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께 드리는 글 □ 천광일

2019-11-22 09:33:59

어머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당신의 아들, 애들 아빠 동필씨가 저세상으로 떠난지도 어느덧 일년반 세월이 흘렀네요!

그동안 나는 참말로 무슨 정신으로 살아 왔는지 모를 정도의 지겨운 삶을 하루하루 살아 오며 젊은 나이에 수많은 악재와 슬픔, 분노와 증오, 원망을 한꺼번에 경험하는중에 스스로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지고 순진한 한마리 양처럼 살다보니 억울함을 묻어두고 할말도 못하다가 요즘에야 좀 정신이 들어 용기를 찾게 되였네요. 그래서 어머님께서 아직은 정신이 맑으실 때 진실을 밝히고 나의 진솔한 마음과 하고 싶었던 말들을 털어놓고 싶어 이렇게 필을 들었습니다.

그해 동필씨가 청천벽력처럼 내려진, ‘간경화 말기’라는 불치의 병 진단을 받았을 적에 나의 가슴은 꺽 막히는 듯 하였고 눈앞이 캄캄해났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떡하나 그를 사선에서 건져보고 싶은 마음에 일루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모든 정성을 몰부으며 갖은 방법과 수단을 다하였어요. 하건만 종내는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는 그의 모습을 뻔히 지켜보면서 더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에 자신의 어린 두 아들과 이 젊은 안해를 남겨두고 속절없이 홀연히 떠나가는 동필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집안 상사를 처음 겪어보는 나는 한없는 슬픔과 허탈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헤매면서 그래도 그럴 적엔 한집안 식구들이 한마음이 되여 진심으로 도와 주려니 크게 믿고 또 바랐는데 ‘사람이 재난에 맞띄워야 진정을 알 수 있다’ 고 생각밖으로 그번 일을 겪으면서 속내가 더러운 인간들의 본심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됐으며 나의 생각이 너무도 천진했음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글쎄, 본인의 진정인지는 딱히 모르겠지만 저희가 그처럼 존중하고 믿었던 시어머님, 당신께서 어쩌면 자신 아들의 상사를 치르고 눈물도 채 마르지 않은 시점에 아들이 일궈놓은 재산을 탐내서 빼앗아 가려고 갖은 수단을 써가며 야단법석 란리를 치는 통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아버지마저 너무도 어이없어 화병으로 드러누워 앓다가 한달 만에 아들을 따라 저 세상으로 떠나갔지요! 휴~ 참으로 세상을 웃길 일입니다.

오늘 돌이켜보면 내가 시집올 적엔 그래도 가문의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을 공대하고 참한 며느리로 인정받고 싶어 모든 정성을 다 몰부었습니다. 시집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 곁에서 부모님을 돌보지 못하게 되니 푼푼하지 못한 시동생 광필네가 한동네서 살며 곁에서 부모님을 보살피는 게 너무 죄송스러워 우리도 어려운 살림 형편이면서도 돈을 내여 고향 마을에 새집을 지어주었지요. 그리고 명절에는 저 나름대로 처사를 하고픈 마음에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애들을 이끌고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인사를 다니면서 정성을 다 했어요. 평소에도 간혹 몸이 편치 않다는 전화가 오면 야밤에도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차를 내여 달려가서 병시중을 하면서 자식된 효성을 다 하려고 애썼지요.

우리 부부가 손에 별로 쥔 것 없이 주유소를 시작할 때도 나의 친정 식구들은 너나없이 모아두었던 돈을 내놓으면서 도왔지만 시댁에선 그 누가, 언제 일전한푼 도와준 적이 있나요? 당신의 큰 손자 영진이가 대학에 다닐 때도 내 동생이 머나먼 미국에서 고생스레 일해서 번돈을 보내여 영진이 학비를 보태줬지만 고모, 삼촌이란 분들이 언제 조카한테 용돈 한번 쥐여준 적이 있나요? 당신의 큰 아들 동필씨가 하는 일이 잘 안되여 허구한 나날을 허망하게 흘러 보내며 늘쌍 술을 잔뜩 마시고 곤죽이 되여 밤늦게야 집으로 들어오고 또 도박을 놀아 탕진한 돈, 빚진 돈이 얼마인데… 어머님이 언제 도움 한번 준 적이 있나요? 동필씨가 촌의 서기인지 뭔지 하면서 주유소는 나 몰라라 하는 바람에 녀자 몸으로 나 혼자 밤 새워가며 기름차 따라 다니며 기름 싣고 부리고 팔고, 또 세무소, 공상국, 은행 등 사처로 채바퀴 돌 듯 일보러 뛰여다니며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하여 해낼 적에도 언제 한번 시댁에서 도와준 적이 있나요? 당신 아들, 동필씨가 짊어진 도박빚을 갚으려고 오죽했으면 제가 몸져 누운 친정 엄마를 집에 남겨두고 ‘미친년’이라는 욕까지 들으며 한국에 돈 벌러 가야 했겠나요? 동필씨가 허리를 못쓰고 드러누워 앓을 적에도 제가 입에 밥을 떠 넣으면서 돌보고 또 한켠으로 애를 챙겨서 학교에 보내면서 팽이마냥 바삐 돌아쳤죠. 그때도 시댁에서 그 누구 한번  문안한 적이 있나요…

그런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한 건지 아들이 죽자마자 우리가 그토록 아글타글 벌어 모은 그 돈을 빼앗고 싶어서 효도비를 내야 한다며 란리법석이셨나요?

