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때 그 시절에는 □현룡운

2020-02-18 11:47:50

1

 

마당도 울바자도 없는 아파트에

초롱에 같인 같은 신세요,

都心동네 아파트라서 서로 서로

마실 다니는 법두없구요

아래웃집, 집도 나들이 않하는게

요즘 닭장같은 아파트 동네 현실……

 

그래서 , 시절 시골 春節행차 그려봅니다.

해마다 겨울방학하고 그믐날 때면

어개에

설날 부식품 보따리 꿍져찬 아버지 손에 매달려

유리창 깨져 하얀 성에 가득 뻐스를 잡어타구선

눈날리는 비포장길에서 언발을 동동 구루며

고사리같은 손마저 빨갛게 얼어가지구 호호하면서

두만강가 시골뻐스정류장에서 내려서

다시 십오리 소수레 길을 타박타박 걸어

아버지네 시골집 갈때가 그립습니다.

 

황둥개 멍멍,웡웡 꼬리 흔들며

반가움인지 놀라움인지 짓어대구

벼짚더미에서 빠져나온

송아지무리들이 표정없이

멀끔이 길손들을 쳐다보고

피둥피둥 살진 새까만 도야지들이

동네를 왔다리 갔다리하면서 쿨쿨거리던

두만강역 동네 마을

음력설 분위기가 그리웠습니다.

 

소외양칸 옆에서 억센 발톱으로

소 똥무지을 긁어 파헤치면서

열심히 암탉 무리들 건방지게 거느리고

자기네 생활 활동반경을 무섭게 지키던

아버지네

발갈퀴 굵직하던 늙은 종자 수탉,

 

낯선 옷차림의 도회지 손님보구

째빨간 왕관을 흔들흔들

머루눈알 굴리면서 희끗희끗 쳐다보던

종자수탉이 발쪽자랑하면서

맞아주던 마당이 그립습니다.

 

~,~ 하는 앞가슴 떡 벌어진 수탉이

무지개 꼬리털 휘휘젓으며

얼굴익지 않은 도회지 꼬마들을 경계하는데

매서운 눈발로 우리 꼬맹이들을  노려보던

그 수탉과 먼발치 발차기 싸움하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놈의 건장한 수탉이

결국 그믐날 초저녘 잡혀 생튀당해

벌거숭이로 홀딱

어르신들 술안주로 가마솥 빠지는 신세.

그래도 토종수탉이 연길공원의

공작새보단 멋졌답니다.

 

2

호랑이 새끼같은 고양이 야웅하면서

쭈쿠리고 지키던

,. 가마솥 세 개 걸린

아버지네 가마목이 그립습니다.

 

도막나무 서려 놓은 황토 부뚜막

가마목 날렵하게 밥주걱 휘드르며

올랐다 내렸다하시는 어머니. 모습

모습이 그립습니다. 가마 솥이 그리습니다.

 

엄마의 황토부뚜막 올리타고 내리타면서

호령하는 지휘소리에 맞추어

분주한 집안 아낙네들이

고사리 무침,도라지 무침에

콩나물에 솔버섯 잡채 우무려 내고

더덕구이,두부구이를 노오랗게 굽어내고

생선구이까지 들볶는 마당에

 

떡시루 퍼내고는 

마당앞에 조이 짚단위 돌떡판에

흰김 물물나는 떡쌀 옮겨 놓으면

찰떡치면서 삼촌,형님네들

서로가 엄살과 거짓으로 지친세 하시면서

 아이구 허리야 하면서

서로 떡메를 되넘기면서

실랑이하던 마당 판이 그립습니다.

 

도막나무 푹푹 갈라패서 사려 때는

함경도식 부엌 솥에

늙은 수탉 한 마리 튀잡아 넣고

그 솥가마에 감자당면 풀어 삶고

이웃 팔촌까지 정겹게 모여앉아

막걸리  거나하게 마이면서

八道 萬州移民家庭史

이야기판을 피우던 그때가

웅큼의 장편 드라마였습니다.

