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천사’로 되지 말기를…□ 요시화

2020-02-14 12:15:19

“엄마! 가지 마세요! 난 엄마가 필요하단 말이예요.”

“얘야,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필요로 한단다. 엄마가 가야만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단다.” “나 그런 거 몰라! 그냥 엄마만 있으면 돼! 다른 사람들은 그냥 다른 사람들 엄마가 와서 보라고 해! 난 내 엄마가 필요하단 말이야!”

아이가 절절하게 엄마한테 애원하고 있다. 그런 아이를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안아준다.

이건 요즈음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한 영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일선에 나갈 의사 엄마가 아들애하고 나눈 대화이다.

모든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피해 숨거나 도망가고 있다. 그런 일선으로 자원해나서는 엄마도 대단하지만 나는 왠지 그 무서운 곳에 엄마를 안 보내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아이의 마음이 너무 와닿는다. 혹시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작별인사를 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그 아이를 다가가서 포근히 안아주고 싶다. 일선으로 나가는 그 의사도 의사이기 전에 엄마일  것이다. 아이한테는 의사가 아니라 엄마가 필요했던 것이고…

발버둥치는 아이를 두고 일선에 나가야만 하는 그 엄마가 안스러운 나도 역시 의료일군이다. 온 가정이 단란하게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설을 쇠고 있을 때 겹겹이 방호복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모든 사람들이 피하려고 하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고 치료해야 하는 의료일군이다. 그리고 엄마를 필사적으로 말리는 아이가 안스럽게 여겨지는 나는 엄마이다. 금방 외지에서 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애를 직접 옆에 두지 못하고 할머니 댁으로 보낸 후 매일매일 걱정하는 엄마이다.

누군가 나한테 물어보았다. 무섭지 않냐고… 사실 우리도 사람인지라 전례없던 전염성과 빠른 전파속도를 과시하는 병마가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아직은 우로 년로하신 부모님이, 아래로는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다. 자식을 앞세우면 평생 가슴에 묻는다고 혹시 우리가 떠나면 그 지옥 같은 날들을 살아가야 할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싶다. 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로선 아예 생각조차 하기 싫을 만큼 끔찍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 또한 아직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은 젊은이들이기에 기필코 이 전쟁터에서 이겨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떠날 수가 없기에 우리도 이 병마가 무서운 것이다! 살 떨리게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역병상황은 곧 명령이고 예방통제와 치료는 곧 전쟁터이다!

비록 무섭지만 우리가 입은 이 흰가운의 무게를 알기에 우리는 또다시 장비를 점검하고 의연히 전쟁터로 향한다.

한번 들어갔다 싶으면 입어야만 하는 방호복만 세겹… 모자와 마스크, 장갑까지도 모두 세겹이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이 비상상황으로 인해 의료물자 여유가 없는 우리는 일단 벗기만 하면 다시 재활용해서 입을  수 없는 방호복을 아끼기 위해 될수록 벗는 일은 줄이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가? 일단은 될수록 화장실에 가는 차수를 줄이기 위해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다. 소변은 아예 기저귀를 차고 해결한다. 격리병동을 나와 세겹의 방호복을 벗으면 속옷까지 후줄근하게 모두 푹 젖어있다.

마스크 세겹에 보호안경까지 하고 있느라면 얼굴은 또 그 자국들로 하여 밭고랑처럼 패인 채로 하루가 다 지나가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의료장갑을 벗고 나면 더 가관이다. 손이 그냥 물에 오래동안 불려있은 듯 주글주글해지고 아예 피부가 하얗게 변해버리고 만다.

발열병실에서 환자와의 첫 만남이 선하게 떠오른다. 들어가기 전 미리 환자의 상황을 전해들었고 충분한 각오를 하였지만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그 문을 열었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다. 마치 극성스러운 바이러스에 발가벗겨져 내쳐진 기분이랄가…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몹시 조심스러웠다. 자칫 잘못하면 저 환자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치료조작 하나에도 긴장감은 극도에 도달했고 환자가 있는 병실의 문고리를 잡아당길 때마다 죽음의 문을 마주하는 듯한 심정이였다. 그토록 나 자신이 무기력하고 가볍고 작아보이기는 처음이였다. 나도 의료일군이기 전에 인간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얼굴을 대면하는 순간 그토록 긴장하고 무서웠던 나의 방어벽이 한순간에 스르르 무너졌다. 공포에 떨면서 병실문을 열었을 때 그 방안에는 나보다 더 무기력하고 더 작은 또 다른 하나의 인간, 하나의 생명, 한 아이의 어머니가 누워있었던 것이다. 그 환자는 인간이였지 바이러스가 아니였다. 환자도 무서움으로 극심한 공포에 휩싸여있었다. 공포와 분노, 무기력함이 뒤섞인 그 눈빛은 나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했고 누구보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환자였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환자의 손을 꼭 힘주어 잡았다. 환자는 아득한, 구원의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촉촉한 눈가에 사르르 맺히던 그 이슬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하나의 생명이 아침이슬마냥 가뭇없이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 순간 어떡하나 환자를 살려보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한 감정 때문에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후회 없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번날 동료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솔직히 나도 무서워… 남들은 우릴 보고 천사라고 하지만 진짜 하늘로 올라가 천사로 될가 바 너무 무서워… 허나 우리가 도망가면 안돼, 그러니 너도 나도 꼭 조심하여 절대 천사로 되지 말자꾸나.”

모든 걸 극복하면서도 일선에서 싸워야 하는 우리는 의료일군이다. 우리가 겁난다고 도망치면 이 병마는 나의 가족, 나의 이웃, 나의 친구들을 향해 사정없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우리는 앞장에 서서 싸운다. 또 죽기내기로 싸워 이겨야만 한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싸운다면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언젠가는 승전고를 울리고야 마는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단 무료하다는 리유만으로도 산책하고 바람 쏘이러 나간다고 한다. 그들은 단지 심심해서 밖으로 나가지만 세상에 심심해서 죽는  법은 없다. 그들이 단지 심심하다는 리유만으로 하는 한번의 외출로 하여 누군가의 아들딸이, 누군가의 아빠엄마는 목숨을 걸고 이 병마와 싸워야 한다. 그들이 단순히 심심해서 나오려고 하는 그 집구석이 일선에서 싸우는 일군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따뜻한 곳인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 사회는 어느 한두사람의 노력이 아닌 우리 모두의 힘을 합쳐야만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 완성될 수 있다.

오늘도 하늘의 천사로 되지 말기를 기도하면서 싸우고 있는 우리의 이름은 ‘백의천사’이다. 제발 하늘  아래 모든 천사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면서 오늘도 우리는 총대를 메고 앞장서고 있다. 우리는 ‘백의천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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