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소원□ 현청화

2020-01-10 09:22:17

그녀의 소원은 마흔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는 일이였다. 그녀는 예뻤다. 하지만 그녀는 줄곧 혼자였다. 주위에 친구도, 애인도 없었으며 그녀 또한 이런 생활방식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가끔 주위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들의 애인자랑이나 커플들의 다정한 애정행각을 보는 게 잠간 옆구리가 시릴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그때 뿐이였다. 삶에 변수가 많은 요즘 같은 세월에 하루가 멀다하게 들려오는 주변 친구들의 결별소식이나 리혼소식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이래서 내가 여직 솔로인 거야.”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합리화했다. 그녀가 솔로인 데엔 그녀의 괴퍅한 성향 또한 한몫 했다. 그녀는 의심이 많았고 우정과 사랑을 포함한 일체 선의적인 인간관계를 믿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누가 자신에게 친구로 지내자고 다가오면 그 사람이 자신에게 부탁할 게 있는 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철벽을 쳤다.

누가 자신에게 필요 이상으로 잘 대해주면 그 사람이 자신에게 뭔가 기대하는 게 있지 않을가 하는 부담감이 들어 그 사람을 멀리했다.

누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그 사람이 자기 통장 안의 잔고나 보유하고 있는 주식과 자산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거절하기가 일쑤였다.

서른여덟살의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그녀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유일하게 의심하지 않는 한 사람이였다. 오래전 한회사에 다니던 동료였는데 서로 인간관계가 엮이지도 않았고 리익관계도 없어 몇년 동안 간간이 문안이나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런 그 지인이 얼마 전부터 부쩍 카톡을 보내왔다. 처음엔 단순한 날씨변화나 간단한 일상문안으로부터 차츰 서로의 주변생활에 대한 대화들이 오갔고 그러는 와중에 서로 생각이 맞아 이런 사람이라면 친구로 사귀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해오던차, 이젠 슬슬 시집 갈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그 지인의 권유에 못이겨 그녀는 간만에 소개팅 장소에 나갔다.

약속장소에 나온 남자는 전체적으로 성실해보이는 회사원이였는데 얼굴에 여드름이 약간 돋아있었고 한손에 커다란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서로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남자가 말했다.

“여기는 뻐스역이 없네요.”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남자가 낮게 투덜거렸다.

“택시비가 30원이나 나왔는데. 갈 땐 저녁이여서 두배 나올 거 같네.”

주문한 스테이크와 파스타가 나왔고 그녀는 쉽사리 포크를 들지 못했다. 남자가 택시비를 불평하는 것을 보아 그녀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였다. 이제 별로 저렴하지 않은 이 레스토랑의 식사비에 대해 더치페이를 요구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그녀는 잠시 불안했다. 방금 주문할 때 누가 메뉴판을 들었는지 머리속으로 기억을 한번 더듬어보고서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면발을 감아올렸다.

식사가 끝나고 다행히 남자가 계산을 했다. 남자가 간 다음 소개팅을 주선한 지인에게 그녀는 문자로 불만을 터뜨렸다.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해. 지가 뭐 사춘기야? 그리고 그 옷차림으로 뻐스를 타. 수트가 왜 구겨져있는지 알겠어. 더 기가 막힌 건…”

그녀는 말하기도 창피하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물고 타이핑 속도를 빨리했다.

“결산할 때 내가 비싼 거 시켰다고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였어.”

“주로 어떤 얘기를 서로 주고받았어?”

“서로 하는 일들과 장래 배우자에 대한 희망사항에 대해. 그런데 나처럼 레스토랑을 자주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녀자는 료리와 살림을 못할 거라고 걱정하더라구. 그리고 막차가 끊긴다고 급히 가버렸어.”

“됐어. 그럼 그건 버려. 내가 더 좋은 사람 소개시켜줄게.”

지인의 문자를 확인하고 그녀는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웨이터를 손짓해불렀다.

