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30년□ 남세풍

2019-09-27 09:02:45

1994년 4월, 조양천일잡상점 과장으로 사업하던 인숙이는 정년퇴직을 맞게 되였다. 퇴직은 워낙 집에서 휴식하라는 배치인데 뜻밖에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휴식이 아니라 마을의 주임자리였다. 하여 그녀는 1965년, 처녀시절부터 상업 1선에서 30여년간 몸을 달구며 분투노력한 성과로 5·1로력메달을 따냈다면 퇴직 후에는 마을의 주임을 맡고 또다시 30년을 재충전으로 로력메달영예를 더욱 빛내가야 했으리라.

그랬다. 인숙이는 1985년 5·1절을 계기로 중화전국총공회에서 처음 수여하는 ‘5·1 로력메달’ 수상자이다. 당시 연변주에는 리세충, 박인남, 마덕복, 최인숙 4명이였다.

인숙이를 맞은 마을풍경은 어수선하고 스산하여 생기가 없어보였다. 빈집이 많고 젊은이, 어린이 보이지 않았으며 로인들과 장애인, 로약자. 환자들 뿐이였으니깐.

사람의 요소가 첫째로 인숙이는 마을의 면모를 개변시키자면 로인협회로 모래알처럼 흩어진 로인들을 하나로 똘똘 뭉쳐세워야 했다. 로인들께 조직이 있고 활동장소가 있게 되면 만년의 공허감을 줄여주고 행복감도 증진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로인들은 오전에 집일을 하고 오후면 아담하게 꾸려진 로인협회활동실에 모여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서로들 어울리면서 친선과 친목을 도모하니 생기가 넘치고 웃음이 만발했다. 말 그대로 한가정이 된 듯싶었다.

하지만 인숙이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단순히 모여앉아 활동하는 협회가 될 게 아니라 마을을 위해, 사회를 위해 유익한 일을 겸하는 협회로 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협회가 마을과 사회의 환영지지를 받아야만 협회가 진정 마을의 코기러기가 되여 마을을 이끌 수 있고 동시에 생명력이 강하고 가치가 뚜렷할 것 같았다.

길가에 꽃을 가꾸여 마을을 꽃천지로 만들자! 설계가 무지개처럼 서고 방향이 큰길마냥 확 트이여 신심이 굴뚝같이 솟았다. 로인들은 실외활동으로 기꺼이 인숙이의 대동하에 길가를 깨끗이 정리하고 꽃씨를 뿌렸다. 꽃씨들이 움트고 새파랗게 자랐다. 밴 데는 솎아주고 빈 데는 옮겨주고 잡초를 잡으며 김을 매였다. 자람새가 좋아 푸른 주단 펼친 듯했고 여름가을 내내 울긋불긋 아릿다운 꽃들이 만개하여 마을은 흡사 꽃천지 속에 앉은 듯했고 행인들은 꽃웃음 머금고 활개치며 꽃길을 걷는 듯싶었다.

꽃을 가꾸며 인숙이는 배수구의 청결도 했다. 그래야만 어수선하고 스산한 면모를 개변시키고 생기도 넘쳐날 것 같았다. 그런데 유감은 흙길을 세멘트길로 포장할 때 마을의 배수구도 잘해놓고 덮개를 만들어 덮지 않아 배수구는 쓰레기장이 되여 오물이 들어차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비만 오면 배수가 잘되지 않아 비물이 큰길까지 범람하여 물바다가 되였다. 이런 상황은 년년이 지속되였다.

상황은 이러했으나 인숙이는 해마다 배수구를 청결해야만 했다. 그런데 로인들은 도리머리를 내저으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겨우 설복하여 배수구의 오물을 청결하고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도 잡아내며 제거하니 환해 좋고 깨끗해 좋고 비가 오면 배수가 잘돼 좋았다. 좋은 일 하면서 말썽이 없은 것은 아니였다. 배수구에 덮개를 만들어 덮어놓지 않아 년년이 동원해서 공맥을 빼며 공연한 짓을 한다고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뜻밖에 배수구에 사고가 발생했다. 마을의 한 녀성이 자전거를 타고가다 앞에 오는 차를 피하려다가 배수구에 빠져 무릎을 상하면서 자전거가 엉망이 됐다. 녀성은 대뜸 분김에 불평불만을 불같이 토하며 배상하라고 떠들어댔다. 차 탓인가, 배수구 탓인가, 본인 탓인가 시야비야 가부를 캐다가 나중에 배수구에 덮개가 없기 때문에 인신안전을 위험하는 우환거리라는 데 입을 모았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여 그녀는 마을을 대표하여 정중히 관련 부문에, 진정부에, 지어 시인민대표대회까지 반영하였다.

