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감성을 만지다
민족문화 지킴이가 되고 싶은 패션 디자이너 김지온씨

2019-12-02 09:17:33

지난해 1월1일,1회 고운 날 행사에 동참한 김지온씨.

20~30년 전에는 집집마다 하나씩은 꼭 갖춰뒀던 이불장, 옷장, 장롱 그리고 이젠 고물이 된 옛날 라지오와 카세트…낡고 허름하고 용도를 잃은 것들이 이곳에선 감성 소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28일에 찾은 우리옷 카페, 현대적인 가구에 전통적인 소품을 극도로 절제해 가미한 독특한 개화기 느낌의 공간,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우리 민족의 것에 온전히 푹 빠져버린 시간이였다.    

“우리옷 카페는 조선옷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다만 옷코너는 달랑 거치대 하나가 전부입니다. 활성화된 커피문화에 물타기 식으로 슬쩍 추파를 던져보는 거죠. ‘이렇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전통복도 있습니다’라는 형태로 말입니다.”

카페 운영자인 패션 디자이너 김지온(34세)씨, 하는 일 만큼이나 매력적인 사연을 가진 그녀를 만난 건 기분 좋은 일이였다.

우리옷 카페는 조선옷 복합 문화 공간이다.

힙합소녀, 패션 디자이너로

“첫 단추를 잘 끼우면 셔츠가 반듯하겠죠. 그런데 밋밋하고 심심할 수도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워도 얼마든지 흥미롭게 살 수 있습니다.” 우울하고 반항기 다분했던 음악이 삶의 전부였던 김지온씨의 10대 시절 얘기이다.

김지온씨는 10대 시절, 80년대 중반에 태여난 연변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진달래그룹의 래퍼 MC비트였다.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리유로 대학을 포기하고 찾은 상해, 그러나 재즈와 뮤지컬, 클래식 음악을 선호하던 당시의 상해에서 힙합음악은 인정받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시작한 번역일이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종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그렇게 ‘나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수없이 많은 입사지원서를 넣었지만 경력도 배경도 정규적인 디자인 공부도 하지 못한 그녀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그러다 정말 운좋게 입사한 길거리 패션 전문 상장기업, 하지만 그녀에게 차려진 일은 한국인 디자인 실장의 통번역, 서류 도우미직이였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프랑스나 영국에서 귀국한 류학파들이나 국내 유명 복장디자인 관련 대학에서 정규적인 공부를 마친 사람들이였고 그래서였는지 반년 넘게 ‘왕따’신세로 지내야 했단다. 그래도 그 덕에 “마음에 굳은 살이 생겼다”고 말하는 그녀이다. 그런 단단함과 패션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간절함 그리고 그 간절함으로 기울인 피타는 노력 때문이였을가? 남몰래 짬짬이 디자인한 옷이 당시 회사 이미지 대변인으로 발탁된 한국 가수 비(본명 정지훈)씨에게 사랑을 받으며 디자인 실장 도우미로 입사한 지 1년 만에 일약 패션디자이너의 자리를 꿰찼다.

그렇게 상해 패션계에서 11년간 디자이너로 활약했고 디자이너 아슈(상해에서 디자이너로 활동 당시 사용하던 이름)는 상해 현지 언론에 소개될 만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길상문화를 좋아하는 김지온씨의 소장품.
감성 소품이 된 70,80년대 가구.

고운 날, 우리 민족 옷 입는 날

‘우리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의 민족옷을 벗어버렸고 불편하다는 리유로 우리 것에서 리탈해 살아가고 있다. 우리 것은 항상 그자리에서 우리가 찾아주기만을 기다린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찾으러 갈 시기.’

지난해 김지온씨가 고운 날 행사를 기획하며 포스터에 추가한 문구다. 고운 날은 우리 민족옷 입는 날이다. 불편하다는 리유로, 가격대가 부담스럽다는 리유로 결혼, 첫돌, 마지막 가는 길 상시복으로나 입고 있는 우리 옷을 적극적으로 입어주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행사이다.

2013년 김지온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상해에서 연변으로 돌아온 건 암투병중이던 부친 김창종씨의 보고 싶다는 한마디 때문이였다. 암으로 아버지는 떠나보냈지만 소학교 입학을 앞두고 심양에서 연변으로 자식들을 데리고 돌아온 부모님의 ‘우리에게 우리를 배워주려고 왔구나’ 하는 그 마음을 되새기게 됐단다. 그렇게 민족적인 일이 ‘내 일’이라는 마음을 굳혔고 우리 글을 그래픽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창작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녀의 작품은 북경, 상해 등 대도시 고객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단다.

그리고 결혼과 육아로 약 3년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됐고 2018년 모유수유를 마치며 ‘지금 당장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한 행사가 ‘고운 날’이다.

“‘고운 날’은 우리 민족의 것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오래도록 견지하면서 더 어려운 것도 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보려 합니다. 우리 연변이 관광도시 건설에 주력하고 있는 만큼 매달 첫째 주의 아무날 요런 형태로 ‘고운 날’을 정부차원에서 운영해주면 참 좋겠네요.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니 말입니다.” 김지온씨의 바람이다.

11월11일,연변대학 패션쇼 리허설중.

우리 옷, 전통에서 일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전통복을 개량하면 일상적으로 입을 수 있지 않을가?”

김지온씨가 개량복을 본격적으로 디자인하기 시작한 건 남편 정문성씨의 이 한마디 때문이였다.

김지온씨가 최초에 전통 한복에 양장을 접목한 개량복을 만든 건 그녀가 기획한 고운 날 행사에 입기 위해서였다. 전통한복은 입으면 불편한데다 결혼 당시에도 가격이 부담스러워 한복을 장만하지 못했던 터라 임대하려고 해도 임대비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였다. 그래서 스스로 입으려고 만든 개량복, 뜻밖에도 구매 요청이 쇄도했단다. 그럼에도 고운 날 행사를 기획한 의도가 옷을 팔기 위한 것으로 왜곡될가 우려돼 절대 팔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렸단다.

그러다 남편의 설득에 생각을 다시 하게 됐고 마침 두만강축제의 일환으로 조직된 패션쇼에 초청돼 올해 5월부터 본격적인 디자인작업에 착수하게 됐다. 그리고 그녀가 디자인한 개량복은 현재 상해 신천지 쇼핑몰의 브랜드샵 입점도 제안받았단다. 그럼에도 ‘우리옷’은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에 브랜드 등록을 미루고 있는 김지온씨다.

“우리끼리 우리 옷 입는다고 정체성이 찾아지겠어?…모르지… …그치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입고 있다고…” 영화 ‘암살’의 명대사다.

우리 것을 지키는 일,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 아닐가 싶다.

버선라인의 깃은 김지온 개량복의 특색이다.

글·사진 박은희 기자

편집디자인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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