을 느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최씨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어이구, 우리 고진철 장군이 돌아왔네.”

고정국은 소탈하게 웃으며 안해의 품에서 손자를 받아 안아서 수염이 꺼슬꺼슬한 얼굴로 손자의 야르르한 볼을 부볐다.

손자는 간지러워서 웃었다.

“어이구, 야단났구려.”

최씨는 갸름한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피여올리며 정찬 눈길로 령감과 손자를 번갈아보았다.

“고진철 동지, 잘 계셨슴둥?”

고수호는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아버지의 손에서 아기를 받아 보듬어 안고서 얼굴에 키스를 하고서  빙빙 돌았다. 지구는 태양을 에워싸고 자전, 공전을 한다. 두 세대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집들에서는 아기를 에워싸고 뱅뱅 돌아치며 해바라기 태양을 따르듯이 온 집 식구가 아기를 쳐다보며 빙글빙글 돌아간다.

“우리 고진철 동지가 치아가 다 나오면 여러가지 음식을 맛있게 먹을검다. 예”

고수호는 기대에 찬 눈길로 부모들을 보며 말하였다.

“그래, 거야 편지에 문안이고 약국에 감초지.”

고정국은 아들과 대뜸 맞장구를 쳤다.


2

“아이고… 이발이야…”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던 고정국은 갑자기 신음소리를 냈다. 잠결에 남편의 신음소리를 듣고 놀라서 깬 최씨가 전등을 켰다. 남편은 한손으로 볼을 싸쥐고 고양이가 락태한 상을 짓고 있었다. 낮에부터 조금씩 치통이 왔는데 고정국은 별로 개의치 않고 버티기만 하더니 밤중에 아픔이 더해질 줄 몰랐던 것이다. 최씨는 말없이 서랍에서 정통편을 찾아내여 남편에게 건넸다. 고정국은 정통편을 쪼개여 입에 넣고 침으로 삼키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최씨가 일어나 물 한컵 떠서 고정국에게 건네자 고정국은 그제서야 물을 받아마시고는 한숨을 길게 뽑았다. 병이 아니지만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죽을 지경으로 아픈 게 치통이라 하더니 이 시각 고정국에게는 일분이 삼추같이 지루했다. 한참 후, 정통편의 약효가 사라지자 썰물마냥 물러갔던 아픔이 또다시 밀물처럼 밀려드는 것이였다. 고정국은 두 다리를 꼬부리고 모로 누운 채 콩알 같은 땀을 뚝뚝 떨구며 팅팅 부은 볼을 한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진통으로 모대기고 있는 남편을 지켜보노라니 최씨는 차라리 자신이 대신 앓아주고 싶었다.

“응아… 응아…”

방안에서 갑자기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리미화는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하며 일어나서 아기의 기저귀를 확인했다. ‘적정’이 없으니 다시 기저귀를 채워놓은 다음 앵두빛 유두를 아기의 입에 살며시 밀어넣었다. 그러자 아기는 젖을 맛갈스레 꼴딱 꼴딱 먹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쪽 유방을 움켜잡고 있었다. 리미화는 쏟아지는 졸음으로 눈을 살며시 감은 채 모로 누워있었다.

“어허, 우리 고진철 동지가 밤중 식사를 하심둥?”

어느새 깨여났는지 고수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아기의 엉덩이를 다독여주었다. 아기는 응원을 받은 운동선수가 더욱 힘을 내듯이 젖을 더 열심히 빨아먹었다.

“아이코…”

불현듯, 리미화가 약한 신음소리를 내며 아기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야… 동무도 손이 가볍군.”

고수호는 안해를 힐끗 보며 핀잔조로 말하였다.

“얘 이발이 더 자라났슴다.”

리미화가 다급히 해석했다.

“아하! 고놈이야…”

고수호의 얼굴은 보름달마냥 밝아졌다. 그는 엉덩이에 갑자기 뿔이라도 돋아난 듯 벌떡 일어나 앉아서 아기의 머리를 살살 어루만져주었다.

“우리 고진철 동지 점점 자라이 되네.”

“짠팅! 식사중.”

리미화는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계엄령’을 내렸다.

“핫, 하하, 식사중임둥? 우리 고진철 동지…”

고수호는 기껍게 웃고서 털썩 누웠다.

“우리 손주 이발이 또 자라는구만, 어허 고놈이야….”

진통에 모대기며 땀방울로 흥건한 고정국의 주름진 얼굴에 할미꽃 같은 미소가 아련히 피여났다. 안해 최씨는 놀란 눈길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아파서 구을던 량반이! 한참 궁싯거리던 고정국은 저도 모르게 겨우 잠이 들었다. 그제야 최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전등을 끈 다음 자리에 누웠다.