“저기요, 여기 남은 스테이크와 저기 남은 면들 포장해주세요. 그리고 이 소스들 좀 더 많이 챙겨주세요. 테이크아웃. 알겠죠?”

“손님, 소스는 이미 충분히 드렸…”

“아니, 여기 레스토랑 왜 이래요? 소스를 다 부어버려서 더 챙겨달라는데 그게 왜요? 여기서 먹으면 소스 리필 안되나요? 리필 됐었잖아요!”

웨이터가 난감한 얼굴로 소스를 더 가져왔다. 그녀는 포장봉투를 들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레스토랑을 나섰다. 저녁 식사는 이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자꾸 웃음이 새여나왔다. 그녀가 젊은 나이에 지금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리유는 단지 운때문은 아니였다.

며칠 후 지인은 또 하나의 소개팅을 주선했다. 이번은 꽤 잘나가는 회사 오너라고 했다. 그녀는 차가 밀리고 주차위치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바람에 약속시간보다 5분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녀가 미안하다고 하자 남자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괜찮아요. 5분 30초밖에 안 늦었네요 뭘. 뭐 마실래요?”

머리를 빤빤하게 올려 빗고 배가 살짝 나온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후 라떼 한잔을 시켰다. 짧은 커피타임이 지난 후 남자의 질문에 그녀가 건성으로 대답하는 게 느껴졌는지 이번에는 남자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서로 바쁜 사람끼리 시간랑비 하지 맙시다. 저는 그쪽 인상 나쁘진 않아요. 그쪽은요?”

“…”

“2차까지 갈 필요 있을가요?”

“아, 죄송해요. 친구 만나기로 해서요.”

“그러니까요. 저도 미팅이 있어서. 그럼.”

그녀는 텅 빈 커피숍에 남아 지인에게 문자로 푸념했다.

“5분, 아니 5분 30초 늦었다고 지적하는 거 있지? 아주 좁쌀을 톱으로 켜겠어. 그리고, 서로 금쪽 같은 시간 짜내서 만나는 건데 내가 오기 전 미리 커피 취향 문자로 물어볼 수도 있는 거잖아? 와서 한참 만에야 내가 시킨 커피 올라와서 기다리는 그 시간은 아깝지 않을가? 아니 한 회사 오너라면서 준비성 철저해야 된다는 거 몰라?”

“이번도 안되겠다. 그렇게도 매너가 없어?”

“어떻게 제대로 된 사람 하나 없냐? 내가 나쁘지 않다면서 2차 갈 필요 있냐 확인은 왜 하지? 테스트 삼아 한번 튕겨봤더니 바로 가버리네? 무슨 남자가 기회를 포착할 줄 몰라?”

“그러니까. 내가 다른 사람으로 골라볼게.”

문자를 마치자 웨이터가 그녀가 앉아있는 테블 쪽으로 다가왔다.

“저어, 물 한컵 더 드릴가요?”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었으니 적당히 눈치를 줄 때 일어나라는 축객령임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물은 됐고요. 커피 한잔 더 리필해주세요.”

“저어, 여기는 리필이 안되는데요, 손님.”

“스타벅스는 리필이 되잖아요.”

“아, 손님, 스타벅스도 미국만 리필이 됩니다.”

“뭐가 이리 까탈스러워요? 이러니까 이 나라가 발전이 안되지. 당장 보완하세요!”

“네, 죄송합니다. 손님. 커피는 리필이 안되는데 음료수는 됩니다. 한잔 가져다드릴가요?”

“그럼, 사과쥬스로요.”

“사과쥬스는 없고 오렌지쥬스만 가능합니다.”

“됐어요! 무슨 카페가 이래? 다시는 안 올 거에요!”

그녀는 가방을 메고 쥉쥉 걸어나왔다. 하지만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카운터 쪽으로 다가가 말했다.

“오렌지쥬스 준다던 거 포장해주세요!”