 

3

 

촌마을 탈고장 양지쪽 콩깍대 북데기속에서

뒹글면서 놀던때가 그리웠습니다.

고모 ,이모 할머니들이 챙겨주던 감재가마치(감자누룽지)

지금의 피자,컨더키,맥도날드 울다 지경이였지요.

 

눈덮인 마당 김치움에서

시걱마다 금방 금방 퍼내오는

장상기(돼지감자)곁들여 담근

영채,파 김치와 통배추 김치

우리 아버지네 겨울철 김치

지금의 공장들에서 흐름선에 밀려 나오는

김치는 비할바도  아니지요.

 

뽀오얀 무우 통치김치국 맛은

맛 자체를 지금은 찾을 없고

화투치기 밤중에 사랑방에서 꺼내 녹여먹던

뚱핑궈리(凍平果梨)* 쨍한 맛은

또한 아이스크름도 못당하는 맛이였지요.

바나나,귤도 없는 그때,

그 시절 뚱리(冻梨)맛이 없어졌지요.

 

4

 

잔치집 과줄(당면을 튀긴것)孫君 준다고

색과자를 챙기는 할멈네들

옷섶엔 엿주머니도 달려있었지요.

명절과 군일이면  온동네가 서로서로

음식을 돌리는 건 미풍량속이였지요.

 

두만강가에서 朝鮮(북측)의 친구아이들과

눈 썰매,스케트도 함께 씽씽 타기도 하고

팽이치기하면서 사탕과자와 명태을

서로 바꾸어 먹던때가 그립습니다.

밤중이면

시골 동네 고모할머니네 초가집 연목새에

사다리를 가만히 받치고선

처마밑 새둥지에서 자는 참새를

호주머니 공깃돌 잡듯이

잡던 때가 재미 있었지요.

 

동네 꼬마친구 누나 사돈잔치소문에

낙지,명태꼬리 챙길려구

코흘리개 개구쟁이 무리들 쪼로로 몰려가

왁작지껄 딱지놀이하면서

마당 먼지만 피워대는데

개눈깔 사탕 한 두알씩 얼려 쥐여 주면서

강제로 마당추방 조치하던

친구놈의 능청스런 매형 체면도 살려준게

지금 생각하면 ㅋ ㅋ 웃음이 나옵니다.

처녀총각 련애 마당을 성수나게 흐려버렸으니깐요.

 

5

 

할배들의 화로불에 토슬토슬한 감자

살며시 뭍어 놓구선

논자락에 꼬마 사냥군들이 나갔지요.

해볕받이 논밭 두렁이에 살짝치우고

착고를 풀어 놓구,좁쌀 뿌려놓구---(참새잡는 공구)

동리의 참새를 쫓아 잡을 기세를 부렸지.

 

논밭을 이리 저리 달아다니면서

눈먼 참새 어마리 요행잡어

할배네 화로불에 꼬마 사냥꾼들끼리 굽어 먹다가

아빠가 설날행차용으로 사준 새 신발 젓히고

발가락 얼군게 들통나서

큰 엄마 야단도 많이 맞었지요.

 

시골동네 설날 결혼 잔치집의

얼근해진 가정동네 오락판의 주석은

지금의 음력설 춘절문예야회

사회자를 뺨칠 정도였지요.

그 오락판을 그 때 말로는 <우리 논다>했지요,

한 밤새우면서 기껏 놀구선 잘 놀았다면서

한 두달씩 미담으로 엮어 외웠지,웃었지요.

 그런 동네 남녀로소 오락판 정말 그립습니다.

 

6

 

버드나무 물함지에

바가지 엎어놓구 두두리고

팔도아리랑 타령을 부르면서

덩실덩실 춤추던

두만강을 허리에 감은 동네

동네서 살던 때의 설날이 그리웠습니다.

 

8전짜리 우표가 전국을 통하던 그때

그때 사곳에서 부쳐보낸 편지

달이나 포나 지나서야

 배달받던 시절,

 

누어런 종이에 퍼런 잉크로

또박또박 적어 보내온

군대나 학교에 간 친구 녀석들의 설날 위문편지

지금의 메세지 , 예쁜 카드보다,E-mail보담

위챗이나 동영상보다

반가웠던 세월이였지요.

