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풍경을 만끽하며□ 주해봉

2019-11-15 09:31:55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에 떠나는 가을이 못내 아쉬워 만추의 풍경을 가슴에 담고저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한 청량산을 찾았다.

봄부터 시작하여 여름 내내 푸른빛으로 이 세상을 빛내던 나무잎들이 가을을 맞아 노랑, 빨강으로 황홀함을 뽑아내더니 드디여 깊어가는 가을 여파에 말없이 한 장의 락엽이 되여 살며시 내려앉는다. 울긋불긋 온통 산야를 불태우던 나무잎들은 어느덧 빛을 잃고 사그락거리며 힘없이 하나둘 떨어진다!

락엽들의 신음소리! 가을 가는 소리가 분명 가슴을 파고듦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을이라는 특정된 계절 때문이라 할가? 락엽에서 풍기는 내음마저 유달리 싱그러우면서도 향긋하게 느껴진다!

헌데 청량산은 첫시작부터 만만치 않음을 예고했다!

등산로가 오불꼬불한 데다 너무도 가파로웠으며 나무로 된 계단과 철계단이 련달아 이어지면서 온몸은 삽시간에 땀투성이가 되고 목에서는 겨불냄새가 났다. 예정했던 정상 장인봉을 과연 찍을 수나 있을가 슬그머니 걱정되기까지 하였다!

고난의 행군은 그렇게 계속 이어지고… 한걸음! 또 한걸음!! 거부기걸음으로 오르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드디여 정상 장인봉에 도착했다.

땀에 흠뻑 젖었던 몸을 시원한 산바람으로 달래며 정상에서 바라본 만추의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아쉬움마저 갈마들어 야릇한 심정이였다!

계절의 갈림길에서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자신을 미련 없이 내려놓는 나무들의 모습이 고상스럽게까지 여겨졌다!

일부 성급한 나무들은 벌써 헐벗은 모습으로 온몸을 내보이며 가을을 지워가고 있었다!

옷을 벗고 숙연히 묵언의 수행 길에 오르는 나무들, 라목으로 탈바꿈한 초연한 모습을 바라보며 어쩌면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면서도 상실의 계절이 아닐가 더듬어보았다. 가을의 끝자락에는 분명 상실도 매달려있음을 조용히 깨달았다!

우리네 삶 역시 그런 것 아닐가?

사랑으로 웃다가 리별로 눈물 짓고, 욕망으로 헤매다가 본성으로 회귀하고. 왔다가 돌아가고 얻었다가 잃고, 채웠다가 비우고 입었다가 벗고.

적도를 중심으로 태양 직사점이 남북위 23.5도선 사이를 오가듯 인생도 류랑과 회귀의 반복은 아닐가?

청량산을 오르내리면서 접한 천년 고찰 청량사도 잊을 수 없고 보살봉을 비롯한 기암괴석, 그리고 하늘다리도, 산지기의 집도 솔직히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도 천년 고사목과 천년 수령의 로송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가.

나다운 세계를 구축하며 온전히 나의 삶을 사는 것일가?

자신의 삶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저 천년 로송처럼 흔들림이 없도록 자기 삶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를 부단히 점검하고 바로잡는 그런 자세?!

그리고 돌아간다는 것은 또한 무엇일가.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하게는 죽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어쩌면 저 천년 고사목처럼 실로 죽는다는 것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지.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다시 누군가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새롭게 지속되는 생명순환의 과정은 아닐가?

분명 천년 고사목은 선 채로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짙푸르던 록색에서 울긋불긋 단풍빛으로, 그 울긋불긋한 색에서 다시 누르끼레한 빛바랜 색채로.

청량산은 그렇게 만추의 풍경을 소리없이 그려가고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삶은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자 새로운 시작이여야 한다!”

청량사 고찰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살을 향해 념불을 외울 때 나는 홀로 천년 고사목과 천년 수령의 로송을 조용히 머리에 떠올렸다!

깊어진 가을에 부응하며 미아 된 나무잎들이 애처럽게 나뒹굴며 산기슭 여기저기를 헤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언의 몸짓으로 투정 없이 순응하는 락엽들이 유난히 대견스러워보인다. 푸르름도, 노랑도, 빨강도 나무잎의 모습이였다면 황홀함도, 찬란함도, 서글픔도, 쓸쓸함도 가을의 색갈임을 뒹구는 락엽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느꼈다.

청량산 만추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삶과 죽음, 존재와 소멸, 그리고 가을의 이미지에 대해 나름 반추할 수 있어서 정말 값진 산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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