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라는 말의 슬픔□ 주향숙

2019-10-11 09:16:43

"우리는 늘 그렇게 얼마쯤의 거리에서 바장이여야 할가보다. 인간의 섬찍한 자기애에 당혹스럽고 서로의 그 어쩔 수 없는 거리가 아프고 또 우직하게 혼자 끌어안고 끙끙대는 모습도 불쌍하다. 그 지겨운 사이에서 우리는 헤맨다. 서로 함께 산다는 것은 가닿을 수 없는 거리로 자신과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인가본다."

나는 가끔 비나 눈을 바라보거나 창가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다가 그리운 마음에 누군가에게 같이 보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그때 ‘나도’ 하는 말이 건너오면 너무 행복하다. 그러나 이내 곁에 없음을 깨달으며 가슴 저리는 그리움에 빠져버린다. ‘나도’라는 말에서 내 귀볼을 간지럽히는 숨결까지도 느껴질 듯하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을 뻗어도 결코 만질 수 없을 때 아득한 슬픔일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나는 갈망했다. 어느 바람이 그의 옷깃을 스쳐온 바람인지를 내가 느낄 수 있기를. 어느 구름이 그의 하늘에 머물다 날아온 구름인지를 내가 알아볼 수 있기를. 그 바람이나 구름에 숨어있는 그의 하루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기를. 그러나 나는 여태 한번도 정확히 알아본 적이 없다. 아둔한 스스로를 미워했다. 분명 어느 순간에 그는 바람이나 해살이나 눈이나 비로 나에게 닿아왔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 곁에서 내 등을 툭 치거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나도’ 하고 활짝 웃으며 말해온다면 과연 우리는 진정 상대의 마음속에 온전히 가닿을 수 있을가? 회의적이다. ‘나도’ 하고 말할 때 결국 말하는 중심은 나며 나의 마음을 전달할 뿐이다. 상대의 마음을 짚어 ‘너도구나’ 라고 확신에 차서 말해줄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만큼 상대의 마음을 다 느끼고 리해할 수가 없는 탓이다. 다만 자기가 리해했다고 여기는 만큼 간신히 ‘나도’ 하고 전달할 뿐이다. 한사람에게 우리는 결코 가닿을 수 없고 들어갈 수 없음을 알며 무의식 속에 느끼는 것이다.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늘 ‘나도’라는 말을 련발하며 기어이 나도 너랑 한마음임을 자꾸 증명하려는 것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와 나로 엄연히 따로따로 존재할 뿐 다 같이 너나 다 같이 나로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깊고깊은 슬픔이다.

그래서였을가? 어느 잡지사에서 나에 대한 작가평을 쓸 작가분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나는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아니 여럿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편집선생님께서 다 알아서 해달라고 의뢰해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해보았다. 누구에게 나의 작가평을 맡길 수 있을가? 나를 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가? 나는 얼마의 나를 알리며 살아왔을가? 또 다른 사람은 나의 얼마를 느끼며 살아왔을가? 나는 누구에게도 작가평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에 울고 싶었다. 그 울음의 출처를 깊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며칠을 우울했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고 눈에 눈물이 자꾸 고여왔다.

툭 하고 ‘나에게 이거 써줘’ 하며 편하게 맡길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은 너무 슬펐다. 그래서 나는 이런이런 일이야 하며 같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부탁할 수 있는 그 기쁨이 어느 만큼 크고 강렬한지 미처 다 짐작하지 못한다. 그런 내게 련민의 감정만 든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도 만들지 않고 혼자인지라 아침에 먹고 남긴 음식을 대충 먹고 일찍 전등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눈물 나는 시간마저도 나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우리는 진정 서로에게 가서 위안이 되여줄 수 없는 존재들일가? 충분한 믿음이 없이는 사람은 절대 자신을 다 드러낼 수 없다. 자신의 고통을 그가 다 래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 자신의 고통에 대해 그가 괴로워하고 걱정하는 것 또한 바라지 않는다. 되려 죄책감에 모대기게 될 것이다. 그냥 은밀하게 고통을 감내한다는 것 역시 힘들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이의 고통을 바라보며 서뿌르게 다가서지 못해 조심스레 숨을 죽이기도 한다. 차라리 그 고통을 짐짓 모르고 싶은 어쩔 수 없는 서늘한 리기를 깨닫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랭정한 인간인가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그래서 미안해하며 자신을 날카롭게 질책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는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어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마음중 한부분은 자신의 속에 들어가고 타인의 가슴에 들어가려고 애쓰고 또 다른 한부분은 자신을 피하고 누군가를 피하는 것 같다. 그러한 자신이나 서로를 바라본다는 게 두렵다.

인간은 참으로 관계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늘 그렇게 얼마쯤의 거리에서 바장이여야 할가보다. 인간의 섬찍한 자기애에 당혹스럽고 서로의 그 어쩔 수 없는 거리가 아프고 또 우직하게 혼자 끌어안고 끙끙대는 모습도 불쌍하다. 그 지겨운 사이에서 우리는 헤맨다. 서로 함께 산다는 것은 가닿을 수 없는 거리로 자신과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인가본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 더 끔찍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너무 뜨겁고 동시에 너무 랭정하여 그런 자신과 상대의 가슴까지도 안스러이 바라보며 감당한다. 그것은 아프지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다.

내가 전달한 마음의 쪼각에서 또 그에게 전달된 더 작은 쪼각을 인간은 겨우 느끼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중에 더러 안 보이려고 노력해도 보여지기 마련인 것이 있고 또 보여주려고 애써도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진실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모르며 살아가고 멀어지며 살아가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가슴 뭉클하니 바라보며 다가가기도 한다. 때로는 다는 말해지지 않거나 말해질 수 없는 진실이란 것이 더러 있어 우리는 안도할 때도 위로 받을 때도 있으리라. 투명하게 다 벗겨지지 않은 진실, 그 가면에 의지해 우리는 또 즐겁게 살아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혼자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각자만의 가슴도 충분히 아름답다. 다만 ‘나도’ 하고 말하는 순간의 감정과 감정의 겹침에 대해 말할 뿐이며 그걸 고스란히 바라보며 받아들이려고 할 뿐이다.

그다지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무심한 듯 유정하게 지켜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희망일가? 절대적으로 믿고 저 사람 만큼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하나쯤 갖는다는 것은 혼자만의 황홀한 환상일가? 나는 ‘나도’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진실된 가슴으로 속삭여주고 싶다. 또 간절히 듣고 싶고 그 가슴을 믿어 감동하고 싶다.

‘나도’라는 말의 슬픔, 그 슬픔은 따스하고 아름답다. 그냥 따뜻한 피빛 감도는 온전한 사랑으로 가닿고 싶은 간절함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혼자의 시간을 견뎌내고 타인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기척을 온몸으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라는 말에 다 실리지 못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사랑받는다는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에게 ‘나도’ 하고 말하며 동시에 스스로 구원받는다.

우리는 다만 더 깊은 사랑과 눈물로 서로를 껴안으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나도’라는 말의 향기와 온도와 그리고 그 슬픔도 사랑한다.

문득 ‘나도’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