“진철아… 진철아…”

한밤중에 고수호가 부르짖으며 허덕이자 리미화와 정주의 두 로인이 화들짝 놀라 깨여났다.

“동무… 동무, 왜 이럼까?”

리미화는 악몽에서 허덕이고 있는 남편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그제서야 고수호는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며 깨여났다.

“꿈을 꾸었슴까?”

리미화는 조용히 물었다.

“양, 글쎄 우리 진철이 학을 타고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게 아니겠소? 나 어찌나 놀랐는지.”

고수호는 이마에 송골송골 돋은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쓱 문지르고서 벌떡 일어나 앉아서 아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기는 세상 모르고 쌔근쌔근 달게 자고 있었다. 그제야 고수호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다시 누웠다.

“어… 어… 음… 나 죽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가, 이번에는 고정국이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왜 이럼둥?”

깜짝 놀란 최씨는 령감을 흔들어 깨웠다.

“어… 후유…”

고정국은 한숨을 뿜으며 깨여났다.

“무슨 꿈을 꾸었길래?”

“어, 글쎄 도깨비 같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내 이발을 몽땅 빼가지고 달아나지 않겠소? 어찌나 아프던지, 후유…”

고정국은 악몽의 경과를 말하고서 천근 짐이나 부리운 듯 한숨을 내쉬였다.

“호… 꿈은 반대라는데, 후에 새 이발이 날게꾸마.”

“그런가? 그거야 금시 초문인데…”

고정국은 잠기 다분한 목소리로 말하고서 끙 하고 돌아누웠다. 그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좀체로 잠들 수 없었다. 악몽에서 만난 ‘도깨비’들이 무시로 눈앞에 나타나서 집게를 벌리고 달려들어 그의 이발을 뽑으려고 날뛰는 것 같았다. 차라리 자신의 아픈 이발 하나만 뽑아갔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간이란 참 이상하다. 흥에 겨워 마작이나 트럼프 치기를 할 때에는 쏜살같이 흘러가지만  아프거나 고된 일을 할 때에는 비루 먹은 늙다리 소가 무거운 짐을 싣고 비탈길을 톺아오르는 듯 아주 더디게 흐르는 것 같으니 말이다.

“좀 괜찮슴둥?”

최씨는 남편의 부어오른 얼굴을 만지며 안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양, 좀…”

고정국은 안해가 걱정하는 것이 싫어서 애매한 반응만 보였다. 그런 남편이 안스러워 최씨는 한숨을 길게 뿜었다.

드디여 날이 밝았다. 최씨는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입고서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앉히고 죽을 쑤었다. 아이는 새 이발이 나오고 ‘큰 아이’는 낡은 이발이 빠지네. 최씨는 이런 생각을 굴리며 혼자 피식 웃었다. 아침에 고정국을 본 아들 고수호의 두 눈이 올롱해졌다.

“음, 이발이 아파서.”

그런 아들의 눈길을 의식하고 고정국은 억지로 웃어보였다.

“아버지, 오늘 치과에 가세요.”

“음, 충치야 무슨…”

“아니. 그래도 주의를 해야 합니다. 우리 공장의 리동무는 충치를 빼고 술을 마셨는데 그만 풍을 맞았답니다.”

“음, 그거 들어둘 소리구나.”

아침상이 다 차려지자 최씨는 가위로 김치를 잘게 베여서 남편의 죽그릇에 넣어주었다. 고정국은 죽을 한숟가락을 떠먹고서 너부죽한 얼굴에 가녀린 미소를 피여올리며 롱조로 한마디 하였다.

“우리 고진철 동지의 치아는 탄생하고 고정국 동지의 치아는 쌰깡하는구나, 세월 앞에 장수가 없구만.”

덕분에 풍성한 아침 밥상에 명랑한 웃음이 구을렀다. 오전이 되여 고정국과 최씨는 함께 치과방을 찾았다. 가는 도중에 낡은 아빠트를 허물어버리는 현장을 지나게 되였다. 벽을 쾅쾅 허물어버리니 천정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그중에서 유리창이 왈랑절랑 깨지며 문이 박살날 때 고정국은 저도 모르게 아까운 감이 들었다. 사람에게 입도 하나의 ‘문’인  셈인데 그 문이 나떨어지고 치아벽이 와르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가? 문득 고정국은 자신의 치아가 한대 없어지면 파수군 하나 없어지는 것처럼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치과에 도착하니 의사는 고정국의 이몸에 마취주사를 놓고서 충치 한대를 뽑아내였다. 피가 즐벅한 충치 한대가 쓰레기통에 달랑 떨어졌다. 고정국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느라니 시원하고도 섭섭한 감을 은근히 느꼈다. 60여년 동안 그와 함께 동고동락을 해오며 방금까지 자신의 ‘문’에서 은빛을 반짝이던 ‘보석’이 아니였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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