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김미월

2020-05-22 09:02:20

이런 설화가 있다. 네 도둑이 서로 더 많은 돈을 차지하기 위해 벌린 욕심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 도둑이 넷으로 나눠야 할 돈을 세몫으로 나누려고 나머지 한 도둑에게 술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술을 사러 간 도둑이 술에 독약을 타 가져왔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세 도둑은 술을 사온 도둑을 절벽으로 떨어뜨려 죽인 다음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는 모두 죽었다고 한다.

생뚱맞게 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 그릇은 요만한데 더 많은 것을 담으려 했고 내게 속하는 것은 이것 뿐인데 저것도 욕심낸 것이 아닌가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결막염이 도져 병원에 갔다가 진찰순서를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글 한편을 보게 되였다. 요즘은 참 좋다. 굳이 지면으로가 아니라도 좋은 글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평소 참 존경하던 언론계 대선배님의 글일뿐더러 ‘조선족 재인식’에 관한 글이여서 제목부터 구미가 확 당겼다. 쟁쟁한 칼럼니스트답게 첫 구절부터 시작하여 “맞아, 맞아”를 련발하게 하였고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러다 한 단어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덕담내용이 날카로워서였는지 아니면 덕담을 펼치는 느긋한 자세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틀린 철자 하나가 눈에 띄였다. 이로써 나는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이분이 어떻게 ‘와’를 쓰셨지? 새 규범에서 ‘워’로 바뀐 것을 이분이 모르실 리가 없을 테고 신문사에서 이렇게 고쳐놨을 리도 없고… 글을 읽으며 서캐 캐는 ‘병’이라면 병인 직업병이 눈치도 없이 또 발작한 것이다.  ‘와’를 쓰든 ‘워’를 쓰든 전편 글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 그 한 글자 때문에 좋은 글 한편 제대로 읽을 향수조차 누릴 줄 모르는 것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현실이다.

물론 이 ‘병’이 나쁜 것은 아니였다. 내가 욕심을 부리기 전까지는. 이 ‘병’은 나를 빠른 시일내에 교정이라는 직업에 몰입할 수 있게 하였고 상사나 동료들의 절찬을 받게 하였다. 또 평소 독서를 하다가도 ‘병’이 발작하여 눈에 가시로 보이던 것들을 모으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종합하여 학교 때 배웠던 어학지식과 반죽하여 론문을 써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관련 사실을 계기로 하여 칼럼도 써서 좋은 평판을 받았다. 허나 그러한 글들은 특성상 비판성을 띠는 거라 본의 아니게 ‘적’을 만들어낼 때도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평소 위챗 대화내용이나 모멘트를 봐도 내 눈엔 옥의 티들이 잘도 들어온다. 그렇다고 틀렸다고 대놓고 지적하거나 틀리게 쓴 장본인을 가타부타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 입이 근질거릴 때면 딸애에게 보여준다. 한번은 학급 단체방에서 아이가 감기에 걸려서 청가신청을 하는 어머니의 글-“소려(가명) 다 낳(나)으면 보낼게요”를 보고 딸애에게 “소려가 아직 태여나지 않았나 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글을 보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의 레이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나를 친구목록에서 삭제하고 싶을 것이다. 그걸 감수하면서도 굳이 적는 것은 내 ‘병’의 심각성을 호소하기 위해서랄가? 그러나 모전자전이라고 이런 나의 행동을 딸애가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친구 모멘트의 답글에 철자를 수정해준다든가 내가 가끔 종결토를 애교스럽게 고쳐서 문자를 보내면 “엄마, 선생이라면서 ‘용’이 뭐야?”라고 답장을 보내오군 했다. 딸애의 조선어문선생님은 아마 맞춤법을 잘하는 딸애가 대견스럽겠지만 딸애에게 ‘병’이 전염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였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병’으로 인해 쓰여진 글들 말고 순수 문학적인 고운 글을 쓰고 싶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이런 말이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꿈이 실현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거짓말처럼 얼마 안 지나 내 작은 소망이 실현되였다. 문예지에 수필 한편을 발표한 것이다. 나도 너무 기뻤지만 주위에서 더 환호해주었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계속 써야만 한다. 아니면 처녀작이 고별작이 될 것이고 소문을 내줬던 ‘측근’들의 얼굴을 두번다시 볼 면목이 없을 것이다. 하여 새해 계획에 버젓하게 수필 몇편을 발표하리라 적어놓았었다.

하지만 글 한편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데 써낸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소 웃다 꾸레미 터질 일이다. ‘병’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한 이 또한 완치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봄이면 코를 간질이는 화분알레르기마냥 출판사에서 근무하기 시작해서부터 1년에 한두번은 꼭 살아나는 결막염처럼. 교정이라는 일을 하면서 일년에 100권의 책을 본다고 할 때 그외 기본으로 보는 세종의 잡지에 단행본까지, 게다가 딸애와 함께 보는 어린이도서들까지 합치면 얼추 계산해도 하루에 10만자가량의 글을 본다고 할 수 있겠다. 내 몸에서 제일 고생하는 기관이 눈이고 제일 안스러운 것도 눈이다. 다행히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여나서 여직 시력은 좋지만 좀 쉬게 해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 결막염인 것 같다. 2, 3년 줄곧 약처방을 떼주던 담당의사가 말했다. “이제는 불편할 때만 병원 오지 말고 이 약을 하루에 한두번씩 계속 넣으세요.” 근치가 안된다는 뜻이겠지. 인쇄물로부터 오는 압력을 좀 줄이라는 말이 먹혀들어가지 않으니 이제는 안약을 계속 달고 있으라는 말이다.

결막염이 근치가 안되듯이 내 직업병도 근치가 안될 것이다. 직업병을 달고 있는 한 좋은 수필을 써내는 것 또한 내 욕심이려니. 첫머리에서의 네 도둑처럼 서로 자기의 응당한 몫만 챙겼더라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글은 씌여지는 것이지 마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만 해도 넘쳐나는 세상 아닌가!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편해지고 일이 더 순조로워질 거라고 누군가 그랬다. 그래서 바라던 일이 잘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니 배포유하게 계획표의 그 한줄을 지워버렸다. 따갑기만 하던 해살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참 좋은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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