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그 악몽 같은 나날에…

2020-03-04 08:31:08



집에서 남편을 격리시키다

김순화 (36세, 연길)

의료일군인 남편은 초이튿날부터 설련휴를 반납하고 비상시기 출근에 돌입했다.

남편의 건강도 걱정됐지만 한편으로는 혹여 남편이 저도 모르는 새에 바이러스 보유자와 접촉한 후 집에 돌아와 어린 딸아이한테 옮길가봐 걱정됐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알레르기성 체질이라 웬만한 항생제는 쓰지 못하기 때문에 가벼운 감기조차도 우리한테는 높은 산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이라도 남편을 병원부근에 있는 비여있는 작은 집에 잠시 거처를 옮기라고 할 생각까지 했지만 아무래도 남편도 불편하고 우리도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남편도 말하기를 병원에 출입하는 환자들은 모두 체온을 재는 등 조치를 취한 뒤 조금이라도 의심증세가 보이면 바로 발열문진으로 이송하기 때문에 병원 내부 대부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와 접촉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면서 안심하라고 했다.

남편의 설명에 다소 안심하긴 했지만 남편이 퇴근하여 돌아오면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독제를 뿌리고 샤와를 했으며 지어는 안경까지도 소독했다. 그리고 자기 방에 들어가게 하고 한창 겨울이였음에도 문을 열어 반시간씩 통풍시키고 딸아이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이런 상태는 연변의 네번째 환자가 퇴원할 때까지 지속됐다. 비록 아직 1명이 입원중이긴 하지만 며칠간 확진환자가 새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긴장했던 마음은 저으기 사그라들었다.

남편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극성을 떨지 않았나 싶다고 하지만 그래도 모든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고 나 자신,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게 옳았다고 생각된다.

특수한 시기엔 일말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내가 지키려 했던 건 우리 가족의 안전이였고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킨다는 것은 내 주변인들에 대한 최저한도의 책임이였다고 생각된다.



얇게나마 가려졌던 인심 드러나

유 니 (남, 가명, 31세, 연길)

이번 코로나사태에 마스크 때문에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사태가 금방 터지고 나서 모두 마스크가 부족한 상황에서 나는 마스크 기부 캠페인을 벌려 적으나마 사회에 보탬이 되고저 했다. 상대는 집에 로인이나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을 위주로 했다. 정말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문의 했고 나는 제한된 마스크 수량 때문에 마스크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 한두장씩이라도 골고루 드리려고 노력했다.

마스크 기부 캠페인을 펼치면서 나는 감동과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주 가끔은 한심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해서 문전송달까지 했는데 금방 돌아서서 그집 1층을 지나는데 창문을 열고 마스크를 머리우에 뿌려던지면서 “그깟 한장을 가져와? 필요없으니까 도로 가져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문앞까지 당도한 배달아저씨의 전화를 줄곧 받지 않기에 되돌아왔는데 1시간 뒤에 다시 전화와서 가져오라고 명령조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기왕 마스크를 기부하는데 배달비도 같이 내주면 안되는가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마스크를 받고 나서 한국산마스크가 아니라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마스크 장사군은 위챗으로 메시지를 보내와 “쓸데없는 짓을 벌리고 그러세요, 우리 장사군들은 어떻게 팔라고 그럽니까? 혼자 칭찬받고 싶어 오버하는 것으로밖에 안보입니다.”라는 의미의 욕까지 퍼부었다. 삽시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오싹해났다.

결국 나는 지쳤고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중 민간인보다는 연변병원에 마스크가 부족하니까 차라리 일선의 의사들에게 기부하는게 어떻겠냐고 해서 그 말을 듣기로 했다. 이튿날 지인을 통해서 남은 마스크는 몽땅 연변병원에 기부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그동안 얇게나마 얼굴가죽 한장에 가려져있던 인간들의 얍삽한 모습을 보았고 진정한 사람됨됨이를 헤아려보게 되였다.