쥬스를 받아갖고 나오면서 그녀는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오렌지쥬스가 있으니 집 가는 길에 시장에 들려 오이 한개만 사면 오늘 저녁 한끼는 또 해결이 되는 셈이였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부를 축적하고도 그것을 유지하려면 그닥 쉬운 일은 아니였다.

세번째로 소개팅에 나갔을 때 그녀는 드디여 고수를 만났다. 상대방이 안경을 건 학자형 남자인 데 비해 이번 약속장소는 짜장면집이였다. 메뉴판을 들고 까근히 고르던 남자가 드디여 안경너머로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건너다보았다.

“짬짜면 어때요?”

“네?”

“저는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어요. 그런데 하나를 시키면 너무 많고. 그래서 짬짜면 하나 시켜서 나눠먹으면 딱 좋을 거 같아서요. 전에 녀자친구와도 그렇게 먹었거든요.”

“… 편하신 대로 하세요.”

“아, 그리고 이런 얘기해서 죄송한데…”

“…”

“커피는 그쪽이 사실 거죠? 전에 만났던 녀자분들도 이렇게 하셨던 거 같아요.”

그녀는 어이가 없어서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남자는 그것을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인 듯했다. 삽시에 얼굴 전체가 희색으로 물든 남자가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짬짜면 하나 주세요.”

“네, 그리고…”

종업원은 한참 지나도 대답이 없자 메뉴를 받아적던 손을 멈추고 둘을 엇갈아보았다.

“그리고…?”

“빨리 올려주세요.”

“아, 네.”

메뉴판을 가지고 가려던 종업원을 남자가 불러세웠다.

“그리고 군만두 서비스로 올려주세요.”

“죄송하지만 군만두는 주문량이…”

종업원은 뭐라 말하려다가 남자의 흐려지는 얼굴을 보고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녁을 먹은 그녀는 남자가 결산하는 틈을 타 화장실을 가는 척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인에게 문자를 날렸다.

“나 몸이 아파 들어간다고 대신 말해줘.”

“왜? 이번도 아니야?”

“쪼잔하기가 양재물도 공짜면 들이킬 정도야. 첫 대면을 짜장면집 고르는 센스하며 짬짜면 시켜서 같이 먹자는 발상하며… 거기에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는 지 혼자 두개 다 먹더라? 그러고도 커피는 내가 사라고? 꿈도 야무지지. 저러고도 대학 인문학 교수야? 대체 학생들에게 인성을 어떻게 가르치려고?”

“아이구, 알았어. 다른 사람 수소문 해보자.”

“아니 대체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찾은 거야? 정말 잘 알아보고 소개시키는 거 맞아?”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네… 싫으면 지금이라도 그만할게. 내가 뭐 하러 이런 말까지 들어가면서…”

“아니, 그렇다는 건 아니고… 일단 알았어. 한번만 더 나갈게. 이번에는 정말 잘 알아보고 만나게 해줘.”

“그래, 알았어.”

그녀는 이 정도 시간이면 남자가 자리를 비웠을 거라 생각하고 짜장면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녀의 예상 대로 자리는 비여있고 종업원이 한창 테블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는 종업원을 향해 짐짓 발을 굴렀다.

“아니,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네?”

“저 화장실 다녀오느라 다 먹지도 않았는데 누가 치우라 했어요?”

“네? 결산도 다하셔서 저는 다 끝난 걸로…”

“이 집 안되겠군요. 다음번에 회식장소 여기로 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변경해야겠어요. 대체 종업원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그녀가 큰소리로 원망하면서 몸을 홱 돌리자 매니저로 되여보이는 한 직원이 황급히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메뉴가 무엇이였는지요. 저희가 같은 걸로 하나 올리겠습니다.”

“뭐, 그럴 것까진 없고.”