글쎄 주유소가 큰 재산은 아니지만 당신들은 동필씨가 없으니 후일 제가 재가라도 하게 되면 재산을 남에게 빼앗긴다는 황당한 세치보기 생각을 가지셨죠. 남씨 가문의 두 손자가 번듯하게 살아 있다는 생각은 뒤전으로 돌리고 오로지 그 재산만 탐내는 흑사심으로 재산을 나눠야 한다고 떠들었지요. 그때도 깊은 슬픔에 헤여나오지 못하였고 또 모든 것을 좋도록 처리하고 싶었던 내가 좀 믿지더라도 마음 편히 살고픈 생각에 주유소 경영이 어려운 형편이였지만 별수 없이 10만원을 꿔서 가져다 드렸어요 그 돈을 받으시니 마음이 좀 편하신가요?

당시 그처럼 순순히 그저 수긍해주는 내가 아마도 아이들의 고모, 삼촌한테는 바보로 보였겠지요. 원래는 자식들의 그릇된 처사를 말려야 될 어머님도 가세하여 들썩이며 이 며느리를 바보로 몰아주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노라니 사람보다 돈을 중히 여기는 당신이 참 가소롭더군요. 하여간 이번 일을 통해 남씨네 가족의 고모, 삼촌이란 분들이 어떤 인간성을 갖춘 사람들인지 적라라하게 드러났지요! 글쎄 친혈육인 누나, 동생들이 사람이 죽은 슬픔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효도비를 들먹이면서 로인네를 앞세워서 그 돈을 받아가니 어떻게 그토록 무정할 리가 있겠어요. 사연을 아는 동네 사람들은 모두 혀를 끌끌 차면서 정말 치사하고 찌질한 ‘인면수심’의 인간들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아무리 착하고 선량한 척 해도 돈 앞의 노예는 어쩔 수 없나 봐요! 그토록 사리가 밝으셨던 우리 시어머님이셨는데 어쩌다가 사리분별이 흐려지셨는지요.

남편을 잃은 슬픔에도 저는 그래도 어머님과 아버님만은 믿고 싶었어요. 꼭 공정한 처사를 해주실거라고. 그도 그럴 것이 당신들의 작은 손자 형진이가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미성년이고 큰 손자 영진이도 이제 금방 대학을 마친 미숙한 아이인데 적어도 마음속에 손자들은 얹혀두실 줄로 알았는데 천만뜻밖으로 너무나도 무정하게 친혈육도 저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고보니 그저 나한테 어린애들만 달랑 남기고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미웠어요. 오죽했으면 당신의 작은 손자 형진이의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너무 싫다”는 말까지 나왔겠어요. 묵묵히 모든 것을 지켜보던 영진이도 신물나는 가족 재산 분쟁이 너무도 싫어 자신이 ‘남’씨라는 게 창피하다고 외울 정도였겠어요.

아마 당신은 동필씨를 잘난 아들이라고만 믿고 계시겠지요. 고인이 된 사람을 욕보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근데 진실을 밝히려니까 어쩔수 없네요. 당신이 가르친 아들이 나한테는 평생 속만 썩이고 간 사람이예요. 그래도 남들한테는 친정에는 좋은 사람, 좋은 사위로 남게 하려고 이를 악물고 노력한 결과 무거운 짐을 이제 저 혼자 짊어지게 됐네요!

옛말에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이번에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인생의 쓴맛, 단맛을 한방에 다 보고나니 이제야 나 자신을 찾게 되였고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녀자 몸으로 참으로 무서운 생각도 많이 들어 갈팡질팡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튼 내가 해야 할 일도 많고 또 아이들의 곁도 지켜줘야 하는 나의 책임감 때문에 저도 제 목소리를 내며 형진이 영진이한테 부끄럼 없는 당당한 엄마가 되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누구의 도움을 바라기보다 어떡하든 내절로 살길을 걸어야한다는 결심을 내리고 오늘 이때까지 차근차근 가정 생활과 경영에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다보니 많은 경험과 자신심을 얻었습니다.

저 지금 혼자 당신의 두 손자를 키우면서 편찮은 친정 엄마를 모시고 돌보면서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는데 이번에 주유소를 새롭게 재보수하는 큰 공사도 저 혼자 녀자의 몸으로 해내고 있어요. 당신들은 동필씨가 없으면 내가 아무 일도 못하고 포기할 줄 알았지요?

이번 공사를 하면서 어덴가는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많았지만 그래도 동네와 곁사람들은 내가 녀자 몸으로 혼자 하는게 너무도 안스러워서 자주 들여다 보고 따뜻한 말로 위안해주더라구요. 그런데 아이들의 고모, 삼촌되는 사람들은 얼굴 한번, 문안인사 한 마디도 없더군요. 전 그럴 줄 알았어요. 괜찮아요, 그런 보탬없이 무정한 관심은 받고 싶지 않아요.

얼마 전 “엄마, 우리 이제 울지 말고 씩씩하게 행복하게 잘 살자, 하늘에서 아빠가 내려다보고 있으니까. 우리가 울면 아빠도 슬퍼하잖아. 근데 나 아빠 많이 보고 싶어!”라고 철없는 어린 자식 형진이가 아빠를 그리며 써낸 작문을 보노라니 이 가슴은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더욱 더 강해질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고모, 삼촌 같은 그런 인간들이 아니여도 나의 자식들을 너그럽고 도량있고 건강하게 키울거예요.

저는 어머님을 너무 많이 원망을 하지 않아요! 그저 지난 일들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옳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노라니 어쩌면 되려 나의 인생에 귀중한 삶의 경험을 쌓아준 일들에 고맙게 여겨지기도 하네요. 이제부터라도 나로서의 인생을 차곡차곡 빈틈없이 걸어 갈 것입니다.

아무쪼록 간강 하세요!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며느리(아직도 며느리라고 생각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를  용서하시고 리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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