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맞받아 나는 연□ 김영분

2020-02-14 12:17:01

년말이 되니 회사는 무척 바빠졌다. 주문수량을 다 채워서 제품을 출고시켜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삐걱거렸다. 소형 하청업체들은 직원들이 하나둘 빠져 미리미리 고향에 설 쇠러 떠나다 보니 생산자가 턱없이 줄었고 남아있는 직원들은 급한 마음을 간신히 달래며 미싱을 돌려서 그런지 불량제품도 여기저기서 불거져나왔다.

다같이 협동을 생명으로 간주하며 일해왔을 협력업체들은 어쩌라고 자기 급한 것만 생각하고 시원히 협조도 해주려 하지 않는지 정말 애간장이 바질바질 타들어갔다. 그 와중에 어렵게 다 만든 제품도 검품을 거쳐야 배를 태워 내보낼 수 있는데 검사소에는 일정이 다 잡혀 우리 제품검사를 새치기해서 넣으려고 하면 하늘에 별따기였다. 어쩔 수 없이 얼굴에 기한이 다돼가는 영양크림을 바르듯 웃음을 듬뿍 바르고 관리자가 아닌 현장 실무자에게 사정사정하면 큰 인심을 베푸는 것처럼 분명히 일이 바빠서 감지도 못했을 머리를 뒤로 젖히며 귀찮다는 듯 다음번에는 이런 편의를 절대로 봐줄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정말 다음 생에는 내가 출세해서 바이어 노릇을 하든지 검사소를 하나 차리든지 해야지 이런 눈치를 보면서 일을 계속 하나 두고 봐라 하면서 이를 부드득 갈아보지만 새날이 밝으면 또 비슷한 내용으로 전화를 받고 메일을 확인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정말 회사 일은 구만리 밖으로 차버리고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집에 들어앉아 살림만 하면서 알콩달콩 살아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들게 하는 년말이다.

드디여 한해 마무리를 불에 콩 볶 듯 투닥거리며 부산스레 짓고 설 휴가에 들어가게 되였다. 일에 대한 근심과 고민은 많이 덜었고 쥐처럼 벌어 부자되는 경자년이 왔다고 서로서로 새해 인사를 나누며 설에 대한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한시름을 놓고 나니 어깨에 힘이 풀리면서 한해 동안 열심히 달려온 덕에 두 손도 마음도 한가득 풍요로워지는 것 같아 간만에 눈가에 웃음이 걸렸다.

헌데 기쁨도 잠시, 설레이는 설과 함께 뜬금없이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홍두깨마냥 우리 곁으로 불쑥 다가왔다. 바로 무한발 코로나 신종 바이러스이다. 한해 마무리에 눈코 뜰 새 없이 돌아치느라 신종 페염이 어쩌고저쩌고 텔레비며 핸드폰에서 뉴스로 보내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흘끔거리기만 했지 이 신종 바이러스 사태가 전국 심지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중국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설기간에 빠른 속도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무한을 전면 봉쇄 한다니 태여나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한국영화 《감기》에서 분당에 흘러들어온 인플루엔자 감염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극단적으로 도시를 철통 봉쇄하는 대목을 보고 바이러스가 퍼지면 저럴 수도 있구나 하면서 쯧쯧거렸는데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상주인구 천만명이 넘는 대도시를 실제로 봉쇄한다니 참말로 믿기지가 않았다.

무한을 전면 봉쇄하고 전국적으로 국민들이 마스크가 패션이 된 듯 모두 얼굴을 감싸고 뜨거운 숨을 쉬며 집에서 조용히 격리하도록 권유하는 강력조치들을 바라보며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 섬뜩하게 피부로 느껴졌다.

영화관이나 공원, 마트나 시장, 학원은 물론 커피숍, 식당 모두 례외 없이 영업을 중지했다. 아빠트를 나서려해도 방역복을 입은 경비들의 체온 체크를 받아야 하고 발열이 있으면 곧바로 집이 아닌 병원으로 보내진다니 서뿔리 바지가랭이 펄럭이며 다닐 처지도 안되였다.

