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을 따면서□ 전영실

2019-12-13 09:04:38

유난히 해빛이 좋았던 6월의 어느 날이였다. 어머니의 긴 병시중에 시나브로 지쳐가던 때이다. 병원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해볕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다 불현듯 감자밭 생각이 났다. 감자밭을 방치하다싶이 한 게 얼추 꼽아보아도 한달은 됨직하였다. 지금쯤이면 억새풀이며 까마중이며 왕고들빼기, 방초, 명아주 등 잡초들이 감자밭을 아예 뒤덮어버렸을 것이다. 나는 간병인한테 어머니를 맡기고 정신없이 전동차를 타고 감자밭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눈송이처럼 하얀 감자꽃과 연보라 연핑크 감자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있었다. 눈이 부셨다. 감자꽃이 이처럼 아름답고 눈부실 줄은 미처 몰랐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듯 청초하고 가냘픈 듯 도톰한 꽃잎들이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죄짓듯 아름다워 왈칵 울음을 토해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삶의 의지를 잃어가던 남편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려고 억지로 이끌고 이 감자밭을 일구었다. 농촌태생인 남편은 감자농사에 일가견이 있었다. 감자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고 물이 잘 빠지는 건조한 땅에서 잘된다면서 모래와 재를 얻어다가 밭에 뿌렸다. 장마에 대비해서 최대한 밭고랑을 깊게 하고 두둑을 높였다. 감자밭을 일구면서 남편은 아픔을 잊어가는 듯 했다. 마치 자신의 남은 마지막 성과 열을 온전히 감자밭에 올인하듯 시간만 나면 감자밭으로 향했다.

씨감자를 심은 지 한달 만에 싹이 나오더니 신기할 정도록 빨리 자랐다. 감자싹은 원래 빨리 나고 빨리 크는 모양이다. 한달 만에 첫 꽃이 피였다. 그런데 한두개가 피고는 그만이였다. 그마저도 서리맞은 듯 금방 떨어져버렸다.

“집안에 우환이 있는데 감자꽃이 필 리가 있나? 동물이나 식물도 죽음의 냄새를 안대. 이제부터 나는 감자밭에 오지 말아야겠어.”

그 말을 하는 남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는 자기 때문에 감자꽃이 피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 뒤로 그는 감자밭 근처에 얼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해 감자꽃이 질 무렵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기어이 떠나고 말았다. 감자꽃이 피기를 누구보다 기다렸던 사람이다. 감자꽃이 피기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삶에도 꽃이 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죽어라고 피지 않던 감자꽃이 기다리는 님이 없는데 누가 봐준다고 이처럼 흐드러지게 만개한 것인지.

남편이 가고 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감자꽃이 피였다. 다소곳한 하얀 잎새 사이에 방울처럼 매달린 도톰하고 탱탱한 노란 꽃술을 보면서 나는 백합을 떠올렸다. 백합의 고귀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지만 순수함이나 순결함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백합의 꽃말은 ‘변함없는 사랑’이다. 감자꽃에 누가 꽃말이 있을거라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하지만 기막히게도 백합보다 더 아름다운 꽃말이 있었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이 말은 순수하고 소박한 감자꽃의 순애보적 고백이다. 다소곳한 감자꽃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꽃말이다. 감자꽃말을 떠올리며 나는 또 한번 통곡을 했다.

병이 깊어지자 남편은 나의 눈을 피해가면서 약을 먹지 않았다. 아무래도 죽을 것을 편하게 살다 가려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너무 속상해서 “죽지 못해 환장을 했냐”며 행악질을  했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두 손을 들고 “당신 말을 따를게. 따르면  될 거 아니요.” 라며 고분고분 약을 먹었다.

따르긴 뭘 따라, 당신이 뭐 감자꽃인가? 따른 것도 없으면서… 나는 감자꽃 꽃말에 화가 나서 툴툴거렸다.

문득 이 많은 감자꽃들이 남편이 나에게 피워준 선물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피우고 싶었던 감자꽃을 한꺼번에 원없이 나에게 보내준 것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자 감자꽃 하나하나에 그가 채 하지 못한 말들이 담겨져 있는 듯 눈물겹고 소중해서 한없이 쓰다듬었다. 나는 남편과 대화하듯 꽃과 말을 걸었다.

