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설이 없다□ 리향옥

2020-03-12 15:39:09

설련휴 전, 퇴근해서 이런저런 물건을 사들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각종 음식과 온 가족의 새 옷을 사들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짬짬히 시간을 잡아 쇼핑몰을 돌았다. 애들하고 남편, 그리고 부모님의 속옷부터 털실 내의, 바지 그리고 양말까지 꼼꼼히 챙겼었다. 시댁으로 설쇠러 떠나야 하는 남편과 큰 딸애, 음력설을 함께 할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해서 적어도 새 옷을 장만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나는 매일마다 몇가방 가득 사들고 집에 들어섰고 만족스러워 하는 가족의 웃음 속에 안도의 숨을 쉬였다.

내게는 음력설이 있었던걸가? 해마다 돌아오는 음력설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10여년간 제대로 쇠여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졸업하고 처음 맞는 음력설, 남자친구는 자기집에 인사하러 가자고 요청했고 나는 긴장된 마음을 추스리며 미래 시부모님을 만나러 떠났다. 낯설지만 따뜻한 집, 설 준비를 확실히 하고 기다리고 계셨고 도착한 첫날, 백화점에 들려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새것으로 사주셔서 몸둘바를 몰랐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반찬을 준비하셨고 여러가지 과일도 깨끗이 씻어서 상우에 놓았다.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못하게 하고 완전 공주 대우를 해주셔서 그 따뜻함에 마음이 훈훈했던 기억이다.

3년 후, 새 일자리를 찾고보니 일본 휴일을 맞춰야 하는 그런 시스템이였고 아쉽게도 음력설이라는 전통적인 명절이 없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설 련휴와 상관없이  정상 출근이여서 꼬박꼬박 나가야 한다. 추운 겨울날, 홀로 기상하고 세수하고 두터운 옷을 꽁꽁 챙겨입고 길을 나서지만 싸늘한 바람 속에서 흠칫 떤다. 이럴때는 진짜 일이고 뭐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련휴와 상관없이 출근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고 있고 해마다 똑 같이 일터로 향하지만 착잡한 마음은 여전히 컨드롤이 잘 안된다.

그믐날 아침 어두컴컴한 빌딩에 들어서서 출석체크를 하고 조용한 사무실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컴퓨터 타자소리와 밖에서는 간간히 터지는 폭죽소리에 정신집중이 잘 안되여 부산한 기분을 억지로 공제하면서 업무를 본다. 빌딩 내 식당은 언녕 영업을 중지했고 회사에서 준비한 가까운 백화점에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궈보러우가 있고 갈비며 생선이며 가득 준비돼 있어 우리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으며 설에도 근무해야 하는 적막함과 고단함을 서로 푼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마감을 하고 둘 셋씩 짝을 지어 회사에 돌아간다. 빌딩 내는 거의 다 쉬는 지라 썰렁하고 추워서 두꺼운 가디건을 걸치고 일을 해야 한다.

저녁에 다들 설이라 칼퇴근이다. 깜빡깜빡 졸고 있는 가로등은 내 그림자를 길게 비추어 준다. 하늘에서 번쩍이며 터지는 불꽃이 오색찬란하게 부셔지는 것을 보면서 혼자서 집으로 향하는 심정은 묘하다. 마음 한구석에 깊숙히 파묻혀 있던 적막함과 고독이 슬며시 머리를 들고 삐죽삐죽 나오려 한다.

문을 떼고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벌써 입쌀밴새를 빚어놓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작은 아들애는 엄마가 돌아왔다고 폴짝폴짝 뛴다. 가마에 푹 쪄낸 하얀 밴새는 쫀득쫀득했고 배추 고기 속은 고소했다. 뜨거워서 입으로 홀홀 불면서 먹는 밴새는 엄마의 손맛이였고 사랑이였다. 내가 쉬지 못하는 연유로 남편은 큰 딸애를 데리고 시부모님 댁에 돌아갔고 집에는 둘째를 봐주시는 부모님과 작은 애만 남았다. 한 가족이 두쪽으로 나뉘여서 쇠는 설은 서로 말은 안해도 쓸쓸하고 서운하다. 화상채팅으로 서로 대화를 하지만 같이 설을 쇠는 것과는 완전 느낌이 다르다.