어디에도 다니지 말고 집에서 조용히 있어라. 휴가도 나라에서 연장해줄 테니 안심하고 놀아라. 사람을 만나지 말고 자체 격리하는 것이 나라를 도우는 일이라니 두 눈과 두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당당하게 한가해지라는 요구는 또 처음인지라 어리둥절하고 의심스럽다가 나가지 말라는 말만 각인이 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며칠 전까지도 내가 그처럼 원하던 놀고먹는 세상이지 않던가. 일이 바쁘고 눈코 뜰 새 없을 때는 모든 걸 확 제쳐버리고 집에 들어앉아 세상일 보지도 듣지도 않고 놀기만 하면 원이 없을 거라고 내내 중얼거리지 않았던가.

꿈꾸던 세상이 왔는데 손발이 묶인 것처럼 갑갑하고 불안한 이 기분은 왜일가. 정작 집에 한가히 앉아있으라고 하니 더 밖으로 향하고 싶어졌다. 임신 때 콜라가 그렇게 먹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바이러스가 살판을 친다고 하니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에 박혀 여유롭게 맛있는 밥 끓여먹고 위챗 검열에 밀린 드라마까지 원 없이 보고 또 봤다. 꽉 조이는 외출복 입을 필요도 없이 헐렁한 잠옷에 허리가 늘어지도록 침대에 누워있으니 배불리 먹은 닭처럼 꾸벅꾸벅 잠도 실없이 찾아왔다.

얼마 안 지나 낮과 밤이 뒤바뀌고 하루가 48시간이 된 듯 더디게 지나갔다. 책을 봐도 흐리멍텅해서 무슨 내용을 봤는지 기억에 잘 남지가 않고 눈길은 왠지 모르게 자꾸 베란다쪽으로 향했다. 하필이면 하늘이 새파랗기로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 공기도 상큼하고 쨍해서 손에 한웅큼 잡힐 것만 같았다. 마음은 밖을 향해 훨훨 날았다.

원하던 세상을 만났지만 즐겁지가 않고 밥맛을 잃을 정도로 별로였다.

의욕을 잃어버린 두 눈은 정기가 없이 흐릿해졌다.

외부와 단절된 생활은 줄 끊어진 알록달록한 연이 나무가지 우에서 힘없이 펄럭이듯 생기를 잃었다. 바람을 맞받으면 연은 힘겨워도 높이 날 수 있지만 줄이 끊어지고 바람이 잦아들면 땅으로 추락한다. 연이 연답게 살아가는 조건은 바람과 조여주는 줄이 있어야 한다.

며칠 안되는 시간이지만 가만히 앉아있는 것에 진저리가 났다. 설 전에 채바퀴 돌듯 바삐 보내던 시간들이 그리워졌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편히 쉬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지독한 허무함과 외로움이 몰려왔다. 힘들고 고민스러운 일이 많은 직장이지만 그 직장에서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찾고 자기가 서있는 좌표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자기의 자리를 든든히 밟고 있어야 높이 솟고 멀리 뛸 수 있다. 남을 배려하고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으며 생동하게 살아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무가지에 걸린 연처럼 조용히 구석을 지키고 있을 때는 몸은 편할 수 있지만 추락을 의미한다. 연도 나처럼 바람이 그리웁고 조여주는 줄이 고마웠을 것이다.

외부와의 관계 단절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를 온통 의문투성이로 만든다. 그래서 우울하고 방황하고 목표를 찾지 못해 서성거리게 된다. 좋은 관계든 나쁜 관계든 사람은 관계망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한다.

지금도 뉴스 곳곳에서는 일선에서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의료일군들의 감동적인 사연들이 쏟아져나온다. 방호복을 오래 입고 있어서 땀투성이인 잔등과 땀에 허옇게 퍼진 두 손바닥을 보며 환자들을 위해 싸울 수 있어서 보람이 있다고 웃고 있는 병원 천사들은 이 시대의 영웅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오래 쉬고 있어서 한가하고 심심하다는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일 텐데 이 설에 얼마나 식구들이 그리웠을가.

그들의 하루 빠른 일상 복귀를 위해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바이러스전파를 막는 작은 일에 열심히 동참을 해야겠다. 집에서 방콕한다고 지루해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의미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야겠다. 해보고 싶었던 료리도 만들어보고 요가도 따라해봐야겠다. 내 가족의 건강을 잘 지켜내고 이웃에게 병균을 전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우리가 다같이 이렇게 행동할 때 코로나바이러스는 머지않아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이제 출근이 기다려진다. 바람 맞받아 날아오르는 연처럼 일하는 관계 속에서 활력을 얻고 더 탄탄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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