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주인□ 서광억

2019-11-08 09:09:06

외국 가서 돈 벌고 수년 만에 고향마을로 돌아온 날, 집에 혼자 있기가 습관되지 않아 무료해난 나는 박아바이네 집으로 향하였다. 안해는 해오던 간병일을 마저 끝마치고 달포 후에나 돌아오기로 하였기에 집에는 나 홀로였다. 다른 집엔 갈래야 갈 수도 없었다. 모두들 외국으로, 큰 시가지로 떠나다 나니 이 마을에는 어제날에 생산대장이였던 박철만네 량주밖에 없었다. 그러다 나니 내가 다니던 조선족중소학교도 한족학교와 합병하여 9년제 학교로 바뀌였고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아예 한족학교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마을길에서 피뜩 박대장네 부인을 만났는데 ‘시립병원’으로 간다면서 급급히 택시에 오르지 않겠는가!

‘큰 병원으로 급히 가는 걸 보니 병이 중한 모양이구나!’

동구밖을 빠져나가는 택시를 바라보는 나의 눈앞에는 늘 소화가 되지 않는다면서 배를 부둥켜안던 박아바이의 해쓱한 몰골이 떠올라 갑자기 마음이 쓰려났다. 여나문집 되는 마을의 경작지를 혼자 도맡아 다루고 있는 박아바이가 불치의 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아릿하였다.

내가 당초에 밭을 버리고 떠나려 할 때 박아바이가 찾아와서 “내 후에 땅값을 푼푼히 줄 테니 나한테 밭을 맡기고 시름놓고 외국으로 가게나!”하며 선뜻 나서줬었다.

“밭이 많으면서 왜 더 부치려고 하십니까?…”

나는 박아바이가 리해되지 않아 이렇게 물었다.

“밭은 묵여두면 못쓰게 되네. 비옥한 구수하벌을 황무지로 만들면 죄악이지…”

여느 사람들 같으면 자기가 먹고 쓸만한 땅만 다루려고 하겠건만… 그 많은 밭을 다루노라고 얼마나 고생하였을가?!…

그로부터 열흘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마을길에서 박아바이네 부인을 만나게 되였는데 위암 말기여서 개복했다가 손도 못대고 다시 봉합한 의사가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안되니 본인에게는 알리지 말고 잡숫고파하는 음식이나 잘 대접하라.”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슴에서 그 무엇이 덜커덕 내려앉는 것만 같은 감을 느낀 나는 그 즉시로 방문을 가려다가 말았다. 빈손이였기 때문이였다.

내가 다시 아래마을 상점에 가서 우유랑 과일이랑 사가지고 갔을 때였다. 식사를 금방 끝냈는지 아주머니는 식장 켠에서 밥상을 치우고 있었고 정주방 사이벽에 두툼히 접은 솜이불에 기대였던 박아바이가 바로 앉으며

“어서 오게나. 잘 돌아왔네 잘 돌아왔어! 힘들게 번 돈을 망탕 쓰지 말게나!…내 병은 다 나았네만.”하며 내가 가지고 간 음식들을 식장 켠에 밀어놓고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만난 듯이 내 손을 덥석 잡고 놓지 않았다. 그러더니 “올해부턴 자네의 밭은 자네가 다루겠지?” 하고 물었다.

나는 “네!” 하고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다시 농사일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고, 래년이면 중학생이 될 딸 교육 때문에 시가지로 갈가말가 고민하는중이였기 때문이였다.

“자네도 시가지로 갈 생각인가?”

내 마음을 넘겨 짚어본 듯 박아바이는 교육조로 타일렀다.

“물론 시가지가 좋지! 하지만 내 아들 또래이니깐 사십고개를 넘었겠는데 이제 시가지에 가서 무슨 일을 해먹고 살겠는가? 시가지에 가 새집사고 한뉘를 놀고 먹으며 또 자식 시중이랑 하며 살아갈 만한가?”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평생 놀고 먹을 만한 돈을 벌지도 못하였거니와 농촌에서 나서 자라 배운 재간이라고는 농사일밖에 없는데 이제 시가지에 가 그 무슨 창업을 한단 말인가 할 때 결정적으로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바뀌였네. 옛날엔 농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농민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네. 공산당의 정책이 점점 좋아져서 농민이 이 땅의 주인이라네.”하면서 나라에서 논밭길까지 세멘트길로 닦아준 것, 울바자도 든든하고 멋진 벽돌로 쌓아준 일, 어두컴컴하던 마을길에 가로등을 설치해준 일 등을 이야기하면서 당의 농민우대 정책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시가지사람들 웰빙웰빙하면서 비싼 값을 주고도 유기농곡식과 채소를 사먹으니 농민이 되여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네.”

“그래도 파종하고 가을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기계가 있으면 몰라도…”나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대꾸하였다.

“그건 념려말게나. 이제는 농기계로 농사를 짓는 기계화 시대라네. 지금까지는 고개 넘어 친구의 농기계를 빌려 썼는데 올해부턴 우리 기계를 자네가 운전하게나!”

“네? 무슨 말씀을…? 그리고 농기계는 어데 있습니까?”

“삼사년 농사를 해서 번 돈을 모아두었네. 자네 밭에서 번 돈이니 파종기는 자네 것일세…”

“네?”

나는 거기에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자기의 병세를 모르니 저러는구나 할 뿐이였다.

그 뒤 어느 날 아침 후였다. 지팡이를 짚은 박아바이가 앓는 사람 같지 않게 만면에 희색을 띠우고 우리 집 뜨락에 나타났다.

집안에 있던 나는 얼른 달려나가 마중하였다.

“아니, 어떻게 되여 이렇게?…”

“자네도 기뻐하게나!”

“네?…”

“참, 당의 정책이 좋은 세월이지!”

“무슨 말씀인지요?”

“방금 촌당지부 서기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래일모레면 나라에서 무상으로 증정하는 강냉이수확기가 온다네!”

“아, 거 참 잘되였습니다!”

“이젠 자네가 파종기도 수확기도 몰게 되였네!”

“그런 기계운전이야!…” 하고 나도 기꺼워하며 말하다 말았다.

“그 많은 강냉이 이삭들을 어찌 따시려나 했는데…”

그러자 박아바이는 내가 마치 파종기와 수확기의 핸들을 완전히 잡고 있기나 한 듯이

“이젠 자네가 나 대신 이 마을 땅의 주인이 되여주게나.” 하고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속삭이듯 말하였다.

“…이건 녀편네나 한국 간 아들한테도 알리지 않고 있는 비밀이네.”

“네? 무슨 말씀을…”

“난 위암 말기라네.”

“네? 누가 그럽데까?”

내가 ‘이미 알고 있었구나’하며 소스라치듯 놀라는 데도 박아바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였다.

“병원에서 개복을 했다가 인츰 기워매니 나는 대뜸 알아차렸다네. 그러니 자네만 믿겠네. 돌아와줘서 정말 고맙네!”

그 다음 위안의 말을 더는 할 수 없게 된 나는 말 같지 않은 말을 어리광부리듯 곱씹어말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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