그믐날 밤을 거의 새다싶이 하고 아침 6시에 기상해서 또다시 출근을 해야 하는 신세였는데 금년 초하루와 초이틀은 주말이여서 간만에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신났던 기분도 금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뒤숭숭하고 불안한 설이 되고 말았다. 최신 뉴스에서 진단이 확정된 환자가 매일 늘어나고 있고 남방쪽에 퍼진 것이 인젠 북방도시에까지 발전하고 지어 외국에까지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은 충분히 우리의 심정을 심란하게 한다. 음력설에 다들 고향에 돌아가는 바람에 인원이 많이 류동되고 접촉으로 감염이 된다는 사실이 다들 공포속에 빠지게 하였다. 집에만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하여 이틀 동안 쥐죽은 듯 조용히 지냈다.

뉴스나 위챗 공중계정에서 매일 새로운 상황을 제때에 보고하고 있었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방법과 안전수칙에 대해서 선전하고 있었다. 빠른 시간내에 안전수칙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일선에서 뛰는 의사, 경찰, 기자들과 편집들 또한 설을 쇠지 못했을 것이다.

초사흗날은 월요일이니 나는 출근을 할 수밖에 없다. 밖은 쥐죽은듯 조용하고 날씨가 흐린 탓에 어둡다. 눈을 억지로 비벼뜨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나오니 온 거리에 나 혼자뿐이라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다. 입사 십여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이젠 제법 적응이 될 법도 하지만 아직도 그게 잘 안된다. 길가에는 전날 밤 폭죽을 터치고 남은 빨간 잔해가 땅바닥에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고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안보인다. 폭죽을 많이 터친 탓에 공기는 매캐하고 안개가 낀 듯 자욱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명쾌한 음악을 틀고 앞을 향해 걸었다. 마스크는 꼭 착용했지만 바이러스가 어디에 있을지 감이 안온다. 이렇게 밖에 나와도 될가 싶지만 마음을 다잡고 주저하지 말고 나가야 한다.

앞에서 빈 택시 한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택시 기사도 흉흉한 소문때문에 불안할텐데 그걸 이겨내고 영업을 하러 나온 듯 하다. 오렌지색 작업복을 입은 청소부는 비자루로 길을 열심히 쓸고 있었고 전날 밤 터치운 폭죽 찌꺼기를 쓰레기 봉지안에 담고 있었다. 전철역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직원들이 체온을 재고 마스크 착용여부를 검사하고 있었다. 거의 텅 비다 싶이 한 전철이 미끌어지듯 역에 들어섰고 한메터 거리를 두고 띄염띄염 앉은 사람들은 휴대폰을 쥐고 서로 말도 섞지 않고 조용하다.  나는 어느새 회사에 도착해서 기계적으로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고 재료를 체크하며 도표를 만드는 그런 중복된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설을 쇤걸가? 새 옷도 입고 새해 축복도 하고 물만두도 먹고 세배돈도 챙기고 설에 해야 할 일들 다 한다지만 다들 쉬는 날, 나는 출근해야 한다. 뭘 위해서 아글타글 하는가 싶지만 이건 내 직장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휴가를 반납하고 제일 위험한 곳인 병원으로 거슬러 들어가는 기사를 봤다. 방호복을 입고 주저하지 않고 자진해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도 가족이 있을 것이고 설을 쇠고 싶을테지만 비상시기에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고 제일 힘든 곳으로 한치의 망설임이 없이 나간다. 공무원과 경찰, 그리고 군인… 모두 각자 일터의 임무를 완수하러 떠나는 뉴스를 보니 나는 단지 출근하는 것으로도 불안하고 그런데 저 분들의 심정은 어떨지 가늠이 안간다. 자원봉사로 설을 쇨 수 없는 이 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행복어린 투정이 아니었던가 싶은게 부끄러워진다.

  힘들게 시작한 새해, 바이러스를 하루빨리 이겨내고 원상복귀 될 수 있는 그런 소원을 빌어본다. 평소에 중시하지도 않던 소소하고 소박한 생활이 우리에게 주는 그런 안온감이 제일 큰 행복이란 것을 뼈져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설은 그나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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