그녀는 내색을 내지 않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가성비가 좀 더 싼 볶음밥으로 해주세요. 포장해서 갖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니저가 종업원에게 눈짓하자 종업원은 얼굴 한가득 억울한 기색을 띄우고 주방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간신히 자제했다. 커피값을 아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즐기던 메뉴로 저녁을 먹게 되였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가끔은 부를 축적하고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부를 다시 늘이는 능력이였다.

네번째 소개팅 상대를 만났을 때 그녀는 하마트면 환성을 지를 번했다. 이번에 나온 상대는 드디여 그녀의 리상형이였다. 준수한 외모에 심리상담사 직업, 재빛 수트는 훤칠한 몸에 꼭 어울렸고 서류가방은 디자인이 심플했지만 이니셜을 보니 고가를 자랑하는 모 유명브랜드였다. 그녀는 가만히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이스.”

남자는 말발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위트가 넘쳤고 그런 남자와의 대화는 시종 유쾌했다. 남자는 다른 남자들처럼 그녀의 조건에 대해 묻는 일이 없었고 지어는 그녀의 재산 상황에 대해서도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눈치였다. 둘은 커피에 이어 저녁 식사까지 함께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3차로 간단히 호프까지 몇잔 걸친 후 남자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의 집 밑에서 남자가 아쉬운 듯 그녀에게 말했다.

“정말 들여보내기 싫네요…”

“…라면 먹고 갈래요?”

성숙한 남녀들의 진도는 일사천리였다. 그녀의 원룸에는 정말로 라면이 가득 쌓여있었지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한차례 운우가 휩쓴 후 남자가 그녀를 안은 채 말했다.

“왜 아무것도 묻지 않아?”

“뭘요?”

“내 현재 상황, 내 조건에 대해서 말이야. 난 당신 결혼 상대 고르는 게 되게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까다롭지 않아요. 이달 안으로 결혼해요 우리.”

“갑자기? 내가 어떤 남자인 줄은 알아?”

“당신을 만났기에 이런 얘기하는 거예요. 인품은 말에서 드러나고 품위는 행동에 나타나요. 결혼 후 우리 같이 고향에 내려가요. 그때 당신은 내게 한가지만 해주면 돼요.”

“뭔데.”

“내 아이의 아빠가 되여주는 거.”

남자는 놀랐는지 한참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른 후, 남자가 큭큭 소리 내여 웃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어느 지점이 웃겼죠?”

“당신이 이렇게나 대단한 녀자라서.”

남자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옷가지들을 꿰입었다.

“대단하기가 그리 심각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서.”

“…”

순식간에 옷차림을 정제한 남자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 남자는 허리를 굽혀 서류가방을 챙겨들더니 가방 안에서 자료 한뭉치를 꺼냈다.

“실은, 의뢰를 받았어. 로처녀 히스테리, 성격적 장애를 앓고 있는 것 같다는 당신 친구의 제보. 당신은 천애고아여서 주위에 관심하는 사람 하나 없다는 의뢰인의 간절한 부탁에 흔들렸어. 그래서 소개팅하는 남자중 한명으로 가장해서 당신 만나게 된 건데…”

“…”

“수집한 자료들에 의존하면 당신은 성격장애가 맞아. 하지만 내가 본 당신은 의외로 멀쩡했어. 인정하지만 난 그런 당신에게 끌렸고.”

“…”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처음 만나 고작 하루밤을 보낸 남자에게 다짜고짜 결혼해서 아이의 아빠가 되여달라니… 어찌 아이가 있게 되였고 그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여있는지 먼저 내게 물어보는 게 순서가 아닌가?”

“…”

“이런 설명을 생략해도 될 만큼 당신의 매력이 당신의 조건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니면 결혼 상대는 아무나 다되는 쉬운 일이라 생각해서? 혹시 과대망상증 같은 건가. 아니면 내 눈이 내 머리를 속인 건가.”