남편과의 관계에 빨간 불이…

리은화 (30세, 상해)

이번에 거의 1개월 넘게 집에서 쉬면서 내가 정말 그동안 리듬 빠른 도시생활에 적응하느라 다람쥐채바퀴 돌리듯 일상을 반복하다보니 가족과의 뉴대에 대해 소홀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아이와의 관계는 가까와졌지만 남편과는 멀어졌다.

평소에는 정말 딸아이와 같이 놀아주고 배워주고 할 시간이 극히 드물었다. 이번에 나는 아이와 함께 영어공부도 하고 케익도 만들었으며 가끔씩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책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방역 일선에서 힘들게 고생하는 분들께는 미안한 얘기지만 아이를 낳아서 처음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해봤다. 딸아이와의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반면, 남편과는 사이가 멀어졌다.

가사로동에 힘든 안해를 돕기는 커녕 아침상을 다 차려놓고 깨워도 꾸물거리면서 계속 잠을 자는 것은 일상다반사이고 집안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한다. 내가 저녁 늦게 근처 마트에 장보러 갔다 와도 의례 그런 법인가 한다. 상해 한끝에 시집와서 서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도와달라고, 같이 하자고 여러번 대화를 시도해도 변화가 없다. 솔직히 맞벌이 부부인데 가사일에 남자, 녀자가 어디 있는가?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신경을 거스르는 자잘한 나쁜 습관들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띄고 그럴수록 미운 털이 박혔다. 내가 여직 이런 사람과 결혼생활을 유지했나 싶다. 이런 남자는 내 일생에 필요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는 내가 육아 우울증이라고 한다. 누구나 많게 적게 육아 우울증을 겪는다. 하지만 육아 우울증 해소는 주변사람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 남편이 계속 이런 상태를 유지한다면 우리 결혼생활의 끝은 불보듯 뻔한 것 같다. 이번 코로나사태로 인한 장기 휴가는 여직 쌓여온 불만의 기폭제였다.



고역이 따로 없는 직장생활

은 이 (가명, 36세, 상해)

1년 만에 설쇠러 연길에 돌아오면서 거창한 계획을 잔뜩 세웠다. 맛집을 렬거해놓고 하나하나 방문해서 먹어줄 생각이였다. 쇼핑도 거창하게 하고 지인들과 만나서 수다도 떨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초사흗날부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바람에 상해로 돌아가기 전까지 꼼짝 않고 집에 있어야만 했다.

직장 복귀 후 더욱 큰 고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 주변 500메터 내 아빠트단지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일단 복귀는 했지만 첫주 재택근무를 했고 두번째 주부터는 정상 출근을 시작했다.

출근 후 직장내에서는 꼬박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야 되고 에어컨 작동을 금지시켜서 추워서 덜덜 떨어야만 했다. 환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고 있는데 창가에 앉은 직원은 추워도 꼼짝없이 당해야 했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심수지사에 비하면 상해는 그나마 호텔급이다. 심수는 더운 데다 마스크까지 착용해야 해서 찜통이 따로 없다고 했다.

직원 휴계실 사용도 금지시키는 바람에 도시락을 덥힐 수도 없어서 찬 밥을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출퇴근은 더 고역이였다. 대중교통을 리용하지 못하고 택시나 자가용만을 리용할 수 있었는데 직장내 집이 멀리 떨어진 직원은 편도 택시비만 100원이 나왔다.

나는 그나마 자가용이였지만 그것도 편하지 못했다. 회사 건물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몇개 없고 주변 아빠트단지에도 주차를 금지 시켜놓으니 주차를 위해서는 일찍 출근해야 했다. 대부분 자가용은 하나지만 부부가 모두 출근해야 하니 그것도 가정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일정 시간 지난 후 회사에서는 하나둘씩 문제를 해결해주기 시작했다. 핫팩도 나눠주고 전자레인지를 여러대 추가해서 점심식사를 덥힐 수 있게 했으며 출퇴근 교통비도 일정 부분 보조해줬다.

어쨌거나 이 모든 사태가 하루빨리 지나가서 정상적인 궤도에 다시 들어섰으면 좋겠다.


리련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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