“어때요? 거긴 살만해요? 아프지는 않아요? 로자는 부족하지 않아요? ”

그때 마침 감자밭머리를 지나가던 할머니 한분이 혀를 차며 호들갑을 떨었다.

“에구머니나! 감자꽃이 너무 많이 폈어. 당장 솎아버려야 쓰겠네. 안 그러면 감자를 못 먹어.”

그런 소리는 처음 들었다. 꽃이 많이 피면 감자를 많이 수확하는 줄 알았다. 뭘 아시기나 하고 저런 소리를 할가 싶어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듣고 보니 그분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아까워도 꽃봉오리를 싹뚝싹뚝 잘라주어야 꽃에 가는 영양분을 땅속 줄기에 가두어 감자를 크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직접 밭에 들어와 감자꽃을 땄다. 늙은이가 얼마나 솜씨가 잰지 서리를 하듯 순식간에 량손에 감자꽃을 두둑이 꺾어쥐고 있었다. 다급한 나머지 나는 성깔 있게 소리를 질렀다.

“잠간만 할머니! 꽃을 그렇게 따버리면 어떻게 해요?”

“감자꽃을 그렇게 따지 그럼 어떻게 따? 색시 저고리 고름 풀듯 살살 하라고? 그렇게 하고 언제 이 많은 걸 다 따?”

내가 막무가내로 소리지른 것이 서운했던지 할머니는 손에 딴 감자꽃을 밭머리에 확 내던지고 나서 손을 털고 가버렸다. 할머니가 버리고 간 감자꽃을 나는 조심스럽게 주어모았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서 감자꽃에 희망을 걸었던 사람,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이승의 인연을 모두 놓고 떠나간 사람, 지금은 어디로 가서 편히 쉬고 있는지. 그가 살아있을 때 감자꽃이 이렇듯 흐드러졌다면 혹여 지금 나의 곁에서 발을 뻗고 편안히 쉬고 있었을가?

그가 가고 나서 혼자서 감자밭을 일구면서 가끔씩 울컥 할 때가 많았다.  대체 이게 뭐라고 사람이 죽었는데 매일 김을 매고 북을 돋구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걸가. 대체 이 무슨 청승맞은 짓인지, 수시로 삶이 허무해 마음이 나락으로 내려앉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 비로소 알았다. 이는 죽은 자를 위한 또 하나의 제사이며 그리고 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울고 싶을 때는 이곳에 와서 김을 매면서 울었다.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살 것 같았다. 울 곳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남편이 나에게 피워준 감자꽃이 아까웠지만 일부 솎아버리기로 하였다. 그렇게 딴 감자꽃을 버리지 않고 병에 물을 담아 꽂아두었다. 감자꽃은 5일간이나 시들지 않고 물 머금은 초롱처럼 청초했다. 마를 때는 잎 가장자리가 안으로 돌돌 말리고 꽃송이 전체는 마치 바람이 불 때 우산이 뒤로 까지듯 밖으로 뒤집혀 곱게 말랐다.

하지가 가까워지자 감자가 흙을 밀어내고 올라오느라 땅이 쩍쩍 갈라졌다. 갈라진 곳을 호미가 아니라 손으로 더듬어도 알이 굵은 감자들이 데굴데굴 굴러나왔다. 감자농사가 대풍이 들었다. 꽃봉오리를 따준 덕인 듯했다. 겨울에 먹을 것을 움에 저장하고도 많이 남아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감자꽃을 따면서 집착과 욕심을 덜어내고 내게 소용없는 것들과 사사로움을 버림으로써 자신의 삶을 좀 더 충실하고 원만하게 살 수 있음을 깨닫게 되였다.

래년에도 후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나는 살아있는 날까지 감자꽃을 피우려고 한다. 그러면서 가끔씩 울고 싶을 때는 감자숲에 얼굴을 묻고 마음껏 울리라. 울고 나면 속이 풀리고 평안해진다.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눈물은 몸과 마음과 령혼을 씻어내리는 비물이다. 그리고 눈에 눈물이 있어야 령혼에 무지개가 뜬다고 한다. 감자꽃이 필 무렵이면 그곳에서 그리움을 쏟아내고 남편을 그리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밝혀줄 희망의 꽃 무지개가 피여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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