“…”

“원래는 병증세를 확인하고 진단을 내려 의뢰인에게 알려주는 것까지 내 업무였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여버렸네. 난 이만 이 일에서 빠질게. 이 자료들은 당신 줄게. 어제밤 내 실수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두지.”

남자는 손에 들었던 자료를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 그리고는 그녀를 일별한 후 묵묵히 몸을 돌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남자를 붙잡지도 않았다. 가끔은 부를 축적하고 유지하고 부풀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가졌던 것을 놓아버리는 일이였다. 남자가 사라진 문 쪽에서 싸늘한 바람이 불어들어와 새벽빛에 드러난 그녀의 어깨를 오싹하게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남자가 남긴 자료들을 한번 본 후 핸드폰을 들고 문자를 넣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그리고 저 때문에 여러모로 고생 많았어요. 이젠 더 안 찾으셔도 돼요, 임팀장님.”

임팀장에게서는 더 이상 문자가 없었다. 그녀가 꺼꾸러뜨린 수많은 경쟁업체들중 하나였고 회사의 부도와 더불어 산후휴가가 영원한 퇴직처리가 된 그녀의 지인이였다. 물론 그 지인의 회사였다는 것을 알고 무너뜨린 건 아니였지만 설사 알았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꼭 마치 임팀장이 지금까지 그녀에 대한 적의를 줄곧 마음에 품고 있었고, 소개팅을 빙자해 그녀에게 접근한 후 그녀를 성격장애로 몰아가 업계에서 퇴출을 시키려고 한 것처럼. 꼭 마치 이 세상 모든 일은 인과가 있고 살면서 필연은 항상 우연을 가장해서 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웃음 끝자락이 사뭇 시렸다.

한달 후. 그녀가 도착한 고향마을의 풍경은 그녀의 기억 속의 모습과는 어딘가 달라져있었다. 오구작작 모여있는 동네 아이들의 순진한 웃음은 여전했지만 그들의 뒤에 서있는 한 훤칠한 인영이 그녀로 하여금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고 남자는 앞으로 다가와 그녀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랑 결혼해줘.”

그녀는 얼굴을 돌린 채 쯧 혀를 찼다.

“누나가 알면 기절초풍 하겠어요.”

“누나가 이리로 보냈어.”

남자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눈을 휘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한달 전의 랭혹한 모습은 씻은 듯 사라져있었고 한가닥 면괴한 기색이 남자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왜 말하지 않았어?”

“말하면 달라질가요?”

“…”

그녀의 시선이 남자의 얼굴로부터 아이들의 얼굴로 차례로 옮겨졌다.

“난, 아시다싶이 미혼모예요. 십년 전 그 사람은 우연을 가장해 나를 접근했고 그가 가면서 내게 남겨준 것은 부도난 회사와 선천성 신부전 질환이 있는 어린 아들아이 뿐이였어요.”

“…”

“아이는 계속 혈액투석을 해야 했고 종국에는 신장이식 수술만이 아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그동안 부도난 회사 다시 살리기 위해 그리고 아이 치료비를 이어대기 위해 난 거의 비인간적인 삶을 살았죠.”

“…”

“아이는 신장이식을 했지만 거부반응 때문에 재투석과 재수술을 해야 했고 그때 난 더 이상 앓는 아이를 데리고 일할 수 없어 아이를 고향에 데리고 와서 먼 친척에게 맡겼어요.”

“…”

“이번 구정이 지나면 우리 아이는 세번째 신장이식 수술을 받게 돼요. 아이는 내게 한가지 부탁을 했어요. 더 늦기 전에 아빠를 눈앞에 데려다 달라고 단 며칠이라도 같이 지내고 싶다고 어쩌면 마지막 소원일지도 모른다고.”

“…”

“아이에겐 아빠가 여직 외국에서 사는 걸로 얘기했거든요. 날 버리고 떠난 그가 아이와 같은 병으로 이미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을 차마 아이에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난 당신 누나 인맥에 기대여 림시 남편 역할을 하는 사람을 찾을 료량으로 소개팅에 나간 거예요.”

