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의 맛□ 김운일

2020-01-17 10:19:35

내가 어렸을 적 먹었던 순대국은 순대를 삶아내고 남은 물이다. 그래서 순대국을 먹는다고 하면 이런 국물에다 순대를 썰어넣고 양념장을 맞추어서 먹는 것인줄로 알고 있다.

이런 순대국을 안주로 삼아 술 마시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순대국 한사발이면 술안주도 되고 밥 같은 주식을 따로 사지 않고도 한 끼 때울 수 있으니 일거량득인 셈이다.

십여년 전에 딸 보러 한국에 갔었는데 내가 순대를 즐긴다는 것을 알고 있는 딸애는 한국의 순대맛을 보라며 우리 내외를 자가용에 모시고 늘찬 길도 마다하고 그 복잡한 시내의 골목을 요리조리 빠져 기어이 순대국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한국의 순대국은 내가 먹어왔던 것과는 맛이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도 국물이 순대를 삶아낸 물이 아니고 돼지머리 고기거나 돼지뼈를 삶은 물이였다. 그리고 이런 국물에 순대만 넣은 것이 아니라 돼지머리고기와 간, 창자, 허파와 같은 내장 삶은 고기들을 썰어 넣고 간을 맞춘 것이였다. 그런 순대국은 난생 처음 먹어봐서 그랬던지 아니면 술안주감이 두루 여러가지가 더해져서 좋았던지 그런대로 별미를 느끼며 맛있게 잘 먹었다.

요즘은 “지구 건너쪽 바람이 하루 사이도 멀다 하지 않게 지구 이쪽까지 불어온다.”고 하는 세상이거늘 그 사이 연길에도 한국식 순대국집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혹시 옛날의 재래식 순대국을 먹으려면 서시장과 같은 시장의 숙식점에서 경영하는 순대매대에 찾아가야 사먹을 수 있다.

재래식순대국과 한국식순대국이 어느 것이 더 맛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사람 셋이면 입맛도 제 각각”이라 하지 않던가. 물론 전문 음식연구 분야에서는 음식맛의 일반적인 표준과 기준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음식맛의 좋고 나쁨을 어찌 일반화하여 어느 사람에게나 맞을 수 있는 정답을 내릴 수 있으랴.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활문화환경과 조건에서 이루어진 습관, 기호, 흥취 등이 천차만별이므로 음식맛도 사람에 따라 그 소욕하는 바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순대국 맛에 대한 우렬도 먹는 사람의 입맛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 입맛은 좀 유별나다. 어쩐지 순대국 하면 그래도 재래식 순대국을 더 선호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순대국에서 돼지밸 삶는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그래도 나는 그 순대국이 더 구수하고 맛있다. 이런 기호 때문인지 나는 적어도 한달에 한두번 씩은 서시장이 아니면 장날(매달 3,6,9일)에 열리는 흥안시장을 찾아간다. 순대 삶은 국물까지 이고 와서 파는 순대장사아줌마들의 순대국 먹으러 찾아간다. 나의 집착 가까운 입맛이다.

가을비 구질구질 내리는 어느날이였다. 뜨끈뜨끈한 순대국에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참을 수 없어 나는 서시장 순대 매대를 찾아갔다. 큼직한 오지독에 순대 삶은 국물을 가득 채워넣고 한쪽에 작은 가마까지 마련하여 부글부글 끓이며 팔고있는 순대장사 아줌마 앞에 마련된 걸상을 찾아 앉았다. 그리고 순대국 한사발 주문하며 “그 뜨거운 국물 좀 많이 담아주오.”라고 부탁했다.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아줌마가 “아바이는 이런 순대국을 좋아하는 모양이꾸마. 예?”한다.

건네 주는 순대사발을 받자마자 나는 인차 국물부터 한모금 들이키며 “좋구 말구!”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배갈까지 한잔 넘겼더니 지꿎은 날씨에 을씨년스럽던 기분이 단숨에 사라지고 온몸이 훈훈해 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 좋다!”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목청을 진동하며 흘러나왔다.

한창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는 그때,바로 그때였다.