인숙이의 끈질긴 반영이 드디여 효과를 보았다. 최근에 관련 부문에서는 마을의 손을 빌지 않고 배수구를 청결하고 오물과 잡초를 실어내고 배수구에 덮개를 만들어 덮어놓았다. 꽃길에 덮개까지 해놓아 어수선하고 스산하던 마을이 생기가 넘치고 인신안전에도 편해 한결 환해지고 정결해 평화로운 마을로 돋보여졌다.

만족은 끝이 없었다. 이 좋은 거리에 환경미화를 잘하고 싶었다. 인숙이는 남편과 손잡고 변전소의 백메터 담벽에 노란 칠을 올리고 빨간 글로 큼직큼직하게 ‘中国梦·人民的梦为实现中华民族伟大复兴而奋斗(중국꿈∙ 인민의 꿈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자)’라는 22자를 썼다. 맞은켠 큰길 건너 민간의 담벽에도 하얀칠을 올리고 역시 빨간 글로 사회주의 가치관 ‘富强 民主 文明 和谐 自由 平等 公正 法治 爱国 敬业 诚信 友善(부강 민주 문명 조화 자유 평등 공정 법치 애국 충직 성실 우애)’ 24자를 썼다. 거리가 환해 세상 좋았다.

더 잘한 건 동산의 혁명렬사기념비 관리였다. 참배인들의 편리를 도모하여 산을 에돌던 길을 나무숲 속을 꿰질러 곧게 빼고 닦았으며 기념비둘레에 과동하는 란초 120포기 옮겨심었다. 그 둘레에 가뭄비나무와 소나무도 옮겨심었다. 파릇파릇 자람새가 좋았다. 란초꽃도 만개하여 곱게 웃었다. 꽃과 나무들 품에 안긴 기념비는 자못 숭엄해보였다.

이런 장한 일을 하면서 인숙이는 분녀란 정신환자 때문에 은근히 골머리를 앓았다. 분녀한테는 한때 남편과 아들과 함께 하던 행복한 가정이 있었다. 그런데 문화대혁명시기 남편이 맨발의사로 조직의 파견을 받고 세린하로 가게 되였다. 그곳에서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되는 바람에 분녀는 정신환자로 되였다. 그러자 14살 아들은 엄마를 의지할 수 없어 탈출하였다. 홀로 남은 분녀는 부득불 생계유지를 위해 매일 넝마주이를 하면서 일년 사시절 쓰레기를 집안에도, 밖에도 무작정 끌어들여 골치거리였다.

더 한심한 건 분녀가 집안에 쓰레기를 가득 채워놓아 불을 지필 수 없어 밖에 자그만한 솥을 걸어놓고 음식을 끓여먹으며 때를 에우는 거였다. 그것도 분녀가 변질되여 버린 음식물을 주어다 끓여먹는 거였다. 때론 고기를 먹고 싶어 병 들어 죽은 닭이나 개를 끌어다 대충 털을 뽑고 삶아먹는 것을 보고 인숙이는 저러다 병들어죽으면 어쩌나 싶어 8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의 밥, 반찬, 생수까지 날라다주며 돌봐주었다. 동네서는 그녀의 처사가 조련치 않다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분녀가 죽게 되자 여전히 그녀가 나서서 관련 부문에 련계하여 후사까지 치러주었다.

희로애락을 겪는 나날에 인숙이는 58세에 2000년 제5차 전국인구보편조사 성원으로, 68 세에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 성원으로, 신춘양거 세개 조, 수원거 세개 조 도합 621호를 한집도 빠뜨림없이 완강한 의력으로 들끓는 열정으로 인구조사에 진력했다. 와중 놀랍게 100세 왕씨 로인을 발견하고 제때에 수속을 밟아 나라의 혜택을 받도록 하고 호구가 없는 엄철호를 비롯한 11명 소년을 발견하고 파출소와 련계하여 호구를 올려주었다. 잇달아 최영금을 망라한 18호의 빈곤호도 발견되는 족족 최선을 다해 최저생활보장금을 받도록 해결하여 족한 생활을 유지하도록 도왔다.

2015년 겨울. 중공연길시위와 연길시인민정부는 연길환락궁에서 감동연길시 상식을 주최하였다. 이 시상식에 인숙이는 ‘자원봉사 도덕모범’ 붉은띠를 어깨에 두르고 시상대에 올랐다. 덕분에 호구를 올린 11명 소년대표로 엄철호가 생화를 할머니께 드리며 “할머니 고마워요.” 인사하자 인숙이는 그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이어 가두위원회 리서기가 최인숙에게 생화를 안기고 나서 마이크를 들고 그녀를 소리 높이 극찬하였다.

“최주임은 마을의 주임으로 협회의 회장으로 ‘우리 마을은 우리가 관리하고 협회로 마을을 이끈다’는 취지하에 전 30년보다 또다시 30년에 더 많은 일을 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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