“…”

“하지만 막상 소개팅 나가니 상대방의 단점을 부각시키고 트집만 잡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어요. 아이의 소원이라는데도, 난 그렇게 남자들에게 각박한 기준의 자대를 들이대며 남편역을 할 상대를 열심히 고르고 있더라구요… 난… 참 나쁜 엄마였어요.”

“당신은 좋은 엄마야.”

“좋은 엄마란 기준은 누가 정하나요? 나는 살면서도 나쁜 년이라는 말 수없이 많이 들어요. 겪은 일 때문에 의심도 많고 가끔 비렬하기도 하죠. 시장경제에서 살아남자면 비정한 수단으로 경쟁업체를 꺼꾸러뜨리기도 해야 하고 돈을 한푼이라도 더 아끼고 모으자면 각종 진상짓이 몸에 배여야 해요. 이미 난 여러 경쟁업체 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원룸 근처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블랙리스트에 빠짐없이 올라있을 걸요.”

“왜 그렇게까지…”

“왜 이렇게까지 하냐구요? 이 세상에 내 편은 누구도 없고 지금까지 날 접근하는 사람은 다 목적이 있었으니까요. 애 아빠였던 그 사람도 례외가 아니였어요. 그 사람이 떠난 후 난 사랑 자체를 믿지 않았어요. 이제 한 사람만 더 만나면 불문곡직 매달려 남편 역할을 해달라 부탁할 예정이였어요. 상대방이 얼마만한 대가를 요구하든지… 하지만 당신을 보는 순간…”

“순간 뭐.”

“당신 마음에 드는 녀자가 되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사랑을 믿고 싶어졌어요. 그날 밤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닌 단순한 끌림이였어요. 그리고 그날 당신이 내 모든 자료들을 갖고 있는 걸 보자 모든 걸 체념하고 말았어요. 당신은 나 같은 녀자를 영원히 좋아할 수 없을 테니까.”

남자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그녀를 꼭 껴안았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당신 마음이 당신을 속였어.”

“그건 무슨…”

“누나가 나더러 당신에게 많이 배우라 하더군.”

“내게 뭘요.”

“부를 축적하는 방법, 부를 유지하는 방법, 부를 부풀리는 방법, 부를 환원하는 방법 그리고 더 중요한 건 항상 랭철하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상황을 지켜보다가 기회다 싶을 때 모든 걸 올인하고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까지.”

“…”

“당신이 그때 이미 내 정체를 알면서 까밝히지 않았던 거, 나중에야 누나한테서 들었어. 누나는 오래동안 당신을 조사하던중 아이 일을 알게 되였고 당신이 당신 아이 뿐만 아니라 여기 다른 아이들까지 모조리 후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였어. 누나는 우연히 내게 이 일을 말했고 그때부터 난 당신이란 캐릭터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지. 지금 와서 얘기하는 건데 누나가 내게 의뢰한 건 당신에 대한 진단이 아니라 내 진심이였어. 그걸 확인하라고 나를 소개팅에 내보낸 거야.”

“그런데 왜 그날 그렇게 화냈어요?”

“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서.”

그녀는 풋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러면 지금은 왜 찾아왔어요?”

“아무리 의심 많고 랭혹해도, 아무리 까칠하고 비정해도 좋아. 이 한달 동안 나도 많은 걸 생각했어.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이런 당신 더 이상 놓치기 싫어졌어. 난 당신에게 상도를 배울 테니까, 당신은 내게서 사랑을 배워. 사람을, 사랑을 믿게 해줄게. 당신 아이의 아빠가 될게. 진심으로 얘기하는 거야.”

“내가 이런 녀자인 줄 알면서도?”

“인품은 심성에서 나오고 품위는 가치관에서 드러나.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수 있는 녀자일 뿐이야.”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눈시울을 붉혔다. 노을이 그녀의 얼굴을 예쁘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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