 

온 동네마을이 따스한 인정세계였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7

 

이동영화 봉사대가

덜컥거리는 소수레에

영화방영기하구  필림싣고 오는 날 저녘이면

동네 학교마당이 영화 觀覽場이였지요.

해가 중천에 걸렸는데 운동장에 影射幕 걸어놓고

영화 한 편 돌릴 준비 분주하면

점점 늦게 지는 해님이 얄미스러웠지요.

 

부락 남녀로소가  해지기전부터 모이면서

손녀는 할매 앉을 자리 차지한답시고

이불요 망석 만들고,

이웃집 손주는 자기 할배자리 먼저 차지한다면서

노루가죽 펴구선 미리들어 누워있었지요.

 

우등불 피워놓고서 언몸을 돌아가면서 녹이고

볶은콩에,호박씨,해바라기씨도 까먹으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처녀총각들이

쌍쌍이 목 빼들고 영화구경 할 때

그때가  그렇게도 좋았겠죠,

사랑의 영화구경이 기다리는 명절이였지요.

 

달에 두번 보는 영화

그겄도 필이 우리말로 해설하여야 알어보던

자체가 최고의 향수였던 떄였습니다.

외래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세상이엿지요.

순수 우리말과 글만 쓰는 동네였지요.

 

아하, 如昔,

지금, 시내 사람,인간들은 많다만

인정미는 사라져가는게 현실이요

자물쇠 열쇠 없이 살던 그동네 ,

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소수레 달구지타고 신나했고

경운기 타구선 비행기 탄듯 신났던

그 동네 그때 인품들은 어딜 갔을가요

그런 동네가 인젠 없어져 갑니다.

우수경첩(雨水,驚蟄) 대동강이 녹듯이

녹아서 사그려져 갑니다……

 

8

 

개학 때가 다가오는게

그렇게도 싫었던 시절

허진 심정으로 여름방학을 기약하면서

아버님의 귀가명령에 억지로 돌아오는

시골가는 길은 즐거워 발걸음 퐁퐁

시내 집으로 오는 싫어서 걸음발 질질.

 

겨우내 장난기로 얼어 터진 

<사고뭉치> 조카 손등 만져주고 보담던

엄마의 따스한던 손길이 그립나이다.

집으로 오는

이것저것 채운 보자기 메워 주고는

엄마 몽당치마 궤춤에서 슬며시 건네준

돌돌 말아진 십전짜리 지페 두장

애지중지 모아둔 씨종자 계란 팔어

바꿔 온 돈인줄 나는 나는 몰랐지요.

 

, 십전짜리 두 장이 얼마나 큰 돈이였던가

일년내내 현금 흐름이 거의 없는 그 동네

조카 차비돈 마련으로 얼마나 고민했을가.

다른 친척 또래녀석들이 볼가봐

돌돌 말아진 지페를 손가락에 감싸쥐게 하면서

쥔게 없어 더 못준다

안타가워하신던 우리 큰 엄마.

 

여름방학 때면 수박, 옥시 먹으러

오거라 마을 동구밖까지 바래면서

내내 손짓하고는 눈 꿉찍던 엄마.

엄마의 뒤에는 덩치 수양버들이

초봄날 바람에 휘휘 쉬쉬

가라 다시오너라 개구쟁이야 인사하는 듯......

     

그래서 오늘 50년이 지난 오늘

이60대 중반을 넘긴 사람이

동년의 마음으로

고향 시골동네를 그리면서

돈주고 그런 촌 동네 찾으려

그 옛날 냄새 좀 남어있는 동네를

찾어보렵니다.

 

꿈 같은 소리.옛날소리한다고

집사람은 픽픽해도 한번 다시 가봅니다.

그런 인정 세태 다시 올가요?어디 있을가요?

그래서 금불여시가요,

인정세계 今不如昔,

今不如昔여.

 

 

                   연길 신세기 연구실에서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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