순대장사 아줌마의 만면에 밝고 빛나는 웃음꽃이 활짝 피였다. 그리고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아바이, 우리 아들이 금년에 북경대학에 붙었스꾸마!”하고 웨친다. 그런 아줌마를 바라보는 내 시야에 제일 먼저 비쳐오는 것은 박바가지 밑굽같이 희벌겋게 된 아줌마의 숫구멍이였다. 무거운 순대를 얼마나 많이 머리에 이고 날랐으면 저렇게 머리카락마저 다 다슬어 빠져버려 보기 흉한 정수리가 되였을가. 그래도 아줌마는 환하게 웃는다. 웃는 아줌마의 용안이 태양같은 빛발이 이글거린다.

꾸밈없이 진솔하고 정겨운 아줌마의 모습은 내 가슴을 탁 쳤다. 코마루가 찡해났다. “고생하셨소!”하고 혼자말 처럼 했지만 페부 깊숙한 데서 우러나오는 경건한 내 진심이였기에 목소리가 좀 떨렸다. 소박하고 당당한 그 모습에서 나는 엄마들의 한량없는 모정을 깨우칠 수 있었다. 자식들이 성공할 적마다 겪었던 모든 고해를 깡그리 잊고 오직 보람찬 긍지와 희열로만 살아가는 저 엄마들의 어엿한 삶의 보람, 그렇게 되기까지 엄청난 고생과 희생이 있었으련만 엄마들은 오로지 자기 희생으로 사랑을 담금질해내기만 하는 가장 성스럽고 위대한 사람들이다.

아, 엄마의 긍지, 엄마의 희열, 엄마의 희생과 사랑이여!

생전에 우리 엄마도 유명한 ‘장돌뱅이’였다. 엿장사, 두부와 묵장사, 떡장사, 국밥장사, 순대장사… 해보지 않은 장사가 없었다. 그 덕에 아들 둘이 모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우리 엄마도 장군들이 욱실거리는 장마당 한복판에서 저렇게 “우리 둘째가 대학에 붙었스꾸마!”하고 떳떳하게 큰소리로 즐거워 하셨을가?

그런 엄마 생각이 난다. 언제나 따뜻한 정과 사랑으로 자식들을 보듬어 주던 엄마가 간절히 그립다. 보고싶다.

아마 내가 고중을 졸업하던 해였을 것이다. 어느날 저녁무렵, 엄마는 언제나 그랫듯이 무엇인가를 등에 지고 머리에도 이고 숨가쁘게 집에 들어섰다. 내가 보던 책을 밀어놓고 얼른 일어나 엄마 머리 우의 짐부터 받아내리우자 엄마는 더없이 반가와 하면서 “어? 둘째가 집에 있었네… 배고프지? 내 얼른 저녁을 해줄게.”라고 하시며 숨돌릴 틈도 없이 인차 부엌으로 내려가려 하셨다. 내가 그러는 엄마의 허리를 안아 억지로 가마목 쪽에 모셔 앉혔다.

“좀 쉬세요. 불은 내가 땔게요.”

“그럴래? 공부 몹시 바쁠텐데…”

그러면서 어머니는 이고 지고 온 짐들을 두루 건사하시느라 손놀새가 없었다.

그날 저녁 우리 집 식구는 어쩌다 엄마 덕에 생활개선을 하였다. 엄마는 팔다 남은 순대국물을 정히 간수하여 집에 이고 와서는 나머지 순대속을 함께 넣어 보글보글 끓이니 마치 선지죽 같은 순대국이 되였다. 보기만 하여도 군침이 저절로 돌게 하는 저녁밥상이였다. 게다가 터져서 팔 수 없었던 순대 한접시까지 담아서 아버지 앞으로 밀어놓았다. 아버지는 그 순대를 동생과 나의 순대국사발에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그렇게 엄마가 만들어준 특별한 순대국을 땀벌창이 돼서 실컷 먹었다.

어찌 잊으랴, 그때 그 순대국 맛을… 어찌 잊으랴, 가난해도 화기애애하게 오가던 극진한 정과 사랑을…

근면하고 지혜로운 엄마의 손맛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그 시절 그 추억! 아,내 입맛을 사로잡은 그 순대국 맛,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엄마의 손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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